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 북한은 어떻게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나
핵물리학자가 보고 겪은 북미 핵협상의 결정적 순간들
『핵의 변곡점』(원제: Hinge Points: An Inside Look at North Korea’s Nuclear Program)은 세계적 핵물리학자이자 핵무기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헤커(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 명예소장)가 수년에 걸쳐 북한 영변의 핵시설을 방문하며 관찰한 사실과 통찰을 모아 엮어낸 북미 핵협상 역사의 복원이다. 헤커는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에서 수십년간 일해온 플루토늄 과학 전문가로 냉전 말기에는 소련의 붕괴가 초래한 핵 위기 완화를 위해 힘썼고, 중국·인도·파키스탄 등의 핵무기 보유국에서 일어날 핵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연구와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이 책에는 헤커가 2004년 1월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매년 북한의 핵시설을 둘러보고 북한의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느낀 놀라움, 충격, 경각심, 깨달음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북한은 어떻게 핵폭탄 제조를 위한 자원을 그러모을 수 있었을까?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 북한은 왜 미국의 핵 전문가를 불러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의 현황과 계획에 대해 설명했을까? 그리고 미국 정부는 북한의 핵무력을 완화할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왜 번번이 막지 못했을까? 이 모든 사태가 왜 벌어졌는지, 다른 길은 없었던 것인지 평양과 워싱턴에서 벌어진 북미 핵협상의 결정적 순간들에 대한 헤커의 통찰력 있는 분석은 북핵 위기의 해결에 단초가 될 쓰라린 교훈을 제시한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영어판 서문
1장 시작하며
2장 핵에 대한 기초 정보
3장 2004년 1월 이전의 상황
4장 “우리가 만든 걸 좀 보시겠습니까?”
5장 볼턴의 망치가 가져온 참혹한 결과
6장 다시 북한으로: “해가 서쪽에서 뜨기 전에는 경수로는 안 돼”
7장 김정일: 시간을 벌다
8장 “미국에 성공이라고 전하시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부심이 넘칩니다.”
9장 2007년: 다시 협상 테이블로
10장 2007년과 2008년의 방문: 불능화 확인을 위해 다시 영변으로
11장 2008년: 거의 다 와서 모든 것이 무너지다
12장 2009년 방문: “어디까지 나빠질지는 모르는 겁니다.”
13장 2009년과 2010년: 오바마가 내민 손을 외면하다
14장 2010년 방문: “내일이면 더 놀라게 될 겁니다.”
15장 2010년 11월부터 2012년 4월까지: 로켓과 함께 날아간 협상
16장 “멍청한 로켓 발사 한번 때문에 미국은 이걸 다 날리는 건가?”
17장 전략적 인내에서 점잖은 무시로
18장 2017년의 “화염과 분노”
19장 올림픽에서 싱가포르까지
20장 하노이의 탈선 열차
21장 관측을 마무리하며: 변곡점과 실수
에필로그
감사의 말
주
찾아보기
저자
시그프리드 헤커, 엘리엇 세르빈 (지은이), 천지현 (옮긴이), 김동엽 (감수)
출판사리뷰
핵개발과 외교의 ‘이중경로’ 전략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유일한 열쇠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본격화된 북핵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진전과 후퇴를 거듭해왔다. 지난 30여년간 우리 정부를 비롯한 관련국들은 북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을 전개해왔으나 북핵 위기는 나날이 고조되고 있을 따름이다. 북한은 지난 30여년간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힘써왔고 그 협상의 일환으로 핵무력을 활용해왔으나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관계 정상화는 요원해졌고 북한의 대외정책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복잡하고 미묘한 외교관계의 미로 속에서 북한이 구사하는 핵 외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이중경로 전략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헤커는 역설한다. 이 책에서 헤커는 북한의 핵개발 과정과 정치 상황을 나란히 놓고 추적하면서 두 국면이 어떻게 교차하고 갈라서는지 치밀하게 풀어내며, 이 과정에서 북한이 핵개발과 외교라는 이중경로 전략을 추구해왔음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미국 정부에는 북한이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외교를 이용할 뿐이라는 냉소적 시각이 팽배해 있으나, 사실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외교를 통해 미국과의 장기적 전략 관계를 실질적으로 모색했다는 것이다. 냉전 말기의 지정학적 대변동 속에서 김일성이 북한의 생존을 위해 선택한 최선의 길은 미국과의 화해였다. 그러나 그 화해는 힘을 바탕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었다. 즉 외교와 핵개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동시에 추구하기로 선택함으로써 북한은 어느 한쪽 노선의 실패에 대비하고 냉전 이후 국제체제의 변동, 자국의 불안정한 정치에 대비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후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지도자들은 이러한 이중경로 전략을 일관되게 유지해왔다. 어느 때는 전략적 화해에 도달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을 진지하게 추구했고, 그 결과 핵무기 프로그램의 진척을 늦출 합의를 위한 길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초점은 오로지 비핵화에 맞춰져 있었고, 처음부터 북한에게 외교냐 핵개발이냐 양자택일을 강요하며 정치적 중간지대를 없애버렸음을 헤커는 구체적 사건과 발언, 성명서 등을 통해 실증적으로 밝혀낸다. 미국이 북한의 이중경로 전략에 대처하는 데 실패했음을 뼈아프게 지적하며, 20년간 이어져온 북핵 위기는 미국 정부가 이 문제를 합리적이고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고 당파적 이해관계 속에서 주요한 결정을 내렸기 때문임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변곡점: 북핵 위기 해결은커녕 심화시켜버린 결정적 순간들
