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존 스타인벡, 로버트 카파 두 거장의 만남
1947년 7월, 2차세계대전 종전 후 냉전이 형성된 시기, 미국에서 소설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과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Robert Capa)는 『뉴욕 헤럴드트리뷴』 신문에 기고를 위해 함께 소련으로 출발한다. 이들은 이 기회를 통해 모스크바와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캅카스 시골 지역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들이 이 여행에서 주목한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정치 담론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취재하는 것이 이들의 방문 목적이었다. 바로 “사진이 들어간 소탈한 보도를 하기로 하고,” “크렘린, 군인, 군사 계획 같은 것 근처에도 가지 않으며,” “가능하다면 러시아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로” 한 것. 소련에서 두 달간의 체류를 마치고 스타인벡은 노트에 수백 페이지의 기록을, 카파는 약 4천 장의 사진을 갖고 돌아온다. 이듬해인 1948년 4월, 정리된 이 기록은 『뉴욕 타임스』의 극찬을 받으며 『러시아 저널(A Russian Journal)』로 세상에 발표된다. 『러시아 저널』은 종전 소련 전반에 대한 유일무이한 문학적, 시각적, 역사적 기록이 된다.
목차
옮긴이 서문
1 여행 준비
2 러시아 입국
3 모스크바 체류
4 우크라이나 여행
5 우크라이나 집단농장
6 스탈린그라드 방문
정당한 불평―로버트 카파
7 조지아 트빌리시
8 조지아 여행
9 모스크바 마지막 여정
편집 후기
저자
존 스타인벡, 로버트 카파 (지은이), 허승철 (옮긴이)
출판사리뷰
이방인의 눈으로 포착한 전쟁의 참상과 그곳의 사람들
2차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지로 끊임없이 회자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대표적으로 말해주듯, 러시아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광활한 땅이다. 특히 2000년대에도 가열된 2008년 그루지야(조지아) 전쟁, 2022년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인 러시아 전쟁사를 뼈아프게 보여준다. 이 책 『러시아 저널』은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비추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맞추는 특별한 기록이다. 따라서 존 스타인벡과 로버트 카파가 생생히 증언하는 전쟁의 폐해는 70여 년이 지났지만, 자연스레 지금 이곳의 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게 한다.
“2차세계대전으로 철저히 파괴된 우크라이나 키예프시와 주변 집단농장을 방문한 부분을 읽다 보면 우크라이나 농민들의 전쟁 복구 의지와 강인한 생명력에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쟁으로 인해 마을에 청년들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나마 살아 귀환한 젊은이도 불구자가 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운 모스크바와 비교해도 낙천적인 분위기와 손님 환대,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모습이 진지하면서도 탁월한 유머로 잘 묘사되어 있다.”―「옮긴이 서문」
스타인벡과 카파는 여행 취재에 앞서 원칙을 세운다. 그것은 바로 주관적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보고 들은 것을 솔직하게 그대로 적자는 것. 그 결과, 이들의 기록은 당시 미국과 소련 사이 이념적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에 대한 다른 서구 보도와 달리 이념적 집착이 없는 진실된 저널리즘의 모습을 성취한다. 스타인벡과 카파는 2차세계대전의 폐허에서 나온 공장 노동자, 공무원, 소작농의 암울한 현실을 보도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독자는 인간의 투쟁을 기록해야 하는 세상의 요구에 진지하게 답하면서 동시에 “러시아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이들의 친밀하고 우정 어린 모습을 엿보게 된다.
『러시아 저널』이 지금까지 특별히 기억되는 것은 이방인의 눈으로 담은 기록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2차세계대전의 가해자 독일이나 피해자 소련이 아닌 제3의 눈, 미국인의 관점을 제공해준다. 특히 스타인벡과 카파가 여행 전 다짐했던 순수한 눈, 즉 “부정적이거나 호의적인 선입견을 갖지 않기로” 한 눈으로 바라본 러시아의 사회와 생활상을 전달해준다. 자신들이 만든 폐허를 지나는 독일군이나 폐허를 재건하는 일에 동원된 독일 포로들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것과 매일 공원의 아버지 묘지를 찾아오는 스탈린그라드의 어린 소년을 연민도, 감상도 배제하고 볼 수 있는 눈이 그것이다. 그 눈은 단지 사실을 말한다.
