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끝나지 않는 여름을 살아가는 마녀들의 이야기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로 위기를 맞은 세상 속에 살아가는 마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노블이다. 우리는 “많은 것이 소리 없이 무너지는” 여름을 보냈다. 폭염에 말라 바스러지고, 가차 없는 폭우에 녹아 문드러지고 휩쓸려 갔다. 이처럼 지독한 여름이 해를 거듭할수록 길어지고 있다. 사랑하는 존재들이 파괴되고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좀처럼 괜찮아지지 않는 저릿한 마음으로 끝나지 않는 계절을 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 거대한 파괴의 흐름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과 죄책감이 마음을 병들게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세상에는 산 것보다 살아남은 것이 더 많으니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한다고.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이자 만신나루에 사는 마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연이 병들어버린 세상에서 눈짓 한 번으로 파도를 잠재우고 손짓 한 번에 숲을 세웠다는 위용은 다 과거의 영광이 되었다. 지금 이들은 만신나루라는 마녀 보호구역에 유폐된 처지다. 마름병을 앓는 잎사귀처럼 온몸 곳곳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불치병을 앓으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그래도 무심코 마트에서 손에 쥐었다가 싹이 나게 해버린 감자를 이것도 인연이라며 밭에 심고, 많은 비를 견디고 살아남은 무화과 열매로 잼설기를 만들어 나누며 살아간다. 마치 무력해지는 순간조차 일상을 유지하고 주변을 돌보며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들처럼.
‘산’은 오 년 전 자취를 감춰버린 ‘초원’을 그리워한다. 그들은 이십 년 전 일어난 산불로 고아가 되었다. 당시 겨우 열다섯 살이었던 초원은 자기보다 한참 어린 산을 거둬 보살피고 길러냈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흉터를 얻었지만 서로가 있기에 혼자는 아니라 위안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초원이 자취를 감추었다. 만신나루에 개발 바람이 불던 시기였다. 초원이 사라진 후 개발 계획은 거짓말처럼 중단된다. 마치 그가 만신나루에 엄습한 모든 위기와 소란을 삼키고 가라앉아버린 것처럼. 다른 마녀들처럼 마름병을 앓는 산은 이제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다. 때마침 기자 ‘송주’가 취재를 위해 만신나루에 내려온다. 산은 송주와 힘을 합쳐 초원의 행방을 찾아나서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한밤중 산을 부수고 나무를 뽑아내는 요란한 공사 소리와 함께 만신나루 개발이 재개된다.
먹과 푸른 색조, 섬세한 그림체로 서늘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낸 여름의 장면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서와 마음을 전하며, 좀처럼 가시지 않는 여운을 준다. 무화과가 익어가는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선 우리에게 이 만화를 추천한다.
목차
1화. 끝나지 않는 계절 | 2화. 병든 잎을 돌보는 일 | 3화. 불씨 | 4화. 당신이 가르친 것 | 5화. 안녕하세요 | 6화. 사라지고 남은 | 7화. 자세히 봐요 | 8화. 증명 | 9화. 모든 물은 바다로 간다 | 10화. 안부 | 11화. 동백 | 12화. 생(生) | 13화. 숲으로 | 14화. 무덤 | 15화. 아이 | 작가의 말
저자
산호 (지은이)
출판사리뷰
에코페미니즘에 기반한 서사
서로를 돌보는 여성들의 이야기
이 책은 자연에 대한 착취와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 방식 등의 측면에서 결이 같다는 에코페미니즘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여 기획되었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우리가 자멸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 간의 관계와 비인간 세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은 자연과의 유대를 이어가고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마녀들을 통해 기후 위기 시대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모두들 이 소모적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마녀라는 개념은 사회적 지위가 낮고 취약하여 도심과 떨어진 숲 주변에 거주하던 여성들에서 유래되었다고 추정된다. 중세에 이르러 사람을 저주하거나 독살하고 가축을 해친다는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화되었지만, 이들은 숲에 자라는 약초를 찾아 병을 고치고 아이를 받거나, 풍년 및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제를 지내기도 했다. 의사(치료사)이자 약초사, 산파와 무속인을 겸했던 것이다. 문명은 그런 그들을 ‘신비’ ‘비이성’ ‘원시종교’ ‘민속신앙’이라 여기며 탄압했다.
흔히들 마녀라고 하면 검고 긴 옷을 입고 길고 뾰족한 모자를 쓴 채 빗자루를 타고 보름달 뜬 밤하늘을 나는 장면을 떠올린다. 이 책은 그러한 종래의 이미지와는 달리 마녀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표현했으며, 그 생활 또한 일상적으로 그렸다. 다만 거대한 유기체로서 순환하는 자연에서 힘을 얻는다는 설정을 두었다. 그것은 살리고 회복하는 힘이다. 마녀들은 시들어가는 초목을 살릴 수 있고, 동식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녀들이 죽은 자리에는 숲 또는 호수가 생겨 그 자체로 자연을 이룬다. 이 책은 에코페미니즘에 대해 제기되어온 비판과 우려 역시 진지하게 고민하며 견고한 서사를 쌓아 개연성을 부여하고 살아 숨 쉬듯 개성 있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그려냈다. 특히 무속신앙을 기반으로 만신과 무당들이 모여 사는 ‘만신나루’라는 공간을 창조하여 독창적인 한국형 마녀를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