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눈을 감고 저희가 쓴 글을 들어보시겠어요?
당신에게 그 장면을 선물할게요, ‘눈에 선하게’
“뭉클하고, 몽글몽글하다. 감동과 설렘으로 다가온 책.”
― 김예지 (시각장애인 국회의원, 피아니스트)
볼 수 없는 이들과 함께 세상을 보기 위한,
화면해설작가 다섯 명의 치열한 고군분투기!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을 위해 세상을 글로 그려내는 사람들이 있다. 볼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화면해설작가’가 그들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영화나 드라마 등 화면 속 등장인물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대사 없이 처리되는 여러 정보들을 ‘들리는 말’로 전달받는 일이 필요하다. 그들에겐 ‘눈에 선한 것을 귀에도 선할 수 있도록, 눈으로 보는 것을 귀로도 볼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화면해설작가들은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 화면을 해설하는 원고를 쓰고, 작가들의 글은 성우들의 목소리에 실려 시각장애인들에게 전달된다.
『눈에 선하게』는 10여 년 동안 함께 ‘보는’ 세상을 꿈꾸며 이와 같은 작업에 매진해 온 다섯 명의 베테랑 화면해설작가가 쓴 고군분투기다. 이 책은 화면해설 분야의 학술서 또는 실용서가 아니다. 업계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작가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직업적 수기다. 볼 수 없는 이들에게 ‘한 편의 멋진 그림’으로 기억되어야 할 글쓰기란 무엇일까? 그들의 일은 장르와 소재, 작품의 맥락에 따라 어떤 문법을 지닐까? 장애인의 미디어 접근성 이슈는 왜 유보될 수 없는 가치인가? 그들은 왜 오늘도 밤을 새우고 있는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화면해설은 그저 ‘좋은’ 일 정도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이 일이 정확하게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시각의 한계를 언어화된 소리로 극복하는 그들의 업은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탁월함, 예술성을 요구한다. 이것이 시각장애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글쓰기가 지닌 감성과 표현력에 열광하고 환호하는 비시각장애인 시청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이유다. 그들의 손을 거쳐, 영상 속의 장면들은 한 편의 시(詩)처럼 문학적으로 압축된다. 그들의 작업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것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장애 유무를 떠나 아름답고 뛰어난 무언가를 알아보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는 이렇게 한 걸음씩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조사 하나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고, 가장 정확한 표현을 찾기 위해 10년 넘게 머리를 싸매는 화면해설작가의 작업실 너머로. 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고치고, 또 다시 쓰고 있는 그들의 교정지 너머로.
목차
프롤로그: 볼 수 없는 이들과 함께 본다는 것
1부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는가
1장 | 여전히, 나는 ‘들려주는 사람’입니다
2장 | 가족이 들려주는 것처럼 세상을 전하진 못하더라도
3장 | 그 소리들의 아름다움
4장 | 노을과 눈보라를 당신에게 꼭 전하고 싶어서
5장 | ASMR, 눈을 감고 감상한다는 것
6장 | 이것은 ‘이상한’ 방송이 아니라고요
7장 | 우리가 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닙니다
8장 | 청각은 힘이 세다
9장 | 모든 사람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2부 세상을 들려준다는 것의 의미
1장 | “오늘은 키스도 좀 적당히 해….”
2장 | 로맨틱한 언어에 가슴이 뛰는 사람들
3장 | 폭포라고 다 같은 폭포는 아니니까
4장 | 내가 느낀 것을 당신도 느끼기를 바라며
5장 | 그 노랫말을 함께 듣고 싶기에
6장 | 당신의 맥커터가 되지 않기 위하여
7장 | “여자는 남자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8장 | ‘착 달라붙는’ 표현을 쓰기 위하여
9장 | “한 술 크게 떠서 한입에 와앙!”
