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림으로 기록한 조선 양반들의 일상,
단언컨대, 지금껏 그 누구도 보지 못한, 한국 미술사의 새로운 세계!
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압도적 성취의 등장!
오늘날 우리가 조선시대 궁궐과 왕실의 그림을 익숙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된 데에 미술사학자 박정혜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누구보다 일찍 조선시대 기록화, 궁중회화, 채색화 분야에 관심을 가진 그의 꾸준하고 묵묵한 탐구로 인해 문인화, 수묵화 위주였던 한국 미술의 세계는 한층 확장되었고, 어느덧 궁궐과 관청에서 제작한 다양한 기록화, 아름다운 채색화는 우리 미술사의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되었다. 그런 그가 조선의 양반들이 남긴 이른바 사가(私家)기록화의 세계를 우리 앞에 또다시 펼쳐 보인다.
이미 오래전, 궁중기록화 탐구에 몰두하던 때부터 이미 다음 과제로 염두에 두었을 만큼 그에게 사가기록화는 오래전부터 현재진행형이었다. 한국 미술사의 인기 있는 주제들 사이에서 주로 참고도판으로만 여겨지던 채색화, 기록화 분야에 눈길을 둔 지 어느덧 30여 년, 그는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이 길을 걸어왔으며, 마침내 압도적 성취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한 발 한 발 닦아온 그 길을 통해 마침내 우리 앞에 이전에 보지 못한 한국 회화사의 새롭고 드넓은 세계가 장대하고 아름답게 펼쳐졌다.
목차
ㆍ 책을 펴내며
서장 | 사가기록화 읽는 법
사가기록화, 궁중과 관청의 담장을 넘은 양반가의 기념화 | 그림에 가장 많이 담은 바람, 만수무강의 축원 | 드높은 성취, 입신양명을 향한 소망 | 가문의 안녕과 번성을 위한 염원 | 평생도의 유행과 사가기록화 | 화첩이 선호된 사가기록화 | 영남의 사족과 한양의 경화사족이 주도한 사가기록화 | 사가기록화를 그린 화가들
제1장 |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축하하다_경수연도慶壽宴圖
경수연도, 임진왜란 이전부터 그려지다 | 그림은 사라졌으나 글로써 짐작하는 경수연 풍경 | 17세기, 경수연 그림 제작이 늘어나기 시작하다 |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수연도, 《애일당구경첩》 | 여섯 번이나 치른 경수연 풍경, 《경수도첩》 | 재상가 열 개 집안이 함께 치른 잔치의 기록, 《선묘조제재경수연도》 | 왕의 은혜로 장수를 축하받은 일곱 명의 어머니, 〈칠태부인경수연도〉 | 우애 좋은 형제자매가 서로의 장수를 함께 기뻐하다, 《담락연도》
제2장 | 안석과 지팡이를 내려 국가 원로를 예우하다
_사궤장례도賜?杖禮圖
벼슬에서 물러나길 청하는 신하, 관직에 머물게 하다 | 음식부터 음악까지, 임금이 베푸는 성대한 의식 | 궤장, 시대마다 그 모양이 달라지다 | 임진왜란 이전 사궤장례를 담은 〈홍섬사궤장례도〉 | 임진왜란 이후 부활된 사궤장례, 〈이원익사궤장연도첩〉 | 세 점의 소장본으로 전하는 《이경석사궤장례도첩》
제3장 | 혼인한 지 60년, 다시 치르는 혼례_회혼례도回婚禮圖
조선만의 고유한 풍습, 회혼례 | 부모의 회혼례, 나라가 기꺼이 은전을 베풀다 | 기록으로 만나는 회혼례 | 평범한 처사의 회혼례, 〈요화노인회근도첩〉 | 19세기 유행을 따라 병풍으로 기념한 〈회혼례도〉 8첩 병풍 | 그림으로 보는 회혼례의 시작과 끝, 《회혼례도첩》
제4장 | 한 번 동기는 영원한 동기_방회도榜會圖
조선시대 과거 급제 동기 모임, 방회 | 과거 급제 60년, 장수와 함께 맞는 회방연 | 16세기 방회도 두 점,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와 〈희경루방회도〉 | 방회는 함께 방회첩은 따로, 〈계유사마방회도〉와 〈신축사마방회도〉 | 아버지에 이어 자식도 동기가 되어 남긴 〈세년계회도〉와 〈연계동년계회도〉 | 삼정승에 오른 사마동년, 〈임오사마방회도〉 | 외지에서 어렵게 만난 사마동년, 〈용만사마동방록〉
제5장 | 지방 근무지에서 보낸 나날_부임지 기록화赴任地 記錄?
