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끝나지 않는 전염병 시대, 지리적 분석으로 해답을 제시하다
콜레라, 장티푸스, 결핵, 말라리아, 스페인독감, 에볼라바이러스, 에이즈, 코로나바이러스……. 어느 시대에나 어느 지역에서나 전염병은 예측 불허한 순간에 세계를 습격한 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전에는 풍토병에 그쳤던 질병이 촘촘해진 세계화의 그물망을 통해 순식간에 확산한다. 이제 지구 어딘가의 낯선 질병은 곧 내 앞마당의 질병이며, 전문가들은 우리 앞의 무수한 팬데믹을 예고하고 있다.
상하수도 시설과 쓰레기 처리 시설이 미비하던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구 문명이 균질하게 고도화되어가는데도 전염병은 왜 계속 새롭게 나타나는 걸까? 과학과 기술이 이렇게나 빠르게 발달하는데도 병의 종식은 왜 예전과 다름없이 어려울까? 우리는 언제쯤 전염병이 뒤흔든 삶을 회복할 진전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전염병이 발생하는 이유를 환경과 개인위생에서, 해결 방법을 과학과 기술에 기대어 찾아온 지금까지의 관점으로는 늘 뒷북을 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전염병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해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개개인의 삶을 가로지르는 지리적 연결망과 건강 불평등 지도에 주목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제1장 제국주의와 함께 온 콜레라, 콜레라가 만든 근대 도시
1. 인도 갠지스강 유역의 풍토병, 콜레라
2. 콜레라, 대영제국의 군대와 상선을 따라 세계를 휩쓸다
3. 콜레라가 만든 근대 도시
제2장 장티푸스보다 빠르게 번지는 혐오
1. 전근대적 질병, 장티푸스
2. 아일랜드 대기근과 떠나는 사람들
3. 환영받지 못한 사람들
4. 장티푸스 유행, 편견에서 공포로
제3장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읽다
1. 2020년을 강타한 코로나바이러스
2. 서양의 경멸적 시선과 위축된 동양
3. 코로나바이러스 공포로 다시 고개 든 오리엔탈리즘
제4장 공포만큼 크지 않았던 혐오, 스페인독감
1. 세균보다 작은 바이러스
2.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전염병
3. 미국이 스페인독감의 온상일 리 없어
제5장 전 지구적 질병에서 열대 풍토병으로 변한 말라리아
1. 열대의 풍토병으로 변해 버린 말라리아
2. 온탕과 냉탕을 오간 국제 사회의 말라리아 근절 노력
3. 말라리아는 퇴치될 수 있는가?
제6장 구소련과 함께 붕괴된 결핵 방어선
1. 결핵, 아름다운 질병에서 가난뱅이 질병으로
2. 인류와 결핵의 싸움
3. 구소련 붕괴와 더 강력하게 돌아온 결핵
제7장 에볼라 비상 버튼을 누른 세계
1. 죽음의 전령, 에볼라바이러스
2. 나쁜 정치를 파고든 에볼라바이러스
3. 에볼라 공포에 사로잡힌 세계
제8장 에이즈와 치료받을 권리
1. 에이즈에 들러붙은 편견
2. 빅 파마와 지식재산권
3. 에이즈를 둘러싼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제9장 코로나19, 실패한 시장 그리고 소환된 국가
1. 코로나19 앞에서 맥없이 무너진 선진국의 영광
2. 국가의 의료서비스 공백을 덮친 팬데믹
3. 코로나가 소환한 국가
참고 문헌
주
저자
박선미 (지은이)
출판사리뷰
전염병은 왜 계속 새롭게 발생할까?
과학과 기술이 발달해도 왜 쉽게 종식되지 않을까?
끝나지 않는 전염병 시대, 지리적 분석으로 해답을 제시하다
콜레라, 장티푸스, 결핵, 말라리아, 에볼라바이러스, 에이즈, 코로나바이러스……. 어느 시대에나 어느 지역에서나 전염병은 예측 불허한 순간에 세계를 습격한 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19는 이제 4~6개월 주기로 변이와 재유행을 반복하며 우리의 삶에 깊이 개입하게 되었다. 상하수도 시설과 쓰레기 처리 시설이 미비하던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구 문명이 고도화되어가는데도 새로운 전염병은 왜 계속 나타나는 걸까? 과학과 기술이 이렇게나 빠르게 발달하는데도 병의 종식은 왜 예전과 다름없이 어려운 걸까? 우리는 언제쯤 전염병이 뒤흔드는 삶을 회복할 진전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전염병의 원인은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의 문제로 여겨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되었을 때도 발생 지역의 식문화가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올랐다. 성적으로 문란한 이들이 에이즈에 쉽게 걸린다거나 빈곤한 지역의 위생 관념이 전염병의 온상이라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전염병이 발생하는 이유를 환경과 개인위생 문제에서, 해결 방법을 과학과 기술에 기대어 찾아온 지금까지의 관점으로는 늘 뒷북을 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전염병을 제대로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해답을 제시한다. 개개인의 삶을 가로지르는 지리적 연결망과 건강 불평등 지도에 주목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모두가 안전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안전할 수 없다”
세계 보건의 핵심 키워드, 건강 불평등
지리적 연결망을 중심으로 전염병을 살피면 병의 경로가 보인다.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퍼져나가는지, 왜 지역마다 피해 규모가 달라지는지, 같은 지역에서 확산되더라도 왜 어떤 이에게는 비교적 가볍게 지나가고 다른 어떤 이에게는 치명적인지를 추적하면 “질병은 지역 내에서 행위자들 간의 권력관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려 주는 지표”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주지했듯 전염병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곳을 무너뜨리며 시작된다. 고령자, 어린이, 주거 환경이 열악한 사람들, 진단비나 마스크 구매 비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사람들, 아파도 일을 쉴 수 없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었고 타격을 입었다. 국가 단위로도 피해 정도가 달랐다. 부유한 국가가 인구의 2~3배에 다다르는 백신을 쌓아놓는 동안 가난한 국가는 극심한 유행을 겪었다. 전염병은 의도를 가지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퍼지지만 개인이 누리는 안전망과 삶의 기회에 따라 피해 정도는 균등하지 않다는 것을 지난 3년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전염병이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현상은 새롭게 발견된 사실은 아니다. 부유한 국가에서는 이미 사라지거나 대수롭지 않은 질병이 된 말라리아는 빈곤한 지역에서 여전히 많은 사상자를 낸다. 공기 좋은 곳에서 충분한 햇빛을 쐬며 쉬는 것이 치료 과정으로서 권장되던 결핵은 한때 부유한 이들에게만 회복의 기회가 주어지는 계급적 질병이었다. 치료 약이 상용화되며 더는 ‘죽을병’이 아니게 된 에이즈 역시 치료제 개발 초기에는 비싼 약값으로 서구와 아프리카 대륙 사이 사망자 수가 크게 차이 났다.
