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

13,950 15,500
제조사
오월의봄
원산지
대한민국
배송정보
2,500원 (조건부배송) 지역별 추가배송 주문시결제(선결제)
택배 / 방문수령

책소개

기후위기 시대에 권하는 원주민의 역-인류학. 재앙과 위기, 종말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문명 세계를 향한 원주민의 강력한 비판을 담아낸다. 생태학적 재앙이 전 세계적으로 중대한 의제로 부상하고 있고, 국제사회는 그로 인한 미래의 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데 동조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가중되는 것은 재앙에 대한 공포나 위기의식이 아닌 ‘익숙함’이다. 우리 문명인들은 왜 여기저기서 종말을 떠들면서도 정작 자신들에게는 종말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망각과 익숙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브라질 크레나키 원주민의 리더로서 수십 년 가까이 원주민운동을 이끌어온 아이우통 크레나키는 백인 자본주의 문명이 제시하는 종말 담론을 비판하며 그들의 폭력적인 지배와 생태살해ecocide로 원주민 세계는 이미 오래전 종말을 맞이했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생각들〉을 비롯한 일련의 연설/강연을 통해 이미 종말을 겪은 원주민의 입장에서 문명인들에게 말을 건다. 원주민들은 그 종말의 과정을 여전히 겪고 있음에도, 백인 자본주의 문명으로의 예속을 거부하며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크레나키는 ‘이미 시작된 종말을 늦추기 위한 방법들’을 제안한다. 이 작고 소박한 책에 밀도 높게 담긴 그 방법과 실천들은 단지 원주민의 지혜나 격언 따위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문명)를 벗어나 ‘다른 세계가 되어’ 인간이 직면한 생태학적 위기를 바라보도록 하는 급진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는 이 책의 핵심을 이루는 역-인류학적 관점으로, 원주민이 그들 고유의 방식으로 구축해온 서구인에 대한 인류학을 제시해준다. 크레나키가 인도해주는 역-인류학적 관점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속한 문명 세계의 근거와 토대들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생태학적 위기에 맞선 가장 급진적인 비판의 목소리 7

1부.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생각들

1.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생각들 19
2. 꿈과 땅에 관하여 45
3.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인류 59
―아이우통 크레나키

2부. 종말과 위기를 생각하는 방법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생각들》에 대한 후기 79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세계의 종말, 그것은 백인들이다 89
―장-크리스토프 고다르
기후재앙에 직면한 인류의 무능함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01
―박이대승

3부. 원주민의 역-인류학

인간의 가장자리에서 던지는 브라질 원주민의 질문 141
―박수경
이미지 껍질’ 개념의 비판적 역량 157
―장-크리스토프 고다르
우리의 언어는 아름답고, 분명히 살아 있다”: 179
파우마리어 경연대회 (1)
―오야라 보니야
참여 저자 소개 206

저자

아이우통 크레나키 (지은이), 박이대승, 박수경 (옮긴이)

출판사리뷰

우리 문명인이 곧 세계의 종말이다

개발과 소비 없이 삶을 상상하지 못하게 된
문명 세계에 울려 퍼지는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

