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외조하는 조선 남자들
조선은 철저한 남존여비 사회,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였을까? 실질 생활 속으로 들어가 조선 시대 사람들이 남긴 일기와 편지 등을 살펴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조선 사회의 한 단면을 마주하게 된다. 살림은 주부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조선이 가부장제 사회였다고?
이 책은 조선 시대 양반가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영위한 남녀 공존의 역사를 찾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이 책의 조사 대상이 조선 시대 양반가 남자로 한정된 데는, 유감스럽게도 현재 남아 있는 자료 대부분이 양반 남자들의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자료의 양은 적지만 그 속에서 발견한 유의미한 부분은, 조선 시대 양반 남자가 집안의 살림꾼이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은 16세기까지만 해도 여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남녀 공존의 시대였고, 이는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이 남자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였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오늘날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요, 정치권력을 기준으로 바라본 또 다른 남자 중심적인 시각이다. 정확한 남녀의 관계, 그리고 전통시대 여성상을 알기 위해서는 집안을 둘러싼 실질 사회에 주목해야 한다.
조선 시대 양반가는 그 규모만 해도 오늘날의 중소기업체와 맞먹을 정도였다. 신발, 옷, 쌀, 술 등 의식주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집안에서 생산했고, 자녀 교육, 질병 치료, 종교 활동도 집안에서 이루어졌다. 그야말로 오늘날의 작은 사회와 같은 곳이었다.
조선 시대의 집안 살림은 크게 안살림과 바깥살림으로 나뉘었다. 음식 장만과 옷 짓기 등 안살림은 주로 여자의 몫이었고, 각종 생계 활동, 재산 증식, 노비 관리 등 바깥살림은 주로 남자가 담당했다. 그밖에도 남자는 정원 가꾸기, 자식 교육, 가족 돌보기 등 정서적인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안팎, 내외로 구분하고 남녀의 역할을 나누는 것은 양성평등의 이념과 어긋나지만, 이러한 내외의 구분은 음양의 구분만큼이나 조선 시대에는 당연한 것이었고, 조선 후기 내외법(內外法)이 강화되면서는 더욱 엄격해졌다. 성리학과 내외법의 강화로 여자의 사회 참여 자체가 금기시되는 풍조가 만연할 즈음에 이른바 ‘외조하는 남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지금까지는 조선 시대의 외조하는 남자를 거의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들이야말로 조선을 대표하는 진정한 남자의 모습일 수 있다. 조선이 가부장제 사회라는 막연한 생각을 여지없이 깨트리는 면면을 이 책을 통해 살펴보자.
목차
시작하며-우리 조상들이 영위한 남녀 공존의 역사
1장 조선 사람의 살림 인식
장가와 처가살이의 나라 / 여자의 경제 주도권 / 조선 남자, 일기를 쓰다 / 남자에게도 당연한 살림 / 남자가 살림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2장 가족을 부양하다
녹봉 / 기타 부수입 / 꼼꼼한 농사 관리 / 농사는 어떻게 지었을까? / 닭을 기르고, 벌을 기르고, 사람도 기르다 / 상업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
3장 음식
음식 / 의복 / 주택
4장 요리하는 남자
최고의 효도, 음식 공양 / 전문적인 남자 요리사 / 장 담그기와 술 빚기 / 남자가 쓴 요리책
5장 재산 증식
재산 증식에 대한 관심 / 토지, 조선 시대의 재산 증식법 / 뽕나무 재배와 원포 가꾸기 / 중요한 살림, 노비 관리 / 노비를 다스리는 법, ‘은위병행’ / 노비, 재산에서 식구로
6장 남녀가 함께한 봉제사 접빈객
봉제사, 가장 중요한 집안 행사 / 남녀가 함께 지내는 제사 / 접빈객, 인심의 척도
7장 조선 시대의 부부 관계
손님을 대하듯 공경하며 / 부디부디 조심하옵소서 / 아내의 바깥 활동을 뒷바라지한 남편
8장 조선의 다정한 아버지상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다 / 자식의 병상일지를 쓰다 / 퇴계 이황의 자식 교육 / 연암 박지원의 자식 교육 / 아버지의 딸 교육
9장 극성스런 손자 교육
최초의 육아 일기 『양아록』 / 퇴계 이황의 손자 교육 / 미암 유희춘의 손자 체벌기
10장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
목숨을 담보로 한 출산 / 출산과 육아 풍속 / 육순 노인이 달리 무엇을 구하겠니? / 산기가 있거든 즉시 사람을 보내소
11장 원예 취미와 정원 가꾸기
꽃을 든 남자 / 연암 박지원의 정원 가꾸기 / 다산 정약용의 정원 꾸미는 법 / 조선의 원예서
12장 외조하는 남자
외조하는 남자 / 미암 유희춘, 아내의 문집을 만들다 / 허균, 누이의 문집을 만들다 / 아전이 기녀의 시집을 간행하다 / 남동생 임정주의 『윤지당유고』 간행 / 남편 윤광연의 『정일당유고』 간행 / 아들 유희의 『태교신기』 번역과 간행 / 남편과 아들과 사위가 힘을 보태다 / 남편 서유본의 『규합총서』 저술 지원 / 양자 성태영의 『정일헌시집』 간행
글을 마치며-한국 가부장제를 재조명하자
저자
정창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