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소시지와 감자, 맥주 말고 뭐가 더 있을까
알고 보면 복잡하고 다양한 독일 음식문화의 역사를 추적하다
독일 음식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부분은 소시지와 맥주 이상을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독일의 8,200만 인구가 매일 옥토버페스트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뜻밖에 음식에서만큼은 뚜렷한 이미지가 없는 나라가 독일이다. 과연 독일인들은 어떤 음식을 먹는가? 음식문화와 관련해서 독일적이란 어떤 의미인가?
유럽을 하나로 연결하는 중심부에 자리 잡은 독일은 오늘날 북쪽으로 덴마크와 네덜란드, 서쪽으로는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남쪽으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동쪽으로 체코와 폴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독일의 음식과 요리법은 북부와 남부가 서로 상당히 이질적이었던데다, 인접한 다양한 나라에서 지속적인 문화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조건에서 독일 요리는 특정한 전통을 고수하기보다는 전방위적으로 새로운 층을 더해가며 유연한 식문화를 마련했다. 획일적인 국민 요리나 변하지 않는 전통 요리는 없지만, 다양성과 지역성이야말로 독일 음식의 특징이다.
독일 출신 음식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소믈리에이며 역사학자인 저자는 《독일의 음식문화사―무엇이 독일을 독일답게 만드는가》에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문헌과 문학작품, 요리책과 의학서적, 법령과 공문서를 망라하는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 독일 식문화의 전통을 추적한다. 신석기시대부터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전환점을 담은 12개 장에는 식품을 얻기 위한 수렵, 채집, 농업, 축산, 무역과 전쟁 등의 과정, 조리기구와 요리법의 발달, 식문화에 영향을 준 사회적?정치적?경제적?종교적?기술적 요인에 대한 광범위한 설명이 담겨 있다. 150여 컷의 도판이 수록되어 이해를 도와주며, 본문 속 ‘당대의 식탁’에는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먹을거리나 식품점, 레스토랑이 소개되어 있다. 독일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언제 먹었는지 역사적 과정을 추적해 지금 독일에 사는 사람들이 현재의 음식을 먹게 된 이유를 찾아내는 이 작업은 곧 독일을 독일인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이다.
이번 신간 《독일의 음식문화사》는 《아침식사의 문화사》,《이탈리아 음식의 문화사》, 《그때, 맥주가 있었다》에 이은 ‘니케북스 음식문화사 시리즈’ 네 번째 책이다. 니케북스 음식문화 시리즈는 이후에도 프랑스를 비롯해 각국의 음식문화 역사를 꾸준히 소개해나갈 예정이다.
식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한 나라의 지정학적 특성과 생활양식, 민족적 특성까지 아우르는 그 나라 문화의 정수를 이해하는 일이다. 지배계층과 승자의 기록을 주로 다루는 일반적인 역사서에서 얻을 수 없는 다채롭고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음식문화사를 읽는 가장 큰 재미이며 의미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독일인의 식탁을 일구고 발전시켜온 과거와 현재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서문 독일 음식: 복잡성의 진화
1장 죽에서 사워도우 빵까지: 신석기·청동기·철기시대
2장 생고기와 농축우유: 로마시대 기원전 1~5세기
3장 기독교, 사회적 계층화, 의약품: 중세 초기 5~11세기
4장 호사스러운 연회와 끔찍한 기근: 중세 중기 11~14세기
5장 버터 빵과 사프란: 중세 말기 14~15세기
6장 독일 음식에 대한 저술: 근대의 시작 1500~1648년
7장 커피, 설탕, 감자: 1648~1815년
8장 소금 없는 감자와 무료급식소: 빈곤의 시대 1815~1871년
9장 고형 육수와 베이킹파우더: 식품의 산업화 1871~1914년
10장 희망과 굶주림, 통밀빵과 스웨덴순무: 1914~1949년
11장 캐서롤과 하와이토스트: 동독과 서독, 전후의 탐식 1949~1990년
12장 스파게티와 룰라드: 세계화 속의 지역성, 통일 독일 1990년 이후
주 / 참고문헌 / 도판출처
저자
우어줄라 하인첼만
출판사리뷰
독일 출신 음식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소믈리에이며 역사학자인 저자는 《독일의 음식문화사-무엇이 독일을 독일답게 만드는가》에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문헌과 문학작품, 요리책과 의학서적, 법령과 공문서를 망라하는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 독일 식문화의 전통을 추적한다. 신석기시대부터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전환점을 담은 12개 장에는 식품을 얻기 위한 수렵, 채집, 농업, 축산, 무역과 전쟁 등의 과정, 조리기구와 요리법의 발달, 식문화에 영향을 준 사회적ㆍ정치적ㆍ경제적ㆍ종교적ㆍ기술적 요인에 대한 광범위한 설명이 담겨 있다. 150여 컷의 도판이 수록되어 이해를 도와주며, 본문 속 ‘당대의 식탁’에는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가장 유명한 먹을거리나 식품점, 레스토랑이 소개되어 있다. 독일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언제 먹었는지 역사적 과정을 추적해 지금 독일에 사는 사람들이 현재의 음식을 먹게 된 이유를 찾아내는 이 작업은 곧 독일을 독일인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이다.