생태학적 재앙과 문명의 폭력에 맞서
삶의 원천을 지키는 브라질 원주민의 방법과 실천들


기후위기 시대에 권하는 원주민의 역-인류학. 재앙과 위기, 종말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문명 세계를 향한 원주민의 강력한 비판을 담아낸다. 생태학적 재앙이 전 세계적으로 중대한 의제로 부상하고 있고, 국제사회는 그로 인한 미래의 재앙을 막아야 한다는 데 동조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가중되는 것은 재앙에 대한 공포나 위기의식이 아닌 ‘익숙함’이다. 우리 문명인들은 왜 여기저기서 종말을 떠들면서도 정작 자신들에게는 종말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망각과 익숙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브라질 크레나키 원주민의 리더로서 수십 년 가까이 원주민운동을 이끌어온 아이우통 크레나키는 백인 자본주의 문명이 제시하는 종말 담론을 비판하며 그들의 폭력적인 지배와 생태살해ecocide로 원주민 세계는 이미 오래전 종말을 맞이했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생각들〉을 비롯한 일련의 연설/강연을 통해 이미 종말을 겪은 원주민의 입장에서 문명인들에게 말을 건다. 원주민들은 그 종말의 과정을 여전히 겪고 있음에도, 백인 자본주의 문명으로의 예속을 거부하며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크레나키는 ‘이미 시작된 종말을 늦추기 위한 방법들’을 제안한다. 이 작고 소박한 책에 밀도 높게 담긴 그 방법과 실천들은 단지 원주민의 지혜나 격언 따위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문명)를 벗어나 ‘다른 세계가 되어’ 인간이 직면한 생태학적 위기를 바라보도록 하는 급진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이는 이 책의 핵심을 이루는 역-인류학적 관점으로, 원주민이 그들 고유의 방식으로 구축해온 서구인에 대한 인류학을 제시해준다. 크레나키가 인도해주는 역-인류학적 관점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속한 문명 세계의 근거와 토대들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980년대부터 원주민운동에 뛰어들어 브라질 현대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긴 원주민 리더 크레나키는 2019년 자신의 강연문 세 편을 모아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생각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책은 출간 직후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로 번역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 같은 세계적 인류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한국어판은 철학과 인류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연구자가 참여하는 정기 국제 세미나 ‘탈식민적 인류학’을 통해 기획되었다. 한국어판은 크레나키가 2019년 출간한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생각들》을 충실히 완역하면서도, 크레나키의 강연과 텍스트들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응답을 함께 담아냄으로써 원서의 의미를 한층 더 확장하고 심화했다. 크레나키의 책을 번역한 1부 이외에, 2부와 3부를 추가로 구성해 관련 텍스트 여러 편을 번역 게재하거나 이 책만을 위해 새롭게 쓰인 텍스트를 실었다.

특히 2부에는 크레나키의 활동은 물론 지금 세계가 직면한 각종 생태학적 위기 및 위기 담론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내는 여러 글들을 엮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브라질 인류학자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가 크레나키의 위 책에 대해 쓴 후기, ‘백인들이 곧 세계의 종말’이라고 선언하며 크레나키의 비판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프랑스 철학자 장-크리스토프 고다르의 글, 크레나키의 생각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기존 논의와 담론을 비판하고 기후협상이라는 국제정치적 문제에 접근하는 박이대승의 글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박이대승의 글은 이 한국어판 전체를 관통하는 상세한 해제로, 한국의 독자들이 크레나키의 텍스트와 원주민운동의 맥락을 반드시 접해야 할 이유를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3부는 원주민의 역-인류학적 관점을 풍성하게 보여주는 세 편의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라틴아메리카를 연구하는 박수경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존재론적 지위를 둘러싼 맥락을 검토하고, 장-크리스토프 고다르는 야노마미 원주민들의 사유를 기반으로 ‘인쇄된 책’이라는 형태로 물질화되는 서구 지식을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브라질 인류학자 오야라 보니야의 글에서는 백인들과의 접촉 이후 자신들의 언어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꾸준히 벌여온 아마존 파우마리 원주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한국어판 책 제목에 사용된 ‘아마존의 목소리’는 아마존이라는 특정 지역뿐 아니라, 브라질과 전 세계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원주민 집단을 지칭하는 상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종말은 이미 시작됐다, 그러나……’: 원주민의 관점에서 본 종말, 그리고 세계

“역-인류학적 관점에서 생태학적 위기를 바라본다는 것은 인간과 비인간, 문화와 자연이 구별된 세계에서 벗어나 자연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모든 존재자가 인격으로서 서로 관계 맺는 세계로 뛰어들어 문명인이 파괴한 대지를 마주하는 일이다.”

