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정수일 선생과 ‘한겨레 실크로드 답사단’ 일행이 2005년 7월 17일부터 8월 25일까지 40일 간, 서울에서 이스탄불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3대 간선의 하나인 ‘오아시스로(路)’를 밟으며 찾아낸 보석 같은 문명의 흔적들을 빠짐없이 카메라와 수첩에 담았다. 전문 사진 기자들이 촬영한 200여 장의 컬러 화보와 정수일 선생의 상세한 해설, 현지 학자들과 교류하며 밝혀낸 역사적 고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도 실크로드의 선상에서 우리의 주인 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수일 선생의 친절한 가이드를 받으며 실크로드에 새겨진 우리 겨레붙이들의 흔적을 만나보자.
목차
저자의 말
서문_ 우리는 왜 열사의 험로를 누볐나
01 실크로드의 꿈을 키워 준 베이징_ 중국의 호기와 기개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02 동서 문명의 접합지, 시안_ 실크로드의 끝은 시안이 아니다
03 선현들의 체취가 배어 있는 고도_ 시안에서 우리 고승들의 향 내를 맡다
04 오아시스 육로의 병목, 둔황_ 신비한 문명의 샘, 솟아나는 개발의 기운
05 막고굴이 간직한 한국 문화유산_ ‘신라승탑’에서 혜초의 입적지를 예감하다
06 오아시스 북도의 관문, 옥문관_ 살아남은 자만이 지날 수 있는 서역 개통의 문
07 문명의 용광로, 투루판_ 불과 모래, 바람이 풀무질한 문명의 융화상
08 베제클리크 석굴의 수난_ ‘아름답게 장식한 집’에서 만난 문명 파괴의 현장
09 투루판의 명물, 카레즈와 포도_ 혹독한 환경에 맞선 응전의 전리품
10 쿠처와 한반도의 오랜 인연_ 쿠처에서 만나는 자랑스러운 겨레붙이들
11 키질 석굴과 한락연_ 상처 입은 고대 문화 되살린 중국의 피카소
12 신 실크로드의 요충지, 우루무치_ 치욕 씻고 다시 일어서는 실크로드의 기지
13 생명이 약동하는 타클라마칸 사막 종단_ 마른 모래 가르고 열리는 삶의 바다
14 옥의 고향, 허텐_ 옥의 길 따라, 비단의 길 따라
15 신장의 축소판, 카슈가르_ 카슈가르에 오지 않고는 신장에 왔다고 할 수 없다
16 톈산의 진주, 이식 쿨_ 마른 사막 적시는 신비로운 청진주
17 황금의 초원, 카자흐스탄_ 황금의 초원로에서 황금 길이 다시 열리다
18 탈라스 전쟁의 현장을 가다_ 포크로브카 언덕에서 들은 고선지의 포효
19 명마의 고향을 찾아서_ 삶의 한복판에는 언제나 말이 서 있다
20 이슬람의 성도, 타슈켄트_ 이슬람의 르네상스 꽃피운 중앙아시아의 심장
21 한국 문화의 전도사, 고려인들_ 망국의 한 거름삼아 뿌리내린 원조 한류
22 중앙아시아의 풍운아, 티무르_ 피와 영욕의 역사 위에 닦인 오아시스로
23 중앙아시아에 간 한국의 첫 사절_ 벽화 속 사절, 틀림없는 고구려인이다
24 종이의 길 튼 사마르칸트 지_ 종이로 동과 서를 이은 제지기술자들
25 한 권의 통사책, 부하라_ 떡시루처럼 층층이 쌓인 영욕의 긴 역사
26 부하라 학맥의 삼총사_ 오아시스에서 꽃피운 이슬람 최고의 학맥
27 불교 전파의 서단, 메르브_ 우리네 고향과 닮은 그들의 살림살이
28 헬레니즘의 산실, 니사_ 헬레니즘은 오리엔트에서 탄생했다
29 채도의 길을 튼 아나우_ 흙살 드러낸 들판, 얼굴 내민 도자기
30 한국인이 발자취를 남긴 땅, 페르시아_ 1,200년 전 혜초의 마지막 여행지는?
