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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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푸른역사
원산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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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서설_이규보, 술 마시고 글 지으며 고려를 살다 간 사나이
천재 문인의 젊은 날|글만 잘 짓는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시작은 비록 미약했으나|그의 붓은 결코 무디지 않았네|고려 역사와 문화의 화수분, 《동국이상국집》

1_나로 말할 것 같으면-이규보가 이야기하는 이규보
큰 키에 투박한 얼굴|머리숱은 줄고, 배는 나오고|고기만 보면 참지 못해|생선회와 게찜을 즐긴 미식가|버섯 향기 그윽하고 미나리는 맛이 좋아|하늘에서 술이 비처럼 내려와|막상 멍석을 깔아주면|마시고 마시고 마셔도 목마르네|아이고 가려워, 평생 피부병에 시달려|눈 아픈 것도 서러운데 짝퉁에 속고|나 이런 사람이야

2_지친 발걸음 속 잠깐의 여유-이규보, 이 사람이 사는 법
굽히지 않았음을 후회하노라|책 읽고 발도 담그고, 그곳이 어찌 잊히랴|고려 ‘집사’ 이규보|줄 없는 거문고를 뚱땅거린 풍류|졌다, 하지만 항복은 못 한다|낮잠을 자기에는 역시 비 오는 날|부처님, 술 좀 마시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산에 사는 스님이 달빛 탐내어|지친 나를 받쳐준 너|차맷돌을 돌리고 돌리고호|꽃 피고 풀 자라는 시인의 집

3_그대가 없었다면-이규보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아는 사람들
이규보의 삼족三族|당장 저걸 허물지 못할까|내 그대를 위해서라면|뭐든지 팔 때는 싸고 살 때는 비싼 법|아니 넌 배울 게 없어서 술을 배우느냐|아아, 아들아!|둥근 달이 떴습니다|괜찮아 친구야|술은 겨울 모자|고려시대에 숙취 해소제가 있었다면|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목줄에 묶인 원숭이나 내 신세나|다 주는 법은 없다는데 이 분께는 다 주셨네|뛰어난 후배를 끌어주다

4_붓만 들면 걸작일세-이규보의 글짓기
묘한 오마주|이규보, 정지상의 손을 들어주다|관행이라도, 잘못됐으면…|나도 이렇게 다니던 시절이 있었지|후다닥 시 짓기를 경계함|밤새워 능을 지키는 이 내 신세|포도 넝쿨 아래에서|갑자기 때 아닌 꽃이 폈어요!|청자 베개를 베고 무슨 꿈을 꾸랴|질항아리의 노래|반딧불이|이규보의 벌레관觀|같은 바다라도 달리 보이네|바람이여 제발 땅을 쓸지 말고|조선의 문인, 이규보의 글을 논하다

5_나, 고려 사람 이규보요-고려에서 산다는 것
나는야 개경에 살리라|박연폭포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겨울에는 술을 끓여서|술꾼의 길동무, 조롱박 술병 예찬|텅 빈 항아리|온천에 간 이규보 선생|불효자는 웁니다|냉장고가 없던 시절|이처럼 깔끔한 제사라니|이규보, 고인돌을 보다|도굴당하고 복구하고|열을 구워 하나를 얻으니|고려시대의 야생 원숭이(?)|“손님 오십니다!”|제삿밥 얻어 드시기 싫으면|이규보가 생각한 ‘신라’|‘우리 고구려’를 치러 온 자에게 제사를?

