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환자, 가족의 ‘발병發病’ 트라이앵글
삼성서울병원에서 25년간 진료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의사-환자-가족의 트라이앵글이 어떻게 없던 병까지도 만들어내는지를 밝힌다. 의학 지식만으로 환자를 보는 의사, 매우 걱정이 많은 환자, 그리고 자신의 두려움을 피하려고 환자를 컨트롤하는 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악순환은 종류별로 다양하다. 또한 저자는 과잉된 병원쇼핑의 세태와 ‘발병發病하는 사회’의 실상을 의료 현장에서 짚어낸다. 물론 이 책은 병원과 의료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좋은 의사 감별법도 알려준다. 또한 환자 입장에서 고려한 ‘약물 방학’이란 개념도 있어 약물 중단을 시도하고 성공했던 사례들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병원’, 즉 휴머니즘 의료다.
저자는 “의료의 본질은 두려움”이며, 환자가 두려워하는 만큼 의사도 자기 진단이 틀렸을까봐, 치료가 적절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의사들에게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이것을 따르면 일단 오진과 잘못된 치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가이드라인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데, 이 사실은 이전의 치료 방침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이는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며, 그 변화를 받아들일 때까지는 갈등과 논쟁을 피할 수 없다.
‘의원병’이라는 말이 있다. 의사의 과잉 치료나 의료 사고, 또는 치료의 합병증으로 생기는 질병과 장애를 일컫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많은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 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저자는 이런 의사들의 불안을 짚고, 그들의 손실 회피 심리를 파고들며, 현재의 병원 시스템에서 의학 지식으로만 무장한 의사들이 어떻게 없는 병도 만들어내는지를 밝힌다. 당연한 일이지만 요즘 의사나 병원은 치료과정에서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자신들의 손실을 먼저 계산하고 회피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진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한편 환자들은 쇼핑하듯 가볍게, 또 너무 자주 병원을 오간다. 환자의 가족 역시 병의 근본 원인이 될 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때가 있다. 특히 소아청소년 환자의 경우 부모가 자녀의 증상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의료진들은 ‘그레이 페이션츠Gray Patients’라고 부르는 환자 목록을 갖고 있다. 자기 손익 계산에만 급급한 환자, 진료 행위를 도구로 삼는 환자, 의료를 비용 대비 효율로만 보는 환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책이 내놓는 진단 및 휴머니즘 의료에 대한 강조는 저자가 병원에서 직접 문제의식을 갖고 실천해온 것이다. 오랫동안 외래에서 약을 처방하지 않으려고 시도한 점, 검사를 최소화한 점, 18세 성인이 되어도 기존 환자들은 소아청소년과에서 계속 진료한 점, 본인의 연구팀과 함께 크론병에 톱다운 치료법을 적용한 점, 이로써 세계 어느 센터보다 앞서 치료 약물 모니터링을 시작한 점, ‘약물 방학’을 도입해 특정 환자들에게 약물을 끊게 한 점 등이 저자의 논지가 신뢰감을 갖도록 해준다.
의학 지식만으로 환자를 보면 꽤 많이 오진하게 된다
소아청소년과 의사인 저자는 늘 아이의 보호자까지 함께 만나기에 상대하는 사람의 수는 다른 과의 두 배 이상이다. 그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하다 온 환자들을 주로 본다. 부모는 아이의 검사 기록과 투약 목록이라며 두툼한 서류를 내미는데, 그가 보기에는 없어도 됐을 검사나 약들이다.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약 20퍼센트가 ‘예민한’ 부류에 속한다고 한다. 병원을 자주 찾는 이들은 예민한 부모와 그들을 똑 닮은 예민한 자녀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과거에 아팠거나 안 좋았던 기억을 잘 지우지 못하고, 그와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까봐 걱정한다. 예전에 구토하고 체했던 기억 탓에 특정 음식을 기피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만약 입이 짧은 아이라면 이런 기억 때문에 복통 같은 소화기 증상을 호소하고, 유치원 등에서 변을 보다가 창피를 당한 기억이 있다면 학교나 유치원에 가기 전 아침에 변을 해결하려고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다. 이건 병이 아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이런 아이에게 흔히 관장을 시행하거나 소화제, 지사제, 유산균을 처방한다.
과다 처방이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어른인 부모는 자기 걱정을 덜려고, 의사는 보호자가 센 약을 요구하니까, 나아가 어쩌면 의료진이 책임질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 손실을 미리 피하기 위해 검사와 처방을 쉽게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가 짊어진다.
