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교수신문』이 선정한 최고의 번역본
루쉰의 색다른 역작 「상서」를 추가 수록한 개정증보판 출간!
중국 현대소설의 선구자, 시대의 사상가로 평가받는 루쉰의 주요작들을 가려 뽑은 루쉰 소설선 『아Q정전』이 개정증보판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이 책은 1996년 초판 출간 이래 루쉰 문학에 접근하기 위한 가장 빼어난 필독서로 꼽히며,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여러 독자층에 두루 사랑받아 왔다. 이번 개정증보판은 루쉰의 색다른 역작 「상서傷逝」를 추가 수록했을 뿐 아니라 표지와 장정을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재단장함으로써 신선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루쉰 전문가들이 가장 신뢰하는 번역으로 선정한 바 있는 전형준 역자의 간결하고 깊이 있는 문장이 소설의 의미와 뉘앙스를 충실히 드러낸다. 로맹 롤랑, 오에 겐자부로, 위화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찬사를 받은 루쉰 문학의 정수를 깔끔하고 유려한 우리말로 만나 보자.
목차
광인일기
쿵이지
약
고향
아Q정전
복을 비는 제사
술집에서
비누
상서
홍수를 다스리다
관문 밖으로
해설
연보
저자
루쉰 (지은이), 전형준 (옮긴이)
출판사리뷰
중국 사회에 드리운 암흑의 근원을 파헤친
루쉰 문학의 정수가 담긴 소설 11편
『아Q정전』(개정증보판)은 루쉰 문학의 정수를 보여 주는 중단편 11편을 수록한 소설집이다. 1996년 ‘창비교양문고’로 출간되었던 것을 판형과 활자, 장정을 바꾸어 새롭게 펴냈다. 이 책에 실린 번역본은 50종이 넘는 「아Q정전」의 번역 가운데 루쉰 문학 전문가들이 가장 신뢰하는 번역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중국 사회에 드리워진 암흑의 근원을 파헤치고 몽매한 민중을 일깨우는 데 혼신을 바친 루쉰은 신해혁명 전후 무기력하고 비굴한 근성을 지닌 중국 민중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풍자와 해학적인 필치로 가감 없이 보여 준다. 봉건의 극복과 근대의 실현을 위해 치열한 고투를 벌인 루쉰의 작품들은 여전히 현대적인 빛을 발한다.
루쉰의 데뷔작이자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인 「광인일기」는 사뭇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다. ‘광인’으로 불리는 소설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져 있다. 단순히 망상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식인의 사회’나 마찬가지인 당시 중국의 봉건 사회를 통렬히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루쉰의 유일한 중편소설인 「아Q정전」은 풍자의 방법으로 위선과 패배주의를 비판한다. 오늘날 ‘정신 승리’의 원조로 유명한 주인공 ‘아Q’는 날품팔이를 하면서 번 돈을 술과 도박에 소진하면서도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인물이다. 흔히 아Q를 노예근성에 사로잡힌 중국 민중을 상징하는 인물로 해석하지만, 아Q는 그 성격이 단순하게 해명되지 않는다. 아Q는 중국 민중의 열악한 근성을 보여 주는 한편, 지배 계급에 핍박받는 하층민을 상징하기도 하며 인간적 진실성을 내보이기도 한다. 루쉰의 교묘한 해학은 아Q라는 문제적 인물에게서 냉소와 연민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번 개정증보판에 새로이 수록된 「상서」에서는 루쉰의 아이러니와 패러독스가 한층 빛난다. 이 작품은 일인칭 화자인 남성 주인공 ‘쥐엔성’이 죽은 애인 ‘쯔쥔’과의 과거를 회상하며 애도하는 수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봉건적 사랑이 아닌 자유연애를 추구했으나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다. 쥐엔성은 차츰 쯔쥔을 탓하게 되고, 두 사람의 갈등이 깊어져 쯔쥔은 쥐엔성을 떠난다. 이 수기 형식의 소설은 현재의 쥐엔성이 과거의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그 뒤에 숨은 작가가 현재의 쥐엔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뒤섞인 복합적인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서술 기법의 완성도나 페미니즘적 주제 의식 면에서 탁월한 이 작품을 이번 개정증보판에 수록함으로써 루쉰 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욱 넓히고자 했다.
냉엄한 현실 인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지금 다시 루쉰을 읽어야 하는 이유
2023년 초, 중국에서는 ‘쿵이지 문학’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쿵이지는 루쉰의 소설 「쿵이지」에 등장하는 인물로, 구시대의 궁핍하고 비루한 지식인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중국 청년들은 스스로를 쿵이지에 빗대며 깊이 공감했다. 이렇듯 루쉰의 소설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거듭 읽히며 회자되고 있다. 냉엄한 현실 인식으로 시대를 들여다본 루쉰의 문학은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보여 준다.
루쉰은 인간의 삶과 사회에 드리운 어둠과 허무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지만, 그의 시선을 그저 냉소주의나 허무주의로 해석할 수는 없다. 현실을 철저히 묘파하는 가운데 피어나는 희미한 희망이 루쉰 문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가령 「고향」에서는 그 희망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고향」의 주인공은 20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친구와 재회하고 연민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 친했던 친구는 생계를 위해 그릇을 훔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주인공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몽롱한 가운데, 나의 눈앞에 해변의 초록빛 모래밭이 펼쳐졌다. 그 위의 쪽빛 하늘에는 황금빛 둥근 달이 걸려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본문 63~64면)
루쉰은 암흑의 현실을 담담히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의 청년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아이들을 구하자’라는, 「광인일기」의 마지막 외침과도 연결된다. 다음 세대를 향한 루쉰의 애정과 희생 의식은 이후 중국 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중국 근대의 봉건적 현실을 꿰뚫어 본 루쉰의 소설은 여전히 새롭게 읽혀야 한다.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거니와, 특히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는 더욱 절실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중국 문학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 루쉰의 문학을 지금, 다시 만나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