6_이건 아닌 것 같은데-이규보가 살아낸 시절
취준생 이규보, 발품 팔다|버섯 좀 구워 먹었기로서니|두더지만도 못한 놈|뇌물이 통하는 사회|알량한 월봉에서 떼어갈 게 뭐 있다고|고무줄 같은 그대의 나이|딱따구리에게 묻건대|교활하고 욕심 많은 거미를 탓하다

7_못다 한 이야기-이규보의 생각 엿보기
세계지도를 보며 자부심을|고구려 시조 주몽의 꾀|당나라판 ‘히든 싱어’|바른말하는 신하를 죽이다니|이걸 그냥 확|그림 감상에도 열심|500년 뒤 그림의 화제를 짓다|초서는 어려워|전쟁 중에도 동파의 책은 읽어야|〈달마도〉|무궁화는 왜 무궁화인가|이 망할 놈의 파리|뭐 이렇게 새해가 빨리 온담

나가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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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민경 (지은이)

출판사리뷰

술이 빚은 시인
이규보가 읊조리는 고려로 가다

고려를 알고 싶다면 지나칠 수 없는 그 이름, 이규보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을까?’ 옛날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 역사 삼매경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었음직한 의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역사 콘텐츠, 예컨대 사극이나 역사서, 박물관의 전시에서 당대 사람들의 생생한 삶과 생각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널리 알려진 인물이나 굵직굵직한 사건이나 휘황찬란한 문화유산 위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다. 800여 년 전 고려라는 왕조를 살면서 자신의 진솔한 심정을 담은 방대한 기록,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남겨서다. 《동국이상국집》에는 권력자의 뜻이나 특정 필요에 따라 지은 글도 있지만, 이규보가 살면서 붓 가는 대로 자신의 처지와 생각을 풀어 놓은 시와 글이 더 많다. 찬찬히 읽어보면 무신정변 후 무인들이 정권을 잡고 호가호위하던 고려의 혼란을 온몸으로 겪어낸 지식인의 모습이 생생하다. 누구에게는 아부꾼으로, 누구에게는 대문호로 평가받는 이규보가 그리는 고려,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늘은 시 한 잔, 내일은 술 한 수-이규보가 들려주는 이규보 이야기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을 역사의 장으로 안내하는 한편 학술적 연구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저자 강민경(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은 이규보, 나아가 고려 ‘사람’의 삶과 생각을 총 89꼭지에 담아 펼쳐 보인다. 각 꼭지마다 직접 그린, 해학적이면서도 날카로움을 잃지 않았던 이규보를 닮은 듯한 삽화를 수록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가 이규보의 글에서 만난, 오늘의 우리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았던 800여 년 전 고려 ‘사람’의 모습은 어떠할까.
《동국이상국집》에 담긴 이규보는 과거시험에 합격하고도 벼슬을 못 구해 높으신 분들에게 작은 벼슬자리 하나만 허락해 주십사 구관시求官詩를 지어 올릴 정도로 구직에 목매던 백수이기도 했고, 술 좋아한다는 소문이 절까지 퍼져 스님이 친히 술상을 내올 정도의 술고래이기도 했으며, 하루가 다르게 나오는 배와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절로 한숨을 내쉬던 ‘동네 아저씨’이기도 했다. “나 때는 말이야~”라 말하며 ‘라떼’를 찾기도 했고, 술을 진탕 마신 다음 날 숙취에 몸서리치는 이에게 숙취 해소제로 술 닷 말을 권하기도 했으며,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토실(일종의 온실)은 그러한 “하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이라 말하며 당장 허물라고 하인들을 닦달하는 ‘꼰대’같은 짓을 벌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아재’ 같은 모습이다.
그럼 이규보에게 ‘아재’스러움만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이규보는 가족과 백성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고 치열하게 분투한 사람이기도 하다.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약목若木을 베어와 태워 숯을 만들어/ 우리 집과 온 천하를 두루 따습게 해서/ 추운 섣달에도 늘 땀을 흘리게 하리다”라 다짐하기도 했고, “활처럼 굽히지 않고 항상 곧으면/ 남에게 노여움을 받게 되니라/ …… 오직 사람의 화와 복은/ 네가 굽히고 펴는 데 달렸느니라”라 말하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허리를 굽실거리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기도 했다. 피부병, 생손앓이, 두통, 치통, 천식, 소화불량에 갈증이 돋는 질환까지 온갖 병에 시달리면서도 작은 벼슬자리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입을 가지고 있기에 백성을 씹어 먹는가’라 일갈하며 지방관, 향리의 수탈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또 그는 검은 고양이를 기르면서 귀여워하는 동시에 “공밥만 먹지 말고 저 쥐들을 섬멸하거라”라 권하는 ‘집사’이기도 했다.

