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냉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냉전과 신냉전 사이 ‘특집 리뷰’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를 통해 과학의 죄를 묻다, 홍성욱의 ‘이마고 문디’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부터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까지,
서점가의 화제작들을 다루는 다채로운 ‘리뷰’
더 나은 지식 공론장 《서울리뷰오브북스》
《서울리뷰오브북스》(이하 《서리북》) 11호가 출간되었다. 11호의 특집 주제는 ‘냉전과 신냉전 사이’이다. 정전 협정 70주년을 상기하며 준비한 이번 특집 리뷰에서는 ‘냉전과 신냉전’을 다각도로 살피는 여섯 권의 책을 소개한다. 미국에서도 촉망받는 과학자였던 첸쉐썬은 어떻게 ‘중국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는가? 김민재는 첸쉐썬의 일대기를 통해, 과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전쟁의 기원에 관한 많은 논쟁을 촉발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김학재는 커밍스의 연구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다시금 평가하며, 냉전의 역사 서술을 성찰한다. 편집위원 권보드래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영원한 금서’, 『닥터 지바고』의 출간을 둘러싼 암투와 첩보전을 담은 라라 프레스콧의 『우리가 간직한 비밀』을 소개하며, 냉전의 문화적 측면을 살핀다.
냉전과 신냉전에 관한 논의는 영화 리뷰 코너 ‘이마고 문디’에서도 이어진다. 이번 호에는 과학기술학자 홍성욱 편집장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를 리뷰한다. 오펜하이머는 프로메테우스인가? 냉전의 희생양으로서 어쩔 수 없이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되었는가? 오펜하이머와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며, 오펜하이머는 스스로 죄로 포장된 길을 택했다고 홍성욱은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홍성욱은 과학의 죄, 과학자의 죄, 원자폭탄의 죄를 넘어 영화가 묻지 않은 또 다른 죄가 있음을 지적한다.
리뷰 코너에는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부터 세계적 석학 장하준의 신작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까지 서점가의 다채로운 화제작들을 다루었다. 인문학을 통한 과학의 해석으로서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는 무엇을 성취했고, 어디에서 실패했는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의 주류 경제학 비판은 타당한가? 경제학 입문서로서 편파적이지는 않은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서평들을 리뷰 코너에 담았다.
목차
편집실에서 ∥ 심채경
특집 리뷰: 냉전과 신냉전 사이
신냉전 시대, 파란만장한 첸쉐썬의 인생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 김민재
냉전의 역사 서술은 어떤 균형점을 향하고 있는가 ∥ 김학재
중국 시진핑 시대의 방향을 읽어 낼 핵심어 ‘항미원조’ ∥ 백승욱
승리하는 비결 ∥ 우동현
낡은 것은 가지 않고 새것도 아직 오지 않은 ∥ 김주희
『닥터 지바고』와 냉전의 비밀 ∥ 권보드래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과학의 죄를 묻다 ∥ 홍성욱
디자인 리뷰
태도로서 유통을 사유하기 ∥ 구정연
북&메이커
편집자와 저자가 함께 펼치는 ‘정신의 향연’ ∥ 이승우
리뷰
사유 방식으로서의 과학 공부, 그리고 그 한계 ∥ 권석준
분노, 열정, 아쉬움 ∥ 김두얼
유전 vs. 환경, 무엇이 웃음을 닮게 하는가 ∥ 정우현
‘친○ 개혁’의 주체성과 한국 근대사 서술 ∥ 박훈
한 국어학자가 경험한,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연구와 정책의 역사 ∥ 박진호
입문자에게는 자극적인, 정치적인 미식 ∥ 박선영
문학
술병과 찢어진 책들 ∥ 진은영
카프카의 새벽 ∥ 윤경희
비교 불가 시네이드 오코너 ∥ 송지우
지금 읽고 있습니다
신간 책꽂이
저자
김민재, 김학재, 백승욱, 우동현, 김주희, 권보드래, 홍성욱, 구정연, 이승우, 권석준, 김두얼, 정우현, 박훈, 박진호, 박선영, 진은영, 윤경희, 송지우 (지은이),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부 (엮은이)
출판사리뷰
특집 리뷰:
냉전과 신냉전 사이
“《서울리뷰오브북스》 11호에서는 정전 협정 70주년을 상기하며
냉전과 신냉전 사이를 다루는 텍스트를 읽는 특집을 마련했다.
