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50년 동안 영국의 대표적 문학상 중 하나로 자리 잡았던 ‘코스타 문학상’ 수상작이다. 잉그리드 퍼소드는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로 2020년 코스타 문학상 첫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남편이 사망한 후 아들 솔로와 단둘이 사는 베티는 그녀가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학교의 동료인 체탄 씨를 우연히 하숙인으로 받아들인다. 한집에서 살게 된 세 사람은 마치 한가족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집을 짓는다. 그들에게 집이란 점점 더 위험해지는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곳이다. 그러던 어느 날, 솔로는 엄마가 체탄 씨에게 털어놓는 비밀을 우연히 듣게 되고 그때부터 깊은 고통에 빠진다.
솔로는 엄마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트리니다드를 떠나 뉴욕으로 가고, 체탄 씨는 아들을 애타게 되찾으려 하는 어머니와 그 아들을 연결하는 단 하나의 끈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체탄 씨 역시 비밀을 안고 사는데, 그 일은 결국 가슴 아픈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이들은 과연 역경을 극복하고 다시 만나 화목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사랑 다음의 사랑』은 사랑과 가족의 무수한 의미와 형태에 대해 질문하며,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되새겨보게 한다.
목차
제1부7
제2부125
제3부447
저자
잉그리드 퍼소드 (지은이), 김재성 (옮긴이)
출판사리뷰
절박한 선택과 예측하지 못한 상실을 통해 얻게 된 진정한 사랑의 연대.
“슬픔은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몰아닥쳐서 아주 더디게 떠나간다.”
잉그리드 퍼소드의 데뷔작인 이 소설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치유하는 피난처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퍼소드는 카리브해 문학의 거장 데릭 월컷Derek Alton Walcott의 유명한 시詩 「Love After Love」의 정신을 취해 그것을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가족, 사랑을 잃었다가 가장 필요할 때 다시 찾는 것에 관한 용기 있는 산문으로 폭발시켰다.
현대 트리니다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세 가지 관점에서 전개된다. 첫째는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집에서 아들과 함께 살며 학교 사무원으로 일하는 베티 람딘으로, 활기차고 신념이 강한 여성이지만 세상을 뜬 남편이 습관적으로 휘두르던 폭력의 상처가 깊게 남아 있는 사람이다. 둘째는 베티 학교의 수학 교사인 체탄 씨로,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감춘 채 베티 집 하숙인으로 살며 모자와 가족 이상의 정을 나눈다. 셋째는 베티의 외동아들 솔로인데, 체탄 씨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좋아하는 집돌이 소년이다.
퍼소드는 각 화자가 고유한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목소리에 쉽게 적응하며 그 목소리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만 보면 어떤 가족도 그들과 비슷하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다. 그러나 어려움 없는 사랑은 없듯이, 편안하고 평화로운 이들의 질서는 우연한 사건으로 뒤집히고 만다.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묻는, 사랑에 관한 이 소설은 뻔한 폭력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알코올 중독자인 베티 남편의 행실을 짧지만 강렬하게 묘사하면서 저자는 독자로 하여금 사랑과 폭력이 하나의 인격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과, 아들을 보호해야 했던 모성의 절박한 선택을 인정하게 한다. 그 팩트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자 평화로운 질서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 요소다.
서로의 차이에도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살던 세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흩어지며 용서할 수 없는 세상으로 던져진다. 뉴욕으로 떠난 솔로는 삼촌네 대가족에 얹혀 불법체류자 생활에 정착하고, 체탄 씨는 불안한 사랑을 전전하며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버텨내고, 이제 혼자인 베티는 외로움과 걱정에 지쳐 섬을 떠돈다. 하지만 저자는 진정한 사랑은 예측할 수 없는 순환을 통해 경험된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들은 궤도를 도는 행성처럼 서로 영원히 멀어질 수 있지만 결국에는 항상 거대하게 타오르는 중심을 향해 당겨진다.
이 소설에는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일상이 가득 담겨 있다. 군침을 돌게 하는 음식들과 럼 주 한잔, 다채로운 힌두교 종교 관습, 만연해 있는 폭력과 동성애에 대한 위협적인 금기, 그럼에도 유머와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 이 모든 요소가 캐릭터들에 녹아들어 개성과 매력을 더한다. 그들과 함께 우리는 카리브해의 음식 냄새를 맡고, 교통 체증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시민들을 압박하고 있는 식민지 체제의 잔재를 느낀다.
퍼소드는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익숙한 고민 대신, 부엌에서 가져온 간식, 유쾌한 저녁 식사 대화, 부드러운 손길, 배려가 담긴 훈계 등 작은 행동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보여준다. 그녀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의지해야 함을 아는 완전한 캐릭터들을 본다.
집을 떠나 홀로 뉴욕에서 분투하며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가는 솔로의 이야기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의 균열도 강렬하게 탐구한다. 불법체류자임을 감추려면 감내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이민자 사회의 명암을 ‘뉴욕의 추위’로 선명하게 드러내고, 카리브해가 경제적으로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떠난 이민자들에게 사랑과 가족의 연결을 찾아 돌아올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어두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결코 우울하지 않은 『사랑 다음의 사랑』은 잘 다져진 고전만큼이나 시대를 초월한 느낌을 준다. 퍼소드는 애틋한 세 캐릭터를 통해 월컷이 그의 시에서 말하고자 한 것을 독자에게 전하는 듯하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었던 낯선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사랑과 상실, 상심과 죄책감, 우리를 하나로 묶고 갈라지게 만드는 비밀과 거짓말을 다 털고 나와, 이제 오래 잊고 있던, 나라는 낯선 사람에게 보내는 사랑의 인사 같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