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건축사는 미술사의 막내로 출발했다. 초기 건축사학자들은 미술사 서술의 전통 속에서 2천 년 건축의 역사를 가르고 양식을 분류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여전히 건축과 회화, 조각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다른 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축의 역사는 미술의 역사, 양식과 거장 예술가의 연대기로 쓰였다.
그러나 건축의 사정은 좀 더 복잡해서 온전히 예술로 볼 수 없는 측면이 무척 크다.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동원해야 하는 당대 최고의 공학기술, 다른 예술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필요한 자본과 시간, 공사 단계마다 다른 다양한 인력 등 건축은 창작되기보다 ‘생산’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명지대학교에서 20년 넘게 ‘건축생산기술사’라는 과목을 강의해온 저자 박인석은 건축의 역사를 생산과 기술, 구조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긴 시간 축적된 노하우와 내공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로마 여행에서 누구나 경탄하는 판테온을 두고 저자는 로마 건축가들의 탁월성, 형태의 완벽한 아름다움보다 어떻게 43.2미터에 달하는 원형 내부 공간을 만들 수 있었는지, 무너지지 않게 6미터의 두꺼운 벽에 무엇을 넣었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갖은 수를 써가며 왜 저런 건물을 지으려 했는지를 묻는다. 로마인들이 지키려고 했던 건축적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답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린다면, 이 책은 다음에 주목한다.
“서양 건축 역사에서 읽어야 할 것은 건축물의 형태 양식이나 구축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규범화된, 그 규범이 생산된 사건의 전말이다. 그것은 언제, 누구에 의해, 왜, 어떻게 유럽 전체의, 서양 전체의, 그리고 세계 전체의 건축 규범으로 확산되었는가.”
서양 건축사는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하고서 왜 이후에는 이 지역 건축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을까? 우리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해 가지는 시각은 언제 형성된 것일까? 과연 그 옛날에도 고전주의가 확고한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었을까? 1권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2권에서 저자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고전주의는 르네상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단언한다. 이 만들어진 전통이 전 유럽의 절대왕권으로 어떻게 스며들어갔는지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추적한다. 3권의 주인공은 모더니즘 건축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건축이 특정 계급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무너졌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치를 완전히 저버릴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술사나 문화사에서 미흡하게 다루어지는 건축이란 퍼즐이 빈자리에 딱딱 제자리에 맞아 들어가는 쾌감을 선사한다.
목차
10 제국의 시대와 근대 건축의 태동 (1875~1914)
2차 산업혁명: 생산기술의 발전과 유토피아 전망 / 독점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퇴조 / 사회민주주의 전망의 확산 / 제국의 시대 / 대중산업사회와 예술 생산 /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딜레마 / 주관적 형식주의 미학 / 구체제 양식의 성행과 철 구조물의 약진 / 아방가르드 건축 운동의 태동 / 미술공예 운동과 아르누보 / 미학적 원리로서의 실용성 / 독일공작연맹과 즉물주의 / 미국 건축의 공예주의와 기능주의 / 아돌프 로스: 산업시대 양식으로서의 순수 형태 / 수공예에서 기계 미학으로: 사회 개혁적 실천에서 ‘예술 상품 생산’으로 / 건축 역사학의 성립 / 철근콘크리트의 등장 / 하우징, 도시계획, 유토피아
11 양차 대전과 근대 건축의 확산 (1914~1945)
제1차 세계대전과 구체제의 몰락 / 모더니즘: 아방가르드에서 주류로 / 유럽의 표현주의와 러시아 구축주의 / 조형사회주의로서의 구축주의 / 산업주의 진보 이념과 모더니즘 건축 / 바우하우스 / 역사주의 건축의 지속과 모더니즘 건축의 양적 성장 / 노동자를 위한 집합주택과 유토피아 / 미국에서의 주거 건축과 근린주구론 / 경제공황, 수정자본주의, 전체주의 / 전체주의의 모더니즘 비판과 억압 / 미국으로 간 모더니즘 / 사회적 실천과 유리된 근대 건축
12 황금시대, 그리고 근대 건축의 시대 (1945~1972)
자본주의의 황금기 / 포드주의 유토피아 / 도시공간의 변용 / 포드주의 건축 생산과 국제주의 양식 / 공공임대주택 건축 / 공공 건축 전성시대 / 모더니즘 예술에서 아방가르드의 소멸 / 모더니즘 예술과 건축의 딜레마 / 건축 담론의 진전: 건축 형태에서 도시공간의 형태로 / 복지국가와 개인 기반 시민사회 / 근대 체계의 동요 / 새로운 건축·도시 담론들 / 퇴행적 유토피아
13 1973년 이후의 건축 생산
황금시대의 종언과 신자유주의 / 세계화와 정보화 / 포스트포드주의와 탈산업사회 / 후기구조주의와 신사회 운동 /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포드주의 시대의 예술과 문화 / 포스트모더니즘과 ‘더 나은 사회’ / 도시공간 생산으로서의 건축 생산 / 주거 건축에서 도시공간 대응 태도 변화 / 새로운 형태 미학의 도발과 모더니즘 건축 형태의 지속
보론 현대 건축과 사회적 실천
맺음말 건축 생산 역사의 변곡점들
저자
박인석 (지은이)
출판사리뷰
건축은 ‘생산’된다『건축 생산 역사』는 고대 이집트에서 현재에 이르는 서양 건축의 역사를 다룬다. 고대, 중세, 르네상스와 바로크, 근대와 현재로 이어지는 통사적인 서술은 긴 시기를 아우르는 여느 미술사나 예술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건축의 역사에도 천재와 거장 들의 목록, 이 개별자들이 갱신해온 새로움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이 긴 시간을 꿰뚫는 키워드로 삼은 것은 양식이 아니라 ‘생산’이다.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동원했던 당대 최고의 공학기술, 미술이나 음악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소요되는 시간(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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