헤커는 미국 정부가 북한의 이중경로 전략에 대응하는 데 실패한 여러 핵심사건들을 ‘변곡점’(Hinge Points)이라고 부르며, 이 변곡점의 충실한 목격자이자 때로는 주역으로서 경험한 사건들을 놀라울 정도의 기억력과 기록정신으로 복원해낸다. 1장부터 3장까지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 정보와 헤커가 북한을 방문하기 이전의 상황들을 개괄한다. 4장부터 14장까지는 헤커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북한의 핵단지를 일곱차례 방문한 여정을 마치 독자도 함께하는 듯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일곱차례 방문을 다룬 장들 사이사이에는 그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를 분석하는 장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저자가 기술개발의 현황과 함께 외교적 추이를 동시에 추적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함을 보여주며, 핵물리학자이자 국제적 핵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헤커만이 소화할 수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14장부터 21장까지는 헤커의 방북 이후, 오바마·트럼프 정부와 북한 사이의 정치적·외교적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의 핵 정책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미국 정부는 결정적인 변곡점마다 어떤 오판을 내렸는지, 그리하여 북한은 어떻게 더욱더 강력하고 정교화된 핵무력을 구축하게 되었는지를 다양한 증언과 저술 등을 통해 분석한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열린 ‘6자회담’, 2009년 북한의 위성 발사 시도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대응, 2019년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등 헤커는 익히 잘 알려진 사건뿐만 아니라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사건까지 검토하며 그 의미를 조명해낸다. 헤커의 문제의식의 핵심은 미국의 선의의 외교적 노력이 북한의 거듭된 합의 위반으로 무산되었다는 통념을 설득력 있게 깨부수는 데 있다. 원인을 북한으로 돌리기보다는 렌즈를 미국 정부 내부로 돌려 워싱턴의 역할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핵위기를 완화하는 유일하고도 실용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북핵이라는 복잡하고 위험한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지 기술적 측면과 외교적 측면을 통합적으로 바라봄으로써 대안을 제시하는 헤커의 분석은 한반도의 핵 위기를 고민하는 이라면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참수 작전’ ‘핵무장론’
한국사회의 아슬아슬한 핵 담론에 경종을 울리다
북핵 위기라는 첨예한 현실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주체는 바로 남한이다. 헤커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반전을 거듭했던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관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사이에 오간 비핵화 논의, 그리고 3자 사이의 미묘한 역학관계 등을 당시의 요동치는 정세와 함께 살펴본다. 2018년 형제애에 가까운 우정을 보여주었던 김정은과 문재인은 미래에 대해 상호 합의 가능한 구상을 지니고 있었고, 당시 김정은은 미국과도 전략적 화해의 여지를 열어두었음이 분명하다.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의 유례없는 소통 방식은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듯 보였으나 트럼프는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는 작전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지난 20년간 실패만 거듭해온 정책을 더 거세게 밀어붙이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그 전략은 실패임이 드러났다고 헤커는 뼈아프게 지적한다.
이제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전략이 실패했다는 판단 아래 러시아, 중국과 협력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결론을 증명이라도 하듯 2023년 9월 김정은과 푸틴은 정상회담에서 상호 지지를 약속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헤커는 윤석열 정부가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는 이른바 ‘참수작전’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한국의 독자적 핵무력 개발 가능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함으로써 한반도는 훨씬 더 위험한 곳이 되었음을 경고한다.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남한의 시민들 사이에서도 ‘핵무장론’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지금, 우리에게는 이 위기를 돌파할 새로운 지혜와 대안이 필요하다. 북핵 위기의 핵심 당사국이지만 어쩌면 이 문제에 가장 무관심한 한국사회는 북핵 문제와 관련한 종합적이고도 실용적인 시각을 이 책의 쓰라린 교훈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