이번 신간 《독일의 음식문화사》는 《아침식사의 문화사》,《이탈리아 음식의 문화사》, 《그때, 맥주가 있었다》에 이은 ‘니케북스 음식문화사 시리즈’ 네 번째 책이다. 니케북스 음식문화 시리즈는 이후에도 프랑스를 비롯해 각국의 음식문화 역사를 꾸준히 소개해나갈 예정이다.
식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한 나라의 지정학적 특성과 생활양식, 민족적 특성까지 아우르는 그 나라 문화의 정수를 이해하는 일이다. 지배계층과 승자의 기록을 주로 다루는 일반적인 역사서에서 얻을 수 없는 다채롭고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음식문화사를 읽는 가장 큰 재미이며 의미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독일인의 식탁을 일구고 발전시켜온 과거와 현재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조각보처럼 이어진 이질적인 지역들,
음식에 남은 다양성과 지역성
지리·역사학적 시각에서 볼 때 독일은 슬라브족과 라틴족 사이, 한대기후와 아열대기후 사이, 바다와 산맥 사이에 있는 중부 유럽에 자리 잡은 나라다. 역사의 과정에서 독일은 사방에서 지속적인 정치적·문화적·사회경제적 영향을 받아왔다. 오늘날의 독일 지역은 게르마니아, 로마제국, 신성로마제국으로 변화를 거듭하다가 수많은 공국이 난립한 이후에야 독일제국이 성립되었으며, 물론 지역의 명칭이 바뀔 때마다 국경선도 바뀌었다. 저자는 그러한 영향에 대한 개방성과 수용성이 바로 오늘날 독일인과 독일 음식의 특성을 규정한다고 주장한다.
신성로마제국 시대까지는 라틴 문화의 영향권으로서 로마 음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중세부터는 국경을 맞댄 프랑스로부터도 식재료부터 구체적인 요리법과 용어까지 받아들였다. 보관과 수송 기술이 발달하자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와의 어획물 거래가 음식문화의 한 축이 되었고, 메밀을 선호한 슬라브족 문화도 독일의 식문화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아시아에서 베네치아를 거쳐 향신료를 들여왔을 뿐 아니라 직접 재배하기도 했다. 포도 재배가 활발한 라인강 유역은 와인 산지로 발달했다. 문제의 맥주와 소시지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제조법이 다양하게 분화했다. 지방분권적 사회구조가 독일의 약점으로 지적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수용성이나 다양성을 증대시킨 셈이다.
음식의 권력
금식과 호사, 빈곤과 풍요 사이에서
게르만족의 터전에 로마 문화가 전래되어 농경과 목축이 발전하고 식문화가 개선된 고대를 지나 5세기 초반이 되자, 중부 유럽에서 로마제국의 영향력은 거의 소멸했다. 이후 기독교가 게르만족 국가들의 공식적인 종교가 됨으로써 식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로 부상했다. 기독교는 절약, 검소, 정직과 같은 일반적인 미덕에 기초해 소박한 식사를 강조했고, 식사와 미덕의 연결고리로 금식이 등장했다. 그러나 기상이변, 전염병과 전쟁 등으로 늘 식량이 부족하던 시대에 무엇을 먹는가는 곧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중세 시골 하층민은 죽 위주의 식사를 한 데 비해, 도시의 식사는 그보다 다양하고 정교했으며, 사냥할 권리, 즉 사냥한 짐승의 고기를 먹을 권리는 왕과 최고위층에게만 주어졌다. 다만 식량부족은 정치적 안정을 위태롭게 하고 왕권을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프랑크왕국의 왕이자 교황의 공인을 받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대제는 칙령으로 여분의 식량 생산에 힘을 쏟았다. 봉건적 장원제도는 광대한 영토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딱 들어맞았다.