행렬도에 담은 신관 수령 부임 행차 | 읍성도 병풍에 등장한 새로운 경향 | 관찰사 중의 관찰사, 평안도관찰사 행렬도 | 황해도관찰사 부임 행렬 | 전라도관찰사, 부성 행차를 기념하다 | 병풍에 함께 담긴 경기도관찰사와 그의 백성들 | 화성과 강화, 그리고 거제 읍성도에 그려진 유수 | 동래부사만의 특별한 임무, 일본 사신을 맞이하다 | 평안도관찰사만이 누리는 풍류의 특권 | 도과 급제자를 맞이하는 평양만의 특급 환대
제6장 | 그림으로 기록한 관직의 이력_환력도宦歷圖
제주목사가 남긴 탐라섬 순력의 기록, 《탐라순력도》 | 한 경화사족이 그림으로 남긴 평생의 관력, 《숙천제아도》 | 지도에 담은 외직의 이력, 《환유첩》
제7장 | 국가로부터 이름을 받는 가문의 영광_연시례도延諡禮圖
국가로부터 새로운 이름을 받는 의미 | 기록으로 보는 연시례 기념화의 제작 | 26년 전 세상을 떠난 조상의 연시례를 기념하다, 《효간공이정영연시례도첩》 | 이조판서 이익상의 후손들이 남긴 또 하나의 연시례첩, 《문희공이익상연시례도첩》 | 묘소에서 연시하다, 《문경공문장공양대연시도》 | 그림은 없으나 연시의 전모를 담아 전한 연시록
제8장 | 가문의 이름으로 모은 조상의 행적_가전화첩家傳?帖
같은 듯 다른 사연으로 만들어진 조선시대 가전화첩 | 대표적인 가전화첩, 《의령남씨가전화첩》 | 가전화첩을 석판인쇄로 널리 보급하다, 《대구서씨가전화첩》 | 안동 향반 문중의 가전화첩, 《풍산김씨세전서화첩》 ·풍산김씨를 빛낸 주요 인물들 ·편찬자 김중휴의 가문의식과 《풍산김씨세전서화첩》편찬 ·《풍산김씨세전서화첩》의 화풍과 제작 화가 | 충청도에 입향한 오씨 집안의 가전화첩, 《동복오씨세덕십장》
제9장 | 평생도에 종합된 사가기록화_평생도平生圖
평생도, 사실의 기록 대신 담은 양반 사대부의 염원 | 대표작을 통해 살피는 그림 속에 숨은 뜻 |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자전적 평생도를 남기다 | 평생도에 담긴 사가기록화, 시대에 따라 달라진 그 의미
제10장 | 양반 사대부의 가치와 이상을 그림에 담은 사람들
_ 사가기록화 제작의 두 축
사가의 기록을 그림으로 남긴 사람들 | 학맥과 혈연 공동체, 영남 사족들의 그림 기록 | 한양의 손꼽히는 명문, 경화사족의 그림 기록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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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정혜 (지은이)
출판사리뷰
환갑잔치, 혼인한 지 60년을 기념하는 혼례식, 동기동창 모임, 거쳐온 관직의 이력, 가문의 온갖 영광, 조상의 업적, 평생도에 담긴 양반의 일생……
조선시대 그림 속에 펼쳐지는 조선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
사가기록화는 글자 그대로 개인이 속한 집안 행사나 의례, 혹은 개인의 생애와 관련된 사건 등을 시각적으로 기록한 그림이다. 주로 행사 주인공의 자취를 기념하거나 조상의 업적을 선양하며 나아가 집안의 우수성을 알리고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궁궐이나 관청에서 공식적인 행사를 끝내고 공공기금으로 제작한 공적인 기록의 산물이라기보다 개인 혹은 집안들이 자신의 집안에서 치러진 여러 행사,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싶은 특별한 순간들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는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축하하는 경수연도(제1장), 나라로부터 국가 원로로 예우 받았음을 상징하는 사궤장례도(제2장), 혼인한 지 60년을 기념하는 회혼례도(제3장), 과거 급제 동기 동창 모임의 기념사진 같은 방회도(제4장), 지방의 여러 근무지에서 일했던 기억을 담은 부임지 기록화(제5장), 그림을 통해 관직의 이력을 꼼꼼하게 기록한 환력도(제6장), 세상을 떠난 조상이 국가로부터 이름을 받은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남겨둔 연시례도(제7장), 선대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을 담은 일종의 그림족보 가전화첩(제8장), 평생도에 담겨 있는 양반의 일생(제9장)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사진기가 없던 시절, 조선의 양반가에서 남긴 총천연색 기념물