냉전의 기원과 종식, 그리고 냉전이 남긴 것에 대해 돌아보고자 함이다.
(……) 하나의 주제를 다각도에서 조명하고 다층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
이 특집 서평의 묘미라면, 이번 호도 틀림없다.”
―심채경, 「편집실에서」 중에서
오늘날 우리는 경제, 문화, 항공 우주 공학 분야 등 다양한 측면에서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신냉전’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서울리뷰오브북스》 11호에서는 ‘냉전과 신냉전 사이’를 다루는 여섯 권의 책을 읽는다. 냉전의 기원과 종식, 유산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특집 리뷰에서는 정치와 과학의 관계, 역사 서술, 중국 시진핑 체제의 방향성,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문제, 냉전과 문학 등 냉전과 신냉전에 대한 다층적인 분석이 이루어진다. 과학 칼럼니스트 김민재는 중국 우주 탐사 프로그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학자이자 매카시즘의 희생양이었던 첸쉐썬의 일대기를 읽는다. 사회학자 김학재는 한국어로 첫 완역 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다시 펼치며, 한국전쟁의 기원에 관한 논쟁을 되짚어 본다. 사회학자 백승욱은 ‘항미원조’라는 키워드로 중국 시진핑 체제의 방향성을 탐독한다. 과학기술학자 우동현은 냉전의 종식을 지구사적으로 조명하는 역사서를 통해 냉전사를 다각적으로 살펴본다. 여성주의 정치경제학자 김주희는 한미 동맹의 군사화된 환경이 낳은 기지촌과 같은 낡은 유산들을 되돌아본다. 편집위원 권보드래는 이념 대결의 시대에 『닥터 지바고』가 출간되는 과정의 첩보전과 선전전을 풀어낸 소설을 읽는다. 이처럼 특집 리뷰에는 ‘냉전과 신냉전 사이’를 다루는 텍스트들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이 담겨 있다.
“그의 말대로 ‘학문에서는 경계와 멈춤이 없어야’ 한다.” 김민재는 「신냉전 시대, 파란만장한 첸쉐썬의 인생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에서 ‘중국 로켓의 아버지’ 첸쉐썬의 굴곡진 일대기를 통해 정치와 과학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힐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미국에서 뛰어난 과학자로 성장해 승승장구하던 첸쉐썬은 매카시즘의 파고 속에 미국을 떠나 중국으로 향한다. 이후 첸쉐썬은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오늘날 중국 우주 굴기의 초석을 닦는다. 그러나 저자는 그가 문화대혁명 시기 체제 지향적 행보를 보이며 중국 공산당의 비인도성에 동조하기도 했음을 지적한다. 이처럼 저자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사건들이 한 과학자의 삶을 어떻게 변모시켰는지를 살피며, 정치와 과학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현재에도 전쟁에 대한 역사 연구는 어떤 역사적 시점에서 정치적 대립의 산물이다.” 김학재는 「냉전의 역사 서술은 어떤 균형점을 향하고 있는가」에서 한국어로 첫 완역 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다시 펼친다. 저자에 따르면, 브루스 커밍스의 연구는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질문 자체를 문제시하고, ‘전쟁의 기원’을 바라보는 기존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저자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연구들을 통해 오늘날의 관점에서 커밍스의 연구를 다시 살펴보며, 한국전쟁과 정전 협정의 의미, 나아가 전쟁에 대한 역사 연구의 의미를 다시금 성찰한다.
