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류의 종말? 좀비? 바이럴 타기?
문화 속 바이러스의 은유와 진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수백만 명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공포가 확산되면서 교류와 협력은 중단되고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멈춰 섰다. 무엇보다 삶과 죽음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활동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짧게 끝날 줄 알았지만, 팬데믹이 2년 넘게 이어지면서 누군가는 직장을 잃었고, 누군가는 가족이나 친구를 떠나보냈다. 이제는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우리 삶은 팬데믹 이전과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19는 이제 엔데믹(주기적으로 유행하는 풍토병)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뉴욕대학교에서 분자생물물리학을 연구하는 조지프 오스먼슨은 이 책 『바이러스, 퀴어, 보살핌』에서 헤르페스, 광견병, HIV, 코로나-19 등 현재까지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온 친숙한 바이러스들을 중심으로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진실을 파헤친다.
바이러스는 지구상에 어떤 생명체보다도 흔하게 또 오래 존재해온, 보이지 않는 존재다. 이들은 다른 세포(이를테면 우리 인간의 세포)에 부착해야만 생명체의 필수조건인 자기복제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생명체는 아니지만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스스로를 복제해내는 놀라운 존재다. 한편 성격이 모두 제각각이라 한 가지 일반적인 속성으로 정의할 수 없는 특성을 지니기도 했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바이러스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은유이다. 우리는 바이러스의 행성에 살고 있으며, 그들이 이 땅에 제일 먼저 발을 들였다. 우리는 손님이지 주인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전해져야 할 바이러스 이야기이다._100쪽
하지만 우리의 언어생활과 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바이러스를 인간은 어떻게 인식하는가? 인류를 몰살하는 치명적인 것(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바이러스는 극히 드물다), 인간을 좀비로 만들어 정신을 빼앗고 육체를 장악하는 것, ‘외부’에서 은밀하고 조용하게 우리 몸에 침입하는 것, 최근에는 ‘바이럴 타기’로 순식간에 유명세와 돈을 얻고자 하는 욕망까지……. 오스먼슨은 자신이 읽어낸 이러한 바이러스의 은유들이 사실과 무관한 공포를 자아내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것들을 단호히 끊어내라 주문한다. 그리고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바이러스와의 잡종’이라고, 바이러스와의 공존은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삶의 조건이라고 역설한다. 바이러스를 싸워 없애야 할 적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이 바이러스로 가득한 행성에서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생명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며 서로를 보살피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바이러스와 싸우고 투쟁하고 전투하고 고통받았는가’가 아니라 ‘역병 속에서도 어떻게 서로를 배려하고 돌보았는가’라는 틀로 이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 _265쪽
목차
1 위험에 관하여 … 11
2 복제에 관하여 … 27
3 바이러스의 의미에 관하여 … 61
4 개인적 글쓰기에 관하여 … 109
5 HIV와 트루바다에 관하여 … 207
6 전쟁에 관하여(패트릭 네이선과 공저) … 23
7 멘토에 관하여 … 269
8 백인성에 관하여 … 289
9 액티비즘과 아카이브에 관하여 … 339
10 종식에 관하여 … 407
11 진화에 관하여 … 451
감사의 말 … 483
저자
조지프 오스먼슨 (지은이), 조은영 (옮긴이)
출판사리뷰
팬데믹으로 드러난 미국사회의 차별
폭력적 ‘백인성’을 해부하다
조지프 오스먼슨은 인간의 DNA염기서열은 인종에 따른 차이가 전혀 없으므로,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백인보다 흑인과 라틴계 사람들에게 두 배 더 치명적인’것으로 판명됐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바로 팬데믹을 통해 미국 사회의 의료 불평등과 인종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결과 앞에서 트럼프 정부는 오히려 경제를 활성화하고 조속히 미국을 ‘정상’으로 돌려놓는다는 명목으로 셧다운을 철회한다. 급기야 흑인과 유색인에게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더 빨리 죽을 것이라며 좋아하는 백인들까지 등장하게 된다.
미국 의학은 흑인을 대상으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정작 연구가 끝난 뒤 흑인들에게는, 흑인 몸을 이용해 ‘우리’에게 안전성이 확인된 약물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었다. 미국인에게 ‘우리’란 항상 백인이었다. _293쪽
코로나-19로 흑인과 갈색 인종이 더 많이 희생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그러나 줌(ZOOM)상에서 긴 하루를 보내고 로그오프한 다음 퇴근하면 누가 음식을 배달하는가? ‘우리’는 결코 갇혀 있지 않았다. 그저 위험을 더 가난한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면서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흑인이거나 갈색 인종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백인 미국인과 우리가 건설한 인프라─는 특히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제나 이런 죽음을 허용했고 영속화해왔다. _299쪽
오스먼슨은 오늘날 ‘건강함’의 개념이 개인의 바람직한 정체성 정도로 간주 되면서도, 실제로는 계급, 인종, 지리와 깊이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가령, 흑인들이 더 많은 목숨을 잃는 것은 차별적인 의료 시스템 때문인데, 오로지 개인들에게 죽음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것처럼 말이다. 더군다나 역사적으로 흑인의 신체는 미국의 의학 발전을 위해 줄곧 연구 대상으로 쓰여왔지만, 정작 그렇게 발전된 의학에 대한 혜택이 흑인에게는 제한돼왔다. 오스먼슨은 일부 백인들이 주장하는, 백신을 맞지 않고 마스크를 쓰지 않을 ‘(개인의) 자유’란 그들이 지금껏 누려온 ‘(남을) 해칠 권리’에 다름 아니라고 일갈한다.
