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멜랑콜리, 귀로, 환상, 소외, 미스터리…
어스름한 저녁, 수많은 예술가를 매혹한 불이 켜진 창문,
그리고 이를 둘러싼 문학과 예술작품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을 읽는 누구나 추억과 상상으로, 우리 마음에 호기심과 애수와 갈망을 불러일으키던 불 켜진 창과 인생의 빛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__정혜윤(작가, CBS라디오 PD)
문화사학자 피터 데이비드슨이 안내자가 되어 영국과 유럽, 북미의 해가 저문 도시와 잉글랜드 시골의 들판에 난 길로 우리를 이끄는 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책은 불 켜진 창문에서 풍기는 미스터리함과 유혹, 애수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새로운 문학적 사색의 길을 열어준다. 저자는 독자의 손을 잡고 그림으로 들어가 함께 움직이고 느낌으로써 어느덧 그림과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책에는 초기 낭만주의 회화에서부터 현대 소설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한 예술작품 속 어둑한 밤이 꿈결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안에서 반짝이는 어렴풋한 불빛은 오래 전 기억, 예술적 감흥을 환기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시와 소설, 미술이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 풍경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밤’과 ‘불 켜진 창’이라는 탁월한 소재는 우리를 매혹하고 발길이 닫는 곳, 시선이 머무는 장소에 사랑스러운 빛을 비춘다. 피터 데이비드슨이 안내하는 저녁 산책을 따라가다보면 ‘왜 수많은 예술가가 불이 켜진 창문에 매혹되었는지, 왜 저자가 불 켜진 창문이 있는 저녁 산책을 그토록 우리에게 전하고 싶어했는지’ 알게 된다.
목차
시작하며_옥스퍼드에 어둠이 깔릴 때
1 도시의 겨울
2 런던 야상곡
3 시골 풍경 속 창문
4 북쪽 도시 풍경과 서쪽 교외
5 여름밤 불빛
주
참고 자료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이미지 크레디트
찾아보기
저자
피터 데이비드슨 (지은이), 정지현 (옮긴이)
출판사리뷰
시와 소설, 그리고 그림 속
불 켜진 창문
책은 회화와 사진, 문학, 그리고 저자가 친구들과 대화하고 산책하며 마주쳤던 ‘불 켜진 창문’의 이미지를 회상하며 전개되는 에세이지만 회고록과 미술사가 적절히 뒤섞인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책에는 토머스 하디, 매슈 아널드의 시와 앨런 홀링허스트, 버지니아 울프, 아서 코난 도일,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속 장면, 그리고 영국 문학에서 매우 친숙한 불 켜진 창문 풍경을 다룬다. 또한 저자는 제임스 휘슬러, 존 앳킨슨 그림쇼를 비롯해 목가적인 풍경을 담아낸 새뮤얼 파머, 19세기와 20세기의 일본 판화, 프랑스 벨 에포크 시대 화가들과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 그리고 에드워드 호퍼와 린든 프레더릭이 그린 저녁 풍경도 함께 걷기를 권한다. 데이비드슨은 미술과 문학, 지리학이 유기적으로 얽혀 일으키는 상호작용을 불 켜진 창문이라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해석함으로써 불이 켜진 창문이 예술가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감을 주었는지를 섬세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전한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낸
세밀하고 꼼꼼한 시선
‘불 켜진 창문’은 그 자체로 멜랑콜리, 애틋함, 희망,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매력을 품고 있다. 그러하기에 책 속 그림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아득한 추억을 회상하며 떠난 긴 산책길 위에 선 듯한 기분에 젖는다. 여기에 저자의 세밀하고 꼼꼼한 시선과 아름다운 문장은 내면의 고독을 어루만져주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책은 옥스퍼드에 어둠이 깔리는 시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치는 풍경 속에서 과거 저자의 머릿속에 깊게 뿌리박힌 불 켜진 창, 흔히 한번 쳐다보고 지나칠 뿐인 도시 풍광과 어스름, 빛이 사그라드는 광경을 떠올리며 ‘불 켜진 창문’ 이미지가 지닌 여러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저녁 산책길에서 저자는 친구들과 함께 거닐었던 해질녁 옥스퍼드 거리의 기억을 불러내며 창문 밖에서 바라보는 불 밝힌 실내, 그 안에 자리한 따뜻함을 상상하며 도시의 밤, 밤을 수놓는 불빛, 불빛에 반짝이는 고독과 외로움, 소외, 손에 잡힐 듯한 희망을 음미한다.
본격적인 저녁 산책이 시작되는 「도시의 겨울」에서 저자는 친구와 벨기에 겐트의 거리를 거닐며 30년 전 친구가 들려주었던 실내장식 이야기를 떠올린다. 당시는 커튼을 거의 달지 않던 시기여서 밖에서 실내가 훤히 보였고, 친구는 창문 너머 보이는 실내장식의 역사와 기법, 문화를 이야기해주었다. 저자는 당시의 기억을 따라가며 불빛이 지닌 따스함과 고독감이라는 이중적 분위기를 카를 구스타프 카루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케르스팅, 에른스트 페르디난트 외흐메 등 19세기 드레스덴 화가의 그림과 슈베르트의 가곡 「사랑에 빠진 어부의 기쁨」과 엮어 서술하는가 하면, 고딕양식의 오래된 성당에서 흘러나오는 전등 불빛 앞에서는 옛 성당 안 신비로운 잔해를 포착한 체코의 사진작가 요세프 수데크의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또한 이들 이야기 사이사이 창밖을 보며 발견한 소소한 사건들을 서술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속 장면은 문학과 미술의 경계를 뛰어넘는 전개로 독자의 감성을 붙든다.
