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에서 말하는 ‘다른 방식으로 듣기’란 ‘소음을 듣는 것’이다. 식당에서 옆 테이블의 이야기에 귀를 빼앗기면 내 테이블의 이야기가 소음이 되듯,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신호와 소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더 깨끗한 소리 신호를 뽑아내어 전달할 때 삭제된 풍경의 소리가 있음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목차
시간
공간
사랑
돈
권력
신호와 소음
팟캐스트 용어
찾아보기
저자
데이먼 크루코프스키 (지은이), 정은주 (옮긴이)
출판사리뷰
소음을 제거하시겠습니까?
잡음 없이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만을 또렷이 들려주는 기술, 노이즈캔슬링은 오래전 발명되어 1970년대 후반 헤드폰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기술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된 것은 언제 어디에서든, 어느 기기와도 무선으로 연동되는 최근에 이르러서다. 사람들은 대중교통에서, 작업실에서, 도서관에서 블루투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착용하고 자신이 유의미한 신호로 선택한 소리에만 귀를 내어준다. 하지만 본래 귀는 관점이 없고 소리를 거르지 않는다. 기술이 거를 뿐이다.
미국에서 호평받은 팟캐스트가 원작인 『다른 방식으로 듣기』는 디지털 오디오 시스템이 보편화된 이후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듣고 있는지 살핀다. 아니, 무엇을 어떻게 듣지 않고 있는지 살핀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록밴드 갤럭시 500의 멤버였던 저자는 자신의 음악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비평가, 역사학자, 레코드숍 운영자, 이과병원 귀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초대해 지금의 듣는 방식을 탐구한다.
실시간으로 듣고 있다는 착각
유튜브로 야구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카메라가 있다면, 재미있는 광경경을 보게 될 것이다. 야구장에서는 4번 타자가 홈런을 쳐 관중석이 환호성으로 뒤덮였는데, 유튜브 시청자들은 아주 조금 늦게, 그리고 각기 다른 시점에 환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정보 스트림을 제각기 받아서 재생하는 기기마다 레이턴시가 다르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17쪽) 디지털 방송이 등장하기 전, 라디오를 통해서 야구 중계를 듣던 때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기도 하다. 야구장에서 환호가 울릴 때, 라디오를 듣던 사람들도 차 안에서, 집 안에서 같은 순간에 환호할 수 있었다. “읽으면 역사고, 들으면 뉴스다”라는 라디오 방송계의 격언이 유효했던 때였다.(16쪽)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모두가 즉각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여겨지지만, 사실 시간적인 순서가 온통 꼬여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소셜 미디어의 타임라인은 어제의 속보도 오늘의 것인 양 보여준다. 그것이 사용자들 사이에서 유통되기만 한다면 몇 날 며칠이고 속보로 돌아다닐 것이다.
더불어 디지털 미디어는 배속 조절이 가능하다. 유튜브나 팟캐스트 진행자의 목소리 피치를 바꾸지 않고, 발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서도 빠르게 또는 느리게 들을 수 있다.(12쪽) 이 변형은 단순히 시간 절약 차원을 넘어 사람들의 시간 감각마저 바꾸어놓고 있는지 모른다.
이어폰이라는 벽
지하철에서 눈을 감고 있는 사람보다 귀를 막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다. 마치 그곳에 없는 사람처럼, 투명한 거품 막에 싸여 있는 것처럼 말이다. 뉴욕시의 초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분석한 『사라지는 뉴욕』(Vanishing New York)의 저자 제러마이아 모스는 “어떻게 보면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에 패배한 셈입니다. 그저 서로를 튕겨내기만 하는 이 작은 개인 버블들이 이겼습니다”(31쪽)라며 소리를 차단함으로써 공간을 사유화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이어폰은 “벽 없는 오디토리엄”이다.(43쪽) 잔향을 용납하지 않고 무대의 직접적인 전기 신호만을 깨끗하게 전달받길 원하는 관객들이 찾는다는 점에서 이어폰과 오디토리엄은 유사한 점이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바로 소리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변의 소리를 입체적으로 들음으로써 자신이 있는 공간을 재구성하는 능력은 이제 다른 감각기관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숨소리도 소음일까요?
