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망우리묘지를 문화유산으로 바꾼 ‘망우리 작가’ 김영식의 신작 에세이
망우리공원(망우리,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인문학적 가치를 세상에 알린 김영식 작가가 이번에는 인물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춘 망우리 소개서를 펴냈다. 망우리의 숨겨진 역사, 오랜 성찰 끝에 깨달은 의미와 가치, 그리고 대학생 때 처음 망우리와 인연을 맺은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겪은 많은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풀어낸 인문학 에세이다.
인물 개인에 초점을 맞춘 열전 『망우역사문화공원 101인』이 세로줄이었다면, 의미와 가치, 일화 등으로 구성된 이 책은 가로줄이 되어, 망우리공원의 전체 이미지를 독자의 눈앞에 확연하게 보여준다. “망우리를 왜 인문학공원이라고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저자는 알기 쉽게 수치와 통계까지 이용하며 전해준다.
이 책에는 흥미로운 많은 새로운 사실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 고등경찰관으로 악명을 떨친 미와 와사부로(미와 경부)는 김을한에게 보낸 엽서에서 춘원 이광수의 부인 허영숙의 안부를 묻고 있다. 망우리에서 가장 독창적인 조형미를 보여주는 소파 방정환의 묘를 누가 디자인했는가에 관해 작가는 단서를 찾아 설득력 있는 추론을 전개한다. 한국과 일본의 묘지 문화를 비교하는 글과 박인환 시인의 아들 박세형 시인의 이야기, 망우리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목차
여는 말
1부 사잇길에서 돌아본 역사
1. 해돋이의 명소, 다시 떠오른 아침 해
2. 살기 좋은 동네, 과학으로 증명된 전설
3. 중랑천 설화의 비밀, 변중량
4. 호랑이가 나타났던 망우리와 아차산
5. 백사 이항복의 동강정사
6. 중랑구의 애국지사 6인을 찾다
7. 차라리 죽으러 망우리 가요
8. ‘미와 경부’, 미와 와사부로는 누구인가
9. 조선의 소녀들
10. 누가 소파 방정환의 묘를 디자인했을까
11. 은파리, 다시 날아오르다
2부 사잇길에서 얻은 깨달음
1. 다시 찾은 ‘망우’의 참뜻
2. 낙이망우, 즐김으로써 근심을 잊다
3. 일본의 묘지 참배 문화
4. 현충원과 망우리공원의 차이
5. 3·1운동의 성지, 망우리공원
6. 한글의 선구자들이 모여 있다
7. 망우리 언덕에 십자가가 많은 이유
8. 동학농민운동과 3·1운동을 되새기며
9. 한국 근대 서예의 박물관
10. 한국근대문학관 설립의 꿈
11. 도산 선생 곁으로 모인 사람들
12. 누가 고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13. 뉴트로의 중심, 망우리
3부 사잇길에서 만난 사람들
1. 망우리와 첫 인연을 맺다
2. 상봉동 대학생의 일기
3.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4. 그 남자가 바람피우는 장소
5.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망우리위원회
6. 세계 최초의 묘역퀴즈행사, 도전! 러닝맨
7. 쓰러진 비석을 바로 세우다
8. 망우리를 찾아온 선배들
9. 망우리에서 만난 서립규 선생
10. 박인환 시인의 아들, 박세형 시인
11. 박인환 시인이 받은 편지
12. 백 년 만에 찾은 유관순 열사의 묘
13. 망우리 체험으로 명문대 합격하다
14. 영원한 기억 봉사단
닫는 말 망우리에서 시(詩)와 시(時)를 읽다
저자
김영식 (지은이)
출판사리뷰
망우리에 새겨진 근대의 풍경, 삶과 죽음을 넘어 인문학적 통찰로
망우리공원은 ‘근심을 잊고 잠들어 있는’ 독립지사, 사회인사, 문화예술가 등 격동적인 한국 근현대사의 다양한 인물의 스토리를 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보기 드문 공간이다. 그리고 삶과 죽음을 넘어 역사와 문화적 관점에서 새롭게 주목받기에 망우리공원은 “고인의 유택에 올라와 비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생각하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체험(樂)으로써(以) 깨달음을 얻어 비로소 근심을 잊는(忘憂), 낙이망우(樂以忘憂)의 장소”라고 말한다. 이렇듯 인문학적 통찰의 길로 이끄는 망우리 체험의 가치를 저자는 책의 여러 곳에서 변주를 달리하며 들려준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2년간 중랑신문에 매달 2회 〈망우리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내용을 수정하고 보탠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사잇길’에서 돌아본 역사와 ‘사잇길’에서 얻은 깨달음, 그리고 ‘사잇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2016년 서울시는 시민의 역사 체험과 사색을 위한 인문학길로 ‘망우리 사잇길’을 조성한 바 있다. ‘사잇길’은 무덤과 무덤 사이, 과거와 오늘의 사이, 삶과 죽음의 사이, 그와 나 사이를 걸어가며 경계를 넘나들고 경계를 허무는 길이다.
