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우리나라에서 도서관이란 우중충한 회색빛 건물에 책들로 빽빽한 서가나 학생들의 공부 공간 정도로 인식되기 쉽지만, 세계의 유서깊은 도서관들은 그 자체로 멋진 건축물이자, 지식이 교류하는 도서관 본연의 의미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이 책은 한평생 도서관학과 문헌정보학을 연구해온 지은이가 미국과 유럽 곳곳을 방문하며 만난 아름다운 도서관들을 소개, 도서관 특유의 매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새단장을 마치고 개정3판으로 돌아온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은 뉴욕 공공도서관, 미국 의회도서관, 프랑스와 독일의 국립도서관 등 6개국의 도서관 15곳을 지은이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곁들여 소개하고 있다. "세계가 어느 날 갑자기 붕괴되더라도 미국 의회도서관만 건재하다면 복구는 시간문제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엄청난 양의 장서와 꼼꼼한 관리로 도서관을 책의 무덤이 아닌 책의 궁전으로 가꿔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한편으로 따로 장을 할애하여 한국의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규장각과 해인사 장경판전을 소개하고 있다. 학문을 연구하는 이들을 대접한 규장각과 팔만대장경을 600년 이상 보호해온 해인사의 치밀한 건축술을 통해 우리 조상 고유의 도서관 문화를 보여준다. 또한 도서관 건축학을 강의해온 지은이의 경험을 살려 도서관 건물의 미학과 그 유래,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도 놓쳐선 안 될 부분이다.
목차
나무도 십 년을 자라면 아름다운 그늘을 주거늘│개정3판에 붙여 7
도서관 여행을 떠나다│책을 펴내며 10
1 좋은 책은 영혼에 피를 돌게 한다 뉴욕 공공도서관 19
2 영혼의 쉼터, 하늘로 이르는 순례 비블링겐 수도원도서관 37
3 우주와 하나로 합쳐지는 학자의 집 규장각 55
4 지식의 불을 밝히는 등대 미국 의회도서관 75
5 위대한 사서 없이 위대한 도서관은 없다 마자린 도서관 95
6 사람들은 어디서 최고의 지식을 얻는가 독일 국립도서관 109
7 도서관 없는 수도원은 무기고 없는 요새 아드몬트 성 베네딕도 수도원도서관 131
8 센 강변에 세운 지식의 탑 프랑스 국립도서관 151
9 안나 아말리아를 구하자!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 도서관 177
10 지혜의 여신이 머무는 장엄한 공간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197
11 지성과 역사가 숨쉬는 대학의 심장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 213
12 영혼을 치유하는 요양소 장크트갈렌 수도원도서관 235
13 프라하 중심에 세운 지식의 이정표 체코 국립도서관 259
14 미국 역사를 살아 있는 그대로 부시 대통령도서관 279
15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세월을 비껴가다 해인사 장경판전 297
여행을 마치며 317
참고문헌 321
저자
최정태 (지은이)
출판사리뷰
■ 아름다운 도서관을 찾아서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불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부동적이고,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부식하지 않고, 비밀스런 모습으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중
보르헤스의 말처럼 도서관은 고귀한 책들로 무장한 고독과 비밀의 공간이다.
무엇보다 ‘영원으로부터’ 존재하는, 세상에 종말은 오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는 곳이다.
이처럼 도서관은 인류문명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공간이지만, 지금 우리에겐 단순히 ‘자료를 보관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이란 이미지가 우선한다. 왜 우리는 도서관 하면 우중충한 회색빛 건물 안에 거대한 열람실과 조락한 서가, 퇴색된 책들이 잠들어 있는 있는 풍경을 먼저 떠올리는 것일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지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서 도서관에 간다.
한평생 도서관학과 문헌정보학을 연구해온 지은이 최정태는 사람들이 도서관의 가치와 숭고한 이념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안타깝지만, 주위에 아름다운 도서관이 없다는 것이 늘 의문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강단에서 ‘도서관 건축론’ 등을 강의하면서부터는, 본래의 기능에 숨겨진 아름다움조차 구현하지 못하는 우리 주위의 도서관에서 시선을 돌려 ‘진짜 도서관’을 느끼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마침내, 2005년 여름 평생 꿈꾸어오던 도서관 여행길에 오른 그는 중세 유럽의 순례자들이 도서관을 찾았던 마음가짐 그대로, 오로지 도서관만을 향해 달렸다. 넉넉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여행하는 기간 동안 루브르 박물관이나 퐁피두 센터 등을 지척에 두고도 못본 척, 다음 도서관을 향한 여정만을 재촉해 모두 6개국 15곳의 도서관을 방문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도서관은 책의 무덤이 아니라, 책을 위한 궁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가 만난 도서관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희망의 기록을 보존하는 곳이었다.
■도서관은 아름다워야 한다
좋은 책은 영혼에 따뜻한 피를 돌게 하듯 우아한 서가와 책 그리고 이곳을 순례하는 자들을 위해 호젓하고 은밀한 공간을 갖추어야 하는 도서관은 아름다워야 한다.
