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2012년 박경리문학상
* 2014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오스트리아 유럽문학상
류드밀라 울리츠카야가 재창조한 새로운 신화
다음 세대를 지켜낼 지혜롭고 강인한 메데야의 일대기
현대 러시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인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첫 장편소설. “눈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크림반도의 풍경 속에서 메데야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가문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메데야’는 그리스신화 속 여인 ‘메데이아’의 러시아식 이름으로, 울리츠카야는 이 소설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존의 메데이아 신화를 전복시켜 새로운 메데이아를 창조해낸다. 1900년에 태어나 격동의 세월을 살아낸 주인공 메데야의 삶을 통해 20세기 러시아 역사를 오롯이 담아냈다. 최종술 교수가 번역을 맡아 생생한 문장으로 옮겼고, 풍부한 내용의 해설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목차
시노플리 가계도 6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 9
해설 | 메데이아, 인류의 어머니로 거듭나다 389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연보 413
저자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은이), 최종술 (옮긴이)
출판사리뷰
시대와 운명을 끌어안고 다음 세대를 지키는 강인한 메데야
현대 러시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그는 자국의 문학상은 물론 메디치상(프랑스), 주세페 아체르비 상(이탈리아), 세계문학상(중국), 박경리문학상(한국), 유럽문학상(오스트리아), 지크프리트 렌츠 상과 귄터 그라스 상(독일) 등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힌다.
1992년 중편소설 「소네치카」로 주목받으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울리츠카야가 1996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 바로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이다. ‘메데야’는 그리스신화를 통틀어 가장 악명 높은 여인 ‘메데이아’의 러시아식 이름이다. 러시아 고전문학의 사실주의 전통 위에 역사·신화·성서 등 풍부한 상호텍스트성을 지닌 문학세계를 구축해온 울리츠카야는 이 작품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존의 메데이아 신화를 파괴하고 새로운 신화이자 안티-메데이아를 창조해낸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가족과 조국을 배신했지만 나중에는 그 남자에게 배신당해 자기 자식까지 죽이고 만 메데이아의 이야기는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작품에서 꾸준히 다루어졌다. 소설 속 메데야는 그리스 여인 같은 외모, 훌륭한 몸가짐과 지혜로운 태도, 민간요법으로 병을 치료하는 능력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신화 속 메데이아를 닮았다. 그러나 메데이아와 달리 메데야는 직접 낳은 자식이 없고, 대신 수많은 형제자매와 친척들을 돌보며 다음 세대를 지켜낸다. 운명과 화해하지 못하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맞서는 메데이아와 반대로, 메데야는 자기 운명에 순응하면서 운명에 상처 입은 다른 사람들까지도 가족의 울타리 안에 품는다.
그런데 메데야가 지키고 돌보는 가족은 혈연으로만 이루어진 공동체가 아니다. 메데야의 가문에는 입양의 전통이 있으며, 이전 결혼에서 얻은 자식이나 혼외 자식도 동등한 구성원의 지위를 얻는다.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기는 메데야의 동생 알렉산드라, 이모-조카 사이지만 자매처럼 자랐으며 각각 ‘웃음’과 ‘눈물’을 상징하는 니카와 마샤 등, 매력적인 여성 인물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가족의 외연을 넓히는 데 기여한다. 그리하여 이 가족은 다양한 민족·문화·종교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공동체를 이룬다.
크림반도의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아름답고 슬픈 일대기
크림반도는 이 작품의 배경이자 울리츠카야가 작품을 집필한 장소다. 가족이 피란을 가 있었던 바시키르 자치공화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모스크바에서 보낸 울리츠카야지만, “만약 태어난 장소를 고를 수 있다면 고민 없이 남쪽을 고를 것”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크림반도에 대한 애정이 깊다.
이 소설은 모스크바도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아닌 크림반도, 게다가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계절인 겨울이 아니라 여름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현대 러시아 소설에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이 소설은 1900년에 태어나 혁명, 내전, 농촌 집단화, 대숙청, 전쟁, 강제 이주, 해빙 등 격동의 세월을 살아낸 메데야는 물론 가족 구성원들과 주변 인물들의 삶을 통해 20세기 러시아 역사를 오롯이 담아낸다.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우정, 갈등과 비극은 “눈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크림반도의 풍경, 한과 슬픔이 서려 있는 러시아 역사와 얽혀들어 하나의 서사로 완성된다. 울리츠카야는 “이 소설은 옛 세대에 바치는 책이자, 어떤 의미에서 가족을 애도하는 나의 통곡이다”라고 말했다. 크림반도가 무력으로 합병되고, 가족적 가치가 상실되어가는 현재 상황에서 울리츠카야의 통곡은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
러시아의 불편한 양심,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금 우리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울리츠카야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공개적이고 격렬한 비판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사회정치적 문제에 목소리를 높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재단을 설립해 자신이 직접 고른 책을 각지 도서관에 보내는 활동을 시작했고, 2014년 러시아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 ‘평화의 행진’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노바야 가제타〉에 「고통, 공포, 수치」라는 글을 발표하여 통렬한 심정을 드러냈다. 결국 현재는 러시아를 떠나 독일 베를린으로 근거지를 옮긴 상태다.
평생 러시아 역사와 문학을 토대로 글을 써오며 누구보다 깊이 러시아를 이해한 작가라 할 수 있는 울리츠카야이기에, “러시아의 이름으로 러시아 사람들의 의지에 반해 이루어지는 범죄”를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이럴 때일수록 문학의 힘을 믿고 문학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하는 울리츠카야. 그의 다음 행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나는 문학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을 지탱해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 조상들은 ‘지금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고자 할 때 문학으로 눈을 돌렸다.” _류드밀라 울리츠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