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라는 언어를 통해 노래하는 삶의 깊이와 자유
윤재훈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웃음과 울음 사이』가 〈푸른사상 시선 188〉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강과 산, 물과 바람, 자연 속에서 추구하는 인간 가치와 생명의 충일함을 노래한다. 사람은 착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으로 삶을 긍정하고 이웃을 품는 시인의 마음은 봄 햇살처럼 따스하다.
목차
제1부
흰 소를 찾아서 / 나비 박제 / 산방(山房)의 방석 하나 / 추석 무렵 / 신기리 / 만다라 / 낯설은 짐 하나 / 적멸의 문 / 만약 당신이 내게 물으신다면 / 이승의 저녁 무렵 / 운진항 봄날 / 화양면행(行) / 고려청자 / 인사동에서 / 호우총(壺?塚)
제2부
텅 빈 충만 / 핵비가 내린다 / 2미터 거리의, 코로나 시대 / 휘발되는 그녀 / 겨울 산 / 전곡리 폐가 / 붕어빵 어머니 / 지하철에서 / 단애(斷崖) / 죄(罪) / 임피역 / 무명(無明) / 도살장을 지키는 개 / 잠자리
제3부
오동도 동백꽃 / 먼 산 바래서서 / 바다마을 사람들 / 둥근 사랑 / 웃음과 울음 사이 / 이, 경이(驚異)! / 말의 보탑 / 양은솥 하나 / 철도 중단점에서 / 나, 여기 있어요! / 부용천 꽃샘바람 / 우유 한 잔 / 쓰레기도 못 되는 책 / 궁궐 앞 고사목
제4부
어느 무명 시집을 위하여 / 비글 / 권태 / 솟대 / 비둘기 / 아랄해의 절규 / “59,800원” / 전람회 소경(小景) / 사막의 배 / 장마 / 기도를 한다 / 푸른 늑대를 찾아서 / 단칸 셋방
발문 : 목화솜 같은 시_ 김란기
작품 해설 : 성선(性善)의 시학_ 맹문재
저자
윤재훈 (지은이)
출판사리뷰
시인의 말
이순을 훌쩍 넘기고, 첫 시집을 낸다. 미욱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주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하고도 20여 년이 넘어버렸다. 그러나 수십 년 습작하면서도 작은 자존심으로, 자비 출판은 하기 싫었다.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더구나 한번 서가에 꽂히면 그곳에서 먼지나 쌓이며 존재의 가치도 없어져버리는, 이 국토에서 푸르게 일렁거리는 나무 몇 그루만 베어내는, 그런 책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여기에는 이 나라에서의 시와 시인들의 위상도 불안스럽게 놓여 있다. 무작정 시를 붙잡고 아무런 경제적 대가도 따르지 않는 시가 좋아서 쓰는, 순정한 이 땅의 시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시집이 누군가의 가슴속으로 들어가, 작은 위안이나 정서의 울림이라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발문’ 중에서
오지와 사막을 걷고 타던 그이가 목화솜 같은 시를 썼다. 오지는 단순히 걷고 타는 것이 아니고 미지를 탐험하는 것이 아니던가. 사막을 걷는 것은 막연의 허허(虛虛)를 헤엄치는 것이다. 아랍의 골목을 헤매는 것은 원초의 시대로 가는 여행이고 아시아의 오지를 헤매는 것은 미지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던 그이가 먼 산에 연초록빛이 들어차자 이참에는 꼭 세상에 내놓겠다며 20년을 벼르던 시집을 꾸몄다. (중략)
그이의 시를 읊조리자면, 강과 산을 노래하고 물과 바람을 노래한다. 더러 시대를 질타하기도 하지만 독하게 탓하지는 않는다. 흐름을 거스를 생각은 아니다. 다만 촌로처럼 안타까움을 남도 아리랑처럼 읊을 뿐이다.
한여름 밭고랑 잡초를 뽑아낼 때 부르던 우리네 노래처럼, 삼산천변 서마지기 논배미에서 피라도 뽑을 때처럼, 논둑에 뜸부기가 울 듯이 그저 울 뿐이다.
― 김란기(홍익대 건축학 박사·문화재전문위원)
작품 세계
윤재훈 시인은 자신의 항심(恒心)을 심화 및 확대하는 시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시인이 인식하는 항심이란 사람은 착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 맹자의 성선설을 토대로 삼는다. 맹자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가엾고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남에게 사양할 줄 아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참으로 이른바 본성이란 선한 것이다. 만약 무릇 사람이 불선을 행한다면 이는 본성 바탕의 죄는 아닌 것이다. 슬퍼하고 불쌍해한다는 마음 그것은 사람에게 다 있고, 부끄럽고 싫어한다는 마음 그것은 사람에게 다 있으며, 공손하고 공경한다는 마음 그것은 사람에게 다 있고, 옳다 하고 그르다 한다는 마음 그것은 사람에게 다 있다. 슬퍼하고 불쌍해한다는 마음이 인이고, 부끄럽고 싫어한다는 마음이 의이며, 공손하고 공경한다는 마음이 예이고, 옳다 하고 그르다 한다는 마음이 지이다. 인과 의와 예와 지는 밖으로부터 나를 녹인 것이 아닌 것이고, 내가 본래부터 그것을 지닌 것임을 생각해내지 않은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구하면 곧 그것을 얻고 버리면 곧 그것을 잃는다.”
맹자는 사람이 악을 행하지 않고 본성을 유지하거나 진전시키려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항산(恒産)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항산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산이나 생업이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을 잃지 않게 되어 경제가 안정되고 사람들 간에 다툼이 없고, 항산이 없으면 항심을 가질 수 없어 생계에 얽매여 타락하고 범죄가 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맹자는 항산을 왕도정치를 이루는 근본이라고 역설했다.
윤재훈 시인의 시 세계에는 맹자의 사상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인의예지의 마음이 작품 세계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시인은 사람의 성(性)은 선(善)하다고 인식한다. 그리하여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작품들에서 구체화한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