“‘한국전쟁’, ‘조선전쟁’, ‘6·25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 역사적 사건을 ‘항미원조’로 지칭할 때 그 함의는 달라진다.” 백승욱은 「중국 시진핑 시대의 방향을 읽어 낼 핵심어 ‘항미원조’」에서 중국의 문화 콘텐츠와 중국 공산당의 문헌, 한국전쟁에 관한 한·중·미의 자료들을 치밀하게 분석해 내는 『항미원조』를 통해 중국 시진핑 체제의 방향성을 읽어낸다. 이때 키워드는 ‘항미원조’이다. 저자는 항미원조 서사가 중국의 국제 정치의 개입 방식과 국내 정치의 실천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지난 70여 년간 ‘냉궁에 유폐’되었던 항미원조 서사가 2010년대 이후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여 2020년대에 당과 국가에 의해 전면에 배치된 이유와 함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보여 주고, 그것이 안고 있는 모순을 지적한다.
“이 책은 40년 넘게 벌어진 냉전에서 궁극적으로 서구가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을 일러 준다.” 우동현은 「승리하는 비결」에서 냉전의 종식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지구사적으로 조명하는 『깨진 약속의 승리(The Triumph of Broken Promises)』를 리뷰한다. 저자에 따르면, 1973년 이전까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은 지구적 호황 속에서 국민에게 더 많은 것을 ‘약속하는 정치’를 펼쳤다. 그리고 이후 지구적 경제 위기를 거치며 자본주의 진영은 성공적으로 약속을 어기며 냉전에서 승리했고, 사회주의 진영은 결국 약속을 어기지 못해 체제가 붕괴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이 그간 소련이 어떻게 붕괴했는지에 과도하게 초점이 맞춰진 종래의 냉전 후반부 역사 서술을 지구사적으로 혁신했다고 평가하며, 우리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를 냉전사에 어떻게 위치시킬지 질문한다.
“책의 영어 제목이 ‘기지의 조우’이듯, 저자는 한미 동맹의 군사화된 환경에서 주한미군과 무수히 이질적인 존재들의 스침을 다룬다.” 김주희는 「낡은 것은 가지 않고 새것도 아직 오지 않은」에서 포스트 냉전 시대 한미 동맹에 관한 인류학 연구서인 『동맹의 풍경』을 톺아본다. 김주희는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정치, 경제, 문화, 범죄, 사회 영역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해 온 미군이 한국 사회에 남긴 흔적과 한국인-미군 관계의 변화된 양상에 대한 분석을 좇으며, ‘한국과 세계’, ‘활동과 연구’, ‘피해와 권리’를 배치하는 저자의 방식에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라라 프레스콧은 『닥터 지바고』를 ‘냉전의 책’으로서 주목한다.” 권보드래는 「『닥터 지바고』와 냉전의 비밀」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가 냉전 시기에 출간되는 과정 속의 첩보전을 소설로 풀어낸 『우리가 간직한 비밀』을 읽는다. 저자는 소설 속 CIA의 ‘『닥터 지바고』 작전’을 다루며, 냉전이 군사·경제·기술의 대결이기에 앞서 문화적 경쟁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간직한 비밀』을 페미니즘 소설로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묻는다.
리뷰: 책으로 세상을 보다
〈리뷰〉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시의성 있고, 심도 있는 서평들이 이어진다.
권석준은 「사유 방식으로서의 과학 공부, 그리고 그 한계」에서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리뷰한다. 저자는 이 책이 개인의 독서 수양록을 넘어 인문학의 입장에서 과학을 재해석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시도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 같은 시도가 과학에 대한 해석의 통로가 되어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가 과학의 본질을 오롯이 담아내기는 어려우며, 따라서 인문학적 입장에서의 과학에 대한 접근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의 기여와 한계를 두루 짚어 낸다.
