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별수 있어? 그게 나인걸.
이렇게 사는 것도 뭐 괜찮아!
호락호락(好樂好樂), 세상 좋고 즐거워.”
‘인생’이라는 바벨을 번쩍 들어 올리는
열일곱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유쾌한 시적 탐구
『송아리는 아리송』은 불안정한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고군분투와 유쾌한 일상을 촘촘히 담아낸 청소년용 시집이다. 2005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에 동시가 당선되고 2008년 『어린이와 문학』에서 동화가 추천 완료된 뒤, 동시, 동화, 청소년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펼쳐 온 정연철 작가의 첫 청소년시집으로, 현직 국어 교사로서 오랜 시간 청소년들과 부대끼며 지내 온 경험을 오롯이 살려 냈다.
시집의 시편들을 이끄는 화자 ‘송아리’와 그의 친구들이 비치는 말과 표정과 생각과 행동은 청소년기의 혼란스러움을 고스란히 보여 주지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낙관성 또한 드러낸다. 청소년이 저마다 품고 있는 다층적인 면모와 사연을 수식 없이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애쓴 시인의 다정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시집 곳곳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언어유희가 읽는 재미를 더하며 “삶의 애환이 녹아 있는 고딩들의 리얼 잡담 월드”(「잡담 월드」)로 독자를 초대한다. 이 시집은 ‘창비청소년시선’의 마흔다섯 번째 권이다.
목차
1부 호락호락
팔랑귀의 자존감
꼰대 고딩
덩칫값
수식어의 덫
의미심장
호락호락
지다
두고 내린 것들
롤 모델
최초의 칭찬
바람 효과
우주 유일의 나
모퉁이
별도의 진도
다용도 인생
내가 좀 예쁜 날
2부 사분음표와 팔분음표가 사방팔방
고맙다는 말
슬기로운 준기 사용법
괄호
사랑의 범위
틈바구니
아리티콘
괭이밥꽃
까마귀의 프리스타일 랩
수면 바지
누런 봉투
꽃다지
귀한 웃음
사분음표와 팔분음표가 사방팔방
들어 준다는 것
비행 청소년
3부 삐딱선의 미학
아침 달
엄마
콩나물해장국
따뜻한 아이스카페라테
휘게
자아 성찰
잡담 월드 초대장
삐딱선의 미학
궁리주의자
빨간 약
대한민국 청소년의 현주소
부적절한 예
꿈꾸는 기술
시간표 단상
사각사각
전복의 시간
엄청나게 시끄러운 시험 시간
4부 후투티가 건넨 말
러버 콘 되어 주기
후투티가 건넨 말
선을 넘었다
전쟁 온 에어
우리말에 대한 고찰
지구의 중심
떨켜
퇴출 영순위 사자성어
반달
금사빠 증후군
멘탈 보호 해시태그
단풍 1
단풍 2
추락하는 것에도 별은 반짝인다
악몽과의 한판 승부
바벨을 든다는 것
발문
시인의 말
저자
정연철 (지은이)
출판사리뷰
자신을 옭아매는 수식어를 거부하는 열일곱의 오색찬란한 목소리
『송아리는 아리송』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아리송한 시집이다. ‘아리송함’은 시집을 이끌어 가는 화자이자 “내 이름은 송아리/별명은 아리송”인 열일곱 여고생 ‘송아리’의 별명을 가리킨다. 송아리는 선생님에게 “야자 시간만이라도//야자/타임”(「전복의 시간」)을 하자고 제안할 만큼 발랄한 청소년이다. 한때 “역도 꿈나무 제2의 장미란이라는 소리”(「고맙다는 말」)까지 들었으나 허리 부상으로 그만둔 아픈 사연이 있다. 그래도 “인생의 쓴맛을 좀 봤으니/단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는”(「바벨을 든다는 것」) 거라며 긍정의 마음을 다져 나가는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다. 하지만 사람들이 “덩칫값 좀 하라고” 핀잔을 줘도 작디작은 무당벌레를 보면서 “작고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들에게/잔정을 뿌려 주는 것”(「덩칫값」)이 ‘진정한 덩칫값’이라고 생각하는 속 깊은 모습도 있다. 시인은 뻔한 듯 뻔하지 않은 송아리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 주면서 청소년을 쉽게 단정 짓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당사자의 목소리로 전한다.