이 책의 토대가 된 화제의 연설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생각들〉의 주인공 아이우통 크레나키는 1953년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도시강Rio Doce 유역에 있는 크레나키 원주민의 땅에서 태어났다. 1980년대부터 원주민운동에 뛰어든 그는 1988년 브라질 헌법에 원주민에 관한 절이 도입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브라질의 군사독재 시대(1964~1985)가 막을 내린 이후 이뤄진 이 변화는 헌법이 땅과 문화에 대한 원주민의 권리를 형식적으로나마 보장하게 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987년 당시 크레나키가 원주민 관습에 따라 얼굴을 검은색으로 칠한 채 의회 연설을 하는 모습은 브라질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 1부에는 크레나키가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생각들〉을 비롯한 자신의 강연문 세 편을 모아 책으로 출간한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생각들》(2019)을 실었다. 책은 출간 직후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크레나키가 제안하는 것은 결코 ‘기후위기 시대에 한번쯤 고려해볼 만한 원주민의 지혜와 격언’ 따위가 아니다. 그는 원주민 리더로서 수백 년에 걸친 식민화와 지배, 생태 파괴로 이미 오래전에 종말을 맞이한 원주민의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며 ‘여전히 진행 중’인 그 종말의 과정을 원주민들이 어떻게 겪어내고 있는지 들려준다.

따라서 크레나키가 제안하는 것은 종말을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에서) 이미 시작된 종말을 늦추기 위한 생각들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다르게 생각하는 단초들을 제시해주는 동시에 세계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서구 백인 문명을 비판적으로 톺아보도록 한다. 동시에 이는 단순히 비판의 차원을 넘어, 다른 세계(원주민의 세계)가 되어, 그 다른 세계 속에서 인간이 직면한 생태학적 위기를 새롭게 맥락화하도록 이끈다. 이는 이 책이 제안하는 핵심 관점이자 방법론인 ‘역-인류학’, 즉 원주민이 구축해온 서구인에 대한 인류학과 긴밀히 맞닿아 있다.

요컨대 크레나키가 전하는 브라질 원주민의 목소리는 개발과 소비 없이 더 이상 삶을 상상하지 못하게 된 문명인들, 기후위기와 각종 생태학적 재앙 앞에서 종말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기존의 질서를 해체할 생각은 전혀 없는 그 문명 세계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이 될 것이다.

‘인류’라는 이상한 클럽: 기업 신화와 소비자-고객들

“우리는 인류라는 관념을 어떻게 구축하게 되었는가? 우리가 하고 있는 나쁜 선택들, 역사에 등장한 그토록 많은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했던 나쁜 선택의 기원에 그 인류라는 관념이 있지 않은가?”

역설적이게도, 그의 가장 유명한 연설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생각들〉은 브라질의 한 대학 ‘지속가능한 발전에 관한 토론회’에서 이뤄졌다. 크레나키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기업들에 의해 발명된 하나의 신화임을 꼬집는다. 이 신화를 떠받치는 것은 ‘인류’라는 매우 배타적인 범주로, 인간은 인류를 자임하며 스스로를 대지와 자연과 구분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우리 자신이 인류라는 이야기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를 조건 지어왔다. 우리는 우리가 일부를 이루는 그 유기체, 즉 대지(지구)로부터 멀어졌고, 대지는 대지이고 우리는 우리라고, 대지와 인류는 다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반면 원주민들에게는 산과 강, 바위와 같은 자연 역시 이 세계와 ‘우리’를 이룬다는 감각이 있다. 크레나키는 이런 자연과 대화하며 살아가는 여러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런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는다는 데 주목한다. 사람들의 열광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 “숲, 산, 강을 먹어 치우는” 기업들이 생산하는 개발과 소비의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 기업들은 “이 행성의 주인”을 자처하며 “자신들의 쇼핑센터를 전 세계로 확장해나가”고, 진보에 관한 배타적인 관점과 모델을 전 세계에 퍼뜨린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인류는 대지(지구)라는 유기체로부터 갈수록 더 선명한 방식으로 분리”된다.