그래서 이 책에서 첫 번째로 다루는 대상은 의사다. 저자는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이 이전에 다른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이에 따라 의대생 교육의 문제점과 병원 시스템의 구멍, 오류로 귀착되는 의사 개개인의 행동이 함께 읽힌다. 이에 저자는 ‘의원병’을 만들어내는 의사들을 우선적인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저자는 ‘휴머니즘’이 빠진 의료는 병을 키운다고 말한다. 환자 개인의 환경과 배경을 듣지 않고서는 병의 근본 원인을 찾기 어렵고, 그 탓에 종종 과잉 검사와 처방으로 대응하게 되는 것이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데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이 말이 진부하게 들리는가?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목숨을 다루는 의료 행위는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자꾸 여기에 어긋나는 통계들을 보여준다.
팬데믹이 지속되던 어느 해, 두 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저자의 병원 소속 인턴 7명이 한꺼번에 그만둔 일이 있었다. 그중에는 하루 만에 사직서를 낸 인턴도 있어 그들이 병원에 뭔가 불만을 가졌다고 보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대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요구돼온 점인데, 의사는 휴머니즘 없이는 그 직업을 감당할 수 없다. 이 일 자체가 타인의 생과 사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압축해서 경험케 하므로 죽음의 스펙터클은 이들에게 소명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입사하자마자 퇴직한 인턴들에게 소명의식은 없었다. 이들 때문에 정작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보호를 받아야 할 환자들과 동료이고, 나아가 병원 전체적으로도 손실을 입는다.
없던 아이의 병도 만드는 부모
좋은 의사 감별법
저자는 의학 지식만으로 환자를 보는 의사는 꽤 많이 오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검사 결과나 의학 지식이 질병의 근본 원인을 꿰뚫을 순 없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약 없이 치료하고 검사도 거의 안 하는 저자는 상식과는 다른 조언을 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환자를 위하는 의사라면 때로 위내시경을 참아야 한다.” “의사가 옳은 말을 하더라도 환자는 피해를 볼 수 있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고 비판한 선구자로는 오스트리아 의사 이반 일리치가 있는데, 마찬가지로 저자는 국내 의료 시스템에서 의사들이 병을 만들어내는 사례, 나아가 보호자가 환자의 병을 키우는 사례까지 짚는다. 후자를 ‘가족원병’이라 부를 수 있고, 따라서 저자가 두 번째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대상은 환자의 가족이다.
책에 나오는 아홉 살짜리 성호의 엄마가 대표적인 사례다. 저자가 만나는 많은 소아 환자는 입이 짧은데, 가만 보면 이 아이들의 부모가 대체로 예민하고, 아이의 앞날에 대해서도 걱정을 많이 한다. 성호는 키가 또래의 평균쯤 됐지만 몸무게는 많이 모자랐다. 하지만 저자가 봤을 때 성호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고 과민성 복통을 앓는 정도였다. 입 짧은 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신체화 증상이다. 하지만 엄마는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말을 쉬지 않고 했다. “병원을 세 군데나 다니면서 검사를 많이 했어요.” “한 의사는 장염이니까 죽만 먹이라고 했는데 그 바람에 몸무게가 2킬로그램이나 줄었어요.” “또 다른 병원에서는 엑스레이를 찍더니 변이 차 있다면서 관장을 시켰습니다.” 저자가 보니 성호의 문제는 아이를 밀어붙이는 엄마에게 있었다. 성호는 착한 아이여서 밥 많이 먹으라는 엄마 말을 거역 못 했는데,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억지로 먹은 게 구역, 구토를 일으켰던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자아를 인정하지 않고 본인 뜻대로 컨트롤한 결과 그 손해는 고스란히 아이가 뒤집어썼다.
이렇듯 부모가 아이의 병을 만든다. 가족의 두려움은 환자의 두려움으로 나타나, 둘은 쌍둥이처럼 붙어다닌다. 특히 가족 안에서 가스라이팅 행위가 있을 때는 자녀에게 신체화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의사라면 진료실에서 가족을 함께 관찰하며 병의 맥락을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환자들이 의사의 오진과 실수를 비판하며 의료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의사의 실수로 인한 의원병보다 그렇지 않은 의원병이 더 많다. 그것이 겉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은 ‘사람의 병원’이다. 수술할 때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다면 혹시나 생길지 모를 의사의 책임 때문에 훨씬 더 적은 수치인 실패 가능성부터 강조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좋은 의사 감별법도 알려준다. 만약 독자가 의료계 종사자라면 그들은 환자의 목숨을 좌우하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지닌 채 어떻게 불안해하지 않고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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