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왜 이토록 힘겨운 것일까? 이 물음에 산부인과 의사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분만 담당 의사로 일하다 직접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이 책을 쓴 지은이는 ‘출산의 배신’을 호소하는 수많은 임신부와 산모들을 만나서 느낀 것들 그리고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의학적인 이야기를 통해 왜 우리에게 출산이 유감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는지를 경쾌하게 풀어낸다.
지은이는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임신과 출산을 더 힘들게 하는 주요 장애물로 네 가지를 지목한다. 낯설고 감당하기 힘든 몸과 마음의 전면적 변화, 의학의 발전에도 여전히 예측하기 힘들고, 통제하기 힘든 재생산의 세계, 진찰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검진에서도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산부인과 병원의 특성, ‘모성 신화’가 주는 굴레와 부담이다. 임신과 출산, 산전 검사, 분만, 수유, 태교, 양육 등에 대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개인적 경험뿐만 아니라 그 근본 이유를 분석하는 의학적 설명이 죽이 잘 맞는 엄마와 아기처럼 착착 잘 맞아떨어진다.
임산부로서 겪은 이야기는 유쾌하고, 용기 있으며, 공감을 자아내고, 산부인과 의사로서 하는 이야기는 냉철하고, 정확하며, 흔들림 없다. 지은이는 말한다. “모든 인간은 한때 불과 몇 센티미터의 물주머니를 우주로 삼고 부유하는 먼지”였다가 미숙하고 유약한 존재로 태어나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금의 인류가 되었다. 인간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인 출산과 양육은 엄마 ‘혼자’만의 희생을 요하는 비극이 아니라 인류사의 초창기부터 ‘함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목차
프롤로그 008
1장 변신
모든 것이 변한다 012
생각할수록 억울한 마음 019
내 안의 포유류 암컷과 화해하기 022
내 몸에 이런 기능이 있다고? 026
“수유 기계가 된 것 같아요.” 029
동요를 듣다가 오열했습니다 032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야 036
생물학의 절대시계 038
유예된 재생산 043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047
출산의 민낯 053
나와 너의 연결고리 056
“저 이러다가 죽겠어요.” 061
위험을 과대평가하는 이유 065
600만 년의 변신 068
얄궂은 일 071
제2장 예측 불가, 통제 불능
애기 언제 나와요? 076
삼신할매만 아는 일 078
임신 참 뜻대로 안 되네 081
당신 탓이 아니야 087
산전 검사 결과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094
어렵게 알아냈는데도 101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108
아기가 뜻대로 안 된다고? 111
가장 예측할 수 없는 것은 나 자신 115
모유 혹은 분유? 자연분만 혹은 수술? 121
제3장 은밀하게 위대하게
굴욕 3종 세트 130
산파와 마녀 137
남자 산부인과 의사는 싫어요 141
불편하고 고생스러운 병원 144
임신이 병은 아니잖아요? 151
무너지는 출산 인프라 157
위험의 계절감 162
자연스러움이라는 신화 167
제4장 신화가 된 모성
태교와 미신 175
엄마 VS. 아기 181
엄마도 배워야 할 수 있어 187
애는 뭐 나 혼자 만들었나? 193
사라진 조력자들 200
아기의 사회생활 207
시혜가 아니라 연결이 가장 빛을 발하는 시점 210
엄마는 항상 자애로울까 213
나약하고 이기적인 엄마? 217
숭고하거나, 비참하거나 219
창백한 회색 점 225
에필로그 233
감수의 글: 임신 출산, 그리고 수유 236
미주 244
더 읽을거리 249
저자
오지의 (지은이), 박한선 (감수)
출판사리뷰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왜 이토록 힘겨운 것일까?
산부인과 의사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쓴 임신과 출산 이야기
서울대 인류학과 박한선 교수, 과학저술가 하리하라 이은희 작가 강력 추천
“왜 애 낳는 게 이런 거라는 걸 아무도 말을 안 해줬을까요?”
출산 후 산모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이렇게 말한다. 무엇이 임산부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인간의 출산은 다른 여느 동물의 사례를 보아도 이례적일 정도로 어렵고 힘들다. 산모의 진통 시간(첫째는 평균 9시간, 둘째는 평균 6시간)도 긴 데다 난산(難産)이다. 어디 그뿐인가? 좁고 구불구불한 산도(産道)를 비집고 나오는 아이는 나올 때도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세상으로 나와서도 너무나 미숙하고 유약한 탓에 오랜 시간을 옆에 붙어서 돌봐야 한다. 고역이 따로 없다. 이렇다보니 출산은 여성의 몸을 희생하는 고통의 경험으로 낙인이 찍혀 있으며, 양육은 두려움과 회피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출산과 양육이 힘든 이유는 뭘까? 분만 담당 의사로 일하다 직접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이 책을 쓴 지은이는 ‘출산의 배신’을 호소하는 수많은 임신부와 산모들을 만나서 느낀 것들 그리고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의학적인 이야기를 통해 왜 우리에게 출산이 유감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는지를 풀어낸다.
