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뤽 다르덴 에세이
“이 책을 쓰면서 제가 겪고 성찰해본 것이 저희 형제의 영화를 사랑해주는
한국 독자들에게 저희 영화 전반을 보는 새로운 시각,
또 다른 앵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한국어판 서문」
『인간의 일에 대하여(Sur l’affaire humaine)』는 벨기에 출신의 영화감독 뤽 다르덴의 에세이이다. 뤽 다르덴은 영화 〈로제타(Rosetta)〉, 〈더 차일드(L’Enfant)〉로 칸영화제에서 두 차례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형 장 피에르 다르덴과 함께 ‘다르덴 형제’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관계에서의 소외, 실업, 빈곤, 여성, 이주민 등 사회적 문제를 영화에서 꾸준히 심도 있게 다뤄왔다.
이 책은 뤽 다르덴이 2011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의 두 주인공 시릴과 사만다에 대해 생각하며 2007년 5월부터 틈틈이 적은 글을 모은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은 소년 시릴과 그를 엄마처럼 품어주는 여인 사만다라는 두 인물에 대한 성찰이다. 저자는 “홀로 남겨진 소년에게 삶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존재 자체가 파괴되는 폭력을 경험하고도 소년은 어떻게 똑같은 폭력의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는지 이해하고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책의 제목 “인간의 일”은 결국 “신의 일”, 신의 탄생에 대한 일이다. 그것은 신의 죽음으로 홀로 남겨진 우리 인간들, 유한한 존재들, 수천 년 동안 이어졌던 신의 위로 없이 살아가려 노력하는 우리들의 일이기도 하다. 니체가 신의 죽음을 선언한 이후, 우리 인간은 신이 주던 위안을 잃어버린 채 어떻게 죽음을, 삶을 감내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죽는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이 감각을 파헤친다. 인간에게 삶은 공포 그 자체이고 그런 세상에서 만나는 타자는 제거해야 할 위협이 된다. 이 주제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사유는 제자리를 맴도는 듯하면서도 조금씩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곳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뤽 다르덴 작품 목록
옮긴이의 말
편집 후기
저자
뤽 다르덴 (지은이), 조은미 (옮긴이)
출판사리뷰
‘작고 연약한 존재’에 다가가기
책은 12개의 짧은 장으로 구성된다. 제목 없이 이어지는 글들은 단순하면서도 비장하게 다가온다. 처음 세 장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출생 과정에서 절대적인 분리를 경험하는 두려움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새로 태어난 인간은 외부 세계를 거부하기 위해 자신을 가두길 원하게 된다. 저자는 다음 장에서 파괴함으로써만 달랠 수 있는 존재의 고통을 위로해주는 것은 생물학적이든 아니든, 여성이든 아니든, 어머니라는 존재의 절대적인 사랑임을 강조한다. 이어지는 장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살인적인 증오심을 없앨 수 있는 이러한 사랑에 대해 채워진다. 타인에 대한 이 무한한 사랑 덕분에 사람은 두 번째 다른 사람, 세 번째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게 된다.
“타인에게, 나와 비슷한 존재에게 그저 도움을 구하며 유한한 존재로서 갖는 이 고독을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관계를, 말하자면 나의 개별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죽음 앞에서 느끼는 끔찍한 고독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이 놀랍고도 생생한 관계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1장」)
“우리는 “서로에 의한” 존재일 것이기에 “서로를 위한 존재”일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윤리학은 일종의 인류학이므로, 우리는 우선 “서로에 의한 존재”, 즉 다른 인간의 무한한 사랑에 의한 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서로를 위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장」)
“나의 공포, 극심한 두려움을 달래주는 타자는 내게 무슨 말을 할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죽지 않아. 내가 너를 죽음에서 구할 거야. 너에 대한 내 사랑은 죽음을 초월해. 너를 위해 죽을 수 있어. 너를 너무도 사랑해서 너 대신 죽을 수 있어. 이제 죽음은 더 이상 네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야.” (「7장」)
철학을 전공한 뤽 다르덴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동안 이타성의 철학자 레비나스를 읽고 또 읽었다. (…) 인간의 얼굴에 대한 레비나스의 글에서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레비나스를 통해 생각하기, 그리고 영화로 생각하기는 모두 하나의 장면과 마주하는 일이다. 그것은 바로 얼굴과 얼굴이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이다.” 그동안 다르덴 형제의 작품들이 보여준 면면을 보면, 그가 타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강조한 레비나스의 사상에 매료된 건 당연해 보인다. 처음 자신의 에세이를 모은 이 책에서 뤽 다르덴은 여전히 유효하고, 진행 중인 질문들을 끝없이 던지며 다르덴 형제 영화관(映畵觀)에서 출발한 철학적 사유를 더해간다.
“내 두려움을 달래줄 너의 시선은 어디에 있는가?”
“다르덴 형제는 초기 작품부터 지금까지 줄곧 빈곤, 실업, 소외, 차별 등의 사회 부조리를 삶과 죽음, 사랑과 용서, 공감과 연대라는 인류 보편의 틀 안에서 다루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서로를 나누는 ‘관계 맺기’만이, 서로를 인정해주는 ‘함께하기’만이 힘겨운 현실을 견뎌내는 길이라 역설하고 있다.” -「옮긴이의 말」에서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구체적이면서도 매우 세련된 접근 방식으로 영화적 미학과 내러티브를 새롭게 해왔다. 그것은 지극히 인간을 향한 시선을 담은 다르덴 형제 영화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영화에서 숭고하게 표현된 그들의 타자성에 대한 철학은 뤽 다르덴의 에세이 『인간의 일에 대하여』에서도 계속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삶과 죽음, 책임과 용서 등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주제의 핵심을 뤽 다르덴의 글쓰기와 사유로 파헤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을 비추는 빛이기도 하다.
마침내 우리는 〈자전거 탄 소년〉의 두 인물 시릴과 사만다를 다시 돌아본다.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었던 소년이 겪었을 고통과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게 해준 절대적 사랑의 관계를 재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영화 〈자전거 탄 소년〉이라는 한 작품에서 시작되었고, 동시에 ‘인간의 일’을 바라보며 걸어온 영화감독 다르덴 형제의 삶과 인간을 향한 시선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는 2022년 칸영화제 75주년 특별상 수상 작품 〈토리와 로키타(Tori et Lokita)〉가 한국에서 첫선을 보이는 2023년 5월,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예술은 인간의 고통을 표현한다. 표현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예술 작품을 볼 때마다 우리는 놀라운 공감의 능력을 되찾거나,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함께 나누거나, 인간적인, 그토록 인간적인 공통의 무기력을 발견한다. 죽는다는 두려움, 타자의 무한한 사랑, 타인을 위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1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