고려를 먹고 마시고 쓰다
독자 입장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규보가 먹고 마시고 쓴 ‘고려’의 일상적인 생활상이다. 저자는 이규보의 글을 통해 고려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먼저 먹는 것부터 보자. ‘붉은 생선[紅鱗]’을 회 뜨고 술잔을 기울였다는 이규보의 시에서는 아무리 늦어도 “이규보가 살던 13세기 초에는 고려 사람들이 생선을 회쳐서 먹을 줄 알았다”는 사실을 짚는다.
이규보가 특별히 예찬한 ‘게’와 관련해서는 ‘게젓[蠏醢] 한 항아리’라는 글귀가 적힌 죽간이 출토된 ‘마도 1호선’과 지방에서 세찬歲饌으로 올려 보냈던 게를 언급한 고려 후기 시인 목은 이색李穡(1328~1396)의 시를 덧붙이면서 고려 사람들이 게를 적잖이 즐겼으리라고 추정한다. 흙 씻어내고 솥에 넣어 삶아 쌀밥과 함께 먹으면 생선이나 돼지고기보다 낫다고 한 ‘미나리’, 구워 먹으면 ‘신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송이버섯’ 이야기도 간간하게 펼쳐 보인다.
다음으로 마실 것-이규보 하면 빠질 수 없는 술부터 보자. 저자는 생선을 회로 떠서 술잔을 들었다는 이규보를 보며 요즘 같으면 ‘생선회에는 소주’인데 이규보는 어떤 술을 마셨을지 찬찬히 훑는다. 이규보가 즐겨 마신 ‘백주白酒’를 막걸리로 비정하는 동시에, 소주가 13세기 말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를 거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을 곁들이며 친절하게 우리나라 소주의 역사도 알려준다.
차 또한 이규보에게서 빠질 수 없는 마실 거리. 저자는 친구에게 받은 차맷돌에 찻잎을 갈아 마시는 이규보를 보며 요즘 ‘별다방’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차抹茶, 곧 가루차를 고려시대에는 그렇게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술고래라 소문난 자신에게 술자리를 베푸는 스님에게 ‘차 마시는 즐거움이 참으로 맑고 담담하니 굳이 술에 취할 것 없으리’라 말하며 차를 찬미하는, 이규보의 술꾼답지 않은 면모를 선보이기도 한다.
그다음으로 쓴 것-이규보는 다양한 글을 써서 ‘고려’를 말한다. 〈제화이도장단구題華夷圖長短句〉라는 시에서는 남송, 금과 몽골, 고려를 한데 그린 〈화이도〉라는 세계지도를 보며 ‘고금에 어진 인재 끊임없이 태어나 중국에 견주어도 크게 부끄러울 것 없다네’라 읊는다. 고려에 대한 자부심이 한가득 묻어난다.
그렇다고 이규보가 살던 고려시대가 자부심만 가질 수 있을 정도로 태평성대였던 것은 아니다. “논밭은 모두 붉게 타서/ 곡식 싹이 무성한 것을 볼 수 없네/ 부잣집도 벌써 식량을 걱정하는데/ 가난한 사람이야 어떻게 살 수 있으랴/ 명문가에서는 날마다 자리에 술을 토하고/ 백 잔을 마시니 귀가 저절로 뜨끈해지네 …… 단지 문호의 융성한 것만 알고/ 나라가 불안한 것은 근심하지 않누나/ 썩은 선비 비록 아는 것은 없으나/ 눈물을 흘리며 매양 목메어 흐느끼네”라면서 현실을 아파하고 나라 걱정, 백성 걱정에 흐느껴 울기도 한다.

