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람의 마음도 살로 되어 있잖아요.
상하이에는 놀랍고 위험한 이야기들이 필요해요.
갖가지 기적이 다 일어나는 곳이니까요.”
왕가위 감독 영화?드라마화 예정
〈화양연화〉 〈2046〉을 잇는 3부작의 결정판!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촘촘히 직조해낸 상하이 데카메론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세 청춘의 삶에 스며든 상하이의 수많은 사람들과 골목, 음식, 무수한 민담과 풍경의 편린들…… 시대와 공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히 묘사하며 과거와 현재를 촘촘히 직조해낸 상하이 데카메론. 『번화』는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쳐온 젊은이들의 삶과 도시의 풍경을 진솔하고도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 진위청의 대표작이다. 마오둔문학상, 시내암상, 루쉰문화상 연도소설상 등을 수상했으며 왕가위 감독이 영화 및 드라마 판권을 확보해 전작 [화양연화] [2046]을 잇는 작품으로 영상화할 예정이다.
목차
작가의 말 5
프롤로그 19
일장 49
2장 88
삼장 119
4장 149
오장 177
6장 212
칠장 245
8장 270
구장 303
10장 339
십일장 364
12장 410
십삼장 439
14장 475
십오장 500
16장 542
저자
진위청 (지은이), 김태성 (옮긴이)
출판사리뷰
『번화』의 세 주인공 후성, 아바오, 샤오마오는 모두 상하이 출신이다. 특히 후성의 이름은 의미심장한데, ‘후성’은 상하이를 뜻하는 한자어인 ‘후?’와 ‘생生’의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태어난 사람. 소설이 상하이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전면에 드러낸 것이다. (후성의 형 이름은 ‘후민?民’이다.) 이들 셋 모두 상하이 출신이긴 하지만 배경은 제각각이다. 후성은 부모님이 모두 공군 간부이며, 영국식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바오는 할아버지가 지주계급 출신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샤오마오는 노동자계급 출신으로, 상하이의 전통 골목인 농탕의 주택에 살고 있다. 세 인물이 살고 있는 주거지는 상하이의 공간 지형을 그대로 가져온 결과다. 상하이는 1949년 이전, 조계지가 분할된 상황에서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때문에 상하이를 통틀어 전반적으로 통일된 계획이 부족하고 각 지역의 경제 조건이 서로 크게 달랐다. 조계지 내에는 외국인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들이 많았고, 상업이 번영하였으며 고급 빌라가 위치했다. 반면 중국인들이 살고 있는 구역은 인구가 밀집되었고 오래된 주택이 많았다. 거리는 좁았으며 각 주택이 촘촘히 붙어 있는 구조였다.
『번화』는 후성, 아바오, 샤오마오가 살아가는 공간과 마주하는 사건들, 인물들 등 삶의 면면을 날줄로 서술한다. 영화관에 갔던 일, 우표 수집, 권법 수련, 일하는 공장에서 목도한 밀회 현장 등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이 묘사되는 가운데 수많은 거리와 골목, 건물, 음식, 과거로부터 소환된 무수한 민담과 기억의 편린 등이 등장한다. 한편 이들을 둘러싼 수많은 여인들의 이야기는 씨줄이 된다. 결혼했지만 아내가 출국한 뒤 소식이 없는 후성은 메이루이와 인연을 이어가며, 아바오는 어린 시절 이웃집에 살았던 베이디에 관한 추억들을 안고 어른이 된 후에는 즈전위안을 운영하는 리리와 가까이 지낸다. 샤오마오는 농탕의 주택 아래층에 살고 있는 유부녀 인펑과 불륜을 저지르고, 이어 춘샹을 만난다. 어쩌면 이들의 삶을 이끄는 동력은 심오한 철학이나 거창한 역사 담론 따위가 아닌 순수한 욕망이다.
