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상경한 풋내기 시절부터 오늘의 일상까지
마스다 미리의 공감 폭발 에세이
스물여섯 살, 오사카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도쿄로 상경한다(‘일러스트’ 업계에 대해 깜짝 놀랄 만큼 아는 게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랬다). 그것이 마스다 미리의 도쿄살이, 혼자살이의 서막이었다(작가는 여전히 도쿄에 혼자 살고 있다). 그녀는 살 집을 구하고(예산은 월세 7만 엔, 3층 이상일 것), 고심해서 가전과 가구를 들여놓고(쓰레기통 하나도 허투루 들여놓을 수 없음!), 여자 혼자 사는 집이니 방범을 위해 베란다에 남자 트렁크 팬티를 널어놓고(현관엔 아빠의 낡은 구두도 두고), 이웃과의 충돌이나 층간소음에도 씩씩하게 대처한다. 가끔 허둥지둥 대지만 그래도 꿋꿋이 자기 몫을 다 하며 차근차근 홀로서기의 행복을 알게 된다.
이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작가지만, 상경 초기에는 지나치게 뒹굴뒹굴하며 지낸 탓에 어깨가 결려 접골원을 찾는 무직자 신세였다. 그렇지만 특유의 긍정적이고 무던한 성격으로 앞으로 펼쳐질 도쿄 생활에 불안함보다는 설렘을 품었다. 새하얀 도화지를 받은 것처럼 미래를 내 손으로 하나하나 색칠해 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책 곳곳에서 퐁퐁 솟아난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절이 지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출판사 영업을 하던 시기가 시작된다. 그 모습이 일면 태평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주도면밀하고 간절하고 그러면서도 너무나 마스다 미리다워서 웃음이 난다. 그렇게 작가는 착착 자기만의 호흡과 리듬으로 길을 개척해 나간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몹시도 고민한 끝에 상경한 도쿄였다
사람이 가장 많이 성장하는 때는 혼자 오롯이 낯선 곳에 내동댕이쳐졌을 때다. 그런 의미에서 생활의 터전을 옮긴다는 건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이자 더 나은 사람으로 성숙해지기 위한 또 다른 단계를 맞았다는 뜻이다. 부모님과 떨어지고 죽고 못 사는 친구들과 멀어지고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것. 그건 어쩌면 화분에서만 살던 묘목을 땅으로 옮기는 나무 심기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나를 시험해 보고 싶은 기분. 가족과 떨어지기 싫은 기분.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몹시도 고민한 끝에 상경한 도쿄였다.”(본문 25p)
마스다 미리는 그렇게 고심해서 상경한 도쿄에서 때로는 치기 어린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고독하지만 다정한 밤을 지새우며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새삼스레 발견한다. 그녀가 매일매일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번진다.
그렇다고 그녀의 하루에 실수만 있던 것은 아니다. 굳이 지름길을 택할 필요가 없으니 골목길에 있는 이 집 저 집을 구경하면서 목적지에 가고, 뜨거운 커피를 담은 보온병을 들고 공원에 가서 초콜릿과 함께 마시고, 맛있고 예쁜 갖가지 음식을 먹어보며 취향을 넓혀가고……. 혼자서 누리는 사소하지만 충만한 시간도 많다. 게다가 도시 생활과 혼자살이가 마냥 고독한 것도 아니었다.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새로 사귄 사람들과의 다정한 에피소드도 마음 한편을 환하게 밝힌다. 우리는 혼자서,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그렇게 어른이 된다.
이런 하루하루를 28년여간 보냈지만 그래도 여전히 도쿄는 새롭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좋은 곳에서 새롭게 발견한 나를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마스다 미리의 혼자살이는 이렇게 지금까지도 현재진행 중이다.
“낯선 곳에서 비로소 찾은 나의 모습
그럭저럭 꽤 마음에 듭니다.”
도쿄에서 혼자 살며 작가가 알게 된 건 도쿄라는 도시만이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홀로 생활할 때 결국 가장 많이 알게 되는 건 자기 자신이니까. 마스다 미리는 자신을 ‘무리하고 싶지 않은 어른’이라고 칭한다. 그러면서 잠자는 시간을 줄이거나 식사 시간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자신에게는 산책 시간을 줄이거나 멍하니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 또한 ‘무리’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물론 노력은 한다. 노력하지 않는 것과 무리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노력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도 있고, 노력하는 게 때때로 즐겁기도 하다. 하지만 무리하는 건 괴롭다. 언제나 즐겁지 않다. 작가는 지구상에 나는 오직 나 하나뿐이니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 경험을 통해 얻은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언제나 ‘느긋한 최선’을 다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언젠가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수수께끼 같은 나 자신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계속해서 나를 알아가고 헤아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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