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작품의 의미를 묻다
「이홍도 자서전(나의 극작 인생)」은 2055년을 배경으로 한 유명 퀴어 연극 작가가 자신을 넘어서려는 후배 작가들에 대한 두려움 속에 자서전을 집필하면서 과거의 작가들을 만나 작가와 작품 그리고 창작의 의미를 묻고 따지는 작품이다.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에 당선된 이홍도 작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지원을 받아 집필하고 ‘차세대 열전 2020!’을 통해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낭독공연을 하며 수정한 작품을 출간본으로 만들었다.
위대함은 발생하는가? 축적되는가?
잠깐, 그런데 위대한 건 작가인가, 작품인가?
작가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작가의 내면과 잠재된 가능성인가, 작가보다 앞서서 존재했던 위대한 작가인가? 그런데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작가인가, 작품인가? 위대함은 명성인가, 다른 무엇인가? 작가든 작품이든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 찬사는 작가에게 얼마나 필요한가? 어쨌든 위대함을 쌓은 작가는 어떻게 퇴장해야 하는가? 주인공 퀴어 작가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성장을 꿈꾸던 과거의 자신이 노려봤던 과거의 유명 퀴어 작가들을 만나고, 퀴어 작가로 유명해진 오늘날의 자신을 노려보며 성장을 꿈꾸는 후배 작가들을 만난다. 작가가 투영되었으나 작가와 같다고 단정할 수 없는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날카롭고 유머러스하게 짚어가는 이야기를 보며 자꾸만 질문이 늘어간다.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장엄하고 경이롭게 등장하는 삶의 열차를 통해 작가에게 남는 것은 위대함이 아니라 텍스트임을 깨닫는다.
“작가들은 자기 글의 그림자일 뿐이야. 인생에 아무 알리바이가 없어.”
손날과 구호로 구분할 수 없는 경계를, 텍스트와 함께
손날로 과거 유명 작가들의 당수를 쳐서 쓰러뜨리고 극작 능력을 얻은 주인공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구호로 작품과 삶의 경계가 불분명한 이야기의 맥을 끊는다. 작품에서 던지는 퀴어 연극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성장에 대한, 명성에 대한 말들은 때론 부조리함에 대한 고발 같기도 하고 넋두리 같기도 하며 고백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 모두가 삶 속에 존재하는 것, 이를 깨달으면 작품에서 수시로 등장하던 ‘여하튼, 하여튼, 아무튼’이 작품의 장면뿐 아니라 우리 삶의 장면들을 전환하는 장치임을 느끼게 된다. 중심과 주변, 주류와 비주류의 키워드로 텍스트 중심 연극을 작업해온 작가답게 이홍도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이것과 저것 사이의 경계를 짚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그리고 그 사이 어디쯤까지 짚어냈다. 군데군데 배치된 해학적 표현들과 행간에 스민 유머는 경계를 오가는 전환이 어지럽지 않도록 돕는다.
목차
등장인물
프롤로그 혹은 에필로그
1장 2020년
2장 2030년
3장 2031년
4장 2032년
에필로그 혹은 프롤로그
주
저자
이홍도
출판사리뷰
작가와 작품의 의미를 묻다
「이홍도 자서전(나의 극작 인생)」은 2055년을 배경으로 한 유명 퀴어 연극 작가가 자신을 넘어서려는 후배 작가들에 대한 두려움 속에 자서전을 집필하면서 과거의 작가들을 만나 작가와 작품 그리고 창작의 의미를 묻고 따지는 작품이다. 202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에 당선된 이홍도 작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지원을 받아 집필하고 ‘차세대 열전 2020!’을 통해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낭독공연을 하며 수정한 작품을 출간본으로 만들었다.
위대함은 발생하는가? 축적되는가?
잠깐, 그런데 위대한 건 작가인가, 작품인가?
작가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작가의 내면과 잠재된 가능성인가, 작가보다 앞서서 존재했던 위대한 작가인가? 그런데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작가인가, 작품인가? 위대함은 명성인가, 다른 무엇인가? 작가든 작품이든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 찬사는 작가에게 얼마나 필요한가? 어쨌든 위대함을 쌓은 작가는 어떻게 퇴장해야 하는가? 주인공 퀴어 작가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성장을 꿈꾸던 과거의 자신이 노려봤던 과거의 유명 퀴어 작가들을 만나고, 퀴어 작가로 유명해진 오늘날의 자신을 노려보며 성장을 꿈꾸는 후배 작가들을 만난다. 작가가 투영되었으나 작가와 같다고 단정할 수 없는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날카롭고 유머러스하게 짚어가는 이야기를 보며 자꾸만 질문이 늘어간다.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장엄하고 경이롭게 등장하는 삶의 열차를 통해 작가에게 남는 것은 위대함이 아니라 텍스트임을 깨닫는다.
“작가들은 자기 글의 그림자일 뿐이야. 인생에 아무 알리바이가 없어.”
손날과 구호로 구분할 수 없는 경계를, 텍스트와 함께
손날로 과거 유명 작가들의 당수를 쳐서 쓰러뜨리고 극작 능력을 얻은 주인공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구호로 작품과 삶의 경계가 불분명한 이야기의 맥을 끊는다. 작품에서 던지는 퀴어 연극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성장에 대한, 명성에 대한 말들은 때론 부조리함에 대한 고발 같기도 하고 넋두리 같기도 하며 고백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 모두가 삶 속에 존재하는 것, 이를 깨달으면 작품에서 수시로 등장하던 ‘여하튼, 하여튼, 아무튼’이 작품의 장면뿐 아니라 우리 삶의 장면들을 전환하는 장치임을 느끼게 된다. 중심과 주변, 주류와 비주류의 키워드로 텍스트 중심 연극을 작업해온 작가답게 이홍도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이것과 저것 사이의 경계를 짚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그리고 그 사이 어디쯤까지 짚어냈다. 군데군데 배치된 해학적 표현들과 행간에 스민 유머는 경계를 오가는 전환이 어지럽지 않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