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2020 브램 스토커상, 레이 브래드버리상, 셜리 잭슨상 수상작
★ 2021 알렉스상 수상작
★ 2021 세계판타지상, 로커스상 최종후보작
★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최고의 책
★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베스트셀러
★ 제시 존스상, 브램 스토커상 3회, 이것이 호러다상 4회 수상작가
불안과 공포의 심연을 파헤치는 최고의 호러 걸작
―죽은 이들, 망각한 폭력의 역사는 어떻게 다시 되돌아오는가
미국 평단과 독자를 단숨에 사로잡으며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의 대표작이 된 『엘크 머리를 한 여자』가 출간되었다. ‘혜움이음 문학선’이 소개하는 두 번째 장편소설로, 브램 스토커상, 『LA타임스』 레이 브래드버리상, 셜리 잭슨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렸다.
10년 전 금지된 구역에서 엘크 떼를 사냥한 캐시, 리키, 루이스, 게이브는 치기 어린 젊은 날에서 벗어나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이젠 평온하고 안정된 생활을 해나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진 이들에게 갑자기 ‘엘크 머리를 한 여자’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그 커다란 노란 눈. 그 눈이 네 사람을 어디까지 몰아붙이게 될까.
매 작품마다 뛰어난 상상력으로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는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는 다양한 장르와 주제로 자신만의 글쓰기를 지속하며 그가 사랑하는 호러/스릴러 장르의 지평을 넓혀왔다.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는 『엘크 머리를 한 여자』로 많은 상을 받았으며, 심도 깊은 주제와 치밀하면서도 시적인 문장으로 독자들을 인물들의 공포와 죄의식에 연루시킨다. 이 책은 현대 북미 원주민과 그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직시하지 않은 폭력의 역사가 우리 앞에 어떻게 되돌아오는지 그것을 대면해가는지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걸작이다.
목차
노스다코타, 윌리스턴
붉게 물든 집
스웨트 로지 대학살
모든 것은 자치 지구에서 시작되었다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저자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
출판사리뷰
과거는 나의 가장 큰 공포다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얼마나 오랫동안 대가를 치러야 할까?”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는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이지만, 미국에서는 전미교육협회 연구비 수령인으로 선정되고, 텍사스 문학원에서 수여하는 제시 존스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30여 권의 책을 출간한 북미 원주민/호러/판타지 장르에서 대표적인 작가이다.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는 『엘크 머리를 한 여자』로 2020년 브램 스토커상, 『LA타임스』 레이 브래드버리상, 셜리 잭슨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21년에는 청소년을 위한 알렉스상을 수상하고 세계판타지상 후보에 오르는 등 유수의 문학상 후보에 지명되었다.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강렬하고 압도적인, 초자연적인 존재를 둘러싼 스릴러와 통렬한 사회논평이 조화를 이루어 호러 문학에 깊이를 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는 시즌의 마지막 날, 네 명의 원주민 남성은 그해의 엘크 떼를 사냥할 계획을 세운다. ‘예전처럼’ 마을의 노인들에게 엘크 고기를 선물로 주고 싶다는 치기 어린 계획은 이들이 금기 구역으로 들어가는 순간 위험한 사건이 된다. 눈으로 가득한 새하얀 숲에 총성이 울리고 예상치 못한 살해가 벌어진다. 네 사람은 그 사건을 실수로 묻어두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10년 후, 네 사람 중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두 사람에게 과거의 환영을 닮은 무언가가 찾아온다.
“사람의 것이 아닌 머리를 달고 있는 여자다.
머리가 너무 무겁고 너무 길다.”(77쪽)
너무 무겁고 너무 긴 머리를 달고 나타난 여자, 그 여자는 그들이 죽인 엘크다. 죽은 자는 산 자들에게, 아니 살아 있다고는 하나 깨어나지 못한 자들에게 의심과 두려움, 죄책감과 공포의 얼굴로 나타난다. 완벽한 복수를 위해 ‘너’는 10년이 지나는 동안 그들과 가까운 이들의 모습이 되어, 복수의 화신으로 이들의 삶에 돌아온다.
