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물리적으로는 얇고 작은 책이
그에 못지않은 큰 이슈를 다루고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그런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책들에 주목해 보고자 한 것이다."
- 박진호 「편집실에서」 중에서 -
포커스 리뷰
스몰 북, 빅 이슈
《서울리뷰오브북스》(이하 《서리북》) 8호의 특집 주제는 ‘스몰 북, 빅 이슈’이다.
《서리북》은 지난 5호에서 ‘빅 북, 빅 이슈’라는 주제로 소위 ‘벽돌책’의 서평을 시도했다. 2022년 한 해를 마감하며 《서리북》은 이번에 이 기획을 다소 비트는 주제를 잡았다. 바로 ‘스몰 북, 빅 이슈’다. 세상에 큰 영향력을 주는 것은 비단 크고 무거운 것들만이 아니다. 작고, 가벼워 보이는 것들이 실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는 그리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우리가 이미 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포커스 리뷰’에서는 170여 년 전, ‘공산당 선언’을 외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강령을 들여다보는 김만권, 기후위기의 현실 속에 ‘녹색 계급’이라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에 주목하는 홍성욱, 한국 사회와 그 속의 인간상을 날카롭게 분석한 한병철의 책들을 이행남이 서평으로 살핀다.
목차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실에서∥박진호
포커스 리뷰: 스몰 북, 빅 이슈
왜 21세기에 『공산당 선언』을 읽는가? ∥김만권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 ∥홍성욱
신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자아의 소진과 사물의 소멸 ∥이행남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생명과 더불어 세계 만들기의 이미지―〈고독의 지리학〉 ∥김은주
리뷰
자폐인 변호사라는 실험 ∥장하원
애도와 번역의 퍼포먼스 ∥민은경
노동자가 되기 위한 배움 ∥김원
지능은 태어나야 하는가? ∥이석재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 ∥송지우
우회 말고 정공을 기대한다 ∥김두얼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 ∥조문영
만물유전 ∥권석준
공부법과 교육의 다른 점 ∥박대권
디자인 리뷰 키트, 능동적 혹은 경제적 읽기의 가능성 ∥구정연
BOOK&MAKER: 출판의 낭만과 일상
리스트 만드는 마음 ∥김수현
문학
소설을 책으로 배웠어요∥이기호
여러분, 번역하지 마세요∥조영학
신간 책꽂이
지금 읽고 있습니다
저자
김만권, 홍성욱, 이행남, 김은주, 장하원, 민은경, 김원, 이석재, 송지우, 김두얼 (지은이),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부 (엮은이)
출판사리뷰
“계급의 정치는 21세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선언문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가?” 김만권은 「왜 21세기에 『공산당 선언』을 읽는가?」라는 서평에서 170여 년 전 세상에 울려 퍼진 『공산당 선언』의 의미를 다시 좇는다. 그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사라진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에 이 선언의 의미가 어떻게 재창조되어야 하는지 묻는다. 디지털 시대, 전 지구적 시장의 상황에서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넘어 젠더, 비인간, 자연 등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짚는다.
“지금 당장 녹색 계급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홍성욱은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에서 브뤼노 라투르와 니콜라이 슐츠의 『녹색 계급의 출현』을 들여다본다. 라투르가 평생 치열하게 연구?고민하며 형성해 간 그의 사상을 책 속 ‘녹색 계급’을 통해 살펴보고, 더 이상 “지구공동체가 직면한” 큰 위기를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되기 전에 막아보자고 책의 목소리를 빌려 외친다.
“오늘날의 ‘주체’는 누구인가? 우리 시대의 주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며 ‘무엇’을 지향하는가?” 이행남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자아의 소진과 사물의 소멸」에서 한병철의 『사물의 소멸』 서평을 썼다. 그는 『피로사회』(2012), 『투명사회』(2014) 등으로 한국 사회의 세태와 인간상을 냉철하게 분석?비판한 한병철의 사상을 높이 사면서도, 어떤 면에서 현재 ‘후기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주체’로 호명된 이들이 그려 나가는 연대, 공동의 실천 등을 간과한 진단은 아닌지 문제 제기한다.
리뷰: 책으로 세상을 보다
『리뷰』에서는 《서리북》 편집위원을 포함해 각 분야의 전문가 필자들의 시의성 있고, 심도 깊은 서평들이 이어진다.
