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로맨틱 코미디의 여제 노라 에프런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부터 퀴어 로맨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까지, 영화사에 빛나는 19편의 로맨스 영화를 읽으며, ‘낭만적 사랑’의 위기가 어떻게 영화에 반영되는지, 오늘날 정치사회의 쟁점들과 로맨스 영화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낭만적 사랑 자체에서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규범을 끌어낼 수 없는지를 본격 탐구한 책이다. 여성주의적 로맨스는 가능한가? 성소수자의 사랑을 그리는 로맨스 영화들이 최근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을 꿈꾸기 어려운 오늘날 청춘들의 몸은 어떻게 욕망을 발산하는가? 신자유주의적 경쟁사회에서 사랑은 어떻게 변해가는가? 사랑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현대성을 관통하는 열쇠다. 이 책은 사랑을 사유해온 인문학과 로맨스 영화의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한다.
목차
프롤로그: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의혹
1부 오늘날 사랑의 풍경
1 여성주의적 로맨스는 가능한가: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2 퀴어 로맨스가 회복한 것: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3 불감증에 빠진 세계에서 사랑을 꿈꾸는 몸: [아워 바디]
4 사랑을 위한 경쟁 시장: [더 랍스터]
5 신자유주의 시대의 가족 로맨스: [토니 에드만]
2부 위기의 로맨스
6 도시 남녀의 합류적 사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7 로맨스 영화의 고전적 규범을 전복하다: [유브 갓 메일]
8 사랑의 코드로 사랑을 창조할 수 있을까: [사랑을 카피하다]
9 열정이라는 재난: [아사코]
10 성적 환상이 낭만적 사랑과 공존할 수 있을까: [체실 비치에서]
11 오직 ‘너’를 향한 사랑: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겨울 이야기]
3부 낭만적 사랑의 정치적 확장
12 낭만적 사랑이 만드는 선의지: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13 응답하는 사랑이 형성하는 삶의 존엄성: [셰이프 오브 워터]
14 사랑은 어떻게 사람을 정치적으로 만드나: [지미스 홀]
15 땅에 붙들린 사랑의 우주적 궤적: [일 포스티노], [네루다]
에필로그: 사랑의 마법과 영화 놀이
주
저자
김호빈 (지은이)
출판사리뷰
1. 로맨틱 코미디의 여제 노라 에프런의 영화부터
퀴어 로맨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까지,
영화사에 빛나는 로맨스 작품 19편으로 읽는 사랑의 인문학
현대 사회의 여러 구조적 조건은 ‘낭만적 사랑’을 불안정하게 한다. ‘영원하고 유일한 사랑’은 누구도 믿지 않는다. 사랑이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 사랑에 대한 불신은 모순을 해결하고 분열을 통합하는 사랑의 가능성에 의혹을 품는 것이기도 하다. 낭만적 사랑과 궤를 같이하는 ‘로맨스 영화’ 역시 위기다. 비극적으로 좌절되는 사랑을 그리는 멜로드라마와 달리, 로맨스는 감동적인 해피엔딩을 통해 사랑과 도덕이 화해하는 좋은 삶의 그림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개인적인 사랑과 소박한 선의로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은 고전 로맨스 영화의 규범은 오늘날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냉소의 시대에도 기어이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로맨스 영화의 숙명일 터. 그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맨스 영화는 사랑에 관한 인문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을 둘러싼 현실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사랑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영화사에 빛나는 19편의 로맨스 영화를 읽으며, ‘낭만적 사랑’의 위기가 어떻게 영화에 반영되는지, 오늘날 정치사회의 쟁점들과 로맨스 영화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사랑 자체에서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규범을 끌어낼 수 없는지를 본격 탐구한다.
