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주택 유전자』를 쓴 고 박철수 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의 유작인 이 책은 한국 아파트단지의 원형인 마포주공아파트의 시작과 끝을 파헤친다. 단지 내 인프라를 입주자가 부담하는 방식, 임대가 아닌 분양, 30년 후 재개발 등 한국 아파트단지의 특징은 모두 마포주공에서 시작되었고, 6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마포주공아파트 체제에 산다.
목차
1 전사(前史): 프롤로그
공화당의 제7대 대통령 선거 광고
쿠데타 세력의 국가 프로젝트 만들기
많은 것들의 시작점, 마포주공아파트 1차 준공식
2 근대 산업시설의 태동지: 도화동 연와공장
대한주택영단의 마포주공아파트 부지
도화동 연와공장
마포구 도화동 7번지
3 국가 프로젝트의 이데올로기
혁명 주체의 ‘시범’
계획가 박병주, 건축가 엄덕문과 김중업의 평가
‘넓이와 높이’라는 시범
4 마포아파트의 이데올로기
권력 집단과 기술관료 집단의 이해 일치
1,000세대 10층 아파트 11개 주거동
마포아파트 최초 구상 - A형, B형, C형
제1차 5개년 주택건설계획
5 총력 설계 체제가 만든 3가지 주거동
― 자형(A형)
T자형(B형)
Y자형(C형)
평면설계에 대한 대한주택공사의 설명
설계변경과 최종 준공
6 USOM의 반대와 설계변경
설계변경
미국의 반대
7 임대에서 분양으로, 한국 주택 공급의 운명
Y자형 아파트(C형 주거동) 임대
― 자형 아파트(A형 주거동) 분양
Y자형 임대아파트의 분양 전환
공영주택법
엘리베이터 홀과 창고의 임대
8 마포주공아파트의 전방위 파급 효과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주택공급 체제의 완성
토지구획정리사업의 주체가 된 대한주택공사
고층아파트에 대한 한시적 취득세 감면
9 마포에서 잠실까지: K-Housing Model 완성
남서울계획 주거지 4블록 아파트지구 계획안
동일 주거동 반복 배치의 출발과 마포주공아파트
한국 최초 단지식 아파트가 만들어낸 빗장 공동체
저자
박철수 (지은이)
출판사리뷰
『한국주택 유전자』 이후, 박철수 교수의 유작
『마포주공아파트』는 『한국주택 유전자』를 쓴 고 박철수 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의 유작이다. 2021년 출간된 『한국주택 유전자』는 출간 후 학계와 출판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학술서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수상했다(세종우수학술도서, 한국출판문화대상, 롯데출판문화대상, 우수편집상 등).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철수 교수는 건강이 악화되어 2023년 2월 세상을 떠났다. 『마포주공아파트』는 그가 와병 중에 마지막으로 집필한 원고를 출판사가 인계받아, 사후 편집을 거쳐 출간되었다(출간 전후의 사정에 대해서는 “편집자 서문”과 “저자 서문” 참조).
5.16 쿠데타 세력의 핵심 프로젝트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1963년 민정이양을 약속했다. 2년 후 선거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했다. “마포주공아파트”는 군부의 능력을 과시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모델이었다. 서울 시민들의 눈앞에 새로운 정치 세력의 능력을 드러내는 데 새로운 주택보다 더 적합한 것은 없었다. 당면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생활 혁명의 본보기로 제시하기 위한 모델이 되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쿠데타의 주요 인물이었던 장동운은 1961년 5월 28일 대한주택영단(현 LH공사의 전신) 이사장에 취임한다. 취임과 동시에 장동운은 서울 안에 고층, 단지식 아파트를 건립할 계획을 세운다. 이전까지 아파트는 충정아파트처럼 도시 가로에 면한 한 동짜리 5층 내외의 집합주택이었다. 장동운의 계획은 중앙난방을 공급하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10층 규모의 아파트를 단지로 구성해 1000세대를 수용하는 단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어느 것도 1962년 한국에서 가능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1963년 이전에 구현되어야 했다. “혁명주체”가 무능한 이전 정부와 다르다는 “시범”을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3장 “국가 프로젝트의 이데올로기” 참조).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신화의 원형
1962년 서울에 1000세대를 수용할 땅은 없었다. 그러나 프로파간다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아파트가 서울 안에 건립되어야 했다. 장동운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노역장으로 사용하던 땅으로 눈을 돌린다(2장 “근대 산업시설 태동지: 도화동 연와공장” 참조). 급히 땅을 마련한 장동운은 주택영단 건축가들에게 10층 규모의 아파트 설계를 요청하지만, 당시 주택영단 건설이사 겸 건축부장이었던 엄덕문은 난색을 표한다.(73쪽) 유사한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이 난관은 극복의 신화를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이내 자부심으로 바뀌고, 이 과정에서 마포아파트의 이데올로기는 증폭된다. 엄덕문은 ‘최고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진해 단 3개월 만에 10층 아파트 설계를 마무리했다’며 전형적인 극복의 서사를 들려준다.”(77쪽)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신화의 원형이 1962년 서울에서 이미 펼쳐진 것이다.