장하원은 「자폐인 변호사라는 실험」에서 올해 화제가 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대본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 2』의 서평을 썼다. ‘자폐인도 직업인으로서 변호사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대본을 써내려 간 저자의 질문에 드라마가 아닌,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답을 찾는다. 다소 엉뚱하고 귀엽지만, 무해한 ‘우영우’라는 캐릭터와 ‘변호사’라는 직업 세계가 드라마 속 판타지로 남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자폐인도 장애인도 현실 사회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점이 무엇인지 묻고, 특히 개인보다 사회 구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민은경은 「애도와 번역의 퍼포먼스」에서 앤 카슨의 『녹스』를 읽는다. 이 책은 ‘행방불명’된 오빠를 평생 그리워한 가족들의 슬픔을 담아냈다. 상자에 담겨, 펼치면 “스르르 열”리는 책, 바래고 헤져 삐뚤빼뚤한 모양 그대로를 실은 책, 마치 오빠를 잃어버렸던 그때에 시간이 멈춰 있는 듯, 그리움을 책으로, 예술로 승화한 물성의 독특함을 소개한다.
김원은 「노동자가 되기 위한 배움」에서 천현우의 『쇳밥일지』를 비평한다. 용접공에서 ‘정동노동자’로서 글쓰기 노동을 시작한 저자의 생애를 ‘자기역사쓰기’라는 장치로 살핀다. 아버지 세대의 가부장도, 20대를 향한 평평한 진단도 모두 거부한 저자가 어떻게 정동노동자라는 정체성으로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지 또렷하게 보여 준다.
이석재는 「지능은 태어나야 하는가?」에서 이대열의 『지능의 탄생』 서평을 실었다. ‘지능’과 ‘인공지능’의 차이는 무엇인가? 인공지능은 진정한 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는 독자들이 충분히 던질 만한 질문을 하며, 책에서 어떻게 답했는지 하나하나 쫓아간다. 결과적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번영”을 위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온전한 ‘지능’으로서의 정체성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지능’에 대한 최근의 뜨거운 관심에 부응하는 궁금증과 고민을 설명한다.
송지우는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에서 새뮤얼 모인(Samuel Moyn)의 Humane(국내미출간) 서평을 실었다. 이 책에서 모인은 『인권이란 무엇인가』, 『충분하지 않다』에서의 논쟁을 ‘국제인도법’이라는 영역으로 확장해서 가져온다. 그는 ‘인도주의의 확산이 평화주의의 성장을 막는다’는 모인의 주장에도 전쟁이 종속되지 않았다는 “슬픈 사실”을 지적하며, ‘인도적 전쟁’은 괜찮다며, 더 나아간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진보 진영의 “윤리적 안일함과 상상력의 빈곤”에 씁쓸함을 보낸다.
김두얼은 「우회 말고 정공을 기대한다」에서 『좋은 불평등』의 서평을 실었다. 이 책의 저자는 민 주연구원에서 부원장을 지낸 연구자로, 김두얼은 그에게서 보다 실질적인 문제 제기와 대안이 조금이라도 나왔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표한다. 모든 불평등이 나쁜 것은 아니며, 심지어 상위 계층의 소득이 증가함으로써 나타나는 소득격차의 확대는 ‘좋은 불평등’이라고까지 한 저자의 주장과 그 여정을 비판적으로 살핀다.
조문영은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에서 『플루리버스』의 서평을 실었다. 그는 콜롬비아 출신의 인류학자 아르투로 에스코바르(Arturo Escobar)가 책에서 주장한 “자본주의?제국주의”를 넘어선 “다중의 우주와 세계인” 플루리버스가 가리키는 방향성에 십분 동의함을 피력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존재론적 전환’의 문제 제기가 다소 성급하게 진행되었음을 짚는다. 플루리버스와 디자인이라는, 다소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책의 핵심 개념들을 연결해 주는 구체적인 사람, 사건 등 현장의 모습들이 다소 느슨하게 서술된 부분을 아쉬워한다.
권석준은 「만물유전」에서 『판타 레이』의 서평을 실었다. 이 책은 현실 세계에서 전 방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유체역학’의 역사를 훑으며, 이 과정에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수많은 과학자를 내세우기도 한다. 그는 이 책의 매력으로 다른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패턴들이 ‘유체의 과학사’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는 것을 꼽는다. 저자가 발품을 팔아 실은 풍성한 자료들은 덤이다.
