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영미 문학의 거장이 펼쳐낸 인간의 이야기, 옥스퍼드 유럽사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백 년 전,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들은 궁금증에 휩싸여야 했다. 눈앞에 놓인 이 유려한 문체와 재기 넘치는 서술의 역사서가 도대체 누구의 저작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고대 로마의 성립부터 근대 유럽 국가가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그야말로 숨 막히듯 서술해내고 있었다. 마치 욕망이 만들어내는 인간사 스캔들을 탐구하듯, 역사 속 인간과 그 사건을 분석해낸 이 책은 엄밀해야 할 역사책과 흥미로워야 할 소설의 장점을 두루 갖고 있으면서, 교육이라는 목적에조차 더할 나위 없이 충실했다. 2500년 유럽의 역사를 한 권에 담아내며, 로렌스는 지금은 정론이지만 당시에는 어느 역사가도 하지 못했던 야심만만한 주장을 책 속에 선보인다. 이를 위해 로렌스는 정확히 세 가지의 역사 서술 방식을 비판하며 자신의 책을 시작한다. 첫 번째는 사실만을 나열하며 담백하게 쓰여진 기존의 역사서다. 이런 방식은 역사를 이야기가 아닌 책 속의 죽은 지식으로 전락시켜버린다. 두 번째는 사진처럼 생생함을 추구하는 역사서다. 이런 역사서는 역사 속 인간들을 마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묘사한다. 위대한 인물, 영웅 혹은 희대의 악인들이 음모와 갈등에 휘말리며, 사랑에 빠지고,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한다.
목차
서문 7
I 로마 13
II 콘스탄티노플 29
III 기독교 47
IV 게르만족 81
V 고트족과 반달족 101
VI 훈족 125
VII 갈리아 147
VIII 프랑크족과 샤를마뉴 171
IX 교황과 황제들 197
X 십자군 231
XI 호엔슈타우펜 왕조 이후의 이탈리아 266
XII 신앙시대의 종말 289
XIII 르네상스 319
XIV 종교개혁 349
XV 대군주 371
XVI 프랑스혁명 393
XVII 프로이센 425
XVIII 이탈리아 451
XIX 독일의 통일 491
옮긴이의 말 515
저자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은이), 채희석 (옮긴이)
출판사리뷰
영미 문학의 거장이 펼쳐낸
인간의 이야기, 옥스퍼드 유럽사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백 년 전,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들은 궁금증에 휩싸여야 했다. 눈앞에 놓인 이 유려한 문체와 재기 넘치는 서술의 역사서가 도대체 누구의 저작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고대 로마의 성립부터 근대 유럽 국가가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그야말로 숨 막히듯 서술해내고 있었다. 마치 욕망이 만들어내는 인간사 스캔들을 탐구하듯, 역사 속 인간과 그 사건을 분석해낸 이 책은 엄밀해야 할 역사책과 흥미로워야 할 소설의 장점을 두루 갖고 있으면서, 교육이라는 목적에조차 더할 나위 없이 충실했다. 거기에 ‘역사란 무엇인가’와 ‘역사에서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질문과 해답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누구의 작품이란 말인가? 알려진 역사가 중에 로렌스 H. 데이비슨Lawrence H. Davison라는 이름은 없었다. 교육자나 문학인 중에서 찾아도 마찬가지였다. 소설가와 평론가, 역사가, 교육자의 역할에 모두 능통한 이 저자의 정체가 알려지기까지는 그로부터 몇 년이 더 지나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찌할 수 없는 사정이란 것이 있었다.
작가는 당시 창작의 최고 절정기에서 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대학 시절 도와준 은사의 부인과 사랑의 도피를 했다가 도로 잡혀 들어와 몇 년 뒤 가까스로 결혼에 성공했지만, 출간한 책마다 외설 시비를 받고 출간 정지되었고, 독일 국적의 부인은 작가가 활동하는 영국에서 스파이 혐의까지 받고 있었다. 펜을 들 때마다 신들린 듯이 글이 쏟아져 나왔지만, 대부분의 글들은 무차별 검열을 당하거나 출간조차 불가능했다. 손가락질이 잇달았고, 경제 사정 역시 어려워졌다. 그때 그에게 역사책의 집필 제의를 해온 곳이 바로 옥스퍼드 대학이었다. 한때 교육자였으며, 평론가였고, 화가이자 시인이며 소설가인 그에게 고답을 탈피한 일종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집필을 맡긴다는 것은 옥스퍼드로서는 새로운 도전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저자를 찾아낸 선택이기도 했다. 작가는 의뢰를 받자마자 일필휘지로 원고를 완성했고,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출간된 이후 하나의 대학에서 시작된 반향은 어느새 다른 대학과 일반 독자에게까지 퍼져나갔다. 그 책이 『유럽사 이야기』이며 작가는 바로 우리에게 『채털리 부인의 연인』, 『무지개』, 『아들과 연인』 등 문제적 소설의 작가로 유명한 D. H. 로렌스다.
인간의 욕망이 사건을 만들어내듯
역사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이 만들어낸다
2500년 유럽의 역사를 한 권에 담아내며, 로렌스는 지금은 정론이지만 당시에는 어느 역사가도 하지 못했던 야심만만한 주장을 책 속에 선보인다. 이를 위해 로렌스는 정확히 세 가지의 역사 서술 방식을 비판하며 자신의 책을 시작한다.