이런 생각은 보편의 추상적 문명을 전제하며 다양한 삶의 형태와 존재 양식을 부정한다. 모든 사람은 똑같은 역사에 속해야 하며, 또한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음식과 같은 의복, 심지어 같은 언어가 권고된다. 이는 기업의 세계가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이 세계가 권장하는 ‘소비’와 ‘고객 정체성’은 “인류가 하나의 종”이라는 생각이 모든 관계를 지배하도록 만든다. 우리가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상품에 투영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야노마미의 샤먼 다비 코페나와가 말한 것처럼, “모든 경험이 상품에 투영되면서, 우리는 우리 외부에 있는 모든 사물이 무조건 상품일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자연을 대상화해 ‘자원’으로 이용하고, 그 자연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수많은 원주민과 토착민을 뿌리뽑아버리는 이런 행위를 문명인들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고 부른다. 원주민들에게 이는 끔찍한 우주살해cosmocide 사건이다. 크레나키인들의 삶의 터전인 도시강 역시 그 비극을 간직하고 있다. 도시강에는 광산에서 흘러나오는 오염 물질을 막고 있는 푼다옹댐이 위치해 있는데, 그 댐이 붕괴한 것이다(2015년 11월). 그로 인해 브라질, 영국, 호주의 다국적기업이 공동투자한 사마르쿠 광산회사가 운영하던 광산에서 6000만 톤의 유독성 물질이 흘러나왔고, 그것이 그대로 도시강으로 흘러들어갔다.

원주민의 역-인류학: 문명인이 곧 세계의 종말이다

“우리는 정말로 하나의 인류인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인류라고 생각할 때, 크레나키의 말대로 ‘하나의 인류’라고 생각할 때 “이 인류의 문제는 관계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크레나키의 연설에 대한 후기를 쓴 브라질의 인류학자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는 크레나키의 위 질문이 ‘하나의 인류’라는 편협한 사고방식은 물론이고 더 근본적으로 ‘인류’라는 범주 그 자체를 뒤흔들어놓는다고 지적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인류’라는 추상적 범주가 아닌 “인간과 비인간이 뒤얽혀 있는 상호의존적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인류라고 생각하는 ‘우리’ 문명인은 오직 우리 자신, 즉 인간만을 인격으로 고려한다.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자원, 즉 사물일 뿐이다.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해 크레나키가 제기한 저 질문은 “인류에 관한 특정한 생각 하나가 파탄에 이르렀음”을 드러낸다. 동시에 그는 대지(지구), 그리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다른 모든 종, 존재자들과 분리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원주민의 관점에서 발견한 브라질, 유럽,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의 역사를 제시한다. 원주민의 역-역사학과 역-인류학이 바탕이 된 이 작업은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다르게 생각해보자는 하나의 제안이기도 하다. 역-인류학적 사유란 “야생인의 관점에서 문명인을 탐구하는 인류학”으로, “서구 인류학이 탐구 대상으로 삼았던 존재들의 관점에서 인류학 자체를 재구축하고, 이를 통해 기존의 서구 인류학을 거꾸로 바라보는 작업”이다.

문명인의 시선 속에서 언제나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원주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문명 세계는 생태살해와 종족살해를 일삼으며 종말을 앞당기는 데 몰두하는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크레나키가 자신의 연설 곳곳에서 분명히 상기하듯, 원주민과 토착민 집단들은 자신들을 짓밟고 살해했던 그 세계에 한 구석에서, 그 세계 맞서 여전히 살아 있다. 살아서 죽음을 거부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크레나키가 발견한 것처럼, 그들은 우리에게 ‘인류’에 관한 다른 진실들을 들려준다.

“아직도 수백 개의 토착민 집단이 분명히 살아 있다. 그들은 역사를 들려주고, 노래하고, 여행하고, 우리에게 말하고, 우리가 이 인류로부터 배워야 할 것 이상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 인류는 따로 떨어져 있는 어떤 것,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전체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생각이 이 인류의 자만심, 즉 우리가 우리라고 생각하는 그 인류의 자만심을 조금이나마 벗겨낼 것이다. 또한 이 생각은 우리와 함께 이 우주적 여행을 하는 다른 모든 이를 존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 삶의 원천을 지켜온 원주민의 방법과 실천

“인디오들은 500년 동안 저항해왔습니다. 제가 지금 더 걱정하는 것은 백인들입니다. 그들은 이 난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할까요?”

크레나키가 전달해주는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생각들’은 우리에게 ‘종말’에 대한 다른 방식의 읽기를 촉구한다. 크레나키가 말하는 것은 세계의 종말을 피하는 방법도, 미루는 방법도 아니다. 더 나아가 그가 가리키는 ‘세계의 종말’은 지금 문명인들이 가리키고 있는 그것과 같지 않다. “‘백인들’은 자신들이 잠재적 종말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며, 꽤 먼 훗날에 일어날 파국에 대해 전망한다. 그리고 어떤 ‘인디오’의 도움을 받아 회개한다면, 자신들이 예상하고 있는 종말을 쫓아버릴 수도 있으리라 믿는다.”