그들은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차례로 의심하는 상황에 처한다. 루이스는 아내와 동료 중 누가 ‘엘크 머리를 한 여자’인지 찾아내려 하고, 절친한 친구인 캐시와 게이브는 서로를 의심하며 엘크 머리를 한 여자가 파놓은 함정으로 속절없이 빠져든다. 그들의 두려움과 공포는 오랫동안 외면해 왜곡된 채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그 모습을 보게 되는 도착적인 공포로 나타난다. 그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무겁고 긴 머리의 여자가 아닌 것이다. 냉기와 분노 속에서 여전히 자신을 보지 않으려는 ‘나’를 지켜보며, 너-엘크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너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지 않을 것이다. 평생 그는 잘못된 곳을 바라봤다.”(346쪽)
「스웨트 로지 대학살」부터 ‘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너’로 지칭되며 등장한다. 이때의 ‘너’는 엄밀히 말해 이인칭이 아니다. ‘그’와 ‘너’와 ‘그 애’를 동시에 보면서, 과거-현재의 시공간을 포괄하는 이 초월적 서술자의 존재는 이 소설을 사건의 표층 너머로 독자들을 끌고 간다. ‘너’는 그들이 죽인 자가 누구인지 기필코 기억하게 하고 대면하게 한다. 그래서 친구들의 삶의 한 축에는 죄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그들은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금방 그 엘크 머리를 한 여자의 존재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 존재’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피 흘리며 무거운 머리로 걸어오는 자는 나의 부모이자, 친구이자, 자식이며,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며, 내가 되게 하는 ‘너’이다.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가 전해주는 공포는 우리가 대면하지 않으려 하는 것, 구덩이를 파 그 안에 묻어둔 것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순간의 무엇이다. 그때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 참혹한 죽음을 대가로 보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인 것이다. 이 책, 『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그 각성의 순간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공포와 용기라는 두 얼굴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공포와 대결하며 직시하는 진실
“이 소설은 오싹한 스릴러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제거하려는 문화에 적응해나가는 인디언들의 존재론적 위기에 관한 따끔한 논평이기도 하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작품 초반에서 제시되는 두 원주민 남성의 머릿속에 떠도는 신문 헤드라인은 그들의 의식에 묶여 있는 ‘과거’와 ‘사건’, 비밀과 환상이 객관화될 수 있는 장치이자, 스스로 자신의 서사를 쓰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서사화되지 못하는 존재들의 발화 방식으로 제시된다. “그건 그냥 과거가 아니라 루이스가 알고 있는 과거다.”(38쪽) 동시에 헤드라인은 소수인종으로서 미국사회가 원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들이 자조적으로 내면화한 장치이기도 하다.
또 이 작품에는 ‘농구’가 중요한 행위로 등장하는데, 특히 작품 전반에서 살인 게임의 전조처럼 등장한다. 전통적으로 북미 원주민들은 농구와 비슷한 게임을 해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소수인종으로 전락한 이래 NBA에 진출한 원주민은 손에 꼽는다. 그러나 그들은 농구를 즐긴다. 네 친구들 중 게이브는 유일하게 자식을 남겼는데, 그의 딸 ‘파이널 걸’ 데노라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뛰어난 농구 실력으로 학교 대표 선수로 뛰고 있다. 『엘크 머리를 한 여자』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모두 대단한 농구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남성 캐릭터들의 부족한 농구 실력과 대비된다. 그녀의 아버지와 친구들이 지닌 인디언 정체성은, 미국이라는 다민족 연합국가에서 폭력적으로 해체되었으나 새로운 문화와 정체성을 생산하는 데로 나아가지 못했을뿐더러, 지속시키지도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인 데노라는 백인 관중들이 불러대는 “좋은 인디언은 오로지 죽은 인디언뿐”이라는 노래를 듣고서도 공을 쥐고 있다. 단호하고 전투적인 그 자세는 아버지들에 맞서 있다. 데노라는 농구 코트에서 두 세계와 대결하는데, 그들을 억압하는 미국 사회와 그들(그의 아버지)이 학살한 엘크의 분노다. 그녀는 어느 쪽에도 등을 보여줄 수 없었고, 오직 연습과 연습을 통해 이겨내려고 한다. 그래서 데노라는 코트에 선다.
“덤벼 봐, 데노라는 머릿속으로 중얼거린 뒤 골대를 향해 또다시 공을 던진다. 좋은 인디언은 오로지 죽은 인디언뿐이라면 자신은 최악의 인디언이 되리라.”(276쪽)
호러는 극단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통해 경직된 사고를 깨부수고, 새로운 가능성을 확장한다. 『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엘크 머리를 한 여자’라는 불가해한 인물과 직면하는 공포를 작품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시에 미국의 원주민들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부딪치고 있는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억압의 층위를 일깨운다. 역사에 남았던 폭력의 흔적이 희미해졌을지라도,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기하며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땅 밑에 숨어 있다가 결국에는 기어 올라오는 것이다. 죽임당한 이의 귀환은 우리가 딛고 선 역사이며 기억인 동시에 현대 미국 사회에 끼인 존재인 원주민 그 자신으로 제시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폭력의 고리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데노라는 선조들에게서부터 그녀에게로 이어지는 유산 속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는 숨막히는 복수극을 통해 그들이 걸어갈 새로운 길을 이야기한다. 그 복수극이 정말로 멈추길 바란다면, 우리가 대면하지 않으려 했던, 구덩이 안에 묻어둔 것이 돌아와 우리를 덮치는 순간, 공포와 직면해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