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보폭을 맞추어 나가는
공간으로서의 교회
지금 한국교회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형성된 긴장 속에서 치열한 역사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신의 축복과 임현, 그 가치의 온전함은 이미 교회 예배당을 가득 채우고도 남지만, 신을 발견한 기쁨을 우리 삶과 사회, 공동체에 실천해가는 길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한국교회의 명과 암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적 매개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공간과 그 공간을 점유한 교회 예배당이 걸어온 변천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경이로운 순간들과 함께 안타까운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들여다봐야 하는 쓰라림도 동반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교회는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주도하고 있는가”라는 명제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이 물음에 대해 저자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을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섣부르게 교회만이 이 사회의 희망이라고 낭만화하지도 않는다. 이미 이루어진 신의 축복을 아직은 더 갈급하고 발 빠른 보폭으로 채워나가는 데 집중하면서 한국교회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를 탐구한다. 그리하여 교회가, 그리고 교회라는 공간이 세상을 선도할 게 아니라 세상이 말하는 상식과 보폭을 맞추며 지금까지 학대받아온 낮은 자들의 신음소리를 듣는 데 주력하는 방법을 저마다 특색 있는 22개의 한국교회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
부르짖거나 무너지거나
역사 속의 종교, 종교 속의 역사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한국 역사이자 한국교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교회들을 소개한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역사와 종교, 그 얼룩진 아이러니를 함께 들여다보고(경동교회), 민중의 움직임을 가장 활발하고 역동적인 저항 의지로 담아낸 순간들을 포착하며(향린교회), 격동하는 한반도 역사에서 교회 안팎으로 어떻게 개혁적 의미들을 추진해나가고 있는지(안동교회), 상투성을 넘어 특수적 보편성으로의 회복은 가능한지(종교개혁500주년기념교회), 6월 민주항쟁 이후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인간다움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분단 이후 민족 복음화와 통일을 외친 구호가 어떻게 빛과 그림자라는 양면을 드러냈는지(영락교회) 살펴볼 것이다.
2부에서는 1980년대 이후 교인 수의 폭발적인 증가로 교회 조직은 양적으로 비대해졌으나 그에 비례해서 영적 성숙이 따르지 못한다는 데 대한 고민과 도전이 목회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발화되는지를 살펴본다. 이를테면 ‘강남’이라는 욕망의 한복판에서 복음을 부르짖는 것은 가능한지(사랑의교회), 어쩌다가 교회는 성전(聖殿)에서 성전(聖戰)이 되었는지(명성교회), 자본주의 교양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치유의 메시지(소망교회)와 그리스도의 정신에 위배되는 세속적인 교회 건축(충현교회), 신과 인간의 자리에서 그 경계를 무모하게 넘나드는 1인 카리스마의 서글픈 쇠퇴(성락교회) 등 한국교회가 준엄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들을 다룬다.
보존과 변화 사이에서
위가 아닌 아래를 향하는 교회
한국교회를 규모의 측면에서 구분했을 때 2부에서 살펴본 교회들이 모두 대형 교회라면, 3부에서 다루는 교회들은 작은 교회에 해당된다. 낮은 자리에 선 예수의 마음, 바닥도 모자라 바닥 밑의 바닥까지 내려앉은 인간의 비탄을 자비의 절정인 십자가로 채우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라면, 교회는 필연적으로 위가 아닌 아래를 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배당이 가장 낮은 자리에 섰던 예수를 맞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공간, 언제라도 예수 정신을 배신하지 않는 최후의 보루가 되기 위해 교회 공간은 어떠해야 할까.
오직 진리와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색채나 장식을 철저히 배제하는가 하면(이화여자대학교회), 정착 프레임을 넘어 떠돌이 상태의 지속을 강조하는 노마디즘을 추구하고(아트교회), 길 위의 공동체를 모색하며(모새골공동체교회), 예배당 미학의 궁극에 무교회주의를 두고(한길교회),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자연의 일부처럼 세상과 소통하며(제주 강정교회), 결국 본질만 남겨두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겠다(경산 하양무학로교회)는 철학을 한국 개신교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화두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 4부에서는 보존과 변화, 그 갈림길에 선 교회들을 살펴본다. 전통과 혁신의 길항작용에서 종교 문화의 기능은 지속 가능한지(정동제일교회), 지방 도시에 오래 뿌린 내린 교회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부조화적 조화(김천서부성결교회), 급변하는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보존 가치를 선택하는 것은 과연 최선인지(체부동성결교회), 본질에 어긋나지 않는 한 현지 문화에 맞게 녹여내는 것도 선교가 되는지(대한성공회 강화성당), 한국 최초의 조직 교회라는 상징성에 걸맞은 역할을 선도하겠다며 나선 새로운 시도는 세상에 빛을 전할 수 있을지(새문안교회) 등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물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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