문명인들이 말하는 잠재적 종말, 즉 지금 당장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믿는 그 종말과 달리, 크레나키가 말하는 세계의 종말은 ‘백인들’ 자체다. 원주민들에게 세계의 종말은 1492년 콜럼버스가 카리브해에 도착해 그곳을 인도라고 착각했을 때 이미 회복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닥쳤고, 그 이후로도 계속된 300여 년의 식민화 역사를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원주민들의 관점에서는 지금의 세계, 즉 “자본주의에 의해 사회화되고, 네이션-국가에 자리를 잡고, 물질적 재화와 생각을 소비하며, 이런 삶의 방식이 즐거움을 주든 말든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는 그 지배적 삶의 방식 자체가 세계의 종말이다.

크레나키는 삶을 절단시키는 이런 식민화와 지배에 맞서, 그 악몽을 가로질러 지금에 도달한 원주민들의 끈질긴 저항의 역사를 들려주고자 한다. 원주민들은 모두가 동일하다는 생각을 거부하면서, 그들만의 주체성 영역을 확장하며 저항해왔다. 이를테면, 브라질에는 여전히 180개 이상의 개별 언어와 방언을 사용하는 약 220개의 집단이 존재한다. 특히 이 책 3부에 실린 브라질 인류학자 오야라 보니야의 글 〈“우리의 언어는 분명히 살아 있고, 아름답다”〉는 아마존 유역에서 살아가는 파우마리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토착어(파우마리어)를 지켜내고 있는지 상세히 소개한다. 이들 세계는 백인과의 첫 접촉 이후 끊임없이 변해왔다. 그 때문에 파우마리인들은 토착어와 토착민 정체성 모두를 회피하게 되었지만, 백인들의 편견과 토착어에 대한 차별에 맞서 싸우며 토착어를 다시 살리고자 하는 여러 프로젝트들이 꾸준히 마련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파우마리어 언어 경연대회’는 그 하나의 예다.

3세기에 걸친 유럽인의 식민화 역사를 고려할 때, 과연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땅을 점령당한 원주민 집단들이 살아남아 21세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살아남았고, 삶과 존재 양식의 다양성을 꿈꾸며 계속해서 저항하고 있다. “이들은 살아 있는 것들의 세계를 생산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살아 있는 것으로 생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며, “무엇보다 전 지구적 국가자본주의가 가진 죽음의 힘이 세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죽음 대신 살아 있음을 가질 수 있는 이들”이다. ‘밀림의 시민성’이라는 발상을 토대로 크레나키가 조직한 ‘밀림 거주자 동맹’, 토착어가 세대를 거쳐 다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분투하는 파우마리인들, 그 외의 다양한 원주민운동들이 이를 생생히 증명해준다.

‘세계의 종말을 늦춘다’는 것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문명인들이 써온 단일한 역사,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에 기초하는 ‘인류’의 역사에 저항하며 추가적인 역사,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힘을 발전시키는 것. 이런 힘을 갖출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의 종말을 늦출 수 있다. 크레나키가 들려주는 ‘아마존의 목소리’는 바로 그 힘을 상기시켜준다.

“아마존의 세계에서 인간은 존재에 대한 관점을 가진 유일하고 예외적인 존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그러한 관점을 수많은 비인간 존재자와 공유하고, 그 결과 모든 존재자는 끊임없이 자신들 사이의 관계를 신경 쓰게 된다.”

상품필수 정보

도서명
세계의 종말을 늦추기 위한 아마존의 목소리
저자/출판사
아이우통 크레나키 (지은이), 박이대승, 박수경 (옮긴이),오월의봄
크기/전자책용량
120*183*19mm
쪽수
208쪽
제품 구성
상품상세참조
출간일
2024-01-17
목차 또는 책소개
상품상세참조

비밀번호 인증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확인

상품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
바로 확인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