각 주인공들의 기억과 생활이 모자이크처럼 편편이 흩어져 서술되는 듯 보여도 이들의 삶에는 상하이의 역사가 큰 줄기로 흐른다. 태평천국의 난에서부터 시작되는 봉건왕조시대의 종언과 외세의 침략, 조계지, 문화대혁명과 그 상흔, 개혁개방 등 방향이 완전히 다른 역사와 시대의 동력들이 이 한 편의 소설 안에서 착종한다. 특히 문화대혁명은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관통하는 대사건이다. 지주나 자본가 가정 출신의 자제들은 봉건 부패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져, 아바오 식구들은 하루아침에 공동 주택지인 양만호로 이사를 가게 되고, 노동자 가정 출신인 샤오마오는 좋은 사람으로 치켜세워진다.
평균 다섯 가구가 부엌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했고 변기통이 설치된 화장실은 두 칸뿐이었다. (중략) 아바오 가족의 새 주소는 아래층 4호실이었다. 15평방미터의 비좁은 단칸방으로 1, 2, 3, 5호실과 복도를 공유하는 형식이었다. 창밖에는 들풀이 가득 자라나 있고 실내에는 도처에 먼지와 거미줄이었다. 가족들이 짐을 담은 바구니를 들여놓는 동안 아바오 아빠는 벽돌을 하나 주워 대문 옆에 못을 박고는 딱딱한 종이에 쓴 인죄서認罪書를 내걸었다. 인죄서에는 모자를 벗고 찍은 사진이 한 장 붙어 있었다.
1권 365~366쪽
『번화』에선 문화대혁명이 각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기존의 삶을 운영하던 논리를 뿌리째 뒤흔드는지, 상하이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키며 상하이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립해가는지까지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하느님이 침묵하고 있다.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자유로운 형식과 서술 기법을 통해 복원한 ‘상하이’
형식 면에서 보면 소설은 두 가지 선이 병행되는 구조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소설은 총 31장으로 이루어지는데, 홀수 장은 과거에 해당하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짝수 장은 소설의 현재 시점 1990년대를 서술한다. 이중 28장부터 31장까지는 1990년대를 쭉 이어 그려낸다. 이 같은 구조가 ‘과거 상하이’와‘현재 상하이’라는 두 시대의 대비를 만들어낸다. 한편 서술 면에서는 말글이 이어지는 구조를 띤다. 대화를 나타내는 문장부호가 따로 없이 인물의 말이 열거된다. 이는 작가가 의도한 것으로 옛 중국문학의 서술 기법을 따른 것이다.
화본話本 형식이라는 옛날의 발자취를 현재의 바퀴에 집어넣었는데도 여전히 잘 돌아갔다. 참신하고 이채로웠다. ‘심리적 차원의 미묘함’을 포기하고 구어적인 진술과 평담한 의미를 살려 주인공들의 말과 행위를 있는 그대로 적고자 했다. 한 가지 일이 또다른 일을 물고 온다. 장산張三의 이야기가 끝나면 리쓰李四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각기 다른 어감과 행위, 복장이 각기 다른 환경을 구분하면서 각기 다른 삶을 전개한다. 문장부호들은 아주 간단하다.
- ‘작가의 말’에서
화본이란 송·원나라 때 유행한 구어체 소설을 칭하는 것으로, 통속적인 언어로 당시의 생활상이나 역사적인 고사를 표현해내는 형식을 띤다. 작가는 주인공의 말과 행위를 그대로 묘사하는 서사 기법을 통해 ‘상하이’ 그 자체를 그린다. 작가가 소설의 서두에서“하느님이 침묵하고 있다.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 할 것 같다……”라고 예고한 바다. 상하이라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자유로운 형식·서술 기법을 사용해 과거와 현재가 갈마들게 하고, 인물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이 작품이 2015년 제9회 마오둔문학상을 수상하며 “『번화』의 주인공은 시대의 흐름 속 변화하고 성장하는 도시 상하이 그 자체다”라는 평을 받은 것과 상통하는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