김두얼은 「분노, 열정, 아쉬움」에서 성폭력 범죄와 관련한 법률 서비스 시장의 문제를 현장 연구한 『시장으로 간 성폭력』을 비평한다. 『시장으로 간 성폭력』은 법률 시장의 신자유주의화와 사법 제도의 남성 편향성으로 피해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정당한 사법적 결과를 얻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법률 시장의 현황 파악과 성격 규정, 가해자와 피해자의 행동에 대한 접근 수준·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한다. 아울러, 보다 구체적인 원인 파악과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촉구하며 현장 활동과 학술 연구의 결합에 관한 질문과 성찰을 제기한다.
정우현은 「유전 vs. 환경, 무엇이 웃음을 닮게 하는가」에서 칼 짐머의 『웃음이 닮았다』를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칼 짐머는 유전이 수평적으로도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전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한편, 저자는 칼 짐머를 따라 유전만큼이나 환경이 우리 존재에 중대하게 기여함을 지적한다. 이와 같이, 저자는 유전의 역사를 돌아보며 통념을 벗어나 유전 현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정립할 수 있음을 보인다.
박훈은 「‘친○ 개혁’의 주체성과 한국 근대사 서술」에서 갑오개혁과 ‘친미 개화파’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유영익 선생의 『갑오경장연구』(1990)와 『동학농민봉기와 갑오경장』(1998)을 통해 갑오개혁의 자율성 문제를 되짚는 한편, ‘반일’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던 ‘친미 개화파’의 행보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이처럼 저자는 갑오개혁의 주체들과 친미 개화파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되돌아보며, 우리의 역사 서술에서 단지 외세를 ‘차단’하려는 자세가 바람직한지, 외세를 역이용해 개혁·발전을 도모한 선인들의 사정과 노력에 보다 겸허히 다가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박진호는 「한 국어학자가 경험한,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연구와 정책의 역사」에서 국어학자 김민수의 구술을 담은 『우리말이 국어가 되기까지』를 다룬다. 이를 통해 저자는 해방 전 조선어학회와 조선어연구회 간의 한글 맞춤법 논쟁, 해방 후 맞춤법 제정, 『큰사전』 편찬, 학교 문법 통일안 제정 등 우리 말과 우리 글 역사의 굵직한 사안들을 일별하며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연구와 정책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를 두루 살핀다.
박선영은 「입문자에게는 자극적인, 정치적인 미식」에서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의 서평을 썼다. 저자는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의 핵심이 전작들에서 지속적으로 주장되어 온 주류 경제학 비판, 즉 신고전학파에 대한 비판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오늘날 주류 경제학계 역시 제도와 정치, 불평등 문제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연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경제학계에서 발전시킨 방법론이 현재 사회과학 분야에 기여한 바를 이야기한다.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오펜하이머는 오펜하이머의 길, 죄로 포장된 길을 택한 것이다.”