이와 같은 ‘백인성(whiteness)’의 표출을 생명보다 돈을 우위에 두는 도덕적 열등,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감정적 미니멀리즘, 백인우월주의, 무엇보다 (해칠) 자유를 마구 휘두르는 폭력성으로 규정하는 오스먼슨은 한편으론 자신이 감정의 표현을 죄악시하는 백인 남성성의 피해자였지만, 본인 역시 백인으로서 인종차별 문제에서는 많은 오류를 범해왔으며 어디까지나 직접적인 경험이 부족한 학생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백인성, 인종차별적 가부장제,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젠더 혐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근간에 있는 자본주의라는 힘은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갈 능력을 소멸시키고 있다. 여기서 말한 우리는 인간종을 말한다. 자본가 계급은 화성이나 뉴질랜드를 탈출구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화성에 내 자리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어차피 그 여행에 별다른 환상도 없고. 차라리 여기 남아 침몰하고 말겠다. 지구가 살거나, 아니면 우리 다 함께 죽거나.
백인이 아닌 몸으로 살았다면 내 삶은 아주 많은 부분에서 극적으로 달랐을 거라는 걸 잘 안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가 내 일과 몸과 영혼에 미쳤을 영향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공감은 여기까지만 가능하다. 함께 듣고 읽고 쓰고 조직할 수는 있지만 인종 문제에서 백인은 언제나 학생이다. 왜냐하면 인종차별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말하는 인종차별은 단순히 심한 편견─정체성의 특성 때문에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닌, 구조적 힘을 뜻한다. _312~313쪽
뉴욕의 백인 게이 바이러스학자의
퀴어 성장담이자 연애담, 그리고 코로나 일기
저자 조지프 오스먼슨은 미국 워싱턴주의 가난한 백인 중심의 마을에서 유독(流毒)한 백인 남성성에 둘러싸여 성장했다. 책과 클래식, 요리를 좋아하고 자주 울음을 터뜨리던 소년 오스먼슨은 ‘기집애 같다’는 소리를 듣기 일쑤였고 학교에서는 괴롭힘을 당했다. 오직 고향을 떠나겠다는 희망으로 청소년기를 버텼지만, 대학에서도 부유한 백인문화에 동화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글쓰기를 매개로 게이 작가들과 교류하고, HIV/AIDS 위기에 치료제 개발을 압박하며 정부의 무책임에 항의하는, 액티비즘 그룹인 액트업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아카이브를 접하면서 잃어버렸던 고리를 찾기에 이른다.
오스먼슨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남성들 간의 성관계와 친밀성에 대해 무지했을 뿐 아니라, 게이들이 치료제 없이 에이즈로 죽어가던 시기에 성장한 탓에, 섹스는 언제나 HIV를 포함한 공포스러운 쓰리섬이었다고 술회한다. 이후 오스먼슨은 남성들과 연애하고 또 실연의 참담한 아픔을 통해 ‘진화’를 겪는다. 그리고 최근 뉴욕 게이 커뮤니티에서 상용화되고 있는 정식 승인된 HIV 노출전예방약 트루바다를 복용하면서 HIV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낯선 남성과 콘돔 없는 섹스를 즐기게 되기까지 자신의 연애와 성적 모험을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허심탄회하게 들려준다.
1989년에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지(Ghee)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전에 존재한 적 없다는 잘못된 인상을 받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맞아줬을 사람들이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지는 이렇게 썼다. “우리에게는 용맹함의 모델이 부족했다. 그래서 사랑과 사회운동의 모델을 창조해야 했을 때처럼 용맹함의 모델도 직접 만들어야 했다.”
나도 2006년에 뉴욕에 도착했을 때 아주 비슷한 기분이었다. 나를 맞아줄 연륜 있는 퀴어들이 10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기분……. 내 친구들도 나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살아갈 방법을 스스로 창조해야 했다. 삶은 우리가 배워온 것과는 아주 달랐으니까._274쪽
”자기야,” 한 손은 엉덩이에 척 얹고 다른 손은 나무 숟가락을 들고 파스타 소스를 천천히 저으면서 내가 말한다. 그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볼 수 있다면…….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내 어린 자아는 절대로 내가 이런 식의 자세를 하거나 하이힐을 신거나 남자를 “자기야” 같은 간지러운 호칭으로 부르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야?” 그가 되묻는다.
“같이 춤추자.”
“이런 곡에 어떻게 춤을 춰!” 그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나는 과거의 나와 얼마나 같을까?
“내 사랑, 당신은 어느 곡에든 춤출 수 있어.” _475쪽
이 책은 바이러스를 통해 미국 사회의 민감하고 논쟁적인 이슈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는 동시에, 팬데믹을 온몸으로 겪은 저자의 일종의 코로나 일기가 함께 실려 있어 한층 생생하고 내밀한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그는 셧다운 동안 실직한 애인과 동거를 시작하고, 격리팟(quarantine pod)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센트럴파크에서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봄맞이 소풍을 즐기고, 코로나로 가족을 잃은 친구를 온 마음으로 위로한다. 소소해서 애틋한 이 일상의 기록은 우정과 보살핌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퀴어 가족의 형성 과정을 뭉클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섬세하면서도 삶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흘러넘치는 그의 문장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독자들은 『바이러스, 퀴어, 보살핌』에서 반짝이는 지성과 퀴어하기 이를 데 없는 욕망, 미국 사회에 대한 엄준한 비판의식과 속수무책의 나약함이 한데 어우러진 매력적인 목소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