고려에 이런 것도 있었어? 흥미로운 동식물도 한가득
저자가 뽑은 이규보의 글 중에는 ‘고려에 이런 것도 있었어?’라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 흥미로운 동식물도 한 아름이다. 이규보는 자신을 아껴주던 권세가의 집에서 앵무새를 보고는 ‘주인이 선비 좋아함을 알아서인지 손님 오신다는 말을 가장 잘한다’며 칭찬을 늘어놓는다. 어떻게 우리나라에 서식하지 않는 앵무새를 소재로 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 관련해서 저자는 이미 신라 때부터 앵무새를 당나라에서 들여와 왕실에서 길렀던 적이 있고, 고려시대에도 주로 송나라를 거쳐 앵무새들이 여럿 들어왔으며, 왕실이나 고관의 집에서 애완용으로 기르곤 했다고 알려준다.
자주 드나들던 권세가의 원림園林에서 잔뜩 화가 난 원숭이를 본 이규보, ‘아마도 너는 파협巴峽의 달빛 생각하여 높직한 문벌에 얽매임 싫어함이리라’라고 읊으며 알량한 벼슬자리 하나 얻겠다고 발품 파는 자신의 신세를 되돌아본다. 이외에도 《동국이상국집》에 원숭이가 등장하는 글이 30여 편은 족히 되고,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원숭이 뼈가 출토되기도 했으며, 부여의 특산물이 원숭이 가죽이었다 하니 고려시대에 혹 야생 원숭이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상상해보기도 한다.
이규보는 봄에 피는 배꽃이 8월에 홀연히 피어난 것을 보고는 ‘하늘님이 술 한 잔 하시고 개경에 봄바람을 불어넣어주셨나’ 궁금해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지구 온난화를 떠올렸겠지만 당시엔 그저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었을 게다. 이규보의 붓은 지금 우리에게 ‘나라꽃’인 무궁화로도 향한다. 이규보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도 무궁화가 있었고 ‘무궁화’라 불렀다. 그렇다면 왜 무궁화가 무궁화로 불렸을까. 저자는 말한다. 이규보가 “하루 만에 피고 지는 꽃의 삶이 허무하니 도리어 ‘가이없다’고 한 것이라고.”

13세기 고려를 통해 21세기 대한민국을 말하다
책에 담긴 이규보의 모습은 ‘고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규보의 눈에 비친 ‘13세기 고려’는 ‘21세기 대한민국’을 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높으신 분에게 시를 지어 올려 관직을 구하던 이규보의 노력은 학교를 마치고 여기저기 이력서 보내느라 분주한 사회 초년생을 떠오르게 한다. 처음에는 과거에 급제해 지방관이라도 하길 바라다가 미관말직을 얻어 몇 차례 승진을 거친 후엔 지방관의 직을 떨치고 개경으로 가고 싶어 하던 이규보의 모습은 고려시대에도 수도 집중이 지금의 서울 집중 못지않게 엄청났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강을 건너는 나룻배 사공마저 술 한 잔 받지 않으면 ‘세월아 네월아’ 하던 고려의 실상은 근래까지도 존재하던 ‘급행료’(물론 지금은 ‘돈’이 아니라 ‘권력’과 ‘연줄’이리라)를 연상시킨다. 1217년(고종 4), 거란군이 쳐들어오자 그들을 물리치는 재를 올린다고 ‘문관과 무관의 월봉을 거두었다’는 이규보의 글은 ‘자발적 성금’이라는 포장 아래 반강제적으로 봉급을 갹출당한 공무원들의 하소연과 겹친다.
결국 고려시대도 사람이 살던 시절이었다. 이규보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시와 산문으로 충실히 남겼고, 이는 배 나온 꺽다리 아저씨 이규보를 고려의 증언자로 만들었다. 그가 남긴 글이 다리가 되어 800년 전과 지금 이 순간이 이어진다. 이 책은 그 다리를 보다 쉽게 건너게끔 하는 디딤돌이자, 저 멀리 보이는 고려를 가까이 보게 하는 돋보기이다. 자, 이 책을 집어 펼치고서 시인이 읊조리는 고려시대로 한 번 들어가 보지 않으시려는가?

상품필수 정보

도서명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
저자/출판사
강민경 (지은이),푸른역사
크기/전자책용량
152*224*19
쪽수
388쪽
제품 구성
상품상세참조
출간일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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