이마고 문디에서는 과학기술학자 홍성욱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오펜하이머〉를 통해 과학자의 죄, 과학의 죄, 원자폭탄의 죄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영화 〈오펜하이머〉가 프로메테우스 서사에 충실하면서도, 오펜하이머와 과학의 죄를 캐묻는 정반대의 서사가 공존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오펜하이머와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두 사람의 벌이 기실 닮지 않았음을 주장한다. 나아가 저자는 영화가 감춘 한 가지 죄, ‘미국의 죄’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미국 정부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민간인들에게 원자폭탄을 투하한 배경에는 식민주의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의 오랜 역사적 뿌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끔찍한 참상으로 귀결되는 미국의 내적·외적 식민주의 역사에서부터, 미국의 뿌리 깊은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 차별주의, 식민주의의 죄에 대한 성찰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디자인 리뷰
“‘유통이 읽는 행위의 순환’이라면 새로운 읽기의 가능성을
유통의 여러 방식을 통해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디자인 리뷰에서는 구정연이 「태도로서 유통을 사유하기」라는 제목의 디자인 비평을 썼다. 먼저 저자는 아티스트 북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출판사 프린티드 매터와 쓰리스타북스의 사례를 통해 아티스트 북의 의미와 맥락을 짚어 내며, 예술가의 개념·아이디어를 물화하는 방식으로서 출판보다는 아이디어를 확산하는 민주적인 방식으로서 유통을 강조한다. 그리고 예술 출판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한 세스 프라이스와 쓰리스타북스의 시도를 소개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아티스트 북 범주에 대한 새로운 사유가 필요하며, 새로운 읽기의 가능성을 유통의 여러 방식을 통해 상상해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북&메이커: 출판의 낭만과 일상
북&메이커에서는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이 「편집자와 저자가 함께 펼치는 ‘정신의 향연’」이라는 제목 아래, 신입 편집자 시절부터 오늘에까지 이르는 여정을 되돌아본다. 이를 통해 저자 및 역자 발굴, 기획, 저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등 학술 출판 분야에서 쌓아온 다채로운 경험들을 풀어내고 있다. 특히 저자는 편집자와 저자와의 관계에 대해 강조하는데, 그 관계에서 나눈 지적·정신적 교류의 즐거움을, ‘정신의 향연’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나아가, 저자는 저자와의 지속적인 지적·정신적 교류를 바탕으로 ‘책’을 통해 자신들만의 지성사와 문화사를 구착해 가는 데에서 편집자의 역할과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문학: 풍성한 읽을거리
문학에는 진은영과 윤경희, 송지우의 에세이 3편이 실렸다.
진은영은 「술병과 찢어진 책들」에서 할머니와의 기억을 반추한다. 전쟁으로 청상과부가 되어 버린, 얌전히 책만 읽는 아이를 때리고 그 책을 찢어 버리곤 했던 할머니. 저자는 시간이 흘러 ‘도대체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었었던가?’ 하고 묻는 릴케의 시를 읽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이의 기분과 고독에 가닿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책 속에 빠져들어 곁에 있어도 손 닿기 힘든 곳으로 가버린 아이에 대한 상실을 느꼈던 것이리라고 짐작하며 저자는 그 존재의 서글픈 귀여움을 헤아린다.
윤경희는 「카프카의 새벽」에서 멀고 고된 통학길에서 서점을 피신처 삼던 과거로 기억을 거슬러 간다. 일과처럼 몸의 쉼과 마음의 트임을 위해 들르던 서점에서 건져 오던 세계 문학선. 이윽고 방에는 세계 문학선으로 된 성벽이 쌓였다. 어느 겨울날 새벽, 저자는 문득 그 가운데서 카프카의 꺼내 『성』을 펼치고, 이내 한국말로 번역된 카프카의 모든 책을 단숨에 읽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비교문학을 공부하며 독일어로 된 카프카를 직접 읽게 된 저자는 작가의 언어와 번역자의 언어, 원본과 번역본 사이에서 경험한 간극과 충격과 혼란을 이야기한다.
편집위원 송지우는 「비교 불가 시네이드 오코너」에서 지난 7월 타개한 아일랜드 출신 싱어송라이터 시네이드 오코너의 음악과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오코너의 음악 속에서 모성의 복잡함, 부정의에 대한 의분, 부조리한 세상에서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자 하는 자아의 열망을 듣는다. 세상과 불화하는 ‘저항의 아이콘’이었던 오코너의 여러 일화들을 떠올리며, 저자는 정제되지 않은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정직한 이들에게 여전히 억압적인 세상을 성찰한다.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2020년 12월 0호로 출발하여 2023년 9월, 11호에 이른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답을 서평에서 찾는다. 12인의 편집진은 오랜 토론을 거쳐서 주제와 책을 선정하고 서평을 쓴 뒤에, 이를 내부에서 돌려 읽으면서 비판을 듣고, 이를 반영해서 글을 고친다. 타인의 책을 비평하고 비판하듯이, 자신들의 글도 같은 비판의 과정을 거친다.
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2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