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반짝이며 반짝이며 헤엄쳐 오던,
살 것만 같던 마음
이름을 잃어버린 존재들을 위한 빛나는 구원
무너진 삶을 있는 힘껏 끌어안는 화해의 손길
선명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존재의 고통과 현실의 아픔을 노래해온 이영광 시인의 여덟번째 시집 『살 것만 같던 마음』이 창비시선 502번으로 출간되었다.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일상의 복잡미묘한 감정과 들끓는 마음들을 살피며 삶과 죽음의 관계, 존재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진지하고도 심오한 사유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불합리한 세상의 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타인의 고통을 체험하며 삶의 진실에 가닿으려는 고뇌가 담긴 진솔한 시편들은 서늘하고도 묵직한 공감을 자아낸다. 한층 더 깊고 섬세해진 시세계는 침잠의 시간 속에서 차분히 현실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
목차
평화식당
강가에서
청송
계산
사랑
제자리
희망 없이
어느 양육
미워하는 마음을
그해 세밑에는
어두운 마음
그림자와 같이
6인실
누운 당신 걸음
봄, 고개
지구살이
별 세개
검은 봄
문어들은 저런 식으로
죄와 벌
자연처럼
등꽃 아래서
무슨 사정이 있겠지
중
허송 구름
아프다고 생각하며
마스크들
나의 인간 나의 인형
헌 의자
내 마음은 나도 몰래
밀접 접촉자
큰 병원
펄쩍펄쩍 뛰며 놀자고 보채는
동물원
잎들은
봄은
개망초 개망초
고치고 있다
무명지
잔칫집
내일에게
내 인생 편안해
한여름 밤
흑산
로보캅
신문이 신문 했다
노인이 온다
어린 아침
강
당신의 끝
평화의 바람
해설|장은석
시인의 말
저자
이영광 (지은이)
출판사리뷰
사랑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외롭고 우직한 발걸음
총 51편의 시를 부 가름 없이 한데 엮어낸 이번 시집에서는 먼저 짧은 시행만으로 구성한 시편들(「별 세개」 「허송 구름」)과 “무언가를 따지고/누군가를 미워했다/(…)/누군가를 따지고/무언가를 미워했다”(「강가에서」), “사람을 얻고 잃으며 바쁘게 살았어요/마음을 울고 웃으며 곤하게 걸었어요”(「희망 없이」)와 같이 유사한 어구를 반복하고 변주함으로써 유려한 리듬감을 형성하는 시편들의 형식이 눈에 띈다. 특히 “살지 않기 위해 살아갈 것/죽지 않기 위해 죽을 것”(「평화식당」), “죽은 봄은 살아간다/(…)/어둡기만 한 빛 속으로/가도 가도 환하기만 한/어둠 속으로”(「봄은」) 등 역설과 반어의 문장들은 시대의 모순에 대한 시인의 비판적 사유와 현실 인식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희망 없이 사는 일의 두근거림”(「희망 없이」)이 쓸쓸하게 일렁이는 이영광의 풍경 속에는 병든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름 없는 모든 것”과 “이름 아닌 모든 것”(「검은 봄」)인 그들은 이미 “기진맥진인데 하루도/빠짐없이 삶이 찾아”(「제자리」)오는 탓에 절망 속에서도 “자꾸 다시 살아나야”(「어느 양육」)만 한다. 시인은 그 ‘슬픔과 허무와 죽음과 불안과 절망의 포로’(「평화의 바람」)로서 우울의 시대를 살아가는 무명의 존재들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호명하고, 그들의 침묵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며 비참한 고통의 현장을 함께하고자 한다. 그렇게 시인은 “계산할 수도 없고, 차마 꺼낼 수도 없는, 이상하고도 힘든 마음”을 품은 채 “무명의 사랑”(해설, 장은석)을 계속해나간다. 나아가 존재의 슬픔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상처가 지나간 곳에서 마주하게 될 희망의 자리를 마련해놓는다. 고통과 희망 사이를 넘나들며 끝내 인간에 대한 애틋함에 가닿는 시편들은 생의 면면이 선사하는 감동으로 우리를 이끈다.
어두운 세상을 건너는 모든 이에게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시 쓰는 시늉을 해온 것 같다”고 말했지만, 세상의 어두운 면면에 기꺼이 다가가 온몸으로 시를 써온 삶은 결코 시늉이 아닐 것이다. 시력 26년을 지나며 “거창하지 않은 오해로부터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고개를 넘고 또 넘는”(추천사, 홍지호) 와중에도 불현듯 여전히 “인간이라는 것”이 되고자 “열심열심/애쓰는 중”(「중」)이라고, “시는 크고 나는 작다”(시인의 말)고 말하는 그의 숭고한 진심은 시인의 시가 무모해 보이는 사랑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렇게 시인은 비극적인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고 무너진 삶의 자리를 향해 계속해서 손을 내민다.
함께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분열과 맞서 싸우는 이 올곧은 마음은 이름이 지워진 존재들이 연대할 수 있는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만들고, 바로 그곳에서 상처투성이 존재들의 영혼을 품어 안는 희망의 시는 시작된다. 지금 여기, “생각하며 피 흘리는/인간”(「로보캅」)이 어두운 시절을 건너는 이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사라져서 더는 나타나지 않던 얼굴들”(「어느 양육」)이 다시 피어나기 시작한다.
시인의 말
시 쓰는 시늉을 해온 것 같다. 시는 크고 나는 작다보니 별수가 없었다. 연인이었던 인연들을 인연인 연인들로 바꾸어 모시려 한 것이 한 시절 내 시늉이었던 듯하다. 나는 내가 조금씩 사라져간다고 느끼지만 이 봄에도 어느 바람결에나 다시 살아나는 것들이 많다. 온전해지고 싶어 험난하게 애쓰는, 그 모든 실성기를 사랑한다.
2024년 늦봄
이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