미와 경부와 망우리, 그리고 미와 경부의 독특한 이면
한때 전 국민이 열광한 인기 드라마 〈야인시대〉에는 미와 경부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당시 미와는 조선의 유명 인사를 대부분 파악하고 관리하면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인물로서 한용운, 안창호, 방정환을 비롯해 망우리에 잠든 독립운동가들과 악연이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방정환에 대해서 ““방정환이라는 놈, 흉측한 놈이지만 밉지 않은 데가 있어 … 그놈이 일본사람이었더라면 나 같은 경부 나부랭이한테 불려 다닐 위인은 아냐”라고 말하는가 하면, 종로경찰서 폭탄 의거를 일으킨 김상옥 의사의 기일에 이문리 묘지의 김상옥 의사를 찾아가 명복을 빌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저자는 미와가 조선어장려시험 갑종1등에 합격할 정도로 조선어 능력이 뛰어났고, 종교는 불교인데 그것도 선종(禪宗)이며 취미 및 특기는 “꽃꽂이와 원예”라는 흥미로운 기록과 함께 1968년 1월 미와 와사부로가 이광수의 부인 허영숙의 안부를 묻는 내용이 담긴, 종로경찰서 담당이었던 김을한에게 보낸 연하장의 일부를 사진으로 공개한다.
소파 방정환의 묘는 누가 디자인했나
망우리를 찾는 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받는 방정환의 묘는 흔히 보는 봉분이 아니라 기반은 쑥돌로 쌓고, 위에 네모난 흰색 비석이 놓여 있는 돌무덤으로 위창 오세창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저자는 망우리를 숱하게 찾으면서 소파의 묘를 볼 때마다 의문점이 들었다. “묘라면 당연히 흙으로 봉분을 만들던 시절, 예술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모양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예술적으로 뛰어난 소파의 묘를 볼 때마다 과연 누가 이것을 만들었을지 매우 궁금했다.”(79쪽) 그러나 소파의 묘에 관한 자료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마침내 찾은 단서는 1936년 5월 3일 조선일보에 ‘어린이날의 창시자 고 방정환 씨 기념비’라는 기사에 나오는 발기인 명단이었다. 발기인 가운데 김복진이 나오는데, 김복진은 1924년 제국미술전람회에 입선한 한국 최초의 근대 조각가이자 1935년 조선중앙일보가 독자에게 줄 메달을 디자인한 인물로서 두 살 위인 소파와 친한 사이였다. 저자는 김복진이 카프의 발기인이자 조선공산당원이었기 때문에 “소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무도 기념비의 제작자 이름을 말하지 않았고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81쪽)고 추론한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김복진이 남긴 조각작품은 모두 사라졌기에, 저자의 추론이 사실이라면 소파의 묘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한국 최초의 근대 조각가 김복진의 유일한 작품이 될 것이다.
일본의 묘지 참배 문화의 역사
망우리에는 총독부 초대산림과장 사이토 오토사쿠의 묘가 일본식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말에 조성된 한국인의 묘도 일본식을 따른 것도 몇 개 보인다. 한국과 달리 일본인은 벌초를 하지 않고 비석의 이끼를 제거하려고 물로 닦는다. 그 작업을 이끼를 닦는다는 뜻의 소태(掃苔)라고 하는데, 이는 유명인의 묘를 찾아다니는 취미까지 포함한다. 그런 사람을 ‘소태가’라고 하고 그 기록을 ‘소태기’, ‘소태록’이라고 한다.(110쪽) 일본의 소설가 모리 오가이, 나가이 가후 등도 저명한 소태가로 손꼽힌다. 저자에 따르면 유명인의 묘를 찾아다니며 배움을 추구하는, 일본에서의 묘지 참배 취미는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세대를 가로질러 읽을 수 있는 관련 책도 꽤 많은 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최근 망우리공원이 인문학의 현장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묘지 참배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하기 어렵고, ‘소태가’에 맞먹을 만한 적절한 용어도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도심 한복판 묘지에서 산책과 데이트를 즐기는 파리의 시민들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일상에서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성찰할 수 있는 문화의 토대가 약했던 게 사실이다. 묘지를 문화의 명소로 즐기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문화의 질적 수준은 높아질 것이다.
망우리공원과 현충원, 무엇이 다른가.
“망우리에는 3·1운동 33인의 7인이 안장되어 있었으나 나용환, 박동완, 이종일, 홍병기 4인이 1966년 현충원으로 이장되었고 현재 한용운, 오세창, 박희도 3인이 남아 있다. 그 외로도 애국지사 안창호가 도산공원으로 이장되고 송진우, 나운규 등이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 현재 망우리공원에는 한용운, 오세창, 문일평, 방정환 선생 등 나라의 서훈을 받은 애국지사 9인의 묘가 있다.”(113-114쪽) 이처럼 전국에 산재한 애국지사의 묘는 하나둘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저자는 망우리에 잠든 애국지사들의 묘를 무턱대고 현충원으로 이장하는 것을 하나의 고정관념이라고 지적한다. 한용운의 경우 불교청년회나 각종 단체가 나서서 관리를 지원하고 있고, 고인과 관련된 분들이 지척에 함께 잠들어 있다. 방정환 역시 박희도와 이인성, 최신복 등 생전에 인연을 맺은 이들과 함께하고 있으며, 안창호는 현재 묘터만 남아 있지만 생전에 도산을 따르던 사람들이 사후에 망우리 도산 근처로 들어와 “도산은 망우리에서 가장 큰 조직을 가진 분”(154쪽)이라고 한다. 현충원이라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현충원은 그 자체로 숭고한 장소이지만 지금의 시점에서는 아쉽게도 몰개성의 전체주의, 관리 편의주의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에 비해 망우리에는 다양한 모습의 묘와 비석이 존재하고 애국지사 외에도 친일파, 좌익 등 다양한 인물이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사회의 축소판처럼 한데 모여 있다. 현충원보다 더욱 인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망우리공원을 인문학공원이라고 부른다.”(116-1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