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글릭을 시인으로서 존재하게 한
다섯 번째 시집
『아라라트 산』은 루이즈 글릭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아라라트 산은 창세기에 나오는 산으로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끝에 표류하다가 닿은 산이다. 노아의 방주가 안착함으로써 인류가 하느님과 최초로 계약을 맺은 곳이 바로 아라라트 산이다.
글릭의 다섯 번째 시집 『아라라트 산』은 1990년에 출간되었다. 1985년에 나온 『아킬레우스의 승리』 이후 5년 만이다. 글릭은 정말 차곡차곡 시를 썼고 꾸준하게 출간했다. 1968년에 『맏이』, 1975년에 『습지 위의 집』, 1980년에 『내려오는 모습』, 1985년에 『아킬레우스의 승리』, 1990년에 『아라라트 산』, 가만히 보면 주로 5년 주기로 시집을 한 권씩 냈다.
13권의 시집 중에 글릭의 대표작을 고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아라라트 산』이야말로 시인으로서 글릭을 있게 한 크나큰 방주다. 『아라라트 산』에서 큰 호흡으로 죽음을 딛고 난 후, 글릭은 『야생 붓꽃』의 세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목차
파라도스 Parados
공상 A Fantasy
소설 A Novel
노동절 Labor Day
꽃 좋아하는 사람 Lover of Flowers
미망인들 Widows
고백 Confession
선례 A Precedent
잃어버린 사랑 Lost Love
자장가 Lullaby
아라라트 산 Mount Ararat
외모 Appearances
신뢰할 수 없는 화자 The Untrustworthy Speaker
우화 A Fable
새 세상 New World
생일 Birthday
갈색 원 Brown Circle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 Children Coming Home from School
동물들 Animals
성인들 Saints
노란 달리아 Yellow Dahlia
사촌들 Cousins
천국 Paradise
우는 아이 Child Crying Out
눈 Snow
끝까지 닮은 Terminal Resemblance
애도 Lament
거울 이미지 Mirror Image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 Children Coming Home from School
아마존 여전사들 Amazons
천상의 음악 Celestial Music
최초의 기억 First Memory
저자
루이즈 글릭 (지은이), 정은귀 (옮긴이)
출판사리뷰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된
가족 비극의 서사를 그리다
사랑하는 이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엄마의 전문적인 일, 엄마는 언니를 저 세상으로 보냈고, 이제는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계신다. 시인은 말한다. 한 사람이 잠들도록 준비하는 것이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나 다 똑같은 일이라고. 진짜 그렇다고. 그러면서 자장가를 들려준다. “괜찮아, 괜찮아”. 아버지를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크나큰 상실, 그리고 가족 서사 안에서 짐작할 수 있는 냉랭한 분위기, 남은 가족들에게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불안들이 시집 곳곳에 담겨 있다.
『아라라트 산』의 페이지에서 죽은 남자의 부재의 자리에는 딸, 자매, 어머니, 이모, 할머니 등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여성이 영웅이 될 수 없다는 흔한 통념을 뒤집고, 시인은 잠재적인 영웅이었던 아버지를 대신하여 다른 여성들로 그 부재를 이어간다. 마치 아버지를 꼭 닮은 자신이 죽은 아버지를 잇듯이 말이다. 아버지의 존재감은 그렇게 죽음 이후에 시집 전체에서 합창처럼 흐른다.
시집 도처에 스민 부재와, 고통과 상처와 좌절의 흔적들은 지금 시대의 영웅의 기본 값이 어쩌면 상처와 고통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준다. 고대의 영웅서사가 내세운 화려한 모험은 없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이 겪는 상실을 냉정한 시선으로 보던 글릭은 마침내 어떤 결론에 다다른다. “고통이란 내가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사랑은 고통 안에서 두려움과 그리움과 갈망과 허기 속에서 표현될 수 있다. 이 시집은 사랑의 얼굴을 아는 시인 글릭의 사랑 시라고도 볼 수 있다. 죽음을 넘어선 사랑의 시는 시집 『아라라트 산』으로서 완성됐다.
21세기 노벨문학상 첫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
2020년 루이즈 글릭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시문단에서는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2000년 이후 여성 시인으로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1909년에 〈닐스의 모험〉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 여성 작가 셀마 라겔뢰프 이후 16번째이고, 1996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이후 두 번째 여성 시인이다. 한림원 위원인 작가 안데르스 올손은 “『야생 붓꽃』(1993)에서 『신실하고 고결한 밤』(2014)에 이르기까지 글릭의 시집 열두 권은 명료함을 위한 노력이라고 특징지어진다”고 했다. 덧붙여 글릭의 작품 세계를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과 비교하며 “단순한 신앙 교리(tenets of faith)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엄정함과 저항”이라고도 표현했다.
루이즈 글릭은 미국 시 문단 중심에 선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그래요, 기쁨에 모험을 걸어보자고요 / 새로운 세상의 맵찬 바람 속에서”라는 구절이 있는 시 〈눈풀꽃〉만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서는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퓰리처상 · 전미도서상 · 미국 계관 시인 · 국가인문학메달 · 전미비평가상 · 볼링겐상 · 로스앤젤레스타임스도서상 · 월리스스티븐스상. 그리고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그녀의 작품은 우아함, 냉철함, 인간에게 공통적인 감정에 대한 민감성, 서정성, 그리고 그녀의 작품 전반에 걸쳐 드러난 거의 환상에 가까운 통찰력으로 지속적으로 찬사를 받는다. 2023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시공사의 루이즈 글릭 전집 프로젝트
시공사는 2022년부터 그녀의 대표 시집 『야생 붓꽃』, 『아베르노』, 『신실하고 고결한 밤』, 『맏이』, 『습지 위의 집』, 『목초지』,『새로운 생』, 그리고 2023년 11월 『내려오는 모습』,『아킬레우스의 승리』,『아라라트 산』을 순차적으로 출간하면서 문학 독자들로부터 호평받았다. 연말까지 시집 전권을, 내년에는 글릭의 에세이 두 편을 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