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팬데믹 시대, 세계의 시인이 전하는
고독과 희망의 언어
팬데믹 시대를 노래한 연시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가 출간되었다.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는 세계 시인 100명과 한국 시인 8명이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이자, 시인들이 같은 장소에 모이지 않고, 각자의 방에서 닫힌 창문을 바라보며 쓴 연대의 증표다. 둘 이상의 시인이 공동 제작한 정형시를 뜻하는 일본의 ‘연가’에서 힌트를 얻은 이 아이디어는 규칙을 줄여 형식을 자유롭게 한 ‘연시’를 그릇 삼아 결과물을 내놓았다. 시인 여럿이 대면하여 창작하던 작업 방식을 팬데믹 시대에 맞추어 온라인으로 대체한 것이다.
프로젝트에는 무려 48개국 108명의 시인이 참여했다. 인종과 언어를 뛰어넘어 확산한 바이러스와 같은 방식으로, 시인들은 신호를 보낸다. 그것은 질병과 고통 신호가 아닌, 고독과 희망의 신호이다. 그 신호가 모여 한 편의 연시가 되었다. 시인들은 와이파이를 통해 각자의 창문을 열고 영혼과도 같은 시의 바통을 잇는다. 그들은 노래한다. 닫혀버린 세계에서의 고독을. 그들은 희망한다. 당신의 문이 열리는 그 순간의 도래를.
목차
여는 말_요시카와 나기 4
권두시_하피즈 13
1부 세계 시인의 연시 14
2부 한국 시인의 답시 216
권말시_안겔루스 실레시우스 234
닫는 말_요쓰모토 야스히로 235
저자
이오아나 모퍼고
출판사리뷰
■ 108명의 세계 시인이 쓴 팬데믹 연시
바이러스의 확산 초기인 2020년 3월, 세계 여러 도시는 봉쇄되었고 사람들은 격리되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루마니아 출신의 시인 이오아나 모퍼고는 세계의 시인들이 코로나 상황에서의 고립과 격리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것을 짧게 써서 이를 연가(連歌)처럼 한 편의 긴 시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같은 해 4월, 페르시아의 시성 하피즈의 시를 서두로 한 연가 프로젝트 ‘AIRBORNE PARTICLES’가 시작되었고, 100편의 시가 모였다. 여기에 한국 시인 여덟 명이 답시를 붙여 한 편의 거대한 연시가 완성된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소환된 시인은 서로를 대면하지 못한 채 이메일로만 시를 주고받았다. 그런데도 시인들은 앞선 시의 상징을 이어받거나, 이미지를 자연스레 전환하거나, 이야기를 진전시키며 한 편의 완결성 있는 연시를 탄생시킨다.
■ 코로나 시대, 격리된 영혼들의 노래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시는 지역과 국적에 상관없이 의연하고 강건하다. 팬데믹 연시 프로젝트 ‘AIRBORNE PARTICLES’는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번역되어 2022년 2월 동시에 출간된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어권에서도 출간이 예정되었다. “airborne particles”를 직역하면 공기 중의 입자다. 그것들은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여기 모인 세계의 시인들과 그들의 시는 기꺼이 비말이 되려 한다. 질병을 옮기는 비말 아닌, 고독의 편린과 희망의 가능성을 퍼트리는 입자가 되려 한다.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는 고독을 겸허히 수용하고, 거기에서 희망을 찾는 작업이다. “고독의 황조롱이가/ 발톱으로”(제100연, 이오아나 모퍼고) 쥐고 있는 희망이 있다면 그리고 문득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 “고독사하지 않는”(제107연, 오은)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이 시절을 함께 견딜 수 있으리라고 108명의 시인과 1편의 연시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