첫 번째는 사실만을 나열하며 담백하게 쓰여진 기존의 역사서다. 이런 방식은 역사를 이야기가 아닌 책 속의 죽은 지식으로 전락시켜버린다. 두 번째는 사진처럼 생생함을 추구하는 역사서다. 이런 역사서는 역사 속 인간들을 마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묘사한다. 위대한 인물, 영웅 혹은 희대의 악인들이 음모와 갈등에 휘말리며, 사랑에 빠지고,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한다. 적어도 흥미 면에서는, 특히 독자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매혹적으로 읽힐 수 있는 방식이지만 로렌스는 이 방식이 오히려 역사에서 역사성을 제거해버리는 악영향을 끼친다고 반박한다. 셰익스피어의 카이사르는 로마 시대가 아닌 엘리자베스 시대의 카이사르이고, 버나드 쇼의 카이사르도 빅토리아 시대의 카이사르이며, 이 중 어느 쪽도 비록 매력적일지언정 진짜 카이사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마치 과학처럼 논리와 인과를 중시하는 역사서다. 역사가는 하나하나의 사건을 밝혀낸 후 그 사건을 관통하는 커다란 고리를 만들어낸다. 훌륭한 학자가 작업한다면 그 결과 얻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인 역사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 전개 모두 ‘논리적으로는’ 흠 잡을 데가 없다. 그 모든 논리가 실제 사실이 아니라 고작해야 유추의 결과일 뿐이라는 문제를 애써 외면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로렌스에 따르면 과학적인 역사는 다르게 말하면 ‘사실이 아닌 것도 그럴듯하니 사실로 인정하라’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의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말은 요즘 시대에는 상식처럼 떠올리는 말이지만, 그 요즘 시대조차 그 말을 엄밀히 적용해 서술한 역사책은 로렌스의 이 책, 『유럽사 이야기』 말고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야심만만한 ?서문?에 어울리게 책은 흥미롭지만, 엄밀하고, 엄밀하지만 생생한 역사의 장면과 장면들로 가득하다. 소설가라면 으레 할 법한 지어낸 장면은 하나도 없이, 건조한 역사의 기록만으로 역사에 생동감을 이끌어내는 재주는 왜 외설작가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평론가들이 로렌스를 영미 문학의 거장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지 실감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로마 역사의 주요 사건인 콘스탄티노플 천도는 그 많은 역사적 사료를 참고해본들 조각난 사실의 파편일 뿐이지만, 이를 통해 묘사하는 로렌스의 콘스탄티노플은 대리석을 실은 배가 정박해 있고, 목재를 실은 상선이 입항하는 동안 석회를 굽는 가마솥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수천 명의 노예들이 짐을 나르고 돌아다니며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활개 치는 생명력 넘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그 배경 속에는 자주색 옷을 입고 하역을 지켜보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있고, 그의 시야 저편으로는 갓 건설을 시작한 콘스탄티누스 성벽의 해자가 비친다. 아치를 두른 광장으로 짐을 실은 마차가 들어오고, 포장을 벗기자 그 안에서 그리스와 아시아의 조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나치게 교과서적인’ 역사서는 넘볼 수 없는 대가의 힘
교훈이 담길 곳은 역사책이 아니라 역사다
그러나 생동감 넘치는 이러한 묘사보다 더욱 돋보이는 것은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 귀에도 익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국가가 생겨나는 긴 호흡의 서술들이다. 로렌스는 간략하게 말한다면 역사 속 인간에게는 두 개의 충동, 즉 행동의 동기가 번갈아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는 생산에 의한 번영이라는 평화에 대한 욕구이며, 다른 하나는 군대에 의한 승리하는 전쟁에 대한 욕구다. 이 두 욕구가 서로 번갈아 적용하며 인간을 그 시대에 맞는 인간으로 존재하게 한다. 그러나 역사는 다양한 인간이 모여 만들어가기에 이 모든 것이 모인 역사를 하나의 논리로 설명하기란 힘들다. 그러니까, “십자군 운동처럼 너무나 거대하고 미친 듯한 사건에는 어떤 세속적인 이유가 없”으며. 같은 의미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난 원인에 대한 ‘이유’도 지빠귀가 우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시를 살지 못한 후대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역사를 관찰하며, 그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충동의 소용돌이, 이른바 역사의 흐름 그 자체를 감동에 잠겨 지켜보는 것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기존의 ‘지나치게 교과서적인’ 역사서들이 해내지 못한 어떤 작용이 관찰자이자 후대인이며 이 책의 독자인 우리들 속에서 일어난다.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때로는 이성적이고 때로는 비이성적인 드라마와 그 결과, 그것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독자는 흔하디흔한 교훈을 넘어 역사에서 길어 올린 진정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역사의 교훈’이라 부르며 어떤 이는 ‘삶의 지혜’ 혹은 짧게 줄여 ‘통찰’이라 부르는 그것을.
“생명은 그 자신의 커다란 몸짓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이 몸짓의 구성 요소이다. 역사는 이 몸짓을 반복한다. 그래서 인간은 그 몸짓을 다시 한번 되살리며 과거 속에서 자신을 실현한다. 역사의 교훈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 속에서 스스로를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 저자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