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민족과 여성의 진정한 자유를 꿈꾸다
조선 의용대 부녀복무단장이자 여성운동의 선구자, 박차정
3.1운동 이후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는 상징적인 10여 분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여성의 경우, 유관순 열사 외에는 거의 알려진 분이 없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박차정 - 민족과 여성의 진정한 자유를 꿈꾸다]는 민족해방과 여성해방을 주장했던 여성독립투사 박차정 의사의 삶을 재조명한다.
목차
1. 독립운동이 뭐고?
2. 독립투사를 꿈꾸는 문학소녀
3. 모진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4. 탈출 작전
5. 이순신을 닮고 싶은 소년을 만나다
6. 밀정과 함정
7. 여자들이 힘을 모으다
8.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
9. 곤륜산 전투
10.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특별 부록. 깊이 보는 역사/ 박차정 이야기
저자
박미경
출판사리뷰
ㆍ 민족과 여성의 진정한 자유를 꿈꾸다
조선 의용대 부녀복무단장이자 여성운동의 선구자, 박차정
3.1운동 이후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는 상징적인 10여 분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여성의 경우, 유관순 열사 외에는 거의 알려진 분이 없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박차정 - 민족과 여성의 진정한 자유를 꿈꾸다〉는 민족해방과 여성해방을 주장했던 여성독립투사 박차정 의사의 삶을 재조명한다.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의 부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박차정(1910~1944)은 해방 직전까지 평생을 바쳐 민족해방과 여성해방을 위해 싸운 우리 독립운동사의 거인이다. 1910년 5월,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15세 때부터 조선소년동맹에 가입해 활동했고 1925년 일신여학교에 입학해 조선청년동맹과 항일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 회원, 신간회 회원 등으로 활약했다. 1930년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합류하고 단장이었던 김원봉 선생과 결혼 후 의열단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꿈에 그리던 해방을 1년 앞두고 눈을 감은 박차정의 유골은 남편인 약산 김원봉에 의해 해방 후 밀양 감전동 뒷산에 모셔졌다. 자신이 학창시절 쓴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인 ‘임철애(林哲愛)’라는 가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박차정의 일생은 우리나라보다 일본 측 자료에 더 많이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
똑똑하고 감수성 예민했던 문학소녀가 총을 든 투사가 되고 결국 35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여정 곳곳에서, 역사의 거대한 비극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 강한 인간의 힘을 목도하게 된다. 정부는 박차정 여사에게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3·1독립운동을 한 지 100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그날의 정신도, 그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책이 독립투사 박차정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는 데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머리말 中
ㆍ 감수성 예민했던 문학소녀에서 총을 둔 투사로,
조국 해방을 향한 방아쇠를 당기다
“일본군은 들어라. 총을 버리고 투항하라. 일본제국주의는 반드시 망한다. 그대들이 흘린 피는 후방에 있는 재벌들을 살찌울 뿐이다!”
총소리가 울려 퍼지는 곤륜산 계곡. 박차정은 일본군 진지를 향해 유창한 일본어로 외쳤다. 순간 총알이 집중 쏟아졌다. 박차정이 몸을 숨긴 바위 앞에 총알이 퍽퍽 내리꽂혔다. 박차정은 교전에서 부상을 입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1944년 5월 눈을 감는다.
박차정은 일본을 물리치며 동시에 여성을 억압하는 불평등을 없애자고 주장했던 여성운동의 선구자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으며 목숨마저 내던졌다.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태어나 항일의식이 강했던 부산에서 자란 박차정이 일생 동안 보여준 강한 의지와 흔들리지 않는 신념 그리고 거침없는 실천을 기리며 이 책을 펴낸다.
ㆍ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인물로 만나는 부산정신〉 시리즈, 그 두 번째 이야기
도서출판 호밀밭과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박재혁, 박차정, 안희제, 이종률, 최천택까지 총 5권으로 구성된 〈인물로 만나는 부산정신〉 시리즈를 기획했다. 개성고등학교 출신 박재혁 의사는 부산경찰서 폭파 의거를 통해 3.1운동 이후 침체된 독립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다시 살려놓았고, 박차정 여사는 남편인 의열단 김원봉 단장과 함께 평생을 바쳐 민족과 여성의 해방을 위해 싸웠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교육과 무역, 언론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일제에 항거했고 산수 이종률 선생은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민족혁명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으며 박재혁 의사의 오랜 친구였던 최천택 선생은 숱한 고문과 고통 속에서도 죽는 날까지 일생을 조국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