10장 | 예능 출연진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11장 | 그리고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3부 당신과 그 모든 걸 나누고 싶어서
1장 | 너와 함께 〈전우치〉를 감상하는 일
2장 | ‘나래코기’를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3장 | 영화 〈벌새〉: “은희는 혼자이지만, 한결 편안해 보인다.”
4장 | 끝없이 변신하는 ‘로봇’을 들려준다는 것
5장 | 영화 〈신과 함께〉: ‘지옥’을 당신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6장 | 영화 〈미나리〉: 호평과 찬사 사이에서
7장 | 〈쇼다운〉, 그러다 녹다운(knockdown)
8장 | 빌라 그리말디, 평화를 글로 전달하기
9장 |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구씨는 나를 일하게 하고, 창희는 나를 쉬게 한다
10장 | 당신에게 덕수궁 석조전을 들려줄게요
11장 | 누군가는 볼 수 없는 ‘천만 관객’ 흥행 영화
4부 화면해설이란 일이 그토록 매혹적인 이유
1장 | 내가 꼭두새벽에 시청률을 확인하는 이유는
2장 | 밤을 새우는 건 정말 괴로울지라도
3장 | 호기심과 ‘덕심’은 나의 힘
4장 | 쮸쮸바를 쮸쮸바라고 하지 못한다면
5장 | ‘10분’이라는 시간에 관하여
6장 | 그 성우의 아름다운 목소리
7장 | 홍어의 X에 관하여
8장 | 좋은 콘텐츠는 넷플릭스에만 있는 건 아닐 테니
9장 | 바닷가에서의 〈동행〉
저자
권성아, 김은주, 이진희, 임현아, 홍미정 (지은이)
출판사리뷰
‘볼 수 없는 이들과 함께 본다는 것’의 의미는?
눈에 선한 것을 귀에도 선하게
눈으로 보는 것을 귀로도 볼 수 있게 하는 일,
그 업에 매진하는 ‘화면해설작가’의 이야기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글로 그려내고 있는가?
“화면해설작가들의 내밀한 세계를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합니다”
‘화면해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몇 년 사이에 이 단어를 들어보고 알게 된 사람도 많이 늘어났지만, 아직은 잘 모르는 사람 역시 많을 것이다. 현재 장애인의 방송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원 방송 내용을 보완하는 방송이 몇 가지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중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자막·수어 방송이 만들어지고 있고,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는 화면해설 방송이 만들어진다. 화면 오른쪽 하단 작은 동그라미 안에서 수어통역사가 설명하는 수어 방송은 이제 시청자들에게 제법 익숙해진 모습 중 하나다. 그러나 화면해설 방송은 수어에 비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낯선 개념인 것은 분명하다.
화면해설이란 ‘시력이 약하거나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하여, TV나 스크린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서비스’를 일컫는다. 영어로는 ‘Descriptive Video Service’(DVS)라고 한다. 즉, 영상 속 장면의 전환이나 등장인물의 표정, 몸짓 그리고 대사 없이 처리되는 모든 화면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 화면해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MBC 〈전원일기〉와 KBS 〈일요스페셜〉의 시험 방송을 필두로 화면해설 방송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 화면을 해설하는 원고를 쓰는 사람이 ‘화면해설작가’다. 그들의 글은 성우들의 목소리에 실려 시각장애인들에게 전달된다.
『눈에 선하게: 세상을 글로 그려내는 사람들, 화면해설작가』는 바로 이 일에 11년째 종사해 온 다섯 명의 화면해설작가가 쓴 직업적 에세이다. 2011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접근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후 이 세계에 입문한 권성아, 김은주, 이진희, 임현아, 홍미정 등 다섯 작가는 자신들의 일에 관한 모든 것을 이 책에 풀어놓았다. 국내에 화면해설 서비스가 최초로 제공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지난 10여 년은 이 업에 관한 무관심과 편견, 그리고 숱한 오해에 맞섰던 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화면해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쓰면 되는 거 아니야?”, “시각장애인들이 TV 보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옆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아?” 등등과 같은 무지한 질문들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자신들의 일을 멈추지 않고 치열하게 계속해오며, 마침내 이 책 『눈에 선하게』를 세상에 내놓았다.
