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간만에 힘센 서사, 절실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이제 우리는 이 작품을 모른 척할 수 없을 것이다.”_이기호(소설가)
《보통 맛》 《백 오피스》 최유안 신작 장편소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해가 저물면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한 필사의 새벽이 시작된다
1989년 11월. 동독과 서독을 가로막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일순간에 무너졌다. 허물어진 베를린 장벽 사이로 동서독 사람들이 뒤섞였고, 그중엔 동독에 살던 북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지구 반대편에선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입국한 탈북자들이 있다. 이념의 지지대가 뒤흔들린 삶과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삶. 그들 앞에 펼쳐진 ‘그다음의 삶’은 어땠을까. 《새벽의 그림자》는 여기서부터 파생된 질문과 상상으로 묵직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최유안이 그리는 탈북자의 삶은, 낯선 곳에서 다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이주민의 삶과 같은 선상에 있다.
섬세한 감정 묘사, 핍진한 장면 서술로 평단과 독자의 뜨거운 주목을 받아온 최유안의 신작 장편소설 《새벽의 그림자》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새벽의 그림자》는 연구 논문 면담을 위해 독일에 머물던 전직 경찰 ‘변해주’가 우연히 접한 ‘윤송이 사망 사건’에 흥미를 갖고 사건의 진실을 역으로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일했던 사람들이 은퇴 후 모여 일군 교민 사회 ‘베르크’. 그곳에 터를 잡고 인근 도시에서 공부를 하던 북한 출신 대학생 윤송이. 어느 날 윤송이가 한 폐건물에서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독일 경찰은 이 사건을 ‘타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동양인 대학생의 신변 비관 자살’로 종결짓지만 이주민 사회에 관심이 많던 뵐러 박사는 사건에 또 다른 내막이 있음을 직감하고 독일에 와 있던 해주에게 해당 사건을 알린다. 경찰 출신인 해주는 자신의 과거로부터 비롯한 모종의 죄책감을 등에 업고 사건의 내핵으로 주저 없이 파고들어간다.
소설가 이기호는 《새벽의 그림자》를 두고 “그동안 우리 문학에선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은 이야기”라고 짚으며 “간만에 힘센 서사, 절실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이제 우리는 이 작품을 모른 척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보다 먼저 통일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 독일 사회, 허물어진 베를린 장벽 위로 촘촘하고 밀도 있게 쌓아 올린 힘 있는 서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작가의 말
저자
최유안 (지은이)
출판사리뷰
“형, 어둠이 들려?”
“어둠은 보이는 거지 들리는 게 아냐.”
‘해주’는 동서독 통합을 주제로 한 논문 자료 조사를 위해 독일에 머무는 중이다. 마지막 면담을 앞둔 어느 날, 사례 연구차 연락을 주고받았던 뵐러 박사가 독일에서 발생한 동양인 사망 사건을 전직 경찰인 해주에게 귀띔해준다. 사망자는 빈덴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28세 윤송이. 그녀는 한 폐쇄 건물에서 추락해 사망했고, 사건은 자살로 종결됐다. 하지만 뵐러 박사는 윤송이의 자살 동기가 충분하지 않은데다 재독 교포 거주 비율이 높은 ‘베르크’에 사는 탈북자라는 점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해주는 윤송이가 탈북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때 형제처럼 지냈던 ‘용준’을 떠올린다. 용준은 해주를 잘 따르던 탈북자 동생으로, 다른 한국 사람들처럼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평생 한국에 터를 잡고 살기를 원하는 이십대 청년이었다. 평양의학대학 재학생이던 용준이 왜 한국에서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해주에게 용준은 씁쓸하게 대답한다. 자신은 한국에서 그저 탈북자일 뿐이라고.
전기 관련 자격증을 준비하며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노가다를 해 먹고 사는 용준이 평양에 있는 의과대학 출신이라는 말을 듣고선 먹고 있던 소주를 입가로 흘려버렸다. (……)
“(……) 너 그런 엘리트가 왜 이러고 있어?”
“그래 봐야…… 여기서 나는 그저 탈북자일 뿐이에요.” _본문에서
해주는 사건 조사차 ‘베르크’에 방문한다. 베르크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왔던 한국 사람들이 은퇴 후 정착해 살고 있는 마을이다. 해주와 뵐러는 같은 의문을 품고 있다. 거주민 대부분이 노인인 마을에 함께 사는 가족도, 연고도 없는 북한 출신 대학생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베르크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별다른 갈등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학교, 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당 외에는 다닌 곳도 없어서 동선도 특별할 게 없다. 지극히 평범하게 살던 윤송이는 왜 어느 날 갑자기 폐건물에 올라가 스스로 몸을 던진 걸까. 사소한 단서라도 찾기 위해 무작정 윤송이의 주소지부터 찾아간 해주는 그녀의 집으로 추정되는 집 창문을 통해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오십대 여성을 발견한다. 저 여자는 누군데 윤송이의 집에 있는 거지. 안고 있는 아이는 여자의 손녀인가? 아니면 윤송이의 아이인가? 해주는 일단 잠복을 하며 그들의 동태를 살피지만, 생각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베르크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 경계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인 해주에게조차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마침 뵐러 박사가 회신을 보내왔다. (……) 뵐러가 보낸 메일에는 윤송이가 독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이 정리된 신문 인터뷰가 두어 개 첨부되어 있었다. 지역 신문에 난 인터뷰인데 구독해야 열람 가능한 기사들이라 해주가 찾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혹시 몰라 보관해둔 것들이니 살펴보라고. 뵐러는 윤송이에 대해 알게 된 새로운 정보도 간단히 요약해주었다. 윤송이는 애초에 런던에 오래 거주하다 독일에 정착한 바 있고, 살고 있는 집의 건물주는 한국계 독일인 장춘자라는 사실이었다. _본문에서
해주는 결국 베르크를 뒤로하고 빈덴 소재의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장춘자에게 접근한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해주는 언젠가 용준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을 떠올린다. 탈북이 그냥 북한을 나온다는 말이면 얼마나 좋겠냐고, 그것은 이미 목숨을 내놓고 시작하는 일이라고. 언제든 북한으로 다시 끌려갈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평생을 살게 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고. 그럼에도 뛰쳐나오는 거라고. 해주는 윤송이에게서 자꾸 용준이 겹쳐 보인다. 사건의 내막을 알아야만 세상을 등지고 떠나버린 용준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윤송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왜 베르크 사람들은 저렇게까지 폐쇄적인 태도로 일관하는가.
어딘가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분단이니, 통일이니 하는 것은 이제 그저 단어로나 존재하는 것 같아서. 해주는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용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관심이나 있었을까. 경장 진급과 먹고사는 문제. 겨우 그것이 해주 삶을 지탱하는 전부가 아니었을까. 아니, 이런 문제들에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신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러면 누가 이런 문제를 고민해야 하지. _본문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변해버린 밤
죄책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새벽의 그림자》 속 탈북자의 삶은 낯선 곳에서 다시 터전을 잡아야 하는 이주민의 삶과 같다. 이 소설이 독일을 주 무대로 한다는 점은, 독일이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경험했다는 것 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송이와 그녀의 아이를 돌봐주었던 베르크의 교민들 또한 수십 년 전 독일로 이주해 차별의 시선을 견뎌야 했던 이주민들이었고, 목숨을 걸고 탈북에 성공해 대한민국에 정착한 용준 또한 탈북자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고자 사력을 다해 서울 말투를 익히고 취업을 위한 자격증 취득에 힘쓰는 이주민이다. 완전히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차별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지 않다면 우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새벽의 그림자》는 그 질문을 향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