지은이가 돌아본 도서관은 대부분 이 명제를 충실히 수행하는 곳이다. 뉴욕 공공도서관, 비블링겐 수도원도서관, 미국 의회도서관, 프랑스 마자린 도서관, 아드몬트 수도원도서관, 장크트 갈렌 수도원도서관 등 15곳에 이르는 도서관들은 대부분 인간이 발명한 수많은 건축양식 중 가장 아름다운 것들만 추려 정교한 교집합을 이루고 있으며, 책 속에서 지식을 찾아 헤매는 수많은 순례자들은 공간 자체가 품고 있는 숭고함에 격려받는다.
‘도서관은 이유없이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라는 카네기의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도서관은 방문한 모든 이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고 있다.
지은이가 첫 번째 방문지로 택한 뉴욕 공공도서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공공도서관의 무채색 공공성을 가볍게 뛰어넘는 곳이다. 예를 들어 정문 앞을 지키고 있는 도서관의 상징 두 마리의 사자상 ‘인내와 불굴’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유쾌함을 보여준다. 도서관에서 내부공사를 진행 중이라면 작업 헬멧을, 뉴욕 양키스와 메츠가 경기를 할 때는 각각 양 팀의 모자를 쓰는 식이다. 이렇게 때마다 뉴요커들의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니, “도서관 때문에 뉴욕을 떠나기 싫다”는 사람들이 나올 법도 하다.
미국 의회도서관이나 부시 대통령도서관은 도서관이란 공간의 고전적 아름다움과 현대적 기능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곳이다. 의회 도서관은 “세계가 어느 날 갑자기 붕괴되더라도 미국 의회도서관만 건재하다면 복구는 시간문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곳이다. 말하자면, 인류의 지식과 정보가 모두 모여 있다는 이야기다. 제퍼슨관, 애덤스관, 메디슨관 세 동으로 구성된 의회도서관은 시설이나 규모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장서, 5,000명에 달하는 직원들과 세계 도서관의 모델 역할을 할 정도로 체계적인 도서분류기술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도서관 기능의 경계를 무한으로 확장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1939년에 개관한 애덤스관에 있는 ‘한국관’은 21만 권에 달하는 한국 관련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는 한국전쟁 전후에 발행된 신문과 잡지, 한국전쟁 당시에 발행된 남북한 교과서, 19~20세기에 발행된 고도서와 문학작품 초고본, 고지도 등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도서관의 아름다움을 논하자면 우리의 규장각과 해인사 장경판전도 빼놓을 수 없다. 정조 때부터 본격적인 왕실도서관으로 정비된 규장각은 창덕궁 부용지 근처의 주합루-우주와 하나로 합한다는 뜻-에 자리잡고 있었다. 2층 구조로 된 주합루는 아래층을 규장각, 위층을 주합루라고 불렀으며, 왕과 인재들이 모여 정사를 논하던 공간이자 열람실 역할을 했다. 특히, 정조는 규장각의 젊은 인재들은 각별히 아꼈는데, “규장각 각신은 근무 중에는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않으며, 비록 고관, 대제학이라 할지라도 각신이 아니면 당 위에 올라오지 못한다”는 그의 어명은 규장각의 각신이 얼마나 특별한 배려를 받았는지 짐작하게 한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집이다. 지은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팔만대장경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600년 이상 보호해온 판전에도 관심과 애정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특히 바람의 세기와 햇빛, 습도를 완벽하게 조절하는 장경판전의 특별한 창문 구조를 살피며 자연에 순응하며 천 년 세월을 비껴온 우리 조상의 소박한 듯하지만 치밀하고 과학적인 건축술에 찬사를 보낸다.
■영혼의 쉼터, 하늘로 이르는 순례
중세 시대 지식인들이 여행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도서관이었다. 당시 귀족, 성직자, 학자들의 도서관 순례는 지식과 교양을 재충전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며, 영혼의 요양을 겸한 여행으로서, 그들에게는 보편적인 지적 행사였다.
지은이의 유럽에서의 행보도 중세 시대 여행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알프스 첩첩산중에 몸을 숨긴 아드몬트 베네딕트 교단 수도원도서관, 비블링겐 수도원도서관, 장크트 갈렌 수도원도서관을 비롯해, 도시의 핵심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체코 국립도서관(클레멘티눔), 도시의 새로운 이정표로서 주위마저 변화시키고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리슐리외 국립도서관, 그리고 대학과 결혼한 도시 하이델베르크에서 웅장한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 등에 이르는 여정은 마치 구도자의 그것과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수도원도서관 여행기가 주는 감동과 정보는 각별하다. 수도원은 역사의 거친 물결에서 소중한 지적 유산을 도피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으며, 지식은 하늘 곧 신으로 이르는 길이라 믿었던 만큼 수도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책이었다. 중세 도서관이 탄생한 현장은 바로 수도원이었다는 이야기다.
장엄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에서 길어낸 과거가 품고 있는 향기는, 인간은 소멸해도 도서관과 인간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영원하리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지은이 최정태는 치이처럼 도서관 안팎을 꼼꼼히 살피는 동시에 그곳의 역사와 숨겨진 이야기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 현재와 조우할 수 있도록 조금씩 여행의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여기에 도서관이 보유한 장서와 그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 최신 현황 등도 곁들이며 마치 미술관의 도슨트처럼 도서관을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책의 궁전이자 지식의 우주’ 역할을 하는 도서관의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