세계적인 재즈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는 마이크를 탁월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노래의 가사뿐 아니라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마이크와 거리를 세심하게 따졌다. 특히 마이크 가까이에서 속삭이는 듯 노래함으로써 듣는 이의 귀를 간질였다. 근접 효과를 제대로 활용했던 것이다.(53쪽)
저자는 노래 가사든 일상 대화든 단어에 앞서 목소리로 알아채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음성은 단어가 없는 언어인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 상태가 목소리에 그대로 드러난다. 안타깝게도 디지털 기기를 가로지르는 목소리는 아날로그 기기만큼 섬세하지 않다. 마이크 성능이 나빠서가 아니다. 휴대폰에 아무리 입을 가까이 가져가도 근접 효과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소리를 압축한 데이터는 더 쉽게, 더 멀리,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지만, 압축하면서 손실된 무언가에는 무관심하다. 저자는 말을 전달하도록 설계된 휴대폰은 우리 목소리의 본질적인 부분을 치워버린다고 말한다. 상대방이 듣고 있음을 알려주는 소리, 그 숨소리마저 말이다.(63쪽)
음악을 구매한 것인지
음악 듣는 기술을 구매한 것인지
1898년, 자동 피아노가 등장했다. 악보 출판사가 당대의 히트곡을 좌지우지하던 시대였다. 음악 업체들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자동 피아노 롤이 우리가 의회도서관 색인 카드에 등록해둔 곡을 연주하는데, 저작권 침해 아닌가요?” 소송까지 가게 된 저작권 다툼에서 승리한 것은 자동 피아노였다. 악보 출판사는 종이에 작곡한 음악의 복제권에 대한 소유권을 갖기만 음악 자체를 소유하는 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77, 78쪽) 그렇다면 LP, CD,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이용권을 구매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음악이 아니라 음악을 담는 기술에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아닐까?
알고리즘의 추천은 편리하다
하지만 놀랍지 않다
음악 알고리즘 추천은 나날이 발전해왔다. 처음엔 비슷한 음향을 추천했다. 그러나 하프시코드와 디스토션을 건 기타의 소리 파형이 비슷해서 헤비메탈을 몇 곡 들으면 곧 바흐의 카논이 추천되는 신통치 않은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음악 리뷰에 기반한 데이터 분석 결과 값을 추천했다. 일명 문화적 추천이다. 자연히 신인의 음악은 추천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최근에 알고리즘은 음향적,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데이터를 모두 모아 추천한다.(101, 102쪽)
저자는 그 결과가 편안하며 해당 디지털 스트리밍 플랫폼에 오래 머무는 데에는 충분한 역할을 하지만, 놀랍지는 않다고 말한다. 생전처음 듣는 음악이 인생 최고의 음악일 수 있는 기회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플랫폼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최적화되어 있고 사용자는 점차 스스로 길을 찾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레코드숍에서, 서점에서, 그 공간의 규칙에 따라 신보 또는 신간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운영자 특유의 큐레이션에 적응하며 길을 찾는 노력을 덜하게 된다. 깜짝 놀랄, 자신의 세계에는 없었던 음악과 책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
소음에 귀를 기울일 것
결국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다른 방식으로 듣기’란 ‘소음을 듣는 것’이다. 식당에서 옆 테이블의 이야기에 귀를 빼앗기면 내 테이블의 이야기가 소음이 되듯, 자신에게 의미 있는 신호와 소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더 깨끗한 소리 신호를 뽑아내어 전달할 때 삭제된 풍경의 소리가 있음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아날로그 오디오 기술이 더 뛰어났다거나 그 시절이 좋았다고 향수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날로그 기술과 디지털 기술을 다방면으로 겪어보았기에 듣는 방식의 변화가 우리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건드릴 수 있었다. 그는 「다른 방식으로 듣기」 팟캐스트가 얼마나 역설적인지 알고 있었다.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며 잃어버린 소리를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말하는 것의 역설을 풀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금세 이어폰을 찾을 것이다. 책에서 언급하는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기 위해서.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어폰을 빼고 싶을지도 모른다. 귀가 마음껏 받아들이는 소리들이 섞일 때 이 책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느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