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관찰과 통념의 쟁투
인간 집단은 어떻게 형성되며, 무엇이 그들을 하나로 묶는가?
인류학의 본령은 혈연, 젠더, 신앙, 자아 등에 대한 통념 깨기
다만 아무도 ‘백지상태’에서 현지조사에 나서지는 않는다
인류학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가? 이 책은 두 인류학자가 인도네시아와 멕시코에 직접 들어가서 연구한 생생한 사례들을 이용하여, 인류학자가 되는 것, 인류학을 다른 사회과학과 구분 짓는 독특한 현지조사를 수행하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를 들려준다. 또한 인류학이 시작된 이래로 인류학자들을 사로잡아온 ‘큰’ 질문들을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인간은 어떤 점에서 독특한가? 가족, 부족, 민족 같은 인간 집단들은 어떻게 형성되며, 무엇이 그들을 하나로 묶는가? 신앙, 경제 교류, 자아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저자들은 인류학을 어떻게 하는지, 자신들이 파악한 것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를 중시한다. 그러면서 인류학자들이 무엇을 발견했는지보다는 인류학자들이 스스로 배운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즉 사실보다는 개념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인류학을 이야기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인류학의 최신 트렌드를 소개하기보다는 인류학 탐구의 핵심에 자리잡은 이슈들을 들여다보고 그 학문적 가치를 제시한다.
목차
아주 짧은 소개
1. 동고에서의 다툼: 현지조사와 민족지
2. 벌 유충과 양파 수프: 문화
3. 어느 짧은 만남: 사회
4. 페르난도가 아내를 얻고자 하다: 성과 혈연
5. 라 보세가 바카르가 되다: 카스트, 계급, 부족, 민족
6. 누요에서의 축제: 사람들의 소유물
7. 비마에서의 가뭄: 사람들이 믿는 신
8. 냐뉴 마리아가 벼락을 맞다: 사람들의 자아
후기: 우리가 배운 몇 가지 것들
독서안내
저자
존 모나한, 피터 저스트 (지은이), 유나영 (옮긴이)
출판사리뷰
비교 연구로서의 인류학
인류학은 지리상의 발견과 식민주의, 자연과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했다. 초창기 인류학자들은 사회·문화적 진화의 단계를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에드워드 타일러와 루이스 헨리 모건 같은 인물들은 문자 체계부터 결혼 관습까지, 가장 원시적인 기원부터 그것이 현대에 나타난 양상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 저작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인류학자들은 식민 관료, 선교사, 여행가, 기타 비전문가들의 기술에 의존해 1차 자료를 얻는 데 더이상 만족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민족지학자로서 자신만의 정보를 직접 얻기 위해 ‘현지(field)’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의 주류 인류학은 보다 해석적이고 인문학적인 접근법을 채택했다. 또한 비서구의 소규모 촌락 사회에만 초점을 맞춘 것에서 벗어나 도시의 노동조합, 사교 클럽, 이주 공동체 등 기존 사회학의 범주에 속했던 집단으로까지 연구 대상을 넓혔다. 그러나 인류학은 모든 사회를 염두에 두고 그들 모두를 똑같이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대체로 비교 연구의 성격을 띤다.
현지조사라는 모험
저자들이 강조하듯, 인류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인류학자가 무엇을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인류학자가 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민족지다. 문화인류학자나 사회인류학자에게 민족지란 생물학자의 실험실 연구, 역사학자의 문헌조사, 사회학자의 설문조사와도 같은 것이다. 흔히 ‘참여관찰’이라고도 불리는 민족지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이해하려면 그들과 장기간에 걸쳐 긴밀히 상호작용하면서 관찰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단순한 개념에 근거한다. 전통적으로 인류학자들이 자기가 연구하는 공동체 안에서 장기간 거주하며 그 사람들과 최대한 생활을 공유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지조사는 인류학이라는 모험에 크나큰 낭만을 부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비서구 공동체의 생활 방식이 급속히 소멸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었고, 그중 다수는 문자가 없었으므로 후세를 위해 기록을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러한 학문의 지향성, 그리고 참여관찰을 통해 민족지 자료를 직접 수집하는 데 전념했던 초창기의 경향은 인류학자들을 지구상에서 가장 이국적이고 외딴 장소들로 이끌기도 했다.
대화와 참여관찰이 민족지의 핵심
민족지학자는 준비 없이 모험에 뛰어들지 않는다. 민족지학자의 첫째 과제는 공동체에 정착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길고도 어려우며, 그사이에 적잖은 프로젝트가 무산되기도 한다. 현지 권력자들이 민족지학자를 자기네 파벌 싸움의 경품이나 앞잡이로 써먹으려 들기도 한다. 공동체의 성원이 민족지학자가 해줄 수 있는 일을 실제보다 부풀려서 생각하거나,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끈덕지게 해올 수도 있다. 결국 일상적 경험으로서의 현지조사는 감정의 극과 극을 오가는 경험이 되곤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민족지를 수행하는 이러한 과정의 핵심에는 참여관찰이 있다. 공동체의 성원들과 어울려 그들과 똑같이 생활할 때 민족지학자가 정착에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대화는 민족지의 요체다. 인류학자는 정보를 이끌어내고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인터뷰다. 민족지 성공의 핵심은 바로 현장에 머무르는 것, 즉 언제라도 관찰할 수 있고, 사건의 추이를 따라갈 수 있는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다.
통념 극복이 인류학의 본령
이 책의 저자들은 아무도 ‘백지상태’에서 현지조사에 착수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인류학이 생겨났을 때부터 사람들은 특정 집단의 민족지나 이 학문 분야에서 발전한 개념적 도구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프로이트 심리학, 구조주의, 페미니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 문화 연구 등의 운동에 이끌려 인류학에 입문하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은 인류학이 일반적 통념과 어긋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초점을 맞출 때 그 본령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특정 집단에 대한 애정의 발로로 이 학문 분야에 이끌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문제를 크게 확대하는, 일종의 국지적 편협성에 매몰되는 폐단도 있다. 저자들은 근래 들어 인류학이 일종의 인식론적 위기를 겪고 있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인류학자들 스스로가 무엇을 알고 어떻게 해서 그것을 아는지 확신하지 못함을 솔직히 인정한다고 해서 인류학이 인간 자신의 이해에 기여한 실질적 공로 자체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인류학은 어느 한쪽의 편견을 보편적 원리로 떠받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른바 보편에서 벗어난 사례를 제시할 때 가장 빛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