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 전쟁 정전 70주년
냉전을 넘어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다
올해는 한국 전쟁 정전 70주년이다. 한국 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났지만 유엔군과 중공군이 참전하며 세계적인 냉전 구도를 드러낸 전쟁이었다. 미국과 중국을 위시하여 당시 적대 관계에 놓였던 국가들은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대결을 반복하며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은 탈냉전이 희망을 담은 수사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고, 이어진 중국의 패권국으로의 부상 이후 2019년 홍콩 시위,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둘러싸고 벌어진 미국과 중국의 대치는 냉전 구도가 재편되고 있음을 예고하였다. 결정적으로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냉전은 한 번도 종식된 적 없음을, 우리가 ‘신냉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분명히 인지하게 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해방 이후 격화된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지금까지도 분단 상황이기에, 언제나 냉전의 한복판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냉전 상태가 장기화되며 갈등과 폭력이 사람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점이다.
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불안하고 불행하고 불만에 가득 찬 것은 냉전의 그늘에서 자란 때문인가? 왜 이렇게 다들 경쟁적이고, 정신없이 바쁘고, 오늘만 살고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황폐하지? 죽이거나 죽을 이유가 없는 나라에 살아 보지를 못해서 평화로운 삶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인가? 먼 미래 세대의 눈으로 본다면 대체 우리는 냉전 근대 대한민국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던 것일까?
―서문 중에서
시위나 전쟁은 표면적으로 가시화되는 사건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냉전의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일상 깊숙이 자리하며 비가시화된 냉전의 산물들은, 문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게 할뿐더러 불안을 일상화하고 편견과 선입견을 재생산?강화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적인 풍경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중 냉전으로부터 파생된 것은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아 올린 냉전의 벽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며 고민하는 과정에서 『냉전의 벽-평화로운 일상을 가로막는 냉전의 유산』이 발간되었다.
목차
‘냉전’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
한국의 맥아더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_김려실
냉전의 괴수들_이희원
잊혀진 전쟁의 잊혀진 아이들_김경숙
전우의 시체를 넘던 아이들_류영욱
통일 교육의 탈을 쓴 냉전 교육_양정은
한국 속 남의 땅, 용산 기지 이야기_백동현
사라진 냉전의 여자들_장수희
스팸, 냉전 식탁의 첨병_이시성
미주
부록 냉전 어휘 사전
저자
김려실, 이희원, 김경숙, 류영욱, 양정은, 백동현, 장수희, 이시성 (지은이)
출판사리뷰
맥아더, 용가리, 고무줄놀이, 기지촌, 스팸…
일상에 스며든 냉전의 유산들을 살펴보다
『냉전의 벽-평화로운 일상을 가로막는 냉전의 유산』 필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웠던 지난 3년 동안 온 오프라인으로 간헐적으로 만나면서 함께 냉전을 연구하고 평화학을 공부하였다.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폭넓게 분포해서 각자 자기 세대가 겪어 온 냉전의 기억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었다. 이 기억을 토대로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가로막는, 마치 ‘벽’과 같은 냉전의 유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제1부 ‘냉전의 신화’는 절대적이고 압도적이어서 완벽한 진실 같지만 실제로는 만들어진 전쟁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다룬다. 김려실의 「한국의 맥아더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가 인천 상륙 작전의 전쟁 영웅 맥아더의 영웅 신화를 해체한다면 이희원의 「냉전의 괴수들」은 전쟁 영웅 신화의 음화로서 공포와 혐오가 투사된 적의 이미지, 즉 괴수의 역사를 되짚는다.
제2부 ‘어린이의 얼굴을 한 전쟁’에서는 이른바 베이비 부머, X 세대, MZ 세대 연구자가 어린이에 대한 평화 교육과 전쟁 동원이라는, 상반되지만 동시에 진행 중인 냉전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고찰한다. 김경숙의 「잊혀진 전쟁의 잊혀진 아이들」은 전쟁고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망각을, 류영욱의 「전우의 시체를 넘던 아이들」은 어린이들의 놀이 문화에 스며든 냉전과 포스트 냉전 이후의 평화 교육을, 양정은의 「통일 교육의 탈을 쓴 냉전 교육」은 1950년대의 반공 교육과 현재의 통일 교육을 비판적으로 톺아보았다.
제3부 ‘냉전과 일상’은 오랜 한반도 냉전의 여파, 혹은 아직도 진행 중인 냉전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를 다루었다. 백동현의 「한국 속 남의 땅, 용산 기지 이야기」는 저자 자신의 용산 미군 부대 근무 경험과 용산 기지의 역사를, 장수희의 「사라진 냉전의 여자들」은 우리 사회가 비가시화함으로써 외면해 온 이른바 미군‘위안부’의 잊힌 이야기를, 이시성의 「스팸, 냉전 식탁의 첨병」은 한국인의 식문화를 바꾸어 버린 냉전의 유산을 이야기한다.
부록으로 실린 ‘냉전 어휘 사전’은 국어사전과 같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본문에 언급된 단어 중 냉전과 긴밀하게 관련된 단어들만을 따로 실어 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독자들이 냉전과 그것이 초래한 문제점을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책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단어들을 한데 그러모았다.
요컨대 『냉전의 벽-평화로운 일상을 가로막는 냉전의 유산』은 정치?문화?교육?일상의 영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냉전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평화로의 한걸음이 시작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집필되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만들어 낸 불안과 공포, 차별과 적대의 벽은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존재한다. 한국 전쟁 정전 이후 70년 동안 쌓아 올린 이 높고 단단한 벽들을 허무는 시간이 바로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할 시간일 것이다. 벽을 걷어 낸 자리에 평화의 꽃이 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독자들에게 이 책을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