조선시대 사가기록화는 누가, 왜, 어떻게 그려졌는가
우리에게 이 그림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조선시대 사가기록화는 사진기가 없던 시절 오늘날의 총천연색 사진처럼 기록과 기념의 역할을 했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자랑거리, 대대손손 남기고 싶은 경사 등을 사실적으로 그림 안에 담아두었다. 이 그림들은 한 폭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여러 폭의 그림을 묶어 화첩으로도 만들어졌으며, 때로는 병풍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림을 그린 이들은 개인과 가문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당대 유명한 화원부터 그림을 그리던 후손, 지역의 이름모를 화사까지 그 폭이 넓은 것도 특징이다. 이렇게 다양한 이들이 그린 그림은, 궁중기록화나 관청기록화에 비하면, 그 시대의 양식을 따르기는 하되 하나의 전형에 갇히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그려졌다.
사가기록화는 단순한 사실을 재현한 것에 머물지 않는다. 공식적인 단체 기념화로 만들어진 궁중기록화나 관청기록화에서는 찾기 어려운 개인의 노력과 집안마다의 역사가 깊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물론 조선 양반가의 유교적 가치와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그림마다 빼곡하게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양반 관료들이 조선 사회가 자신들에게 요구했던 유교적 가치를 어떻게 인식했는가가 그림을 통해 상세하게 드러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그들이 개인과 집안의 특별한 순간을 그림이라는 매우 사실적인 매체를 통해 시각화한 결과물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그들이 지향했던 바를 고스란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집안과 개인의 중요한 순간을 그림으로 남겨 기록하겠다는 뜻은 그러나 명망이 있거나 재력이 많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집안의 누군가 책임을 지고 맡아야 했고, 모양새를 갖춰 이를 보존하는 데도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겠다는 인문적 소양, 화가를 섭외하고, 이를 현실화시킬 인맥, 이를 뒷받침할 재력이 모두 갖춰져야만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번 그림을 그린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에 명망 있는 이들로부터 글을 받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물론 이후로도 가문 대대로 후손에게 전승하기 위해서는 훼손 및 상실, 분실 등을 최대한 막아야 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그림이 어떤 이유로든 상하거나 분실했을 때는 어떻게든 다시 모사를 해서 남겨야만 후대로 전승할 수 있었다.
때문에 후대의 모사본이 많은 것은 사가기록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모사본 하나하나마다 나름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어 역설적으로 모사가 많이 된 것일수록 그림에 깃든 역사적인 가치는 더욱 무겁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여기에 더해 같은 그림을 모사하면서 반영된 시대적 변화의 흔적을 살피는 것 또한 사가기록화를 통해 만나는 또 하나의 각별한 즐거움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가의 수장고에 전해내려오던 그림부터,
국내외 미술관과 박물관에 감춰져 있던 온갖 그림의 망라!
심지어 책의 마감 직전 등장하여 마지막 퍼즐을 맞춰준 그림까지!
