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지식재산권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서울대 과학학과 이두갑 교수가 18세기 지식재산권의 등장과 정립에 대한 역사적 논의부터 현재 우리 경제와 문화,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영역인 생명공학과 컴퓨터(특히 소프트웨어) 산업, 그리고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논쟁까지, 지식재산권에 관한 주요 쟁점들을 살펴볼 수 있는 논문들을 고루 추렸다.
목차
프롤로그: 지식재산권, 혁신과 공공 이익 사이에서
서문: 누가 어떻게 지식을 소유하는가? 21세기 지식재산권과 혁신, 그리고 공공이익
제1부. 지식재산권? 공익과 사익, 혁신의 균형 사이에서
지식재산권의 등장, 그리고 공익과 사익 사이의 균형이라는 아이디어(기원전 700 ~ 서기 2000)
제2부. 지식의 사유화와 첨단 산업의 등장
누가 무엇을 소유하는가?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사적 소유와 공공 이익에 관한 1970년대의 논쟁
기계의 텍스트: 미국 저작권법과 소프트웨어의 다양한 존재론, 1974~1978
제3부. 반공유재의 비극
유전자와 생명의 사유화, 그리고 반공유재의 비극, 미국의 BRCA 인간유전자 특허논쟁
카피레프트의 발명
제4부. 21세기 협력과 창의적 연구, 그리고 팬데믹 시대의 특허정치
생의학 복합체 시대 창의적 연구의 소유권: 스탠포드 대 로슈(Stanford vs. Roche) 판결을 통해 본 미국 공공기금 기반 특허의 소유권 논쟁
코로나 팬데믹과 백신 특허, 그리고 면역-자본주의
수록 및 저작권 정보
참고문헌
저자
이두갑
출판사리뷰
알고 보면 가까이 있는 지식재산권
창의적인 지적 활동의 산물에 법적으로 부여되는 독점적 권한인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IP)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주로 높은 경제적 이익에 쏠린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지식과 아이디어를 통해 큰 이익을 얻는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지식재산권은 크게 저작권(copyright)과 특허(patent)로 구분되는데 생명공학, 컴퓨터공학 등의 첨단 산업과 콘텐츠 산업이 특히 주목받는 분야다. 한국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관심은 1997년 외환 위기를 기점으로 본격화되었다. 1993년 영화 〈쥬라기 공원〉의 수익이 자동차 수백만 대를 수출한 수익과 견주어지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일었다면, 외환 위기를 거치며 새로운 경제 성장동력으로서 고부가가치 산업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게 된 것이다.
지식재산권은 주로 특허나 저작권의 권리를 둘러싼 분쟁이나 개발 성공사례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어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일상 곳곳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전산화되고 자동화된 사회기반시설의 중추이며, 음악, 영화, 웹툰, 드라마 등 여가활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콘텐츠는 한류 열풍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경험을 공유한다. 생명공학 분야의 지식재산권은 코로나19 감염병 국면에서 이른바 ‘싸구려 백신’ 가짜 뉴스로 제기된 백신 가격 문제를 통해 다시 한번 관심이 환기되었다.
필요하지만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았던 질문들
지식재산권이 권리를 둘러싼 특정 이해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상관있는 문제라고 시선을 바꾸면 이러한 점들이 좀 더 궁금해진다. ‘지식재산권을 인정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지식재산권의 범위는 어떻게 정해질까?’ 이러한 질문들은 지식재산권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창조한 결과에 적용되는 권리라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결과물의 새로움과 가치를 평가하는 상황에서 선행사례가 없어 활용할 기준도 없다는 것에 막연하지 않았을까?