임신과 함께 시작되는 몸 전체의 변화에서부터 출산, 수유 그리고 모성 신화까지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서사 그리고 의사의 시각에서 본 재생산의 세계
저출산도 모자라 초저출산의 시대라고 한다. 물론 원인에 대한 분석도 넘쳐난다. 출산 자체의 어려움에서부터 사회, 경제적 맥락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이 책은 여느 분석과 달리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서사에 초점을 맞추면서 임신에서 수유, 양육까지 출산의 전 과정을 개인적 경험과 의학적 내용을 잘 뒤섞어 풀어낸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임신과 출산을 더 힘들게 하는 장애물 네 가지를 하나하나 따져본다.
먼저 임신과 함께 시작되는 몸 전체의 변화이다. 생식기관에서부터 혈액, 대사, 면역 기능, 뇌의 구조 등 50여 가지쯤 되는 몸과 마음의 변화는 일단 임산부를 좌절케 한다. 문명인의 체면이나 고상함 따위는 내던지게 되는 몸의 전면적 변화는 출산이라는 영역에서 우리는 아직 포유류의 삶을 살고 있는 존재임을 사정없이 일깨운다. 문명사회에서 모든 것이 변했지만,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는 방식만은 아주 오래전과 다르지 않다. “출산과 관련한 특별한 변신은 수백만 년에 걸쳐서 아기와 엄마 모두, 인류 전체에게 일어났다. 점진적이지만 누적된 변화가 출산을 보다 어렵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미성숙한 아기를 고생스럽게 키워야 하는 원죄를 우리에게 안겨주었다.”(68쪽)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고통스러운 출산으로 인해 우리는 두 발로 걷고, 큰 뇌를 가진 똑똑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재생산이라는 세계의 예측 불가능성, 통제 불능성이다. 임신과 출산은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할 수 있고, 예측한다고 해서 그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임신도 산전검사도 출산예정일도 아이의 성장도 모두 우리의 예측을 보란 듯이 비껴간다. “현대인이 좋아하는 예측과 통제에 대한 감각은 인생에서 자녀를 만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115쪽)
산부인과 병원이 가지는 특수성도 한몫한다. 골반 내진과 같은 진료 자체가 굴욕적일 수 있고, 때로 수치심을 유발하며, 환자 취급을(임신이 병은 아니다) 받을 때도 있다. 분만 병원의 감소로 출산 인프라가 갈수록 무너지는 현실(2022년 현재 250개 자치구 중 108개가 분만 취약 지역이다)에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출산을 하는 것 자체도 어려워지고 있다. 태교와 같은 사회적 금기나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요구하는 모성 신화가 “불필요한 구속을 감수하는 데 얼마나 많은 힘을 소모케 하는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아기를 품고, 낳고, 키우는 것은 그냥 해도 힘들다. 그 와중에 이것이야말로 여성에게 부여된 숭고한 목적이라고 생각하면 피곤해지고, 여성을 추락하게 만드는 원흉이라고 생각하면 비참해진다.”(225쪽) 신화와 비극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과장이나 폄하 없는 온전한 이해가 필요하고, 불확실성이 클수록 전문가인 산부인과 의사들과 더 많이 소통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출산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고, 제약과 금기는 최대한 벗어야 하며, 재생산의 과제를 어머니 혹은 어느 한 성(性)의 문제로 남겨서는 안 된다.
출산과 양육은 엄마 ‘혼자’서 몸과 마음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비극이 아니라, 인류 초창기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야 하는 일이었다.
“인류 재생산 연대기라는 장편 영화는 엄마의 원맨쇼가 아니다.”(207쪽)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져 이제는 인구 붕괴나 국가의 위기, 소멸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동산, 사교육, 사회경제적 이유 등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고 진단과 대책도 쏟아진다. 하지만 이 책은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서사에 대해, 엄마와 아이의 관계의 역동성에 대해, 출산의 온전하고 바람직한 이해에 대해, 편견과 금기와 신화를 벗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임신, 출산, 육아를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류에게 출산이 왜 엄마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주변의 혹은 사회의 수많은 조력자들이 ‘함께 해야’만 했던 일일 수밖에 없는 일인지를 설파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은 “한때 불과 몇 센티미터의 물주머니를 우주로 삼고 부유하는 먼지”(231쪽)였다가 “한 인간(어머니)을 완전히 침범하는 큰 신세”(55쪽)를 져가며 이 지구상에 태어났으며, 어머니를 비롯해 서로 상호작용하고 음식을 나누고 돌봐주고 보살펴주면서 ‘함께한’ 사람들 덕분에 두 발로 걷고 똑똑한 뇌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