박대권은 「공부법과 교육의 다른 점」에서 『최재천의 공부』의 서평을 실었다. 그는 이 책이 ‘최고의 학자가 제시하는 공부법’을 알려 줄듯 하면서도, 정작 이에 대한 해답은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경복고, 서울대, 카이스트와 하버드대학교 등에서 배우고 가르친 저자의 주장에 ‘범인’들이 과연 얼마나 동의할지 의문이 든다고 말한다. ‘수재 통섭학자’를 따라가기에 벅찬 한국 교육의 현실과 벽도 더불어 지적한다.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매일의 삶으로 빚어내는 이 행위는 묵시록적 냉소가 아니라 여기 지금 우리가 쌓아 올린 두꺼운 현재 그리고 다종의 얽힘에서의 공동 제작인 공생(sympoeisis)에 참여하며 곤경과 함께 머무는 반려종(companion species)의 함께-되기(becoming-with)의 한 시도일 것이다.”
8호 『이마고 문디』에서는 철학 연구자 김은주가 재클린 밀스의 영화 〈고독의 지리학〉을 비평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이 영화는 캐나다 노바스코샤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세이블 섬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에 주목했다. 조이 루커스라는 주인공은 실제로 이 섬에 40년 동안 거주하면서 섬이 지닌 다양한 목소리에 감응한다. 김은주는 루커스가 섬에서 말과 그 분뇨를 관찰하며 얻은 정보나 매년 섬에 찾아오는 바다표범의 일생 등 생태계의 변화에 특히 주목해서 세이블 섬의 고유함을 설명한다. 다소 ‘고독’해 보일 수도 있는 루카스에 대해 그가 주목한 건, 루카스가 섬, 그리고 섬에 머무는 생태계와 맺는 관계이다. 비인간 행위자를 “의인화”하지 않으면서도, 인간-비인간이 얽혀 있는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평한다.
디자인 리뷰
『디자인 리뷰』에서는 구정연이 「키트, 능동적 혹은 경제적 읽기의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디자인 비평을 실었다. 그는 ‘특정한 목적에 필요한 물품 또는 장치로 구성된 하나의 세트’를 말하는 ‘키트’와 그 정신으로부터 새로운 작품 생산의 가능성을 소개한다. 출판사면서 아닌, 완성품을 취급하지도, 제작의 기쁨을 생산자만 느끼게 하지도, 완성도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도 않는, 낯선 ‘프레스 키트 프레스’라는 출판사에 주목해 출판이라는 기존 세계에서 정답으로 요청된 틀을 부수어 간다. 그러나 필자는 키트 역시, 새로운 하나의 틀임으로, 이마저도 더 넓힐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며, 경계를 넘어서는 출판의 다양한 미래를 상상한다.
Book & Maker: 출판의 낭만과 일상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북&메이커』에서는 교보문고의 김수현 MD가 「리스트 만드는 마음」이라는 글을 썼다. 연말이면 서점 MD들이 삼삼오오 모여, ‘올해의 책’ 리스트를 만드는데, 이를 통해 서점 MD들이 지닌 마음과, 이들이 독자들에게서 발견한 책에 대한 어떤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심과 진정성을 담은 추천 책 리스트는 결국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작가, 출판사, 서점인 끝끝내 독자에 이르기까지 ‘책’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된 사람들의 시공간을 채워 가는 연말은 따뜻하다.
문학: 풍성한 읽을거리
소설가 이기호는 「소설을 책으로 배웠어요」에서 소설을 처음으로 배웠던 대학 시절을 회상한다. 소설 창작 수업과 『소설작법서』 등의 책에서 이론적으로 배웠지만 다 소화하지 못했던 소설 창작을 결국 깨달았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것을 잊어버렸던 때였다. 소설가들의 작법서가 실은 작가들의 “고백록”이었음을 깨닫는, 이제는 능숙한 소설가의 에세이는 유쾌하기만 하다.
출판번역가 조영학은 「여러분, 번역하지 마세요」에서 번역가로서의 슬픔을 터놓는다. 들어가는 노동력에 비해 대우나 처우가 ”형편없는“ 한국 출판번역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씁쓸하게 써내려 간다. 번역이 없는 세상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러한 현실이 달라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번역을 말리는 번역가의 속내를 통해 한국 출판번역의 어두운 미래가 엿보인다.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합니다.”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2022년 3월, 창간 1주년을 맞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답을 서평에서 찾는다. 12인의 편집진은 오랜 토론을 거쳐서 주제와 책을 선정하고 서평을 쓴 뒤에, 이를 내부에서 돌려 읽으면서 비판을 듣고, 이를 반영해서 글을 고친다. 타인의 책을 비평하고 비판하듯이, 자신들의 글도 같은 비판의 과정을 거친다.
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2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좋은 책은 무엇인가에서, 좋은 서평은 무엇인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