호기심은 새롭게 발견되고 창조된 지식과 아이디어가 만들어진 ‘처음의 순간들’로 이어진다. 누군가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재산과 권리로 인정하게 된 것은, 창작과 저술이 노동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언제 그리고 어떤 계기를 통해서였을까?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소프트웨어는 처음에 어떻게 이해되었을까? 자연의 산물인 DNA를 재조합하는 행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그래도 되는가? 그 결과의 가치는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이러한 호기심을 종합하면 지식재산권의 역할이 비단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지식과 아이디어를 발견한 성취를 인정하는 기준일뿐만 아니라 성취 이전과 이후를 연결하는 징검다리이기도 해야 하겠다는 실마리를 떠올릴 수 있다.
지식재산권이 건네는 화두,
‘공익과 사익, 혁신 사이의 균형’
사회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지식과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의적 혁신의 결과가 미치는 사회적인 영향이 크고,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더불어 선행사례가 없어서 결과를 장담할 수 없으므로 시도 자체가 실패하거나 결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이중의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 생각하면 창의적 혁신을 이루어낸 당사자가 그 권리와 보상을 온전히 주장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지식이 아무리 창의적일지라도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지식의 토대 위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며, 특히 현대사회에서 사회가 누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부나 기업이 혁신의 시도를 보조하거나 투자하는 등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배경과 조건이 다양하게 구성되고 있다. 그만큼 창의적 혁신의 권리에 대한 셈법도 복잡해지는 셈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발생하는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공공 이익과 사적 이익의 긴장은 지식재산권이 등장한 초기부터 지속되어 왔다.
지식재산권에 대한 더 많은
사회적·정책적 논의가 필요하다
지식재산권은 지식의 진보와 독창성을 믿었던 18세기 계몽사조기를 거치며 과학기술과 같은 새롭게 발전하는 지식과 문화 전반에서 창의성(creativity)에 대한 자각을 통해 법적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창의적 지식의 발전이 경제와 문화, 그리고 사회 전반에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인식은 세상을 창조한 ‘신의 선물’이라고 여겼던 지식의 개념을 변화시켰다. 창작과 저술 활동을 신의 선물을 ‘공유’하는 것이 아닌 ‘노동’으로 인식하고, 그 결과인 새로운 지식과 작품을 창작자의 사적 소유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지식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지식이 사회적인 산물이기 때문에 공유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독점적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의 대립은 19세기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긴장은 지식재산권을 독창적이고 유용한 지적 산물을 창조해낸 노력에 대한 보상인 동시에, 광범위한 사회적 이용과 공유를 통해 공공 이익을 도모하려는 유인책으로서는 ‘공익과 사익의 균형’이라는 토대 위에 위치시켰다. 지식재산권의 독점적 사용을 제한하는 ‘공정한 이용(fair use)’, ‘실험적 사용 예외(research exemption)’, ‘강제실시(compulsory license)’과 같은 제도들은 지식재산권의 독점적 남용을 견제하고 공공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대표적인 장치들이다.
과학기술 지식과 문화의 생산과 유통이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현재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지식재산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의 규모가 점차 확대되면서 그 이익을 적정하게 분배하고 활용하는 것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더 효율적으로 혁신적 지식을 생산하기 위한 사회적 여건을 마련하려는 여러 국가들 간의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은 지식재산권에 대한 공공 정책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논의가 더 많이 이루어질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책은 지식재산권의 정립 과정에서 지식재산의 정의가 어떻게 논의되었고 그것을 소유하는 것을 두고 이루어진 논의들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서울대 과학학과 이두갑 교수가 18세기 지식재산권의 등장과 정립에 대한 역사적 논의부터 현재 우리 경제와 문화,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영역인 생명공학과 컴퓨터(특히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다루어진 지식재산권에 관한 주요 쟁점들까지 살펴볼 수 있는 논문들을 고루 추렸다. 여기에 더해 지식재산의 역사적 개관과 의의를 다룬 프롤로그는 지식재산권의 역사적·사회적 개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책에 대한 흥미를 높인다. 아울러 미국 제약회사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대한 논의는 지식재산권이 우리의 일상과 구체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에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공감으로 성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