저더러 털털한 애라고 못 박지 마세요
그딴 수식어에 갇히기 싫어요
대체로 대책 없고 단순 무식해 보일지 몰라도
알고 보면 결이 무수한 아이랍니다
웬만하면 허허 웃어넘기는 편이지만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아저씨한테
버럭 불을 내뿜기도 하고
내숭 떤다며 코웃음 칠지 모르지만
공포 영화 볼 때 무서워 비명 질러요
한 조각 남은 피자 앞에서는 헐크가 되기도 하지만
힘없이 엎드려 우는 길냥이를 보면
배고픈가 싶어 먹던 거 쪼개 주기도 해요
송곳처럼 날카롭거나
살얼음처럼 예민할 때도 있어요
벚꽃 날리면 로맨틱해지고요
비가 오면 센티해져요
그럴 때 툭 건드리면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고요
관종 짓 하다가도 낙엽 지면
온몸에 우수수 우수가 떨어져
고요히 가라앉는 순간이 와요
어떤 날은 곱게 물든 단풍잎을 책갈피에 끼워 두고
함박눈이 내리면 좋아서 팔짝팔짝 뛰기도 해요
이건 비밀인데 종종 엉큼한 구석도 있답니다
이런 저를 하나의 단어로 옭아매지 마세요
한마디 무성의한 말로 덫을 놓지 마세요
―「수식어의 덫」 전문(16~17쪽)
‘아리송함’은 “매사에 알쏭달쏭”(「팔랑귀의 자존감」)한 청소년기를 나타내기도 한다. 누군가는 청소년기를 ‘인생의 황금기’라고도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밝고 빛나는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은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로 휩싸인 듯 보여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혼란스럽기도 하고 감추고 싶은 비극과 말 못 할 속사정을 지닌 경우도 많다. 송아리는 “엄마는 내가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떠났고” “칠 년 연애한 역도한테도 차였다”(「금사빠 증후군」)고 고백한다. 외롭고 쓸쓸하기는 아리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범생이’ 준기는 털어놓지 못하는 성(性)적 지향으로 “견고한 장벽을 쌓아 놓은 듯/말을 걸어도 묵묵부답”(「괄호」)이고 “화장실에서 흡연하다”(「비행 청소년」) 들키기도 한다. “늘 혼자 있어 실제보다 작아 보이는” 형식이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피부 까맣다고 어딜 가나”(「괭이밥꽃」) ‘까마귀’라고 놀림을 받는다. “툭하면 위클래스에서 호출”을 받는 “위기 학생”(「귀한 웃음」) 혜림이는 “아빠 없이 아픈 엄마랑 산다”(「수면 바지」).
선생님, 범생이 준기가 수업 시간에 잔 게
충격받을 일인가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선생님들도 그러던데요, 뭘
수업 있는 거 까먹고 교무실에서 쿨쿨
겪어 봐서 알 텐데요
사람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는 건
죽을 때가 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치는 몸부림이라는 거
그럴 땐
질책보다
벌점보다
준기야, 무슨 일이 있니?
다정한 말 한마디가 약이 되잖아요
에피타이저로 가볍게 등도 토닥토닥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 반칙이에요
―「슬기로운 준기 사용법」 전문(42~43쪽)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겠다는 느리지만 확실한 걸음걸이
청소년기는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시기지만,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을 확립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고달픈 삶에 굴하지 않는다. “슬픔이 삶의 상수라는 거 조기 교육 받아서/이쯤은 끄떡없을 줄 알았는데/변수 없이 무너지고 마는 밤”(「자아 성찰」)을 지새우기도 하면서 서로서로 속엣말을 들어 주고 응원을 보내며 어둠을 헤쳐 나간다. 누군가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 준다는 건/어쩌면 천근만근 묵지근한 삶의 무게를/덜어 주는 것”(「들어 준다는 것」)일 테다. 형식이가 “엄마 고향은 베트남/내 고향은 한국/그러니까 나는 한국 사람”(「까마귀의 프리스타일 랩」)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아이들의 놀림에도 주눅 들지 않듯, “책상에 시체처럼 엎드린 혜림이가 비트에 맞춰 발을 까딱”거리며 일상 속 작은 활기를 즐기듯,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걸”(「꽃다지」)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모든 슬픔과 아픔을 끄떡없이 견디어 나간다.
