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발자크는 19세기를 창조했다.”
한 인간의 실패가 만들어낸
19세기 사회의 모든 것
발자크라는 거대한 숲을 헤매고 다닌 지 30년이 넘었다. …… 사랑과 질투, 배신과 복수, 대혁명 이후 권력의 이동, 자본주의의 도래, 출판·언론·극장의 타락상, 어음 위조, 과학적 발명과 대자본의 음모까지.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이 그 소설에 담겨 있었다. - 「서문」중에서
파렴치한 죄를 저지르는 수치스러운 인간이 존재하듯이 파리에는 불명예스러운 길이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고상한 길도 있고, 정직한 길도 있으며, 아직 그 길이 도덕적으로 어떤지에 대한 평판이 형성되지 않은 새로운 길도 있다. 또한 암살자의 길도, 상속받은 늙은 과부보다 더 늙어 보이는 길도, 존경받을 만한 길도 있으며, 늘 깨끗한 길이 있는가 하면 늘 더러운 길도 있다. 노동자의 길도, 근로자의 길도, 장사꾼의 길도 있다. 다시 말해서 파리의 길은 인간의 속성을 지닌다. - 『페라귀스』중에서
오노레 드 발자크.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유명세에 비해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작품 출간이 부진했다. 몇몇 소설만 간신히 출간되고, 그렇지 못한 소설은 오랫동안 기약 없이 “전설의 명저”라는 수식어만 달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몇몇 전공자와 소위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실체는 없는 줄거리와 비평으로 우리 곁을 떠돌아야 했다. “이 시대 최고의 연애 소설”, “소설사상 최고의 풍자 소설”. 근대 소설은 발자크에서 시작해서 도스토옙스키에서 끝난다는 말이 있다. 하나의 시대를 마감한 도스토옙스키 역시 훌륭한 작가이지만, 하나의 시대를 열었던 발자크가 그려낸 소설 속 세상은 어느 한두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거대하며, 치밀했다. 이렇듯 그가 그려내는 세계가 너무 방대했지만, 그만큼 시대에 대한 치밀한 지식이 필요했던 까닭에 발자크의 세계를 소개하는 작업이 한두 명의 번역자, 혹은 출판사의 치기만으로는 감당해내기 힘든 대 작업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발자크가 창조해낸 소설, 그 소설이 창조해낸 세상은 과연 어떤 매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을까? 그의 소설은 결코 미화되지도 않고 과장되지도 않은 날것 그대로의 묘사만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지독히 현실적이지만, 지독히 매력적으로 만들어버린다. 더없이 진짜 같지만, 그래서 더 소설과 같은 세상이 그 속에 숨어 있다.
지난 30년간 발자크를 연구하고, 번역하고, 강의한 이 책의 저자 송기정은 발자크의 이중성과 허위의식에 집중한다. 발자크의 소설은 선한 사람이 복을 받는 권선징악의 세계가 아니다. 금융 사기꾼은 프랑스 최고 부자가 되고, 권력과 결탁한 법관은 출세한다. 거짓과 음모는 승리하고 진실과 순수는 패한다. 『인간극』은 말 그대로 모순덩어리인 진짜 인간들의 진열장이다. 이렇듯 세계문학사에서 발자크만큼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사회를 꿰뚫어 본 작가는 없었다. 발자크의 진정한 위대함은 인간 본질에 대한 자각과 폭로에 있고, 그것이 바로 이 위대한 대문호의 현대성인 것이다. 대놓고 돈을 숭배할 용기도 대놓고 경멸할 용기도 없는 현대인, 거짓과 위선과 기만을 감추고 사는 이들은 발자크가 묘사한 모순적인 인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목격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명한 『인간극』의 완역본도 출간되지 않았다. 책은 발자크의 대표작인 ??인간극??을 중심으로 발자크의 생애와, 발자크가 만들고 살아갔던 시대, 발자크가 만든 거대한 “발자크 월드”를 가로세로로 촘촘하게 탐구해나간다. 그것은 평생을 빚에 시달렸던 발자크의 이사의 궤적이기도 하고, 뭇 여성들과의 염문에 몰두했던 발자크의 여정의 추적이기도 하며, 때론 사업으로, 때론 문학을 넘어 사회 전반을 넘보는 발자크 야심의 자취이기도 하며, 때로는 그 자신 근대 문화의 창조자이자 향유자였던 발자크의 여유 넘치지만 잰 발걸음의 관찰이기도 했다. 하나의 시대는 다른 시대의 이면이기에, 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발자크와 그의 시대,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우리 자신의 숨은 모습과도 대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목차
§ 서문
제1장 발자크와 파리
* 근대화 과정의 파리
*『페라귀스』와 파리
* 공간의 변화와 권력의 이동
제2장 발자크와 프랑스 대혁명
* 『올빼미당원들』의 탄생
* 역사는 어떻게 허구와 만나는가?