31 태양의 땅, 호라즘_ 천혜의 땅에 태양빛 찬란한 문명이 깃들다
32 박물관 도시, 히바_ 유적은 과거의 퇴물이 아니라 보물
33 이슬람 시아파의 성지, 마슈하드_ 화려한 옷 갈아입은 순교의 땅
34 문명의 모임터, 페르세폴리스_ 열린 마음 아름답게 피워낸 영원한 왕도
35 페르시아의 얼굴, 시라즈_ 조화와 포용의 미덕이 묻어 있는 다민족 도시
36 이란의 시성, 하피즈_ 신비의 혀로 영혼 달랜 페르시아의 이태백
37 석류의 고향, 시르 쿠흐_ 페르시아 향기 한반도에 전한 생명의 과일
38 조로아스터교의 성지, 야즈드_ 신성의 불 꺼지지 않는 침묵의 땅
39 이란의 진주, 이스파한_ 문명이 삶 속에서 살아 숨쉬는 도시
40 활자의 길 이어 준 ‘이란의 구텐베르크’_ 고려의 금속활자가 독일까지 전해진 길은?
41 전통과 현대가 갈등하는 테헤란_ 낡아버린 현대화와 되돌아온 전통
42 기독교와 이슬람을 아우른 다마스쿠스_ 해묵은 편견 버리고 화합의 문명 꽃피운 곳
43 고귀한 적, 살라딘_ 충돌의 시대, 살라딘의 재림을 기다린다
44 오아시스 육로의 서단, 팔미라_ 로마도 탐냈던 4천 년 교역도시
45 알파벳의 산실, 우가리트_ 3천 년 전 첫 알파벳의 경이로움
46 터키 성지, 하란과 산르 우르파_ 아브라함과 아들, 또 그 아들이 예서 살았더라
47 성스러운 안식처, 넴루트_ 모두가 잠들었으나 거룩한 기운 남긴 옛터
48 노아의 방주, 영원한 수수께끼_ 수수께끼는 수수께끼대로 풀어나가는 것이 순리
49 해가 뜨는 동방, 아나톨리아 문명_ 미다스의 황금 손, 여기 잠들다
50 자연과 인간의 조화상, 카파도키아_ 기암괴석과 지하 미로도시 누구의 작품일까
51 인류 문명의 노천박물관, 이스탄불_ 발길마다 유적,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52 동서문명의 접점, 이스탄불_ 답사길 끝에서 맛본 태극무늬 백자의 감동
53 실크로드의 재발견_ 이어지는 초원로와 해로의 재발견을 기약하며
저자
정수일 (지은이)
출판사리뷰
제대로 된 ‘길’에서 찾은 제대로 된 ‘뜻’
우리는 왜 열사 속을 누비며 험로를 택했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이 길의 참뜻을 터득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제대로 이어진 길에서, 제대로 된 뜻을 찾으려고 한겨레신문사 측이 파격적으로 내린 단안이기도 하다. 우리의 길은 여흥이나 즐기는 길이 아니라 무언가를 찾아 떠난 길이다. 이 길 위에서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우리의 위상을 확인하려 했고, 동서 간에 오간 숱한 문물의 교류 흔적을 더듬으려 했으며, 인류가 창출한 위대한 문명들의 슬기를 체험하려 했다. 이것이야말로 이 길이 간직한 참뜻이라고 믿었기에, 열사나 고산준령도 마다하지 않고, 오아시스 문명의 향훈에 흠뻑 젖어 쉼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여정을 마치고 보니, 신문사 측의 단안과 우리의 표적이 적중했음을 피부로 느낀다.
신라 고승 혜초의 입적지를 예감하다
우리와 이웃한 중국의 시안(장안)에서는 신라의 고승 원측(圓測)과 혜초(慧超)를 기리는 탑과 기념 정자를 찾아가 그분들의 위훈을 되새겼고, 고선지(高仙芝) 장군의 고택 자리를 알아냈다. 밍사 산의 산령이 깃든 둔황 막고굴(莫高窟)에서는 밝히지 못해 늘 응어리로 남아 있던 혜초 스님의 입적지를 밝힐 단서를 발견했다. 송대에 그린 세계 최대의 지도라고 하는 ‘오대산축소도(五臺山縮小圖)’에 ‘신라승탑(新羅僧塔)’이라고 명기된 곳이 있으니, 적이 그곳이 스님의 입적지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밖에 장경동(藏經洞)을 비롯한 막고굴 여기저기에 우리의 외연적 역사 문화와 관련한 귀중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는 사실도 재확인했다.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의 포효가 들린 탈라스…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의 사절도, 고구려 사신이 틀림없다!