사가기록화는 개인과 집안에서 제작한 그림이라는 특성에 따라 대부분의 그림들이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가의 수장고에 보관되어 외부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외에도 국내 국공립 미술관, 박물관, 연구기관, 대학 박물관을 비롯해 해외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도 소장되어 있긴 하나 역시 외부에 공개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림의 특성이 이러하다 보니 이 책에 수록된 그림 대부분은 그동안 연구자들 사이에서 간혹 개별 작품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는 하였으나 그 전모가 고스란히 드러난 적은 거의 없었다. 이 책에서는 개인 소장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그림부터, 국내 주요 기관들의 소장품은 물론 미국 하버드옌칭연구소, 예일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포틀랜드 박물관, 피바디에섹스 박물관,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 민속박물관,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 등 국내외 미술관과 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던 온갖 그림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동안 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만 공유되었던 그림들을 이처럼 총망라하여 집대성한 것은 거의 최초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이 책의 출간 이전까지 한쪽짜리 그림으로만 전해져(84쪽, 90쪽) 그 나머지 부분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던 그림이 이 책의 마감 직전 등장함으로써 미지의 세계로 남겨두었던 그림 속 세상이 수록된 것은(92쪽~99쪽) 이 책의 존재 의미를 한층 더 배가시켜준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집안 구조, 집집마다 다른 잔칫날 상차림, 양반들의 자리 배치법, 젓가락질하는 양반,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여인들의 헤어와 패션 스타일, 신랑 입장부터 손님 접대, 잔칫날 허둥지둥 늦게 도착하는 손님, 음식 준비, 잔칫날 양반가 풍경, 평안감사 대동강 뱃놀이, 장원급제자 환영식……
지금껏 볼 수 없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앞다퉈 등장하는 생생한 조선 시대 삶의 풍경
이 책을 통해 일반 독자들이 누릴 가장 큰 즐거움은 뭐니뭐니해도 그림을 보는 맛이다. 그동안 전혀 접하지 못한 독특하고 낯설기까지 한 그림 속에서 조선의 양반들은 춤을 추고, 음식을 먹고, 뒤에 숨어 담배를 피고, 대화를 나눈다. 잔칫날 일찍 도착한 양반들의 여유만만한 표정부터 고개 넘어 허둥지둥 달려오는 듯한 가마꾼의 모습, 60년 만에 다시 혼례식을 치르는 조선 고유의 풍습과 한양 와우산 아래 소박한 양반가의 구석구석, 1인 1상을 앞에 두고 젓가락질하는 양반부터 이들의 잔치를 돕는 하인들의 모습,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기생과 악공의 모습, 평생 자신이 몸담았던 관가와 지역의 풍경을 사진첩처럼 모아놓은 기록들, 기발한 화풍으로 모아놓은 선대의 업적, 우리에게는 낯선 곳이나 엄연히 조선시대 양반들의 활동 무대였던 북한 곳곳의 풍광, 그 가운데서도 평안감사가 베푸는 평양 명승지에서의 연회, 대동강 뱃놀이를 통해 만나는 평양의 옛 모습 등은 마치 오늘날의 SNS가 그 시대에 있었다면 남겼을 법한 흥미롭고 생생한 풍경들이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온, 문인화, 산수화, 수묵화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 조선 시대 일상을 엿보던 익숙한 풍속화와는 역시 완연히 다른 그림들을 통해 마주하는 조선시대 양반가의 특별한 순간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마치 이웃의 모습인 것처럼 성큼 우리 앞에 다가온다.
그림 한 점의 내력은 어떻게 우리 앞에 드러나는가
때로는 흥미진진한 탐정소설처럼,
때로는 학자의 치밀한 탐구의 진모를 마주하게 하는,
한국미술사 최고 권위자, 박정혜 선생의 30여 년 탐구의 집성,
그림으로 기록한 조선 시대 양반가 문화, 그 문화를 이끈 문화 지형도!
그림은 많은 것을 말해주긴 하지만, 모든 것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조선의 양반들은 그림을 제작하면서 그림과 관련한 기록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림의 제작 경위는 물론 행사에 초대된 이들의 면면, 그들의 자리 배치, 행사의 구성 및 절차까지 때로는 그림 위에 또 때로는 별도의 글을 남겨 화첩으로 묶어두곤 했다. 여기에 더해 주변의 가까운 이들, 저명한 이들로부터 축하의 시문을 받아 함께 장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자 박정혜는 눈에 보이는 그림의 제작 경위, 그림 속 그 순간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조선의 양반가에서 남겨둔 무수히 많은 문집의 서발문, 행장, 묘갈명, 묘지문, 비지만, 애사 등을 숱하게 살폈다. 이는 마치 하나의 그림 뒤에 존재하는 또다른 세계를 추적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의 탐구의 과정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때로는 한 편의 탐정소설을 읽는 흥미진진함을 느끼게도 되고, 엄정한 사실에만 입각하여 그림 속 실증을 밝혀 내는 학자의 치밀한 진모를 마주하게도 된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실행하고 그것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과정은 비단 한 가문의 일로만 끝나지 않았다. 때로는 몇 개의 집안이 연합하여 행사를 치르고 그림을 여러 점 제작하여 나눠갖기도 하고, 다른 집안의 행사를 적극적으로 참고하기도 하였다. 행사의 주최자는 때로 다른 행사의 손님으로 초대되기도 하고, 한 사람이 여러 집안의 행사에 글과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는 곧 사가기록화 제작의 과정을 살피는 것은 곧 당대의 문화지형도를 파악하는 것과 같은 의미임을 말해준다. 조선의 사가기록화가 왜 특히 영남의 사족들과 한양의 경화사족들에게 집중되어 제작되었는지 역시 그 연장선에서 설명할 수 있다.
