책소개
허무와 냉소의 아교질로 구축된, 전대미문의 생의 비가
정갈한 언어로 존재의 쓸쓸함과 비극적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김명리 시인은 시집 『친밀한 슬픔』을 두고 “허무와 냉소의 아교질로 구축된 전대미문의 생의 비가”이자 “조현병을 앓는 한 시인이 절망과 비애를 문학의 자양분 삼아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간 생의 비망록”으로 일컫는다. 박종언 시인이 던지고 끌어당긴 언어의 그물에는 과연 무엇이 담겨 있을까.
박종언의 시가 그리는 궤도에는 50명 이상의 시적 화자가 등장해 저마다의 간절함과 안쓰러움, 부질없음과 속절없음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김봉만(53), 서순금(55), 알렉한드로(23), 이무혁(42), 김준봉(37), 호세 카를로스 세르반테스(71), 이학출(52), 이정자 (55), 송복만(58), 이옥자(29), 심종만(47), 김출봉(41), 이석만(58), 박철환(39), 최애자(18), 김서연(39), 이병만(49), 김소향(35), 아디야 아흐마디(74) … 시인은 이들의 삶에 맺힌 응어리를 어떻게 풀어주고 있는가.
김명리 시인에 따르면 “시집 속 화자의 대부분은 사회로부터, 운명으로부터 내몰린 사람들이자 시인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의 고통의 시적 등가물이다. 놀라운 것은, 형식적으로는 정교한 건축학적 설계에 의해 지어진 듯해 보이는 이 시집이 자본주의 체제의 강고한 힘에 떠밀린 뭇 소외되고 버려진 이들의 내상에 입을 달아주고 시인 자신이 멀티 페르소나가 되어 준동하는 절망의 세계를 탄탄하고도 정밀한 시의 언어로 구현”해내고 있다.
한편 ‘죽은 자의 집 청소’의 저자인 김완 작가는 시집에 등장하는 화자들이 “한 하늘 아래 저마다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장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자 “태어났으니 각자 이름을 얻었고, 살아있으니 옆구리마다 세월의 괄호를 짊어졌다. 무직자이거나 막노동꾼, 동성애자, 노숙자, 시인, 노방전도자, 대학교수, 기자, 유목민, 여공, 간호사, 우울증 환자, 영업사원… 또 누군가의 딸이자 아들, 어머니와 아버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김완 작가에 따르면 박종언 시인은 “곤궁한 사람 곁을 떠나지 않고 마음이 누그러지는 틈을 기어이 배집고 들어가, 어르고 달래고 다독이는 일. 고난에 바동대는 이의 정신 줄 한 가닥을 붙잡고 끝끝내 끌어올리는 일”을 수행함으로써 이들을 위로한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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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네 존재를 언어로 호명할 때
2부 허리 꺾으며 우는 백양나무 아래로
3부 가장 아프게 빛나는 별
_ 고운 목소리로 슬픈 얼굴을 불러내어_김완
_ 시인의 말
저자
박종언 (지은이)
출판사리뷰
고통을 응시하는 시적 언어와 시인의 사투,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
불빛 없는 곳에서 비로소 별은 빛난다고 하지만, 시집 속 화자들의 상처를 헤집고 그 맨얼굴을 드러내는 일이 시의 본령이라면, 시적 언어에는 얼마나 많은 고통이 배어 있을까.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시는 고통이 아니다. “하나의 시적 언어에서 하나의 고통을 본다는 이 말은 거짓말이다. 시는 고통이 아니다. 시는, 진실을 넘어선 어떤 거짓말이다. 따라서 그 거짓을 거짓으로 마주 보게 하는 힘, 진실을 원군으로 소환하는 힘, 삶의 전략을 재편하는 사유, 이 모든 것이 거짓과 함께한다. 시는, 따라서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 될 개연성을 갖는다. 더럽다 는 것. 그것이 시의 총체적 의미다. 그리하여 연꽃은, 그 자리에서, 핀다.”(‘시인의 말’에서)
『친밀한 슬픔』은 박종언 시인의 첫 시집이다. 이 장편의 연작시에는 고통을 응시하는 시적 언어와 시인의 사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더러운 시’가 있고, 바로 그 자리에서 연꽃이 핀다는 사실을 알몸으로 언어와 접촉하여 치열하고 절실하게 증명하기 위한 시적 고뇌의 만화경이다. “시의 언어로 전화된 시인의 통렬한 울음”은 박종언 시인의 어떤 내력에서 나오는 것일까.
첫 시집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박종언 시인은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 시로 우수상을, 2015년에는 소설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전력이 있고, 2022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이 주최하는 제7회 학봉상 언론보도 부문에서 “일본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집’ 철학 분석”으로 대상을 수상할 만큼 시와 글쓰기, 문제의식에서 주목을 받았다. 시인은 2018년부터 정신장애인의 인권 옹호를 위한 대안언론인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으로 재직할 때 조현병과 싸우며 기자와 작가로서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를 담은 글을 쓰고 담론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4년 ‘올해의 장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등 정신의 질병에 관한 당사자, 가족, 전문의, 종교인 등 21명을 인터뷰한 책(‘마음을 걷다’)을 펴냈고, 2019년 정신질환자의 사회참여와 통합에 헌신하고 정신건강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박종언 시인은 글쓰기는 “내가 껴안아야 할 마지막 기둥”이며 그동안의 활동은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