이어지는 「런던 야상곡」에서는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화가 에릭 래빌리어스, 소설가 G. K. 체스터턴과 아서 코넌 도일의 작품들을 불러내며 런던의 밤거리를 펼쳐 보인다. 불 켜진 창은 로맨스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탐정소설에서는 사건의 발생지로 서사의 핵심 구축 요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 거리 헤매기』와 화가 이저벨 코드링턴의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여성 작가들의 눈에 비친 도시의 밤 풍경을 자세히 다루는 한편으로, 공장 연기와 안개가 뒤섞여 뿌옇게 보이는 불 켜진 창을 그린 피에르 아돌프 발레트의 작품을 통해서는 19세기 산업 도시가 지닌 미학에 대해 언급한다.
상상력과 기억이 만들어낸
어둠 속 빛나는 창문
옥스퍼드를 시작으로 런던의 밤거리를 거닐며 사색에 잠겼던 저자는 오래 전 인적 드문 중세 시골 마을을 방문했던 때로 기억을 더듬어가 「시골 풍경 속 창문」을 회상한다. 호젓한 추운 겨울 밤거리를 친구와 함께 거닐던 저자는 이 같은 전경을 그림으로 남긴 새뮤얼 파머의 목가적 풍경을 환기하면서 그림 속 어두운 배경에서 번져오는 밝은 빛의 이미지를 신성함과 미스터리, 수수께끼와 연결 지으며 “추방되거나 떠도는 대지주의 귀환을 기다리는 불 꺼진 집, 기다림의 세월에 따르는 부재감과 불완전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무들로 둘러싸여 반쯤 숨어 있는 산비탈 마을의 고립감” “촛불 또는 석유램프에서 나오는 빛일 뿐이지만, (……) 이 작은 빛의 틈새는 귀가의 상징이고 초저녁에 뜬 큰 별이 얽힌 커다란 나무들은 피난처와 보호의 상징이다.”
이후 「북쪽 도시 풍경과 서쪽 교외」에서 저자는 친구들과 산책하고 대화하며 보고 들은 불빛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 주변, 안정감을 불러일으키는 불빛을 바라본다. 때로 도시의 밤거리를 거닐다 마주치는 상점의 환한 불빛은 꿈과 현실을 착각하게 하고 이러한 도시 풍경을 화폭에 담은 화가의 시선은 붓 끝에서 번지는 고독으로 귀결된다. 특히 린든 프레더릭, 토드 히도,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의 배경이 된 교외 지역 불 켜진 창문의 이미지가 암시하는 적막과 멜랑콜리는 묵직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긴 겨울이 지나고 푸른 밤이 내려앉는 여름의 불빛을 이야기하는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어둠 속의 빛이 아닌 빛 자체가 지닌 스펙터클을 강조하며 축제나 무대에서 기념하고 축복하는, 신성한 것들을 환대하는 빛의 이미지들을 언급하며 긴 산책을 마무리한다. 이전 장들에서는 겨울의 밤거리와 그로부터 홀로 불 켜진 창을 주로 다뤘다면 여기서는 빛 자체를 활용한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쇼박스」, 투명화, 유리화, 그림 연극 등을 소개하면서 빛과 창이 만들어내는 과거와 현재의 달콤하고 온화한 장면들을 계속 떠올린다. “나는 여전히 메아리치는 정원과 파머의 에칭 판화 속 오두막 초와 난로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베리먼의 격자무늬 창문 너머 반딧불이 불꽃과 광활한 미국 내륙의 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조지 올트의 외로운 교차로에 있는 가로등 불빛, 전시(戰時)의 어둠 속 불빛, 여름 별들을 아주 정확하게 담은 시각적 운율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하디의 시, 불 켜진 저택 창문 너머에서 춤추는 대지주의 미망인, 홀링허스트가 상상한 전시의 옥스퍼드, 펙워터 쿼드에서 언뜻 보이는 하얀 러닝셔츠를 입은 젊은 운동선수에 대해 생각한다. 인생은 얼마나 아득한가.”(252쪽)
글을 쓰는 동안 9월 밤이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책상 위 램프만이 유일한 빛이다. 조용한 휴가에 들어간 바깥 성벽 아래 좁은 길에는 목소리도 발소리도 없다. 이제 글 쓰는 것을 멈추고 정리한 후 집으로 걸어갈 시간이다. (……) 나는 강가의 길을 따라 걷는다. 하늘에 달이 홍수를 일으켰고 섬에서 물 흐름이 갈라지면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집까지는 200보 남았다. 결국은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별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도 그럴 것이다._「본문에서」
길고 어두웠던 여정의 끝, 상상력과 기억이 스스로 빛나는 창문을 만들어 우리 주변을 밝히고 변화시켰음을 발견한 저자는 독자도 그 힘을 믿고 내 안의 ‘불 켜진 창’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누구나 추억과 상상으로, 우리 마음에 호기심과 애수와 갈망을 불러일으키던 불 켜진 창과 인생의 빛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긴 산책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