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질적인 두 세계의 마술적인 충돌
언어의 마법을 부리는 치유와 창조의 마녀들
★ 〈커커스리뷰〉 올해의 책 · 〈타임〉 이달의 책
★ 〈나일론〉 〈리터러리허브〉 〈NPR〉 〈더밀리언스〉 가장 주목할 만한 책
“여성의 힘을 통제하는 데 거듭 실패한 세상과
언어 자체의 순수한 마법에 대한 이야기.”
가장 인상적인 목소리의 라틴아메리카 신세대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브렌다 로사노의 장편소설 《마녀들》이 ‘환상하는 여자들’ 시리즈의 제2권으로 출간되었다. 두 번째 장편소설 《상상 일기(Cuaderno ideal)》로 펜 번역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두 여성의 목소리와 두 개의 세계, 다양한 정체성의 만남을 복합적이고 매혹적으로 그려낸 《마녀들》로 새로운 변신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마녀들》은 살해당한 한 여성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사건을 취재하러 간 젊은 여성 기자 조에는 피해자 팔로마와 그녀의 사촌 펠리시아나,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삶과 가족과의 관계도 돌아보게 되고, 스스로도 모르게 묻어두었던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펠리시아나와의 대화를 통해 조에는 해결하지 못했던 자신의 응어리를 풀어가는 동시에 이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고 믿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다. 때로는 폭력적이고 잔혹하지만 때로는 희망적이고 환희로운 세상을 언어를 통해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목차
마녀들 · 9
감사의 말 · 315
옮긴이의 말 · 317
저자
브랜다 로사노 (지은이), 구유 (옮긴이)
출판사리뷰
“한 여자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
서로를 지탱하며 나아가는 여자들의 공동체
소설은 젊은 기자 조에와 전설적인 언어의 치유자로 알려진 펠리시아나, 두 여자의 목소리로 이루어진다. 둘을 이어주는 것은 펠리시아나의 사촌이자 스승 역할을 했던 팔로마의 죽음이다. 여성 살해에 대한 분노와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전 세계의 유명 예술가들이며 학자들, 백만장자들이 찾는 펠리시아나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으로 조에는 살인 사건 기사를 맡기로 결정하고 펠리시아나를 취재하기 위해 산펠리페의 산골로 찾아간다. 그러나 조에가 소설 초반에 말하듯 이 이야기는 “범죄 이야기가 아니”고, “펠리시아나가 어떤 사람인지, 팔로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며, 더 나아가 조에의 여동생과 엄마 그리고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에와 펠리시아나는 각각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온 여자들이다. 멕시코시티에 살고 초자연적인 모든 것에 회의적인 젊은 조에는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멕시코를 대변하는 반면, 외진 곳에 위치한 산펠리페에 살며 주술적인 치유 의식을 집전하는 노년의 펠리시아나는 전원적이고 마술적인 멕시코를 대변한다. 이렇듯 거의 모든 면에서 양극단에 서 있는 듯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할 수 있는 것은 둘의 삶이 나란히 달리는 평행선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에 가깝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여자에게 유난히 각박한 사회 속에서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하고자 하는 바를 실현해나가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팔로마이기 전에 가스파르라는 이름의 소년으로 태어난, 사포텍문화에서는 제3의 성으로 인정받는 무셰인 팔로마가 펠리시아나를 치유자의 길로 이끌었고, 이후 조에와 펠리시아나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여 두 세계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렇게 치유자가 된 펠리시아나는 스스로도 몰랐던 조에의 고인 상처를 알아보고 치유를 시작한다. 또한 팔로마를 통해 만나기 전까지 조에와 펠리시아나가 그들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그들의 어머니와 자매다. 모두 저마다의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은 이 여자들은 엄마로, 딸로, 자매로, 친구로 서로를 지탱하고 돌보며 연대의 물살 위로 나아간다.
“언어가 힘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진실을 들여다보고 숨겨진 것들을 밝히며
세상을 창조하는 언어의 힘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마녀들》이 힘을 탐구하는 소설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현대 사회에서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물건의 힘, 돈의 힘 대신 언어의 힘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때 언어는 흔히 생각하는 피상적 언어가 아니다. 펠리시아나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스페인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비롯하여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그 어떤 언어도 할 줄 모르기에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당신이 언어의 샤먼이라는 것인지 의문을 표한다. 이에 펠리시아나는 답한다.
언어가 하는 일이 그런 겁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는 순간 그 의미를 알게 되곤 하지요. (...) 단어를 말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창조합니다. 이 세상이 창조되었듯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는 거지요, 하지만 그건 우리가 창조하는 세상인 겁니다. _210쪽
그 외에도 소설 속에서 언어는 “우리가 겪은 일들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현재를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우리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는 것”이며, 연결되어 있는 만물의 본질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뜨이게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언뜻 추상적이고 신비로운 무언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언어의 힘은 사실 우리가 매일을 살아가며 구사하는 힘이고 지금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힘이다. 오해와 분란이 쉽게 생기곤 하는 표면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 아래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말하는 힘, 마음 깊은 곳에 묻혀 있는 일들을 입 밖으로 꺼내는 힘, 그렇게 숨겨진 것들을 발화했을 때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힘 말이다.
언어의 힘을 경험한 조에에게 펠리시아나는 말한다. “조에 양이 본 것을, 내가 조에 양에게 말한 것들을 말하십시오.” 이 말은 조에를 통과하여 소설이 인쇄된 페이지 너머의 독자들에게까지 와닿는다. 한 리뷰어는 이 책이 “그 자체로 세상의 냉혹함에 대항하는 치유와 명상의 공간”이라고 평했다. 펠리시아나가 언어의 힘으로 조에를 치유하고 조에의 언어를 일깨워주는 과정을 목격한 독자에게 이 소설은 폭력에 대항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새로운 의미와 삶을 창조하는 힘을 지닌 자신의 언어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