시각 정보를 ‘소리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디테일의 장인들’
시각은 힘이 세다. 우리의 눈은 동시다발의 시각 정보를 무리 없이 받아들인다. 비시각장애인은 눈앞의 화면에서 펼쳐지는 시각 정보를 단숨에 흡수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은 어떨까? 그들에게는 지금 화면 속의 시각 정보를 정리해 찬찬히 들려주는 ‘소리의 언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해설이 들어갈 수 있는 공백의 여지는 크지 않다. 대개 등장인물의 대사와 대사 사이, 혹은 내레이션과 내레이션 사이 10여 초의 짧은 시간에 압축하여 전달되어야 한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시간과 공간,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 그들의 이동이나 동작이나 표정 등등 많은 정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정보를 취사선택해서 정확히 해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면해설작가들의 작업이란 ‘시각을 대신하는 청각적 정보’로 뇌에 감각을 전달하는 글쓰기, ‘세상을 글로 그려내서 들려주는’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1부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는가」에서는 이렇듯 ‘눈에 선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화면해설작가들의 직업적 철학과 그 근본적인 의의, 그리고 화면해설의 세부적인 작업 과정이 독자들에게 제시된다. 자신이 본 것을 누군가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들려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화면해설이란 업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 그래서 그들은 매번 눈을 감은 채 세상을 예리하게 감상하고, 저 노을빛이 ‘붉다’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색을 품고 있음을 알아챈다. 또 어딘가에서 나는 “끼익, 끼익”이란 소리가 누군가에게 자칫 불쾌한 소음으로 들리더라도, 알고 보면 장애인이 힘겹게 휠체어를 끌고 방의 문턱을 넘어가는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고심한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의 숨은 풍경과 숨은 소리들에 눈과 귀를 쫑긋 세우며 그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는다. 그것이 단지 ‘좋은’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믿음을 갖고서. 그것은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단 확신을 갖고서.
그래서 화면해설작가들에게 이 세상은 하나의 깊고 찬란한 디테일이 된다. 내가 느낀 것을 당신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은, 외부의 풍경, 외부의 세계를 가장 주의 깊고 꼼꼼하게 챙겨서 당신에게 들려주려는 의지의 표현과도 같다. 그들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묘사하려고 애쓰고, 로맨틱한 것을 로맨틱하게 그려내려 애쓰고, 세상의 수천 개 폭포를 저마다의 특색 있는 모습으로 그려내려 애쓰고, 세상의 모든 ‘착 달라붙는’ 표현들과 의성어와 의태어들을 수집하기 위해 애쓴다. 그것은 하나의 ‘장인적인 자세’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책의 2부 「세상을 들려준다는 것의 의미」에서 다섯 명의 작가들은 바로 이러한 엄밀하고 엄격한 작업의 묘미를 보여준다. 그들은 한국민속촌에서 외줄을 타는 장인처럼 화면 속 배우의 몸짓과 눈빛에 집중하고, 예능이나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집착하고, 같은 장면을 수십 번씩 반복해 돌려보며 자칫 놓친 정보나 비문은 없는지를 검토한다.
‘다만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고 또 슬퍼하기 위하여’
화면해설이란 일이 그토록 괴로우면서도 매혹적인 이유는?