2. 사랑을 사유해온 인문학과 로맨스 영화의 적극적인 대화
니클라스 루만, 울리히 벡, 앤소니 기든스, 에바 일루즈, 지그문트 바우만 등 현대성을 규명해온 학자들은 특히 ‘사랑’에 주목했다. 사랑이 단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현대성을 관통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노라 에프런, 에리크 로메르, 리처드 링클레이터, 켄 로치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저마다 사랑에 관한 독특한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사랑의 위기에 대한 그들 각자의 영화적 말 걸기였던 셈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랑을 사유해온 인문학과 로맨스 영화의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한다.
* 이 책의 내용
많은 여성은 자립하는 삶을 위해 분투하면서도 낭만적 사랑을 꿈꾼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참조할 만한 ‘여성주의적 로맨스’일 것이다. 문제는 『성의 변증법』을 쓴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남성 권력의 원천이 바로 여성들이 주는 ‘사랑’이라고 말했듯, 여성주의와 로맨스(영화)는 공존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잔과 폴린 두 여성의 14년에 걸친 사랑과 우정에 관한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7, 아녜스 바르다 감독)를 통해, 환상이 아니라 현실에 착지한 여성주의적 로맨스의 가능성을 엿본다. 여성주의와 로맨스의 만남처럼 오늘날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쟁점들과 로맨스 영화는 어떻게 조우할까? 1부 ‘오늘날 사랑의 풍경’에서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셀린 시아마 감독), [아워 바디](2018, 한가람 감독), [더 랍스터](2015,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와 [토니 에드만](2016, 마렌 아데 감독)을 읽으며, 성소수자의 사랑을 그리는 로맨스 영화들이 최근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사랑을 꿈꾸기 어려운 오늘날 청춘들의 몸은 어떻게 욕망을 발산하는지, 신자유주의적 경쟁사회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살펴본다.
2부 ‘위기의 로맨스’에서는 강렬한 열정 대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서서히 스며드는 사랑을 그린 노라 에프런의 로맨틱 코미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롭 라이너 감독), [유브 갓 메일](1998) 두 편으로 감정의 ‘기브앤테이크’이자 “새로운 정체성을 협상해가는” 현대의 합류적 사랑을 논한다. 노라 에프런의 ‘안전 운행 로맨스’는 분명 합리적이지만 한쪽이 손해를 본다고 느낄 때 협상은 중단될 위험이 있다. 또 다른 위협도 있다. ‘열정’과 ‘섹슈얼리티’는 ‘낭만적 사랑’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지만, [체실 비치에서](2017, 도미닉 쿡 연출)와 [아사코](2018, 하마구치 류스케 연출)에서는 오히려 그것들이 사랑을 위협하기도 한다. 저자는 그런 위기를 해소할 사랑의 형태를 그린 영화로 에리크 로메르의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969)과 [겨울 이야기](1992)를 제시한다. 또 사랑에 대한 영화적 질문인 [사랑을 카피하다](2010,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궁극적으로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미드나잇](2013)에서 동거 커플 제시와 셀린이 감정싸움을 하는 것은 사회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가사와 육아에 대한 갈등은 단지 부부간 역할 배분의 문제가 아니라 과중한 직장 업무, 공적 복지의 약화와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내면의 밀실 같지만 거기에 사회구조가 응축되어 있다. 2부에서 본 합류적 사랑은 연인들의 감정에 압축돼 있는 세계의 실상은 간과한다. 3부 ‘낭만적 사랑의 정치적 확장’에서는 비포 3부작([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지미스 홀](2014, 캔 로치 감독), [일 포스티노](1994,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 [네루다](2016, 파블로 라라인 감독)를 분석하며, 낭만적 사랑 자체에서 윤리적, 정치적 규범을 끌어낼 수 없는지를 살핀다. 이 영화들에서 “사랑은 윤리와 정치의 원천”이 된다. “내가 ‘너’를 사랑하듯 타인 역시 누군가의 ‘너’로 존재함을, 사랑의 연결망 안에서 이 세계에 무수한 ‘너’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1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