12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엄청난 양의 음식을 제공해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행위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냈다. 그러나 하층계급도 허기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된 후 귀족들은 지나치게 푸짐한 식사를 멀리하고, 사회적 구분을 위해 절제되고 의례적인 식사예절을 고안했다. 이런 양상은 다수의 문학작품에서 포착된다. 이 시기부터 식이지침 내지는 의학 처방전이라고 할 만한 식품의 성분을 설명한 기록이 남아 있고, 14~15세기 무렵에는 요리사들이 레서피 모음집이라고 할 만한 저술을 남겨 당시의 식재료와 조리법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게 해준다.
1315~1320년 대기근과 대역병이 인구를 대폭 감소시킨 후 15세기가 되자, 역설적이게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상황은 크게 개선되었다. 결과적으로 음식도 양적 질적 측면에서 향상되었다. 당시 지리적·사회적 격차는 강력한 경제적 주도권을 쥐고 있던 교역을 통해 강화되었다. 남부와의 교역을 장악한 귀족 집안들은 이탈리아 귀족들의 세련된 음식문화를 모방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북부의 교역을 담당한 한자동맹은 훨씬 평등주의적인 조직체였기에 이 지역에서는 사회적 신분이 높아진다 해도 식사가 현저히 세련되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변 강대국들, 특히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가 부상하면서 한자동맹의 시대는 종말을 맞게 된다.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대조적으로 독일에는 아직 하나의 수도가 없었다. 1500년 이후 사회적·재정적 압박으로 인해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세력이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지역성은 더욱 확대되었고, 음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식품의 대중화와 산업화
마르틴 루터가 이끈 종교개혁과 그 뒤를 이은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은 독일의 문화적 다양성을 강화했다. 루터의 성서 번역으로 독일어가 보편화되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덕분에 도서 구입이 가능해지면서, 가장 인기 있는 읽을거리 중 하나로 요리책이 떠올랐다. 음식의 유행이라는 측면에서 이웃 나라들보다 뒤처져 있었음에도 독일인들은 요리지침서를 쓰는 작업에는 열성적이었다.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 독립한 이후 독일인은 대부분의 유럽인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를 문화적 중심축으로 선택했다. 예의범절, 패션과 함께 식습관도 프랑스식 겉치레를 따랐고, 일상 대화에서도 프랑스어 구절이 혼용되었다. 그러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정치적·종교적 이해 충돌에 따른 30년전쟁이 이어졌고, 그 여파로 독일의 식사문화에서는 회복탄력성과 실용주의가 더욱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현재까지 독일인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감자, 설탕, 커피도 17~18세기에 들어와 모든 계층에 확산되었다. 야외맥줏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문화도 이때 자리 잡았다.
한편 근대에 인구가 급증하자 통치자들은 생산 증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도시 지역에 작은 공장들을 짓고 생산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뉘른베르크나 쾰른 등 전통적인 교역 중심지들이 퇴보하거나 정체되었던 반면, 베를린, 슈투트가르트, 뮌헨 같은 도시들은 국가보조금과 보호무역주의 덕분에 번성했다. 해운과 철도의 발달에 힘입은 빠르고 값싼 수송수단 개발로 원자재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생산 거점인 도시로 신속한 이동이 가능해졌다. 새로운 공장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임금이 상승했다. 1840년 독일의 경제는 영국에 비해 50년 이상 뒤처져 있었지만, 19세기의 마지막 무렵 독일은 산업화를 선도하는 나라들 중 하나였다.