우리 영화계의 ‘천만 관객’이란 표현은 이제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여겨진다. 아직도 시청률이 30퍼센트가 넘으면서 대중들에게 동시대의 세련된 감각과 유행을 선사하는 드라마들도 많다. 그러나 어느 영화 관객이 천만이든 이천만이든, 어느 드라마 시청률이 얼마나 높든 낮든 간에, 분명한 건 그 작품을 보면서 ‘함께 기뻐하거나 함께 슬퍼하기 힘든’ 사람들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1,200만이 넘는 관객이 든 영화 〈암살〉을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는 염석진이 일본의 데라우치 총독을 암살하려 레스토랑을 폭파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시작 후 3분이 넘게 총소리와 우당탕거리는 효과음만 들리고, 몇 마디 없는 대사도 오직 일본어로만 채워져 있다. 만약 화면해설이 없다면 시각장애인들은 대체 어떻게 그 영화에 몰입할 수 있을까? 책의 3부 「당신과 그 모든 걸 나누고 싶어서」에서는 이렇게 널리 사랑받는 작품들의 화면해설을 담당한 저자들의 작업 후기와 비화들, 그 작품들을 시각장애인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충만한 의지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눈에 선하게』의 다섯 작가는 업계의 베테랑이고, 그래서 책에서 빼곡하게 펼쳐지는 그들의 작업 리스트는 화려하다. 영화 〈미나리〉, 〈신과 함께〉, 〈한산: 용의 출현〉, 〈벌새〉, 〈헤어질 결심〉, 〈전우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사내맞선〉, 〈갯마을 차차차〉, 〈작은 아씨들〉, 〈D. P.〉, 〈우리들의 블루스〉, 〈스물다섯, 스물하나〉,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등등은 물론이고, 〈쇼다운〉 같은 브레이킹 댄스 프로그램이나 〈지오메카 비스트가디언〉 같은 애니메이션 프로그램, ‘평화’라는 가치를 다루는 진지한 다큐멘터리, 〈미운 우리 새끼〉와 〈런닝맨〉 등의 예능 프로그램, 그리고 ‘덕수궁 석조전’ 등 문화재 해설을 맡은 저자들의 이야기가 쉼 없이 등장한다. 그들에게는 로봇의 변신 과정을 조금 더 잘 해설하기 위해 로봇 장난감을 사서 직접 로봇을 만들어보았던 투지가 있었고, 단 한 줄의 화면해설을 위해 몇 페이지가 넘는 자료를 모았던 열의가 있었으며, 〈미나리〉와 〈벌새〉처럼 호평과 찬사를 받은 작품들을 시각장애인들에게 더욱 잘 전달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던 고뇌의 과정이 있었다. 모두 『눈에 선하게』를 수놓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화면해설작가들이 일하는 업무 환경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이 책의 1부에서 3부까지 자신들의 직업이 지닌 의의와 반짝이는 결과물에 대해 이야기했던 저자들은, 책의 4부 「화면해설이란 일이 그토록 매혹적인 이유」에서 본격적으로 그 일의 고충과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그것은 장애인의 미디어 접근성 이슈와도 통할 수밖에 없는 주제들이다. 화면해설 방송은 지금도 간신히 5~10%씩의 의무 편성 비율만을 맞춘 채 새벽과 심야 시간대에 몰려 재방송 위주로 방영되고, 방송 제작 현실은 비장애인 대상의 일반 방송에 비하여 훨씬 더 쫓기는 편이다. 홀수 회차는 화면해설 제작을 하지 않고 짝수 회차만 제작하는 등 ‘시각장애인들이 도대체 드라마를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라고 분노하게 만드는 관행도 여전하다. 그들은 촉박한 원고 작업 시간에 쫓기고, 시각장애인들의 정보접근성에 제한을 두게 되는 여러 심의 기준에 애를 태우며, 장애인 방송 및 콘텐츠에 대한 열악한 사회적 여건과 인식에 분노한다. 가족과의 여유로운 시간, 계획적인 휴식을 가로막는 강도 높은 노동 조건도 바뀌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이처럼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들은 화면해설이란 일이 그토록 ‘매혹적’이라고 고백한다. 이 업의 여러 괴로움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지만, 자신의 일에서 그것을 뛰어넘는 깊은 보람과 소명감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선하고, 탁월하며, 지극히 예술적인 그들의 능력”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를 향한 다섯 작가의 발걸음