* 올빼미당 반란의 원인
* 발자크의 역사관: 프랑스 대혁명과 반혁명 운동에 대한 발자크의 평가
* 역사가 발자크
제3장 발자크의 정치관
* 1830년 이후 발자크의 정치적 행보
* 『랑제 공작부인』의 탄생
* 『랑제 공작부인』과 발자크의 정치관
제4장 발자크와 19세기 과학
* 과학의 시대 19세기
*『절대 탐구』와 화학
* 동물자기와 형이상학
* 『위르쉴 미루에』와 동물자기
* 『루이 랑베르』와 자기론
제5장 발자크와 돈
* 펠릭스 그랑데의 재산 축적과정: 『으제니 그랑데』
* 19세기 초 프랑스의 경제 구조 · 신용 거래와 금융 시스템
* 어음의 유통과 은행: 『세자르 비로토』
* 결혼과 지참금
* 결혼은 계약이다: 『결혼 계약』
* 몰락한 귀족과 부르주아의 결합: 『골동품 진열실』
* 정통 부르주아와 신흥 부르주아의 결함: 『노처녀』
제6장 발자크와 법
민사 사건의 예
* 금치산 선고 청구 사건: 『금치산』
* 유산 상속: 『위르쉴 미루에』
* 부재자의 신원 회복: 『샤베르 대령』
상사 사건의 예
* 『세자르 비로토』와 파산법
* 채무자의 신병 구속과 과도한 소송 비용: 『잃어버린 환상』
형사 사건의 예
* 『골동품 진열실』과 위조죄
* 『매음 세계의 영욕』과 살인 · 절도 혐의
제7장 〈철학연구〉의 초기 소설들
* 발자크의 가족 소설과 가족 내 폭력:
『엘베르뒤고』, 『영생의 묘약』, 『바닷가의 비극』, 『저주받은 아이』
* 인간의 한계 극복 의지:
『루이 랑베르』, 『미지의 걸작』, 『강비라』, 『절대탐구』
* 〈철학연구〉에서 〈풍속연구〉로: 『나귀 가죽
『인간극』인물들
§ 책을 마치며
§ 참고문헌
§ 오노레 드 발자크 연보
§ 『인간극』
§ 찾아보기
저자
송기정
출판사리뷰
오노레 드 발자크.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유명세에 비해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작품 출간이 부진했다. 몇몇 소설만 간신히 출간되고, 그렇지 못한 소설은 오랫동안 기약 없이 “전설의 명저”라는 수식어만 달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몇몇 전공자와 소위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실체는 없는 줄거리와 비평으로 우리 곁을 떠돌아야 했다. “이 시대 최고의 연애 소설”, “소설사상 최고의 풍자 소설”. 근대 소설은 발자크에서 시작해서 도스토옙스키에서 끝난다는 말이 있다. 하나의 시대를 마감한 도스토옙스키 역시 훌륭한 작가이지만, 하나의 시대를 열었던 발자크가 그려낸 소설 속 세상은 어느 한두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거대하며, 치밀했다. 이렇듯 그가 그려내는 세계가 너무 방대했지만, 그만큼 시대에 대한 치밀한 지식이 필요했던 까닭에 발자크의 세계를 소개하는 작업이 한두 명의 번역자, 혹은 출판사의 치기만으로는 감당해내기 힘든 대 작업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발자크가 창조해낸 소설, 그 소설이 창조해낸 세상은 과연 어떤 매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고 있을까? 그의 소설은 결코 미화되지도 않고 과장되지도 않은 날것 그대로의 묘사만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지독히 현실적이지만, 지독히 매력적으로 만들어버린다. 더없이 진짜 같지만, 그래서 더 소설과 같은 세상이 그 속에 숨어 있다.
