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왕이 고양이를 아꼈다는 짧은 기록, 퓨전 사극이 되다
조선의 왕 숙종은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친다. 왕은 그 고양이를 어여삐 여겨 곁에 두었고, 고양이 또한 왕을 잘 따랐다. 여러 문헌을 통해 전해지는 이 ‘냥줍’을 애묘인인 작가와 안전가옥의 스토리 PD가 유쾌한 퓨전 사극이자 추리 활극으로 재구성했다.
길고양이에게 꾸준히 밥을 주고 어울리는 사람들, 매달 자신이 돌보는 고양이와 함께 모여 정보를 주고받는 사람들, 마음에 든 고양이를 돌본 끝에 훌륭하게 확대시킨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랑꾼이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가장 존재감이 강한 애묘인은 아무래도 숙종이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으려는 임금의 의지는 동물을 비롯한 약한 존재들에게 무관심했던 주인공 변상벽의 생각을 바꾸고, 고양이가 그저 쓸모없는 짐승이라 여기는 잔인한 반역자의 음모를 파헤치는 계기를 마련한다.
〈걷기왕〉 백승화 감독의 첫 경장편 소설
영화진흥위원회 기획개발지원사업 선정작
『성은이 냥극하옵니다』는 글로 쓰였음에도 영상이 보이는 듯한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영화진흥위원회 기획개발지원사업 선정작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백승화 작가가 발표하는 첫 경장편 소설이다. 백승화 작가는 연출작 〈걷기왕〉, 〈오목소녀〉 등에서 소박하지만 특별한 능력자들의 성장담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 낸 바 있는데, 『성은이 냥극하옵니다』 또한 밝고 환한 온기가 느껴지는 이야기다. 신분·연령·성별·신체 등의 문제 때문에 남들보다 다소 불리한 입장에 선 사람들이 대립과 대화를 거쳐 조금씩 시야를 넓히고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유머러스한 필치로 담아냈다.
목차
냥줍을 하였다 아뢰오 · 7p
좌포청의 멍 포교 · 13p
집 나간 고양이를 무슨 수로 · 29p
유기아 놈들과 도둑고양이라 · 48p
모내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 · 59p
묘사모,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임 · 76p
식혜 먹은 고양이 속 · 99p
효잣골 까마귀 · 122p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 138p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 162p
고양이도 있고 범도 있다 · 182p
품 안의 고양이 · 209p
추천의 말 · 220p
작가의 말 · 222p
프로듀서의 말 · 224p
저자
백승화 (지은이)
출판사리뷰
불같은 왕마저 무장해제, 그야 고양이니까
숙종은 사극에 비교적 자주 등장한 인물이다. 붕당을 이용해 평생토록 강한 왕권을 유지하면서 극적인 사건을 많이 일으켰기 때문인데, 특유의 불같은 성격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토록 화가 많은 임금을 누그러뜨린 존재가 하나 있었으니 다름 아닌 고양이다. 당대의 문인 김시민이 지은 〈금묘가〉라는 시에 묘사된 바에 따르면, 이 노란 고양이는 임금이 “금묘야.” 하고 부르면 제 이름을 안다는 듯 나타났다고 한다. 곁에 사람을 잘 두지 않는 임금과 한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으며, 날이 추워지면 임금 옆에서 둥글게 몸을 말고 잠을 청했다.
사람들은 고양이가 무슨 일을 했기에 숙종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야, 고양이는 귀여우니까. 사뿐사뿐 걸어가 고개를 들어 잠깐 눈을 맞춘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성은이 냥극하옵니다』의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금이 ‘냥줍’을 감행한 순간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임금 품에 안긴 새끼 고양이는 “애옹.” 하고 울었고, 그때부터 이 깜찍한 생물은 정치적 음모와 추리 활극의 중심에서도 흐려지지 않는 존재감을 뽐내며 이야기에 사랑스러움을 더한다.
선한 이들이 안겨 주는 편안한 웃음
『성은이 냥극하옵니다』의 또 다른 힐링 요소는 선한 인물들이다. 출세 욕심에 임금의 고양이를 찾아 나섰다가 빈민촌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그들의 삶에 스며드는 전직 포교 변상벽, 변상벽의 가짜 무용담과 가짜 병법서를 시종일관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포졸이 되기 위해 정진하는 노비 쪼깐이, 도성 내 빈민촌에서 가족을 잃은 아이들과 떠도는 고양이들을 돌보는 묘마마 등 주인공 일행을 비롯한 등장인물 대부분은 타인에 대한 연민,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속 중심에 두고 있다. 이들이 잊을 만하면 허술한 언행을 보여도 비웃기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은 그래서다.
선한 인물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이다 삐끗하거나 본인의 솔직한 마음을 툭 드러내는 장면들이 웃음을 자아내곤 하는데, 누군가를 비하하는 유머가 아니기에 불편함 없이 시원하게 웃을 수 있다. 이러한 섬세함은 인물 설정에서도 드러난다. 이 작품 안에는 왕과 노비, 70대 노인과 예닐곱 살 아이, 타고난 성별을 감추는 옷차림을 한 사람, 신체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공존한다. 또한 그 모든 인물이 해당 신분, 연령, 성별, 장애에 씌워진 편견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미소가 지어지는 활약상이다.
상냥한 연대와 반듯한 성장의 가치
사라진 임금의 고양이를 찾고 그에 얽힌 음모를 밝혀내는 과정을 경쾌하게 담아낸 이 작품의 표면 아래에는 우리 시대의 아픔과 맞물리는 이야기들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오랜 가뭄 탓에 도박판으로 몰리는 백성들, 도박장의 뒤를 몰래 봐주는 관리들, 그들의 시야 바깥에 조성된 빈민촌. 빈민촌과 그리 멀지 않은 왕궁 안에서는 파벌 싸움이 한창이지만, 당쟁의 주제는 빈민 구제가 아니다. 폐위된 왕비의 아들인 세자에게 넘어갈지도 모르는 왕위 계승권 때문에 누군가는 자객까지 고용한다.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데 혈안이 된 그는 약자를 험히 다루는 자와 결탁하고, 이로써 구중궁궐 내의 암투는 빈민촌 주민들의 고통과 직결되고 만다.
얽히고설킨 문제를 푸는 실마리는 연대와 성장이다. 주인공 변상벽이 아무리 집요한 포교라 해도, 궐내의 일과 연결된 사건을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다. 그는 관찰력이 뛰어난 쪼깐이가 찾아낸 단서를 활용하고,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 묘마마와 함께 ‘묘집사’들의 모임에 참석한다. 신분을 숨겨야 할 일이 생기자 변장에 일가견이 있는 밀매상 봉식이에게 신세를 지며, 출입이 금지된 구역에 접근하기 위해 평소 멀리하던 형 변빈을 찾는다. 그사이 변상벽은 그들 모두와 예전에 비해 수평적인 관계를 맺게 되고, 예전에는 얼씬도 않던 빈민촌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기에 이른다. 자기의 이익만을 좇던 그는 어느새 힘겨운 시절을 견디는 백성을 대변하는 존재가 되어 간다.
절망이 희망보다 쉬운 시대에는 착한 이야기가 소중해진다. 선량함의 가치를 재미있게 전하기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이야기다. 그러한 이야기는 상냥한 마음을 품으려 애쓰고, 반듯한 성장이 언제든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지쳐 갈 때 웃으며 손을 잡아 주곤 하는 것이다. 선한 의지는 고양이처럼, 정성을 들이면 줄을 매어 놓지 않아도 곁에 머물며 행복을 선사한다. 『성은이 냥극하옵니다』가 책장 너머로 전하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