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제야 그가 그녀를 바라본다.
아름다움은 여기에, 여전히 존재한다.”
사랑에 대한 한 편의 아름다운 장시,
뒤라스 문학의 결정적 전환점
다양한 작품으로 초기부터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던 뒤라스의 글쓰기는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 더욱 심화되기 시작한다. 뒤라스의 글은 전통적인 소설의 논리에서 벗어나 충동과 공허로 이루어진 미지의 영역으로 한층 깊숙이 빠져든다. 변화에 당황한 독자들의 반응, 비평가들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뒤라스는 자신의 글쓰기가 결정적인 전환점을 지났다는 것을 인식했다.
장승리 시인의 번역으로 출간된 『사랑』은 이 변화의 중심에 있는 소설로 뒤라스가 본격적으로 영화 작업에 매진하기 직전에 쓰였다. 소설적 글쓰기의 가장자리에서 탄생한 듯한 이 작품은 바다를 배회하는 익명의 인물들을 아득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인물들은 스스로를, 상대방을, 그리고 방금 경험한 일들을 끊임없이 망각하는 동시에 그 망각 속에서도 결코 잊히지 않는 기억을 스스로 되감기는 파도처럼 되풀이한다. 이때 『사랑』은 과거 이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규명하기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이 현재로 끊임없이 소환되며 ‘지금 이곳’에 남은 이들에게 어떻게 다시 경험되고 감각되는지를 전달하는 데에 집중한다. 뒤라스는 『롤 베 스타인의 환희』 『사랑』 〈갠지스강의 여인〉과 더불어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느낌이 든다고 고백한 바 있다.
저자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은이), 장승리 (옮긴이)
출판사리뷰
글쓰기라는 불가사의, 비밀을 향한 움직임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1953) 『모데라토 칸타빌레』(1958) 등의 작품으로 뒤라스는 일찍이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고루 받게 된다. 그런 그녀의 문학 세계는 『롤 베 스타인의 환희』(1964) 『부영사』(1966) 등의 작품을 거치며 점차 전통적인 소설의 논리에서 벗어난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지성의 시간에 있지 않다는 것이죠.”
뒤라스는 글쓰기를 결코 자신이 아는 것을 명료하게 정돈하는 과정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뒤라스에게 글쓰기는 위험 지대로 기꺼이 발을 들이는 행위였다. 뒤라스는 어둠 속에 잠겨 있어 감지하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이야기, 존재 자체를 태워버릴 위험을 내뿜는 과거, 혼돈 속에 뒤섞여 있는 인간의 정념과 충동의 덩어리를 글쓰기를 통해 표현하고자 애썼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도한 것이 될지라도 글쓰기를 통해 저 멀리, 어둠 저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뒤라스의 변화에 당대 대중은 당황했고 비평가들은 그 뜻을 알아보지 못했다. 명확한 시공간이 특정되지 않는 배경, 이름 없는 인물들, 통속적인 감정으로 해석되지 않는 순수한 대화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단지 몰이해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뒤라스에게 이러한 글쓰기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그녀가 선택한 것이 아닌 글쓰기가 종용한 것, 그것을 향해 뒤라스는 끊임없이 나아갔다.
“글쓰기라는 불가사의가 앞으로 나아가지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앞으로 나갑니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해요.”
망각으로 기억되는 순간, 그 고통스러운 유혹
『사랑』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놓인 작품으로 뒤라스는 이 작품과 더불어 비슷한 배경을 공유하는 『롤 베 스타인의 환희』 [갠지스강의 여인] 등 세 작품을 쓰며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한 것 같다고 고백한 바 있다.
뒤라스는 『사랑』을 마지막으로 영화 시나리오와 연출 작업에 매진하며 한동안 중편 분량 이상의 글을 쓰지 않았다. 이를 반영하듯 소설적 글쓰기의 가장자리에서 탄생한 듯한 이 작품은 바다를 배회하는 익명의 인물들을 아득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인물들은 스스로를, 상대방을, 그리고 방금 경험한 일들을 끊임없이 망각하는 동시에 그 망각 속에서도 결코 잊히지 않는 기억을 스스로 되감기는 파도처럼 되풀이한다.
“망각과 구멍이야말로 진정한 기억이죠.”
뒤라스는 한 인터뷰에서 망각이 진정한 기억의 장소라고 이야기한다. 즉, 어떤 망각은 과거의 보잘것없음을 증명하지 않는다. 반대로 과거의 특정한 순간이 기억의 가능성을 초과하는 강렬함으로 인해 ‘망각된다’. 이 망각은 구멍으로 남아 우리를 고통스럽게 유혹한다. 기억의 불능이 도리어 무한한 기억을 촉발한다.
“언제고 『사랑』을 펼치는 일은
파도를 열고 들어가 닫히지 않는 문이 되어버린 슬픔 앞에 서는 일이 될 것이다”
두 남자와 한 여자, 『사랑』의 인물들에게는 이름마저 부여되지 않는다. 그나마 끊임없이, 마치 죄수의 발걸음처럼 똑같은 보폭으로 바닷가를 걷는 남자는 ‘걷는 남자’로 호명되고 다른 남자는 “느린 발걸음과 정처 없는 시선”을 이유로 ‘여행자’라 불릴 뿐이다. 이들은 바닷가 도시 에스탈라 근처를 배회한다, 들어가지는 못한다. 끊임없이 비켜갈 뿐이다. 마치 에스탈라, 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육중한” 도시가 그들이 접근할 수 없는 광기 어린 시공간이 된 것처럼.
이들의 배경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 파편적인 정보를 토대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여행자’와 여자는 과거 에스탈라라는 도시에서 만난 적이 있었으며 그 과거의 중심에는 호텔에서 열린 무도회가 있다.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후 ‘여행자’는 이곳을 오랫동안 떠나 있었다가 어떤 결심을 한 후 에스탈라에 돌아온다. 이곳 에스탈라에서 ‘여행자’는 여전히 머물고 있는 여자와 정체불명의 ‘걷는 남자’를 만난다. 이 빈약한 정보를 가지고는 이들의 과거에 대해서 다양하지만 불충분한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또한 여자의 존재 역시 대단히 모호하게 서술되기 때문에 어느 순간 여자 자체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에스탈라라는 공간과 함께 유령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랑』을 두 번, 세 번 읽어도 과거에 이들에게 벌어졌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속시원하게 이야기해줄 단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과거는 영원히 망각되었고 이야기는 단지 그 망각된 과거를 향해 어둠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움직임에 주목할 뿐이다. 어둠으로 나아가는 인물들과 그 인물들을 아득한 시선으로 따라가는 이야기, 『사랑』은 이 움직임에 독자를 초대한다. 이때 『사랑』은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규명하기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이 현재로 끊임없이 소환되며 ‘지금 이곳’에 남은 이들에게 어떻게 다시 경험되고 감각되는지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서사가 아니라 감각에 주목할 때 『사랑』은 한 편의 긴 시가 된다.
언제고 『사랑』을 펼치는 일은, 다시, 바다 앞에 서는 일이 될 터이다, 파도를 열고 들어가 닫히지 않는 문이 되어버린 슬픔 앞에,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어떤 ‘뒤’의 앞에, 무엇보다 속절없는 아름다움 앞에. 모든 것에서 멀어져, 파도에 쓸려간 죽은 개 속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그곳에 머무는 여자와 우리가 오버랩된다.(‘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