지난 30년간 발자크를 연구하고, 번역하고, 강의한 이 책의 저자 송기정은 발자크의 이중성과 허위의식에 집중한다. 발자크의 소설은 선한 사람이 복을 받는 권선징악의 세계가 아니다. 금융 사기꾼은 프랑스 최고 부자가 되고, 권력과 결탁한 법관은 출세한다. 거짓과 음모는 승리하고 진실과 순수는 패한다. 『인간극』은 말 그대로 모순덩어리인 진짜 인간들의 진열장이다. 이렇듯 세계문학사에서 발자크만큼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사회를 꿰뚫어 본 작가는 없었다. 발자크의 진정한 위대함은 인간 본질에 대한 자각과 폭로에 있고, 그것이 바로 이 위대한 대문호의 현대성인 것이다. 대놓고 돈을 숭배할 용기도 대놓고 경멸할 용기도 없는 현대인, 거짓과 위선과 기만을 감추고 사는 이들은 발자크가 묘사한 모순적인 인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목격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명한 『인간극』의 완역본도 출간되지 않았다. 책은 발자크의 대표작인 「인간극」을 중심으로 발자크의 생애와, 발자크가 만들고 살아갔던 시대, 발자크가 만든 거대한 “발자크 월드”를 가로세로로 촘촘하게 탐구해나간다. 그것은 평생을 빚에 시달렸던 발자크의 이사의 궤적이기도 하고, 뭇 여성들과의 염문에 몰두했던 발자크의 여정의 추적이기도 하며, 때론 사업으로, 때론 문학을 넘어 사회 전반을 넘보는 발자크 야심의 자취이기도 하며, 때로는 그 자신 근대 문화의 창조자이자 향유자였던 발자크의 여유 넘치지만 잰 발걸음의 관찰이기도 했다. 하나의 시대는 다른 시대의 이면이기에, 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발자크와 그의 시대,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우리 자신의 숨은 모습과도 대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 인간의 실패가 위대한 ‘발자크 월드’를 만들었다
19세기 프랑스는 정치 체제가 7번이나 바뀌는 동안 한 체제가 20년을 유지한 적이 없을 정도로 말 그대로 정치적 격동기였다. 혼돈 속에서 “연대기적 역사를 쓰는 것을 거부하고 시대정신이 담긴 역사를 쓰겠다.”라고 주창한 발자크는, 나폴레옹이 검으로 이룬 것을 펜으로 이루겠다고 다짐한다. 첫 소설 『올빼미 당원들 그리고 1799년 브르타뉴』에서 반혁명 운동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대혁명의 의미를 강조면서 젊을 때 자유주의를 찬양했던 그는, 보수주의자를 자청하며 평등은 환상에 불과하고 똑똑한 지도자만이 나라를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7월 왕정이 발발하자 그 누구보다 귀족 계급이 무너지고 황금만능주의가 도래할 것임을 예견하기도 했다. 귀족의 무능함을 철저히 비판하면서도 누구보다 귀족이 되기를 갈망한 작가의 이중성은 인간 삶의 모순된 지점을 적확하게 드러낸다. 평생을 빚의 노예로 살았던 그는 누구보다 돈을 사랑하고 증오하기도 했다. 별다른 작품 발표 없이 삼류소설이나 써대던 발자크는 『결혼 생리학』의 출간과 함께 사교계 여인들을 사로잡고 세간의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작품의 성공 이후에도 사치와 낭비, 부동산 투기와 연이은 사업의 실패로 그의 부채만 끝도 없이 쌓여만 갔다. 일생 채무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그는 빚을 갚기 위해 하루에 5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고 16시간 이상 글을 썼던 문학 노동자로 살아가야만 했다. 이렇게 자신을 혹사하면서 집필한 것이 바로 『인간극』인 것이다.
근대를 만들고 향유했고 관찰했던 발자크식 ‘백과사전’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도시 연구가의 입장에서 『인간극』을 읽는 것은 아주 놀라운 경험이다. 그는 도시 근대화가 1850년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말하면서 그 증거로 발자크가 묘사한 19세기 초반의 파리를 제시한다. 실제로 근대 도시 파리에 관한 연구는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그 당시와 지금의 파리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발자크가 소설 『페라귀스』에서 묘사한 1820년과 1830년 당시 파리의 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왕실근위대 장교 오귀스트 드 몰랭쿠르가 사교계의 정숙한 여인 클레망스를 솔리가의 좁고 어두침침한 골목에서 목격하는 장면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발자크에게 파리는 단순한 장소가 아닌 소설을 읽는 하나의 기호라 할 수 있다. “여기는 아름다운 여인인가 하면, 저기는 늙고 가난한 남자”인 파리. “여기는 새로운 왕조의 화폐처럼 아주 새것인가 하면, 이쪽 구성은 유행을 따르는 여인처럼 우아한” 파리는 말 그대로 ‘완벽한 괴물’의 형태를 띄우고 있다. 이렇듯 그는 파리를 인격과 감정 그리고 육체가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여겼다. 이처럼 발자크는 자신의 소설에서 행인의 발걸음을 추적하면서 인물들의 심리를 분석한다. 발자크 『인간극』은 역사,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예술, 법 등 19세기의 모든 것이 들어간 일종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인간극』을 읽다 보면 19세기 당시 사람들의 삶의 양상은 물론 그 시대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200년 전 프랑스 사회에 그치지 않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사이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 이 책 『오노레 드 발자크ㅡ세기의 창조자』는 30년간 발자크에 몰두해온 송기정 교수 연구의 결정판이자 첫걸음이다. 욕망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철저한 묘사와 여타 역사서가 묘사하지 못했던 당시 사회상에 대한 분석은 발자크를 사실주의 소설의 대가, 현대 소설의 창시자로 남게 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발자크의 진면목을 다시금 소개할 것이고, 책 한 권을 통해 발자크라는 위대한 작가와 프랑스 역사 더 나아가 19세기 사회를 알 수 있다는 것은 독자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