새롭게 주목해야 할 사실은 지구적 이동과 접촉이 전에 없이 잦아진 지금, 전염병이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건강 불평등이 전염병의 유행을 심화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유한 국가가 인구의 2~3배에 달하는 코로나 백신을 쌓아놓는 사이 백신이 부족했던 가난한 국가에서는 유행이 심각해졌고, 그 과정에서 전파력이 더욱 커지고 기존 백신의 면역을 회피하는 델타, 오미크론 변이가 발생해 다시금 세계적인 유행이 일어났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백신이 빠르게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평등하게 안전할 수 없다면 결국 아무도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전염병이 뒤흔든 세계, 극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인류를 습격한 전염병의 역사 속에서 ‘사회적 백신’을 구하다
건강 불평등이 세계 보건의 중요한 열쇠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 책은 질병의 불균등한 지리적 분포는 물론 질병 이면의 권력관계와 체제, 지역이 가져다주는 삶의 기회와 그 기회에 영향을 미치는 시장, 제도, 정치 규범, 문화 자산을 포괄적으로 살핀다.
콜레라와 장티푸스의 사례를 다루고 있는 1, 2장은 전염병이 어떻게 기존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편견이나 혐오 그리고 차별을 증폭시키는지, 그리고 반대로 이러한 기존의 차별 의식들이 전염병 확산과 피해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코로나19와 스페인독감, 말라리아를 다루는 3, 4, 5장은 서구에서 발생하거나 크게 확산된 전염병 사례들에서조차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편견으로 인해 비서구가 사태의 원인으로 왜곡되는 상황을 다루며 전염병이 어떻게 서구와 비서구를 구분 짓는 허위 의식을 만들어왔는지를 보인다. 또한 ‘전염병 퇴치’가 아닌 ‘빈곤 퇴치’에 초점을 두는 방식으로 전염병 종식에 성공한 사례를 통해 세계 보건을 위해 빈곤과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짚는다.
결핵과 에볼라바이러스를 다루는 6, 7장은 냉전의 해체 이후 급속히 전개된 세계화가 특정 지역에서의 전염병 발생을 초래하며 이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개입 방식과 정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신자유주의 이후 생산 체제와 규모가 바뀌고, 고용 구조가 유연화되고, 국가의 역할과 개입 및 통제가 최소화되며 빨라진 전염병의 확산 속도와 세계보건기구로 대표되는 세계 보건 거버넌스의 대응이 건강 불평등의 지리적 양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알 수 있는 장이다. 8, 9장에서는 에이즈 환자의 건강권과 글로벌 제약 회사의 이익이 충돌한 사례, 코로나19의 국가별 방역 사례를 통해 세계 여러 국가가 전염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그들 간의 초국적 연대가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 정부의 정책 선택과 집행 능력 그리고 정부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준다.
“지역은 전염병이 발생하고 전파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재생산되고 가공되고 상상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역이라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전염병의 복잡한 동학을 이해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전염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아내는 것만큼 중요하다.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 지적 욕망 혹은 헛된 신념이나 선입견이 전염병과 그로 인한 위기를 증폭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지역 간 건강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건강 불평등의 원인을 개인적 행동 습관으로 보느냐, 지역의 환경으로 보느냐, 혹은 사회경제적 구조로 보느냐에 따라 원인 파악이 달라지고 해결 방안도 달라진다.”(6p, 「들어가며」)
문화적 편견과 정치·경제·사회적 판단들이 팬데믹 상황에서 전 세계의 안전과 매우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음을 밝히는 이 책은 전염병의 발생과 확산의 요인을 인간의 삶과 분리해 온 익숙한 관점에 비상등을 켠다. 전염병은 생물학적 질병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질병이라는 것, 전염병의 발생 원인과 극복 방안은 우리의 생각만큼 단선적이거나 타자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시작이다. 과학과 기술이 언제나 사후적인 대응책일 수밖에 없다면, 우리 삶을 실제로 가로지르는 지리적 연결망과 빈곤·불평등 지도를 살피는 일은 어쩌면 전염병 앞에서 우리가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하게 선제적인 대응이라는 점을 이 책은 명료하게 밝힌다.