각각의 도시에서 목격한 참상의 광경도 중요한 역사적 사료이다. “독일군들이 수천 구의 시체를 갱도에 쏟아 넣어서 갱구를 열 수 없는 광산들이 있을 정도”라고 진술하는 우크라이나 여행 대목은, 2022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비추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문장으로 부활한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변변한 농기계도 없이 맨손으로 땅을 일구고, 도시 재건을 위해 벽돌을 일일이 옮겨 건물을 짓고 있었다.
2차세계대전 가장 처참했던 격전지 스탈린그라드의 상황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집이 다 무너져 동굴 같은 돌 더미 속에 살면서도 아침이면 깨끗하게 단장하고 출근하는 스탈린그라드 사람들, 땅굴에서 기어 나와 끼닛거리를 찾는 미친 소녀, 손수 아파트를 짓는 노동자들 등 스타인벡과 카파의 시선은 한결같이 전쟁의 참상 보도와 함께 이를 극복하고 평범한 일상에 복귀하려는 그곳 사람들의 꿋꿋한 삶의 의지를 담아낸다.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던 조지아지만, 조지아 여행은 그저 행복한 시간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수도 트빌리시를 경유하여 곳곳에서 발견되는 여러 고대 요새와 좁은 협곡들은 과거의 전쟁과 침략을 상기시키는 의미심장한 요소들이다. 조지아의 차밭 인근 탁아소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고아는 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당시 조지아가 전쟁이 지나간 나머지 소련 지역에 책임감을 느끼고 아이들을 입양했다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조지아에서 또한 전쟁의 여파를 본다.
자유롭고 진실된 저널리즘과 전쟁보다 강한 휴머니즘
“우리가 키예프에 머무는 시간이 끝났고, 우리는 모스크바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곳 사람들은 너무 따뜻하고, 너무 친절했고, 너무 마음이 너그러웠다. 우리는 이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적이고, 잘 웃고, 유머 감각이 있었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뼈를 깎아가며 새 집을 짓고, 새 공장을 짓고, 새 기계를 만들고, 새 삶을 만들어갔다. 이들은 여러 번 우리에게 말했다. “몇 년 뒤에 다시 와서 우리가 만든 것을 보세요.””―「5 우크라이나 집단농장」
이 같은 보도 외에도 모스크바 정도 800주년 행사, 볼셰비키 혁명 30주년 행사 준비와 스탈린그라드의 트랙터공장, 우크라이나의 빵공장 등 전쟁 뒤 재건을 향한 소련의 모습은 당시 시간이 깃든 귀한 역사적 사료들이다. 스타인벡과 카파를 재우고 먹이는, 하나뿐인 아들을 전쟁으로 잃은 우크라이나 가족이나 독일군의 침입을 피해 악보와 그림, 피아노를 피신시켜둔 차이콥스키 생가 박물관 관리인이자 차이콥스키 조카의 일화는 러시아인들의 삶, 다른 세계의 모든 사람과 다를 것 없는 이들의 일상을 밀착해서 보여준다. 이것은 발레를 관람하고, 학교에 가고, 클럽에서 춤을 추며, 소중한 가족 앨범을 자녀들과 같이 바라보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이러한 시선이야말로 “우리는 러시아 사람들도 세계의 모든 다른 사람들과 같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겠다. 나쁜 사람도 그곳에 분명히 있지만, 훨씬 많은 사람이 좋은 사람들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인간에 중점을 둔 보도를 뒷받침한다. 미-소 관계가 첨예해지던 냉전 시기, 미국의 저명한 소설가와 사진가의 증언은 여전히 울림을 준다.
『러시아 저널』에는 로버트 카파의 글 1편과 사진 70컷이 실렸다. 당시 어렵게 검열을 통과해 세상에 공개할 수 있었던 그의 사진은 여전히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우크라이나의 파괴된 거리, 스탈린그라드 들판의 불발탄 등 전쟁의 유산을 추적하는 한편, 카파의 사진은 모스크바의 백화점 사람들, 강에서 노는 아이들, 우크라이나 집단농장의 여성들과 소년, 조지아에서 성대한 만찬의 연회 등 역시나 러시아 일상 모습에 그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때의 시공간과 사람들은 그의 사진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전 우크라이나 주재 한국대사이자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허승철 교수의 번역이다. 구소련권 전문가의 소련 여행기 번역이라는 점에서, 소련의 실상에 정통한 원문 해석과 주석들을 자부한다. 스타인벡이 이방인의 눈으로 소련을 보았던 경험을 소련 말기 모스크바를 처음 방문하여 똑같이 느꼈던 번역자의 문장 또한 그 공감의 깊이가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