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음악, 미술 사조를 뒤흔들었던
거장들의 특별한 매치
그 신비의 맥락을 들춰내다
인간은 눈을 뜨면서부터 자연스레 소리를 접하며 세상과 조우한다. 인간의 본능이라고 볼 수 있는 보고 듣는 인지 능력은 우리와 평생을 함께한다. 그 두 감각이 점차 성숙하며 발현된 예술이 곧 미술과 음악이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미술세계를 탐미하는 저자 김상균은 두 세계를 넘나들며 예술가적 통찰과 상상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책에는 모두 56명의 거장이 등장한다. 저자의 해박한 교양 지식은 예술사를 관통하고 그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독자들을 거장들의 내면으로 안내한다. 탁월한 상상을 기반으로 한 유추의 세계로 27꼭지가 맺어진다. 그 대상은 넓고 깊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고전주의 음악가인 베토벤과 하이든 그리고 모차르트, 소비에트 사회주의 치하에서 저항을 노래한 쇼스타코비치와 레핀, 이외에도 전위 예술가인 잭슨 폴록과 존 케이지 등 인류 예술사의 궤적을 바꾼 이들을 과감히 소환한다. 저자가 이들의 작품세계에서 끄집어낸 공통의 코드는 다양하면서도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 아니! 이런 조합도 있구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동시대에 활동하며 직접 교류한 스트라빈스키와 샤갈의 이야기도 있지만, 멘델스존과 프라고나르, 신윤복 등 활동 영역과 시기, 문화적 차이에서 선뜻 공통 분모를 찾기 힘든 조합들도 한 데 엮는다. 칸딘스키의 그림에 영향을 준 쇤베르크의 음악처럼,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말고도, 백 년의 시차가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와 화가 에곤 실레처럼 배경도 다른, 때론 접점을 찾아보기 힘든 이들도 내면의 성찰과 사유로 연결 짓는다.
아마 저자 본인이 평생 매달린 음악세계와 끊임없이 동행한 회화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유추를 통한 연상’은 모든 예술적 창조를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지적 과정이다. 피카소의 입체파 회화는 이집트 벽화에서,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은 피보나치수열에서, 칸딘스키의 그림은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것처럼.
예술사에 한 획을 그었던 거장들은 책에서는 ‘위대한 관계’로 정리되어 독자들에게 풍요로운 상상을 던져준다. 영원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하는 까닭이 이 관계 설정으로 명쾌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등 꼭지마다 부제로 달린 메시지는 저자와 함께하는 지적이면서도 즐거운 이 여행이 지닌 또 다른 매력이다. 예술은 결국 자기 내면과 조우하는 작업이다. 아름다운 유추와 상상의 세계와 교류하고 내면화 하는 것은 예술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 음악과 미술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4
비발디와 카라바지오
시대의 요구에 부름을 받다 12
헨델과 루벤스
유토피아를 향한 자기실현의 욕구 26
바흐와 렘브란트
빛의 예술가들 40
하이든과 뒤러
항해하며 개척하는 탐험가 54
모차르트와 라파엘로
시대의 완성을 말하다 68
베토벤과 미켈란젤로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에서 환희로 82
슈베르트와 프리드리히
삶과 죽음의 심연을 표현한 실존주의자 96
멘델스존, 프라고나르 그리고 신윤복
유희란 창조의 원동력 110
슈만과 로스코
침묵은 그만큼 정확한 것이다 120
브람스와 터너
전통을 지렛대 삼아 혁신을 추구하다 132
파가니니와 실레
예술가를 제한하는 것은 범죄다 144
베를리오즈와 들라크루아
문학은 예술을 빛나게 하리 156
쇼팽과 고흐
내면의 소리를 키운 이방인의 삶 170
바그너와 블레이크
상상과 통찰이 결합되었을 때 184
생상스와 다비드
고전은 재해석에 그 가치가 있다 200
드보르자크와 무하
비범함은 평범한 길 위에 존재한다 214
두 명의 클로드
아름다움은 상처를 위로한다 226
두 명의 구스타프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240
쇼스타코비치와 레핀
삶과 죽음 사이에 정답은 없다 252
스트라빈스키와 샤갈
오랫동안 꿈꾸면 결국 꿈에 다가선다 264
쇤베르크와 칸딘스키
유추와 연상은 가장 중요한 지적 기술 276
베베른과 쇠라
논리적 사고는 간결함을 낳는다 286
거슈윈과 로트레크
진리는 언제나 단순함으로 인식할 수 있다 300
크라이슬러와 르누아르
행복은 소박함 속에 깃든다 312
케이지와 폴록
모든 질서를 벗어던지고 자유로움을 실현하라 322
피아졸라와 보테로
예술은 오아시스가 되어야 한다 332
파블로, 파블로, 파블로
꽃을 꺾어도 봄은 막을 수 없다 344
에필로그 : 호모 비아토르 356
추천의 글 359
저자
김상균 (지은이)
출판사리뷰
창조의 흔적을 거슬러 오르면
결국엔 우리의 내면과 만난다
인간은 여행한다. 삶은 새롭고 다채로운 경험들로부터 시작돼 시간의 흐름과 함께 더욱 풍요로워진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어떤 준비 없이 그냥 태어났으며 목적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그렇게 삶이라는 굴레에 내던져진 우리는 오감을 자극하는 새로운 발견을 위해 여정을 떠난다. 그 여정이 강요된 것이든 아니든 결국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여행할 수밖에 없는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이다. 그리고 여행이 곧 우리의 삶이다.
예술은 바로 자신을 탐험하고 찾아가는 여행이자 내 안의 우주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자신과 마주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진실함과 맞닿아 있으며 우리가 숨기고 싶고 억압하고 있는 무의식과의 대면이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뒤러와 윤두서의 자화상 그리고 토마스 루프(Thomas Ruff)의 거대 초상 사진들은 하나의 세계이자 우주이다. 내 안의 우주는 동양과 서양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보여 준다. 이렇게 자신과의 성찰을 통해 탄생한 예술은 타인과 자신의 세계를 연결 확장해 주는 커다란 허브(Hub)가 되었다. 그 허브는 우리를 구분 짓고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창조의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자신을 향해 떠나는 여행에서 나오는 것이다.
브로노우스키(Jacob Bronowski)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모든 동물은 존재의 흔적만을 남기지만, 오직 인간만이 창조의 흔적을 남긴다.”
어찌 보면 창조는 인간의 특권이다. 호모 비아토르의 여정이 한 곳에만 머물러 있다면, 창조의 흔적을 남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모방이라는 작은 변이를 통해서 상향식(bottom-up)으로 발전해 온 예술은 하나의 긴 여정처럼 인간이 잊고 있었던 무뎌진 감각을 찾고, 상처 입은 나를 치유하며, 결국에 자기 내면과 조우하는 즐거움이다.
-‘에필로그: 호모 비아토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