저자의 30여 년에 걸친 치밀한 탐구의 결과,
원고지 약 2,500매, 수록 도판 약 450장, 인명과 작품 색인 약 960여 항목……
오늘날 우리에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책의 아름다움은 어떤 의미인가.
책 한 권에 담긴 콘텐츠를 향한 존중,
콘텐츠와 독자 사이를 잇는 책이라는 물성의 가치 구현을 위한 노력
오늘날 우리에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책의 아름다움은 어떤 의미인가. 저자의 수십 년 치열한 탐구의 과정은 책을 통해 어떻게 존중 받아야 하는가. 원고지 약 2,500매 분량, 도판 약 450여 장의 압도적 콘텐츠의 권위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 하루에도 수십 권, 수백 권의 책이 쏟아지는 이 시대, 경쾌하고, 보기 편한 콘텐츠가 주목 받는 이 시대에 대체불가한 이 콘텐츠는 책이라는 매체에 어떻게 담아야 독자에게 제대로 정확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약 1년여 전 원고의 실체를 마주한 그때로부터 작동하기 시작한 책을 향한 여정은 바로 그 고민으로부터 출발했다. 독자로부터 쉽게 선택 받기 위한 가격대의 설정, 판형 및 판면의 고려는 일찌감치 내려놓았다. 또한 쉽게 읽혀야 한다는 가독성의 강박 역시 작업 과정에서 제외한 것 중 하나다. 이 책의 편집 과정의 제1의 전제는 오로지 콘텐츠에 어울리는 책을 만든다는 것, 그것이었다.
책의 구성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림만큼이나 처음 접할 사가기록화의 세계를 독자에게 잘 전하기 위해 저자는 책의 구성을 전반적으로 수정하고, 낯선 개념은 본문 안에 최대한 설명했으며, 그림과 글의 유기적 흐름에도 각별히 공을 들였다. 이를 위해 책의 시작과 끝부분에는 사가기록화에 대해 일별하고 그 의미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별도로 배치하고(서장, 제10장), 책의 전체 흐름은 독자들이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장수와 자손 번창’, ‘과거 급제와 벼슬살이’, ‘가문의 안정과 번성’이라는 세 범주로 나눠 구성했다. 이는 흔히 연구서들이 취하기 쉬운, 연구 결과물을 취합해 엮는 단선적인 접근에서 벗어난 시도로, 이를 통해 독자들은 밀도 높은 내용을 한결 편한 접근법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이 염두에 둔 독자들은 한국 미술의 애호자들만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은 또 다른 연구의 디딤돌로 기능하게 마련이다. 명실상부 사가기록화라는 우리 미술사의 새로운 세계로 가는 진입로가 될 이 책은 따라서 이후 이 분야를 이어서 탐구할 이들에게도 제 역할을 해야 할 소명이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이후 이어질 이 분야의 연구자들을 위한 쓸모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 연구로부터 이어지는 맥락을 부여하여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훨씬 손쉽게 이끄는 데도 소홀함이 없었다.
앞서 언급한 쉽게 읽히는 가독성을 향한 강박 대신 이 책의 의미를 알아봐줄 눈 밝은 독자들을 위한 배려에 더 무게중심을 둔 것 또한 이 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내용을 깊고 넓게 이해할 수많은 표를 별도로 구성하여 배치하고, 좀 더 깊은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수록하였다.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이 책이 채택한 것은 그림의 진모를 보여주기 위한 큰 판형, 도판의 과감한 배치와 세부의 적극적 활용, 대부분의 독자들이 생애 최초로 만나게 될 그림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제본 방식, 질 좋은 인쇄 상태를 위한 종이의 선별 등이다. 페이지 712쪽, 정가 59,000원의 숫자로 먼저 만날 이 책 뒤에는 이처럼 책 한 권의 물성이 갖출 수 있는 콘텐츠와 독자를 위한 존중의 태도가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