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서울의 사계를 오롯이 담아낸
‘좋은 경험을 주는 공간’과의 만남
단기간에 효율지상주의에 갇혀 펼쳐낸 도시는 언뜻 삭막하기 이를 데 없다. 하늘을 뒤덮은 빌딩 숲 사이사이 인도를 점령한 차량과 오토바이, 속도감을 위해 구획된 격자무늬 풍경은 건조함의 연속이다. 서울의 중심으로 꼽히는 강남대로를 머릿속에 그려보자. 건물들은 진열장의 보석처럼 우리 눈을 즐겁게 해 준다. 그렇지만 걷고 싶은 거리는 아니다. 그저 눈요기만으로, 강남대로를 아름답다고 표현하기 어렵다. 공간 큐레이터 신효근은 지난 5년간 특색 있고 정감 있는 5백여 곳의 공간을 다니며, 서울 곳곳의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 나섰다. 책에는 이른바 ‘좋은 경험을 주는 공간들’만 담았다.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이 어우러진 아름지기 신사옥·데우스 삼청· 스타벅스 경동1960, 뿐만 아니라 수려한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아차산숲속도서관·불암산 엘리베이터 전망대 등 서울이 지닌 자연 풍광과 조화를 이룬 건축공간을 소개한다.
책에 담긴 41곳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공건축물 위주다. 저자는 공간 선택의 기준을 자리한 땅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건축물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땅과 사람, 자연과 연결된 공간이 바로 ‘좋은 경험을 주는 공간’이라는 믿음으로. 건축물마다 풍기는 메시지를 소담스럽게 읽어내고, 그 공간이 진정 우리 삶에 어떻게 들어오는지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도시 축으로 떠오르는 마곡지구와 용산역 일대, 젊음과 창조성이 가득한 성수동, 한국 전쟁의 상흔이 남은 수락산자락, 채석장의 아픈 역사를 지닌 동대문구 창신동 일대 등을 새롭게 해석한다. 만나는 공간마다 건축물에 새겨진 서울 구석구석의 서사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언제든 지나쳤던 바로 그 동네의 숨은 역사와 문화가 현대 건축물을 통해 말을 건넨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계절별로 공간을 분류했다는 것이다. 각 계절이 지닌 의미와 공간을 연결한 저자의 의도가 오롯이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를테면, 한 해의 시작을 의미하는 봄은 ‘시작’, ‘치유’, ‘아름다움’ 등으로 다시 세분화했다. 여기서 저자는 건축의 생성과 자연의 생장이 다름을 말하며, 자연과 건축의 관계에 대한 질문과 사유를 제시한다. 건축공간과 계절감을 담아낸 키워드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이를 논리정연하게 연결해내는 글을 읽는 재미는 덤이다. 이 책은 서울이 지닌 독특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새삼 환기시킨다. 이 시대에, 이 땅에 어울리는 건축을 찾으려는 한국 건축가들의 창의성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한 마디로 우리 곁의 서울을 제대로 톺아보게 해 준다. 그야말로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 도시를 여행하는 산책자를 위한 현대 건축 안내서다.
목차
들어가며 #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08
돌고 돌아 서울 11
봄
시작
1 자라나는 숲 16
2 1유로 프로젝트 - 코끼리 빌라 22
3 노량진 지하배수로 28
치유 4 평화문화진지 36
5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42
6 열린송현 48
아름다움 7 중림창고 56
8 콤포트 62
9 그라운드시소 서촌 68
여름
강렬함
1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78
2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84
3 은평구립도서관 90
4 국립항공박물관 96
5 LG아트센터 서울 102
청량함
6 오동 숲속도서관 110
7 아모레 성수 116
8 아모레퍼시픽 본사 122
쉼터
9 문화비축기지 130
10 양천공원 책 쉼터 136
11 송파책박물관 142
가을
여유
1 아차산숲속도서관 152
2 김근태기념도서관 158
3 스페이스K 164
리미티드 에디션
4 불암산 엘리베이터 전망대 172
5 창신 숭인 채석장 전망대 178
6 구산동도서관마을 184
7 아름지기 190
쓸쓸함
8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198
9 스타벅스 경동1960 204
10 데우스 삼청 210
겨울
별장
1 마하 한남 220
2 인왕산 숲속 쉼터 226
3 서울식물원 232
4 대방 청소년 문화의 집 238
성찰
5 원불교 원남교당 246
6 중곡동 성당 252
7 사유의 방 258
8 시안가족추모공원 - 천의 바람 264
어둠을 내몰
9 신한 익스페이스 272
10 응봉 테라스 278
11 안중근의사 기념관 284
부록
이런 코스로 다녀보는 건 어떨까요? 290
저자
신효근 (지은이)
출판사리뷰
삶을 담아내는 공간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 공명할 때까지
건축은 생명체와 달리 성장하지 않는다. 퇴화할 뿐이다. 땅을 파고 건물을 세워 올리는 일련의 과정을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엄연히 생성이다. 완벽하게 형성된 개체가 완숙하게 자라는 것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도 없어, 쉽게 늙고 쉽게 상처받아 그 흔적이 고스란히 건물에 새겨진다.
페인트는 서서히 벗겨지고, 나무는 울어 곡소리를 낸다. 모든 틈을 막아주던 실리콘은 딱딱하게 굳고 떨어져, 그 사이로 빗물이 새기 시작한다. 수북이 쌓인 찌든 때는 빗물이 흘러내려 눈물 자국을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이런 슬픔을 인간도 보기가 싫었는지, 건물을 수도 없이 고친다. 다시 칠하고 창문을 닦고, 마룻바닥에 기름을 먹여 시간의 흐름을 늦춘다. 그렇기에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끊긴 공간이 퇴화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우리는 건물의 퇴화를 부정적으로 보고,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려 온 힘을 쏟는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그 흐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건축만이 삶을 담아낸다고.
개발 광풍이 부는 서울에도 삶을 담아낸 건축물들은 지역민의 구심점이 되어 살아난다. 송정동의 1유로 프로젝트-코끼리 빌라, 구산동에 있는 구산동도서관마을, 버려진 석유비축기지가 재탄생한 문화비축기지 등. 그 쓸모를 다 했다고 공간을 밀고 버릴 것이 아니라 탈바꿈을 제안한다. 그것이 건축의 역할이고, 건축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으려면 공명해야 한다. 그 관심을 이끌어 줄 책이 바로 『서울은 건축』이다.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에 남은 공간. 그것은 보석처럼 빛나기만 하지 않을 것이다. 건축물 주변의 사람과 호흡하며, 그 지역의 문화, 역사와 어우러질 때 그 공간은 건축물이 될 수 있다. 재개발, 재건축이 도처에 여전한 서울에서 우리는 자본이 아닌 삶을 담아내는 건축물을 어디서 마주할 수 있을까? 삶이 담긴 공간만이, 그런 건축만이 건물이 아닌 ‘건축물’로 우리 곁에 오래도록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