10여 년 동안 화면해설작가로 일해 온 다섯 작가의 책 『눈에 선하게』는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야기, 화면해설 업계의 숨김 없는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화면해설에 관한 학술서나 실용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일을 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삶과 직업에 관해 이토록 진솔하고 내밀하게 풀어낸 책은 지금까지 한 권도 없었다. 물론 작가들도 책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바, 그들은 사회에 ‘봉사’하는 나이팅게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자신의 일을 통해서 돈을 버는 직업인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일과 작업에는 분명 장애인들과 함께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회적 의의와 가치가 있다. 그 가치는 아름답고 소중하다. 그것이 2004년 망막색소변성증 판정을 받고 시력을 잃은 방송인 이동우가 『눈에 선하게』를 읽은 후 “볼 수 없는 이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참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탐구하고, 세상에 전달하려는 작가들의 노력은 제게 길고 긴 사랑 고백으로 느껴졌습니다.”라고 밝힌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책 속에 줄곧 등장하듯 “화면해설이 없는 방송도 본 적이 있는데 화면해설을 듣고 나서 이렇게 재미있는 프로그램인지 새삼 알았습니다.”라고 반복되는 시각장애인들의 피드백도 작가들의 용기를 북돋고 있을 게 틀림없다.
화면해설작가들의 작업은, 그처럼 선한 의의를 품은 동시에 지극히 예술적이기도 하다. 시각의 한계를 언어화된 소리로 극복하게끔 돕는 그들의 업은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탁월함, 예술성을 요구한다. 그래서 선천성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채 태어난 국회의원 김예지는 『눈에 선하게』의 작가들에 부쳐 “눈빛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고, 동작 하나하나에 감정을 불어넣고, 빛깔 하나하나에 소리를 불어넣으며, 멈춰진 시간에조차 역동성을 불어넣는 전문가들”이라고 평했던 것이다. 화면해설작가들의 손을 거쳐, 영상 속의 장면들은 한 편의 시(詩)처럼 문학적으로 압축된다. 이것이 시각장애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글쓰기가 지닌 감성과 표현력에 환호하는 시청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이유다. 어느 작품 속의 장면들을 마치 장인처럼 꼼꼼하고도 입체적으로 ‘텍스트화’하는 그들의 능력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드라마 덕후’들과 ‘영화 덕후’들의 열렬한 주목을 받아나가는 중이다.
“정말 아름답고 동화적인 표현력이다.”, “놀랍도록 설레고 달달하다. 귀가 녹는 기분이다.”, “정말이지 나노 단위로 감성적이다.”, “잠들면서, 걸으면서, 언제 들어도 좋다.”, “돈 주고 살 테니 화면해설 콘텐츠 좀 팔아주세요….” 지금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지금 ‘화면해설’이란 키워드를 검색하면 쉽게 만날 수 있는 감상들이다. 즉, 그들의 작업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것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장애 유무를 떠나 아름답고 뛰어난 무언가를 알아보는 모든 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볼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보기 위해 노력하는 작업, ‘눈에 선한 것을 귀에도 선할 수 있도록, 눈으로 보는 것을 귀로도 볼 수 있게 만드는 일’에 오랫동안 매진해 온 그들의 탁월한 실력에 사람들은 점점 더 귀를 기울이고 있다. ‘배리어 프리’는 어쩌면 한 걸음씩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사 하나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고, 가장 정확한 표현을 찾기 위해 10년 넘게 머리를 싸매는 화면해설작가의 작업실 너머로. 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고치고, 또 다시 쓰고 있는 그들의 교정지 너머로. 권성아, 김은주, 이진희, 임현아, 홍미정 다섯 작가가 『눈에 선하게: 세상을 글로 그려내는 사람들, 화면해설작가』에서 풀어놓은 저 아름답고 진솔한 ‘시간의 빛’ 사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