19세기에 진입하면서 시작된 근대적인 식품산업과 음식에 대한 과학적 실험은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었다. 고형 육수로 만든 수프, 마가린 바른 흰 빵, 베이킹파우더를 넣은 케이크, 디저트용 통조림 과일, 기차에서 스낵으로 먹는 포장 비스킷 등은 현대의 기술, 도시화와 빠른 수송수단이 만들어낸 새로운 시대의 산물이었으며, 독일인들은 예전의 식습관을 털어내고 근대화를 받아들였다. 프랑스-프로이센전쟁 후 이른바 건국시대라고 하는 독일의 경제적 호황과 빌헬름 2세의 과시적 생활방식의 영향으로 다양한 유형의 새로운 호텔들과 식당들이 생겨났다. 독일 민족주의가 팽배해가던 빌헬름 2세의 통치시기에 언어적 순수성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고, 외래어에 대한 독일어화가 진행되어 상류층의 식문화에서 흔히 쓰이던 프랑스어와 영어를 독일어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가 풍요로워지고 누구나 흰 빵과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대두하는 한편에서는 통밀빵과 채소를 먹던 과거의 건강한 생활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생활개혁운동 ‘레벤스레포름Lebensreform’이 등장해 그에 맞서기도 했다.
나치즘과 전쟁, 동서독의 분단 이후
현대 독일인은 무엇을 먹는가?
1914년 전쟁이 발발하면서 독일인들은 배급 체제와 식품 부족의 기나긴 고통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봉쇄조치로 식품 수입이 불가능해지자, 전쟁의 향방은 국민들이 굶주림과 고통을 얼마 동안 감내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다. 당시의 임시방편적인 배급체계와 끔찍한 굶주림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1919년 6월 말 평화협정에 공식적으로 서명하면서 봉쇄가 풀린 이후, 이른바 ‘황금의 1920년대’ 동안 최소한 일부 도시 중산층은 보다 편안한 생활방식을 채택하고 근대성을 기꺼이 포용했다. 기저에 깔려 있던 현실도피 욕구 덕분에 오락산업이 호황을 누렸다.
1차대전 당시의 식량난으로 입은 정신적 외상은 추후 나치의 전략을 형성하는 데 바탕이 되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때의 경험이 당시 학생이었던 한 세대 전체가 광적인 나치 신봉자들로 변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생활권 즉 ‘레벤스라움Lebensraum’을 확보하기 위해 독일의 경제를 동쪽으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나치의 이론에 확신을 더해주었던 것이다. 나치 정권은 1차대전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식량의 수입에서 벗어나 자급자족을 달성하기 위해 전방위적 캠페인을 전개했다. 농업 부문은 일찍이 1933년부터 제국식량국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았다. 나치 정권은 생활개혁운동의 아이디어 중 많은 것들을 취해 활용했다. 특히 아리아인 지배 민족은 국내에서 생산된 자연적이고 완전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번성하고 번창한다며 통밀빵을 권장했고, 한 냄비에 끓여 나누어 먹는 음식 ‘아인토프Eintopf’를 통해 보다 심리적인 차원에서 전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려 했다. 실제로 전시에 나치는 무엇을 먹고 어떻게 먹어야 하며 심지어 무엇을 욕망할지까지 세세하게 규정했다.
전후 독일은 둘로 쪼개져 서로 대립하는 정치체제하에서 40년 동안의 실험을 거치게 된다. 서독 주민들은 자신들의 요리에 자유롭게 서구세계를 접목해 엄청난 입맛의 다원화를 겪은 반면, 동독 주민들은 대개 선택의 폭이 훨씬 더 좁았으며 경제적 문제로 인해 식문화는 정체 상태에 빠져 있었다. 모차렐라치즈와 피자, 되너케밥, 햄버거에 길들여졌던 서독인들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 동독인들이 여전히 캐서롤, 겨자소스를 곁들인 삶은 달걀, 감자경단에 애정을 가진 것을 인식하게 된다. 최근 독일 음식은 세계화와 산업화의 영향 속에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역주의가 부각되며 전통 요리가 재발견되고 있으며, 새로운 이민자들이 가져온 요리 전통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요컨대 오늘날의 독일 음식은 역사 속 수많은 영향이 반영된 결과물인 셈이다. 다양한 요리에 대한 개방성과 수용성, 복잡한 요소 간의 균형과 평정, 이것이 바로 독일 음식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