“군사혁명”을 “생활혁명”으로
수세식 화장실, 입식 생활을 위한 설비, 보일러를 이용한 온수 공급, 엘리베이터, 더스트슈트 등 “군사혁명”을 “생활혁명”으로 전환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마포주공아파트 계획안(1000세대, 10층, 11개 주거동)은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난다. 원조에 크게 의존하던 당시 한국 정부의 여러 정책에 공식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던 한미경제협력위원회(USOM)가 주공의 계획에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냉전 체계 속에서 정권에 대한 미국의 인정을 바랐던 박정희 정권이 미국의 반대를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다. 박철수 교수가 발굴해 전작 『한국주택 유전자』에서 처음 공개한 USOM의 코멘트에 따르면, 마포아파트 건립 계획은 모든 것이 부족한 수준 미달의 계획이다.(223~227쪽) 요컨대 당시 한국의 경제 사정과 기술적 수준을 고려하면 10층 높이의 아파트는 터무니없는 공상에 불과하다는 평가였다. 미국의 의견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었던 한국 정부와 영단은 10층에서 6층으로 규모를 줄인다. 그러나 건립계획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한국 정부는 USOM의 지원 없이 예산을 마련해 아파트를 세우기로 강행한다.
임대에서 분양으로
한국 주택 공급의 결정적 분기점
1962년 12월 1차 완공, 1964년 최종 준공이 이루어진 마포주공아파트는 모두 임대 아파트였다.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19세기 말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먼저 시도된 정부 주도의 집합주택은 예외 없이 모두 임대주택이다. 공공 주택을 통한 시장 안정과 도시의 공공성 담보를 위해 건설 이후에도 계속해서 정부가 주택을 관리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쿠데타 정권의 프로파간다 프로젝트로 시작한 마포주공아파트도 마찬가지로 임대아파트였다. 그러나 1967년 자금난을 겪던 대한주택공사는 마포주공아파트를 분양하기로 결정한다. 이 전환은 한국의 주택공급과 아파트의 역사에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다. 이후 한국의 거의 모든 아파트단지는 분양을 전제로 개발된다. 동시에 정확히 이 시점에 대한주택공사는 아파트만 공급하기로 결정한다. 아파트단지만 건설하고 모두 분양하기로 한 이 결정은 이후 한국 주택 공급의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자리 잡는다.
모든 것이 입주자의 책임이자 권리, K-Housing의 완성
1960년대 후반 이후, 기존 시가지를 재정비하기보다는 새로운 택지를 마련해 아파트단지를 만들어 분양하는 방식이 완전히 고착화된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구시가 대신 한강 매립지나 영동(강남), 잠실 등의 신시가지를 개발하고 여기에 주공이 직접 아파트를 건설하거나 민간 업체에 땅을 팔아 주택을 공급하게 하는 일은 정부 입장에서는 무척 손쉬운 방법이었다. 단지까지 진입하는 도로를 건설하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단지 내 도로, 놀이터, 공원 등은 모두 입주자가 부담해야 했다. 최소한의 투자만 하고 주거에 필요한 여러 기반 시설을 확보하는 이 방법은 정부의 예산은 부족하고 주택은 압도적으로 부족하던 시절, 주택을 단기간에 대량 공급하기에 유용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는 주거지 대부분이 아파트단지로 재편되자 도시가 크고 작은 ‘빗장공동체’의 집합으로 변모하는 결과를 낳았다.(314쪽 이하)
20세기 한국의 최대 발명품
마포에서 시작된 아파트단지의 신화는 이촌동, 반포를 거쳐 잠실에서 완성된다. 최초의 아파트단지였던 마포주공아파트가 최초의 재개발 아파트단지가 되며 신화를 이어갔다. 기존 시가지에 공원, 주차장, 놀이터 같은 필수 기반시설을 투자하지 않고 아파트단지 건설로 대응한 결과, 아파트단지는 한국 사회의 태양이 되었다. 아파트 가격은 정권의 명운, 개인의 인생을 좌우하며,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계층 재생산, 입시와 교육체계를 좌우하는 결정적 인자다. 건축적으로 비슷한 유형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한국과 유사한 아파트단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늦은 근대화와 산업화를 겪은 한국의 최대 발명품은 아파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마포주공아파트 체제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