우리 학교 인스타 피드에 올라온 글
(꼭두각)시
(호)구
(시키는 대)로
(제)길
18
하트를 누르고 댓글을 단다
(반드)시
(그럼에도 불)구
(네 맘대)로
(살)길
5
오!
마디마디 감탄사가 있는 삶을 응원해
―「대한민국 청소년의 현주소」 전문(87쪽)
그러면서 청소년들의 시선은 ‘나’에서 친구와 가족에게로 그리고 사회와 세계로 뻗어 나간다. 자기 나름의 생각과 예리한 현실 인식으로 세상의 이면을 바라보고 자신의 언어로 또렷하게 의견을 말한다. 이는 성장에서 중요한 변곡점이다. 먹자골목을 지나가다 고깃집 간판에 “소가 알통을 자랑하며/호객 행위”를 하고 “머리에 리본 맨 돼지가 윙크하며/사람들을 유혹”하는 모습을 보며 “나 고기 무지무지 좋아하지만/저건 좀 아니다”(「선을 넘었다」)라고 지적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소식에 ‘평화’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절대적이고/필수 불가결한/꽃”(「전쟁 온 에어」)임을 힘주어 말하면서 이제부터는 “눈총도 안 쏘고/웃음 폭탄도 안 터뜨리고/핵폭탄 세일 하는 거 눈길도 안 주고/팩트 폭격도 안 날리고/비장의 무기 같은 건 아주 없애”(「우리말에 대한 고찰」) 버리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사하라 사막에 눈이 내리고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재앙의 상황을 보며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미더운 면을 보여 주기도 한다.
사람의 중심은 아픈 데라고 하잖아요
입술이 부르트거나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히면
온 신경이 그쪽을 향하니까요
사회의 중심도 아픈 곳이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낮고 약하고 힘없는 곳을 먼저 보듬어 주지 않으면
사회가 바로 서지 못한다고요
지구도 몹시 아파요
벌써 오래됐어요
전 세계에 살인적인 폭염이 지속되고
사하라 사막에 눈이 쌓이고
호주에 재앙적인 산불이 나고
남극의 빙하가 녹잖아요
고래가 쓰레기를 먹고 죽잖아요
성장과 이윤 추구에 목매다는 건
정말 다 같이 목매는 행위예요
목멘 소리로 외치는데 안 들리세요?
문제 상황에 직면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는 거
어른들 직무 유기 아니에요?
이러다 골든 타임 놓치겠어요
아, 말하다 보니 열받네 진짜
―「지구의 중심」 전문(110~111쪽)
‘방황’이라는 돌멩이가 일으킨 ‘성장’이라는 형형색색의 물보라
이 시집은 “어떻게든/토낄 궁리/빠져나갈 궁리”(「궁리주의자」)만 하는 청소년들의 일탈과 방황을 나무라기보다는 “사람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는 건/죽을 때가 돼서 그런 게 아니라/그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치는 몸부림이라는”(「슬기로운 준기 사용법」) 것을 알려 준다. “학교 집 학교 집 오가는 지겨운 루틴”(「궁리주의자」) 속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자꾸 뭘 하겠다고 마음먹지” 말고 “괜찮아, 방황해/그래야 마음에 틈이 생긴대/그 틈으로 숨을 쉰대”(「꿈꾸는 기술」)라고 뒤집어 이야기해 주는 시집이다. 그리하여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암암리에 별도의 진도를 나가는”(「별도의 진도」) 동안 삶을 깨달아 가며 성장해 나가는 아리와 준기와 형식이와 혜림이,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청소년이 “마침내 찬란해지는, 아름다워지는 시집”(발문)이다. 작가의 바람대로 이 시집이 위로의 빗방울을 뿌려 주는 단비가 되어 아이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 주길 고대한다.
빛깔이 고와 나도 모르게
다가갔어
멀쩡한 잎 거의 없고
조금은 마른 잎
썩은 잎
벌레 먹은 잎
잎에 묻은 먼지와 검은 점……
한 잎 한 잎 모여
단풍을 만든 거구나
내 지나온 삶 얼룩투성이여도
고운 단풍 만들 수 있는 거구나
―「단풍 1」 전문(1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