비록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중앙아시아는 어쩐지 낯설지 않다. 고구려 사신이 다녀간 아프라시압 궁전터가 있고, 고선지 장군이 이슬람 대군과 맞섰던 저 유명한 탈라스 싸움터가 있으며, 오늘날은 곳곳에 카레이스기(고려인)들이 살고 있어 김치가 낯익은 음식으로 인기가 있으니 말이다. 지금껏 우리는 박물관 모사품에서나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의 고구려 사절도를 접할 수 있었지만, 현지 고고학연구소장의 안내로, 출토했다가 다시 파묻어 비밀에 붙여졌던 발굴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세계 전쟁사와 문명사에 긴 여운을 남긴 탈라스 싸움에 관해선 종래 그 장소부터가 논란거리였다. 이번에 현지 전문가의 안내로 탈라스 강 동안의 널따란 언덕배기가 그 치열했던 전쟁터였을 가능성과 그 땅 속에 수많은 전사자들의 유해가 묻혀 있을 법도 하다는 현지 고고학자들의 견해를 전해 들었다. 이것은 유망한 연구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고구려인의 기상을 만방에 떨친 장군의 위훈을 제대로 기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못내 가슴이 조였다.
한반도에서 서역까지 이어진 실크로드의 감동
출처 미상으로 남은 청화백자, 혹시 우리의 것이었으면…
중앙아시아를 지나 이 길의 서쪽에 접어들면 우리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우리 민족사와의 유대를 상징하는 유물들이 우리를 반겨 맞았다. 우리는 가끔 역사 다큐멘터리에서 무예를 겨루기 위해 말 타고 달리면서 격구(擊毬: 폴로와 유사함)를 하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알고 보면 그 놀이의 발원지는 바로 이란의 고도 이스파한 중심에 있는 이맘 광장이다. 그곳에 남아 있는 두 쌍의 석조 골대가 그것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었다.
여정의 종착점인 터키는 여러 면에서 우리의 관심 대상이다. 한때 세계 도자사를 주도했던 우리네 도자기 유품이 서방에서는 아직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나 아이러니한 일이어서 늘 가슴팍에 묻고 다녔다. 그래서 세계에서 도자기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토프카프 궁전 박물관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들린 곳은 도자기 전시실이었다. 거기서 뜻밖에도 8괘와 태극문양이 선명한 청화백자 한 점에 눈길이 멎었다. 유독 그것만이 출처 미상으로 남아 있으니, 우리 것이 아닐까? 혹은 우리 것이었으면 하는 의심 반, 기대 반의 마음속에 크게 눈도장을 찍어 놓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팔미라까지 이어진 실크로드, 그 확장은 계속된다
우리가 따라가는 이 길이 지중해 동쪽 해안까지 연장된 데는 시리아의 팔미라라는 오아시스 도시가 결정적 구실을 했다. 당초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 서북해안에서 끝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으나, 바로 이 도시의 한 유적에서 한금(漢錦), 즉 중국 한나라 때의 비단 조각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오아시스로가 지중해까지 이어졌음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비단 조각의 발원지를 목격했을 때, 우리의 가슴은 마냥 설렐 수밖에 없었다. 그밖에 중국 한대부터 환상적인 서역 특산말로 선호해 온 ‘한혈마(汗血馬)’의 원종을 해발 3,300여 미터의 톈산(天山)산맥 산중에서 찾아냈고, 석류의 본향이 이란의 사자산(獅子山) 일대임을 현지에서 알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의 카프탄형(전개형) 전통의상의 유형적 원류가 서아시아임도 곳곳의 의상유품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어제에서 만나는 오늘의 우리의 얼굴
답사단은 중앙아시아에서 화려하게 꽃핀 이슬람의 건축문화에 황홀해지고, 이란에서는 오리엔트 문명의 정화를 응축한 중동 최대의 문명유적 페르세폴리스와 1,500여 년 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조로아스터교의 성화 앞에서 숭엄한 감회에 젖기도 했다. 시리아에서는 충돌로만 비쳐지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공존상을 확인했으며, 라틴문자의 모체인 우가리트 문자를 출토지 현장에서 추적해 보기도 했다.
오아시스로의 연변에서 확인하고 찾아본 이 모든 것은 이 길을 따라 창조된 위대한 문명들의 소산이다. 그 문명들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우리의 앎과 삶을 살찌우는 자양분이 된다. 그 자양분을 얻고자 떠난 것이 이번 여정의 또 다른 참뜻이다. 현대문명의 혼탁을 훌훌 털고, 저 맑고 깨끗하며 웅심 깊은 문명들 속에 몸과 마음을 한번 담가 보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보람찬 체험이다. 이제 가까이서만 맴돌지 말고 보폭을 다양한 문명세계로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